명작순례
스너프: 무엇이 뒤틀린 세계를 떠받치는가

-빅토르 펠레빈 장편소설 『스너프』

  • 명작순례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스너프: 무엇이 뒤틀린 세계를 떠받치는가

-빅토르 펠레빈 장편소설 『스너프』

 

 

1962년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빅토르 펠레빈은 명실공히 러시아 현대문학의 대표주자다. 대중매체 앞에 나서길 꺼려하는 성격 탓에 행방이 매번 묘연한 이 작가는 정재계 거물들이나 반체제 인사들 혹은 유명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들과 함께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언급되어 왔으며 종종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한순간에 믿었던 모든 것을 상실한 소비에트인들의 경험을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한 인물의 여정을 통해 묘사한 첫 장편소설 『오몬 라』(1992)가 동시대인들의 큰 공감을 얻은 후 『벌레들의 삶』(1993)이 연달아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의 작품들은 먼저 상업적 대중소설로 각광을 받았다. 경계 세대의 정신적 방랑을 그린 『차파예프와 푸스토타』(1996), 『P세대』(1999)가 대중적 인기를 넘어 평론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소위 ‘펠레빈 현상’이 새천년을 장식했다. 이후, 『숫자들』(2003), 『늑대인간들의 성전』(2004), 『엠파이어 V』(2006), 『스너프』(2011), 『마푸사일의 램프 혹은 비상위원회 위원들과 프리메이슨들 간의 마지막 전투』(2016), 『아이퍽10』(2017), 『후지산의 신비로운 경치들』(2018)을 거쳐 2020년 출간된 『무적의 태양』까지 펠레빈의 작품들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어왔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내러티브, 신화는 물론 역사, 과학, 철학, 미래학을 비롯해 게임이나 영화 등 대중문화까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소재 선택, SF 소설의 상상력 가득한 설정,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해 우스갯소리처럼 던지는 철학적 문제 제기는 평단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는다. 이 중 올해 한국어판이 출간된 『스너프』는 총선(2011)과 대선(2012)을 연달아 앞두고 있던 러시아 내부의 혼란과 국수주의로의 회귀, 러시아에 대한 편견을 생산하는 서방 언론의 태도 등 갖가지 사회정치적 양상을 인간 본질과 세계의 구성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함께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스너프』는 지상의 혼란을 피해 공중에 떠있도록 거대 구체로 제작된 조세회피처들이 공공연하게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역사의 부침과 함께 이 구체들까지 차례로 추락하게 되고 이 중 유일하게 건재한 것이 ‘우르카이나’의 수도 상공의 ‘비잔티움’이다. 이곳은 빅 비즈(Big Biz)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금융은 물론 과학기술과 문화의 모든 방면을 선도한다. 비잔티움의 거주자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인간이라 여기며 지상에 남은 이들을 ‘오르크’라 부르며 천대한다. 그들에게 오르크란 자신들의 물질적, 정신적 우위를 확인시켜주는 안정제 같은 볼거리이다. 비잔티움과의 대립을 과장된 제스처로 강조하는 우르카이나 위정자들은 그들과 전쟁과 휴전을 반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정권을 연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결국 비잔티움 대 우르카이나의 대립이라는 것은 이 세계의 영속을 위한 기만인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너프’이다.

스너프(snuff)는 원래 강간이나 살인 등 끔찍한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의미한다. 이는 타인에게 가한 고통을 전리품처럼 촬영해 남긴다는 점에서, 또 타인의 고통이 영상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뒤틀린 인간 욕망을 대표하는 소재이다. 펠레빈은 이 단어를 스페셜 뉴스릴/유니버설 피처 필름(Special Newsreel/Universal Feature Film)의 축약형으로 쓰고 있다. 다큐멘터리 기록물과 영화가 빗금 하나로 접목된 스너프는 외설과 잔인함으로 무장한 채 자신의 감상자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정권을 지지하는 영화가 제작되고 영상에 접목된 언론이 정권의 영속을 보장하는 세계. 그러므로 스너프는 단순히 세계가 반영된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는 밑그림이기도 하다. 권력자들은 스너프의 제작 과정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이를 성물화(聖物化) 한다. 이를 위해 ‘마니투’에 대한 믿음이 강조된다.

작품 속에서 ‘마니투’라는 용어는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므로 등장할 때마다 그 뜻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신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며, 동시에 빛을 발하는 정보단말기의 화면을 뜻한다. 또한 이 세계에서 돈을 세는 단위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것들이 하나의 용어로 불리는 것은 종교, 언론, 자본이 삼위일체로 서로를 공고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회고록의 형식을 띤 이 작품의 화자는 우르카이나를 향한 언론 공세의 선봉에 선 빅 비즈의 전투비행 조종사 다밀롤라이다. 자기 삶의 유일한 행복이라 생각했던 섹스돌 카야가 비잔티움에 입성한 오르크 청년 시인 그림과 사랑에 빠져 가출해버리자 다밀롤라는 배신감에 절망하게 된다. 그가 자신이 사랑한 것이 타자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카야에게 설정해둔 성격 조합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즉 그가 카야와 함께였다고 여긴 모든 관계가 ‘자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다밀롤라와 카야가 나누는 일상적 대화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통찰과 해학이 전해진다.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층위는 작품의 첫머리에서 다밀롤라가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효과적 작업 중의 하나라고 제시하는 글쓰기의 의미에 있다. 숙제로 무료 백과사전-위키피디아를 연상시킨다-을 베끼는 것에 만족하던 오르크 청년 그림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스너프 촬영의 일환으로 계획된 전쟁에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전우들과 우르카이나에서의 온갖 부조리한 상황을 되짚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시련 끝에 입성한 빅 비즈는 그의 시마저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히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시켜버린다. 그는 곧 빅 비즈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창조완성기-검색 사이트의 자동완성기능을 연상시킨다-를 사용하여 세련되게 다듬어진 문장을 배열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연의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된 다밀롤라의 회고록은 우르카이나의 공격으로 비잔티움이 추락하게 되면서 조급한 끝맺음으로 치닫는다. 최후의 순간에 창조완성기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말로 회고록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다밀롤라의 노력과 세상의 모든 말들은 그것을 누가 어떻게 쌓아올린다 해도 결국은 모두에게 하나일 뿐이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이루는 묘한 대립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살아가는 작가와 문학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 『스너프』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2021년에 발간되었다.

윤서현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
역서 『스너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