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장
①팬데믹 속에서도 만개한 한국문학

- 제29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선정

  • 문학현장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①팬데믹 속에서도 만개한 한국문학

- 제29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선정

한국 최대의 종합문학상 대산문학상의 스물아홉 번째 수상작들이 결정되었다. 수상작 선정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문학의 성과를 수확하는 과정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작가들의 노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수상작으로는 시 부문 김언 作 『백지에게』, 소설 부문 최은영 作 『밝은 밤』, 희곡 부문 차근호 作 「타자기 치는 남자」, 번역 부문 최돈미 英譯 『Autobiography of Death (죽음의 자서전)』(김혜순 作)이 선정되었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5천만 원씩 총 2억 원의 상금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 상패가 수여된다. 또한 시, 소설, 희곡 부문 수상작은 재단의 번역지원 사업을 통해 여러 언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출판, 소개한다.

 

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 선정 사유는 다음과 같다. ▲시 부문 『백지에게』(김언 作)는 ‘쓰다’라는 자의식 아래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아스라한 목소리를 김언 스타일로 단단하게 들려준 점 ▲소설 부문 『밝은 밤』(최은영 作)은 여성 4대의 일대기를 통해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의 역사가 장대하게 재현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교두보를 마련한 점 ▲희곡 부문 『타자기 치는 남자』(차근호 作)는 일상적 언어를 통해 억압과 권력의 폐해를 보여주고 그 피해자의 영혼을 독자와 관객들에게 환기시킨 점 ▲번역 부문 영역 『Autobiography of Death (죽음의 자서전)』(최돈미 譯)는 원작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목소리와 한국적 애도 과정을 높은 가독성의 뛰어난 번역으로 영어권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자들은 다음과 같이 수상소감을 전했다.

“지금까지의 시의 말이 결과적으로 나의 말로 들끓었던 시간이라면, 영영 올지 안 올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기다리고 있는 시의 말은 타인의 말로 들끓는 시간을 관통한 말이었으면 한다. 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타인의 말에 젖어보는 시간을 관통해보고 싶다. 그리하여 타인 속에서 타인을 견디는 시간, 백지처럼 막막한 그 시간을 어떻게든 지나 보려고 한다. 여전히 불투명한 그 길 앞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나서보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이 상을 무겁게 받겠다.”

- 김언

“지난 몇 년 동안은 사람들에게서 영원히 내 진심을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글을 쓸 거야, 죽기 직전까지 작가로 살 거야, 다짐하며 글을 썼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오기 같은 마음을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내려놓았다. 당연한 것은 없으며, 누구도 한 치 앞의 미래를 모른다는 것, 그 영원한 진실 앞에서 나는 한 줄 한 줄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이 현재에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다고, 내 소설을 읽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쓴다. 이 많고 많은 소설들이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서.”

 

- 최은영

 

“대산문학상은 희곡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문학과 연극 사이에 끼어 그 어느 한쪽에서도 온전한 자리를 얻지 못하는 대본이 아니라 공연을 전제로 하는 문학으로서의 희곡을 쓰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인 극작가로서 자신 있게 나아가라고 격려해주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멈추고 고민했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대산문학상은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잘 나서 이 영광을 안은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 상은 지금까지 극작가로 걸어왔던 길을 더 가열차게 나아가라는 주문이자 채찍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차근호

 

“아직도 김혜순 선생님 시를 번역할 때마다 두렵다. 『죽음의 자서전』은 김혜순 선생님의 가장 강렬하고 실험적인 시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의 죽음의 구조’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죽음의 자서전』을 번역하면서 악몽을 서너 번 꾸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꿈도 꾸었다. 김혜순 선생님의 ‘희미한 건축’ 이란 것을 꿈에서 보았다. 그것은 죽음의 구조인 ‘죽음의 내’에 저항하는, 바로 시의 구조였다. 번역하면서 두려울 때마다 이 꿈을 생각한다. 20년 동안 김혜순 선생님께서 내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시고 설명해 주신 덕분에 번역을 할 수 있었다.“

 

- 최돈미

 

왼쪽부터 김언, 최은영, 차근호 수상자. 최돈미 번역가는 해외 체류 중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제29회 대산문학상 심사 대상작은 2020년 8월부터 2021년 7월(희곡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된 모든 문학작품이었다. 한국문학의 성과를 수확하고 축하하는 대산문학상은 많은 작품 중에서 부문별로 단 1편만을 수상작으로 선정(공동수상이나 가작 없음)해야 하기에 심사위원들은 두 달 동안 세 차례 이상 만나 장시간에 걸쳐 토론을 펼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4차 대유행 속에서 심사를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심사위원들은 대면, 비대면 방식의 심사를 모두 활용하며 심사에 적극 참여하였다. 심사위원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만개한 한국문학 작품들을 마주한 상황에서 심사 방식의 어려움에 대한 불평은 불필요하다며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 시상한다는 대산문학상의 취지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예심은 강성은 서효인 조강석(이상 시), 소영현 이수형 임현 조해진(이상 소설) 등 소장 및 중견문인, 평론가 7명이 5월부터 약 세 달 동안 진행하였다.

 

본심은 고형진 김기택 김혜순 신달자 유성호(이상 시), 김인환 방현석 신수정 은희경 정찬(이상 소설), 박상현 안치운 유근혜 이상우 장우재(이상 희곡), 김양순 민은경 윤혜준 정덕애 피터 웨인 드 프레머리(이상 영어 번역) 등 중진 및 원로문인, 평론가, 번역가들이 8월 말부터 두 달 동안 장르별로 심사를 진행하여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제29회 대산문학상 시상식은 11월 29일(월)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빌딩 교보컨벤션홀에서 열린다.

운영자
정리 장근명
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