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③사라진 총알

  • 글밭단상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③사라진 총알

사람에겐 저마다 약한 신체 기관이 있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그 약한 부분부터 아픈 듯하다. 나는 콧속의 실핏줄이 약한지 공기가 건조하거나 무리해 일하면 코피가 터진다. 유전적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아버지도 젊은 시절 코피가 자주 났다고 한다. 권투 선수가 되고 싶어 체육관에 다녔지만, 시합에 붙으면 그리 아프지 않게 펀치를 맞았는데도 코피가 터져 버렸다고. 어머니는 눈이 약해서 몸이 힘들면 눈부터 병이 난다. 언니는 기관지가 약해 봄만 되면 꽃가루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다. 평소엔 괜찮다가도 체력이 떨어지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가장 약한 부분부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몸뿐 아니라 정신에도 약한 부분이 있을까. 특정 기억이나 감정을 건드리면 무너지고 마는 마음의 아킬레스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얘기를 자주 했다. 제대로 된 군복도 없이 몇 주 동안 훈련받은 다음 전쟁터로 나가야 했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그때 다리에 맞은 총알은 죽어 화장하고 난 다음에야 뺄 수 있을 거라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얘길 들으며 더는 통증이 없어도 사람의 마음에는 되돌아가 꺼내보며 아픔을 확인하는 저마다의 연약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큰 입시학원 근처에서 하숙집을 했던 할머니는, 그 시절 어느 집에 누구를 자신이 먹여주고 재워줬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할머니는 그때 자신이 얼마나 고생해 집안 살림을 일궜는지 얘기하지만, 자식들은 할머니의 말에 크게 수긍하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자애롭고 따듯한 어머니와 일하느라 가정일에 무관심한 아버지의 모습은 외갓집에서 바뀌어 있었다. 자식들에게 할아버지는 다정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쪽이었고, 할머니는 강하고 고집스러우며 자식들을 혼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셨다. 3년 전부터는 알츠하이머 약도 드신다. 사람들이 모이면 할머니는 자신의 설움을 토로하곤 하는데, 힘들게 돈을 모으던 기억 때문인지 자기 돈을 훔쳐 갔다며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식들을 공격한다.

“엄마, 그거 엄마 꿈이에요. 엄마가 꿈꾼 거예요.”

이모나 삼촌은 할머니를 달래고, 또 달래지만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면 누구도 버티지 못한다. 할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자식 넷을 오직 ‘말’로 녹다운시킨다.

“외로운 거야. 할아버지만 사랑하고 할머니한텐 사랑을 안 주니까.”

언니는 할머니와 친하게 지낸 사람이라 그런지 할머니를 이해한다. 할머니가 자꾸 되짚어보는 설움은 젊은 시절의 고생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이라고. 그 사랑의 결핍이 할머니를 더 억세고 거칠게 만드는 것이라고.

마음의 연약한 부분은 결핍에서 오는지 모른다. 나는 나의 결핍을 생각해본다. 제일 먼저 민감하게 통증을 느끼고, 태연한 척해도 엷은 막을 찢으며 붉게 피 흘리는 마음의 취약한 곳. 날이 건조해지면 가습기를 틀듯이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펴야 할 나의 일부.

어쩌면 그 일부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일 수도 있을까. 눈이 약한 어머니는 자신의 치료보다 할머니의 약과 병원 방문을 더 챙기고, 기관지가 약한 언니는 쉴 새 없이 기침하면서도 뱃속의 태아를 위해 만삭 시기를 버티고 있다. 약한 부분은 여전히 취약하고 탈이 나기 쉽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약함을 뛰어넘어 강해지게 만든다. 아팠던 기억, 힘들었던 상처는 자기보다 더 약한 존재를 돌보게 하는 힘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죽어서야 뺄 수 있을 거라던 할아버지의 총알은 영영 찾지 못했다. 시신을 화장한 뒤 화장장 직원이 붓을 들고 한참이나 회색 뼛가루 사이를 뒤졌지만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가끔 할아버지의 그 총알을 떠올린다. 평생 할아버지의 다리에 박혀 있던 그 총알은 어디로 간 것일까.

김멜라
소설가, 1983년생
소설집 『적어도 두 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