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장
② 「타자기 치는 남자」 속의 반성문 쓰는 남자, 보고서 쓰는 남자, 그리고…

- 차근호 희곡 「타자기 치는 남자」

  • 문학현장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② 「타자기 치는 남자」 속의 반성문 쓰는 남자, 보고서 쓰는 남자, 그리고…

- 차근호 희곡 「타자기 치는 남자」

이 전의 대표작들로 볼 때 차근호의 희곡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추리적 사고를 그 넘나듦의 동력으로 삼는다. 「루시드 드림」과 「로맨티스트 죽이기」가 그랬던 것 같다.

「타자기 치는 남자」는 1980년대 초, 당대를 함께 살아가지만 상식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비상식 견주기다. 이 극을 꿰는 두 가지 내러티브는 김문식과 최경구, 김문식과 오형원 사이를 잇고 있다. 둘 모두에게 문식은 ‘선생님’이다. 그런데 결과적인 아이러니로, 실제 고등학교 제자인 형원과는 원한과 복수가 남고, 사적으로 계약한 사제관계인 경구와는 가르침과 변화가 남는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겹으로 엮은 드라마틱 액션의 세팅은 매우 탁월한 발상과 솜씨의 소산으로 보인다.

경구는 글짓기 학원 원장인 문식에게 글쓰기를 배우러 온다. 그는 문식과 동년배로 용공분자를 색출하는 공안경찰이다. 그는 한 ‘재야인사’를 감시하며 보고서를 써 상부에 제출한다. 그가 쓰는 보고서는 글이라기보다는 피감시자의 시간별 동태를 기록한 메모에 가깝다. 이 즈음 문식에게는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온다. 아니, 전화벨이 울리다 끊어지곤 한다. 문식의 불안은 가중된다. 그는 몇 년 전 재직 중인 고등학교에서 교장의 압박에 못 이겨, 얼떨결에 한 학생을 호명한다. 그 학생은 삼청교육대로 끌려간다. 그리고 2년 남짓이 지났다. 학원의 원장실에서 울렸다가 끊어지곤 하는 전화벨 소리는 그 제자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물론 그 제자는 빚을 받으러 오는 것이리라. 문식은 진작에 이에 대해 자기고백의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진행된다. 작가는 극 전반에 걸쳐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아이러니를 증폭시킨다. 물론 긴장은 문식과 형원 사이에서 이어지고, 아이러니는 경구와의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상식과 예상치 못한 비상식이 함께 범벅이 돼 우리를 비소케 하면서 예리한 유리 조각처럼 가슴을 긋는다. 형원은 포장용 테이프로 꽁꽁 묶은 문식 앞에서 자해를 해 피바다를 보여주며 죽음에 다다른다. 그리고 글짓기 수업이 끝나면서 경구는 자신이 쓰던 타자기를 스승인 문식에게 선물하며 자신이 새로 완성한 보고서를 보여준다. 고문 받던 대학생의 죽음을 한 경찰로부터 비밀리 전해 듣고 마침내 거리로 나가 군중 앞에 서는 재야인사의 모습을 유려하게, 소설처럼 쓴 글을.

권력이 총과 강변으로 국민을 대하던 시절,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희생되던 그 시절에 대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부채를 차근호는 이 시절에 와 스스로 끌어안더니 묵직한 아이러니로 갚고 있다. 「타자기 치는 남자」, 이 변제의 선택이 그의 글이 갖고 있는 대중적 감각에 대한 호오의 갈림을 간단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형원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삼청교육대에서의 참상과 공포, 그리고 경구에게 글쓰기 공부를 포기하게 하기 위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읽게 한 문식에게 되돌려주는 경구의 독후감 - 「맥베스」를 볼 때, 셰익스피어 선생님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이방인」의 뫼르소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프랑스는 자유진영 국가로서 모범적 사례로, 스스로 경찰로서 공직의 자세를 반성한다는 등의 언사는 쓰고도 달고도 신, 이 극 「타자기 치는 남자」의 반찬 같은 것들이다. 물론 겨우 목숨을 부지했으나 청송보호감호소에 들어가 있다는 형원에 대한 전언은 마감하지 못한 우리 20세기의 그림자로 남는다.

박상현
극작가, 연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희곡집 『자객열전』, 희곡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 「자객열전」 「사이코패스」 「치정」 「고발자들」 「명왕성에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