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우리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놀이가 등장한다. 놀이에서 탈락하면 아이들은 상징적 의미로 ‘너 죽었어’, ‘에이, 죽었네’라고 말하는데 드라마 속 게임 탈락자 어른들은 실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재미로 했던 어린 시절의 단순하고도 순수한 놀이를 돈과 죽음의 게임으로 전환한 드라마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몰입도가 큰 탓이었으리라.
그러나 충격을 뒤로하고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골목 놀이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봤다. 고무줄놀이, 목자놀이, 땅따먹기, 다짜깔(공기놀이의 전라도 방언), 우리 집에 왜 왔니, 달팽이 놀이, 말뚝박기 등등. 정말 많은 놀이가 있었고, 그 놀이는 대부분 노란 흙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하거나 바닥에 삐뚤삐뚤 직선과 원을 그려서 했다. 이상한 건 그 많은 놀이를 학교에서 반 아이들과 한 기억은 없다는 것이다. 넓디넓은 운동장도 있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학교란 계급과 차이로 구분 지어지는 곳이라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성적순이란 계급과 가정 형편의 차이. 그것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다.
그러나 하교 후 책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골목으로 뛰쳐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고만고만한 집에 사는 아이들이 하나둘 골목에 모이면 몇 학년이든, 반에서 등수가 몇이든, 사는 형편이 어떠하든,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놀이를 시작하기에 머릿수가 맞느냐였다. 특히 방학이면 동네 아이들은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밥을 먹고 골목에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해가 질 때까지 손발이 더러워지도록, 얼굴이 까맣게 타도록 놀다 저녁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들의 부름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끌려갔다.
그때의 밥 먹으란 소리는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놀이의 흔적이 남은 텅 빈 골목을 이윽히 돌아보는 일과 그 골목을 빨갛게 물들인 저녁노을은 왜 그리도 쓸쓸했던지.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차별과 차이로 얼룩진 학교생활에 잘 적응 못하던 나를 동네 아이들은 항상 놀이에 참여시켜주었고, 나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해주었으니까. 골목의 아이일 때 나는 조금도 차별받지 않았고 외톨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가난했던 그들은 내게 소중한 놀이의 추억을 부자만큼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고 계급과 차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집에 살던 얼굴 하얀 아이. 그 아이는 골목 놀이에 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당시 늘 궁금했다. 저 아이는 집에서 혼자 뭘 하며 놀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돈은 많이 벌었지만 사는 게 재미없어서 게임을 기획하고 직접 그 게임에 참여까지 했던 오징어 게임 속 노인 ‘오일남’처럼 가장 즐겁고 행복한 추억은 어린 시절 골목 친구들과 허물없이 즐겼던 놀이라는 것. 대궐 같은 집에 살던 얼굴 하얀 아이는 어쩌면 커다란 거실 유리창으로 뒷골목 우리의 놀이를 몰래 구경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구경의 기억만 있을 뿐 놀이의 추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 있던 남자아이들이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야, 우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자.’ 정말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요즘 아이들의 낯선 외침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오징어 게임 속 놀이가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국자를 들고 띠기나 한번 만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