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달러구트 꿈 백화점』 시리즈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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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달러구트 꿈 백화점』 시리즈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

 

지난해와 올해 한국 출판계는 누가 뭐래도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시리즈의 ‘압도적 평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정식 출간된 이 책은 지난 6월 기준 55만 부가 판매됐고 570쇄를 찍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가장 많이 팔린 도서고,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는 지난해 10월 베스트셀러 차트에 진입한 이후 30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머무르기도 했다.

특히 지난 7월 27일 『달러구트 꿈 백화점 2』가 출간되며 주요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모두 같은 책의 1, 2권이 차지하는 이례적인 장면까지 연출했다. 게다가 올해 신경숙, 한강 등 묵직한 작가들의 오래간만의 복귀작부터 김초엽 박상영 장류진 등 대세 젊은 작가들의 책도 줄줄이 출간됐지만,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독주는 막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달러구트 현상’이라 불러도 좋을, ‘달러구트’ 시리즈의 인기는 과연 무엇에서부터 비롯하며, 무엇을 의미할까?

이야기의 무대는 ‘꿈속’이다. 이곳은 먼 옛날부터 꿈을 비롯한 수면 관련 물품을 팔아왔다. 이곳에서 꿈은 뛰어난 꿈 제작자들이 만드는 일종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페니가 이렇게 만들어진 꿈을 판매하는 꿈 판매업소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취직하며 시작된다.

이곳에서 꿈을 사가는 고객들은 모두 현실 세계에서 잠든 사람들이다. ‘잠에 들면 꿈을 꾼다’는 상황을, 잠에 들면 다른 세계에 진입해 꿈 백화점에 방문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이처럼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으로 풀어낸 소설 속 ‘세계관’이 일차적으로 독자의 관심을 잡아 끈다. 소설은 페니를 비롯해 꿈 판매원과 꿈 제작자들의 세계와 우리가 사는 일상 세계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페니가 사는 꿈속 세계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이국적인 장소다. ‘야스누즈 오트라’, ‘아가냅 코코’, ‘와와 슬립랜드’, ‘킥 슬럼버’ 등의 꿈 제작자부터 ‘녹틸루카 아쌈’ ‘라프라혼의 요정’ 등 주요 인물의 작명과 배경의 묘사를 통해 환상성을 극대화했다. “(해리포터의 배경인) 호그와트 다음으로 가보고 싶은 환상의 세계를 선물했다”는 독자 평에서도 알 수 있듯 ‘달러구트’ 시리즈는 현실이 아닌, 그러나 명백하게 이국적인 공간을 훌륭히 창조해냄으로써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다는 감각을 성공적으로 유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환상성은 현실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복무한다. 백화점의 고객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다. 짝사랑에 빠진 직장인, 군대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꾸는 남자, 가난한 가수 지망생,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는 부부 등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할 법한 고민과 소망이 이곳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통해 실현된다. 이 같은 현실과의 연계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괴로운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위로를 선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과 에피소드는 꿈속 세계의 디테일에 비하자면 다소 전형적이다. 매 에피소드를 교훈적으로 마무리하다 보니 지나치게 착하고 안전한 이야기에 머무른다. 때문에 일부 독자들은 ‘유치하고 진부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 같은 평가 역시 ‘쉽고 단순하다’는 뜻, 즉 ‘달러구트’ 시리즈의 확장성이 왜 클 수밖에 없는지 증명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국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고루 섞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달러구트’ 시리즈가 이토록 굳건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책을 ‘둘러싼’ 이야기 역시 ‘달러구트’ 시리즈의 화제성에 한몫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작가의 이력이다. 1990년생인 이미예 작가는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처럼 글쓰기와 관련된 학과가 아닌, 부산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생산설비 관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4년 9개월간 일하다가 소설가가 됐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겸 공상할 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했다가 모아 소설을 썼다. 소설 작법을 배운 적도 없다. 작가 스스로 “글쓰기와 아예 접점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달러구트’ 시리즈는 작가의 첫 작품이다.

책의 탄생 경로 역시 기존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달러구트’ 시리즈는 2019년 10월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발했다. 편집과 표지 디자인도 스스로 하며 직접 판 책이 목표 금액이었던 100만 원의 180%를 달성하며 화제가 됐고 이후 정식 출간으로 이어졌다. 종이책 출간에 앞서 전자책으로 먼저 냈는데, 전자책 플랫폼인 리디북스에서 4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 통상 종이책을 낸 뒤 전자책을 출간하는 것과 달리, 전자책으로 인기를 얻은 뒤 빗발치는 종이책 출간 요청에 따른 것도 이례적이다. 이후의 성공은, 상술한 대로다.

‘달러구트’의 성공은 결국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데뷔 경로를 따르지 않아도, 대형 출판사의 지지가 없어도, 작가의 유명세가 없어도, 오로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만 있다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꿈을 쓴 작가가 꿈을 이뤘다”는 평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달러구트’ 시리즈의 성공은 한국 소설 베스트셀러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한소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1991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