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②놀이의 추억

  • 글밭단상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②놀이의 추억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우리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놀이가 등장한다. 놀이에서 탈락하면 아이들은 상징적 의미로 ‘너 죽었어’, ‘에이, 죽었네’라고 말하는데 드라마 속 게임 탈락자 어른들은 실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재미로 했던 어린 시절의 단순하고도 순수한 놀이를 돈과 죽음의 게임으로 전환한 드라마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몰입도가 큰 탓이었으리라.

그러나 충격을 뒤로하고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골목 놀이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봤다. 고무줄놀이, 목자놀이, 땅따먹기, 다짜깔(공기놀이의 전라도 방언), 우리 집에 왜 왔니, 달팽이 놀이, 말뚝박기 등등. 정말 많은 놀이가 있었고, 그 놀이는 대부분 노란 흙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하거나 바닥에 삐뚤삐뚤 직선과 원을 그려서 했다. 이상한 건 그 많은 놀이를 학교에서 반 아이들과 한 기억은 없다는 것이다. 넓디넓은 운동장도 있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학교란 계급과 차이로 구분 지어지는 곳이라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성적순이란 계급과 가정 형편의 차이. 그것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다.

그러나 하교 후 책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골목으로 뛰쳐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고만고만한 집에 사는 아이들이 하나둘 골목에 모이면 몇 학년이든, 반에서 등수가 몇이든, 사는 형편이 어떠하든,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놀이를 시작하기에 머릿수가 맞느냐였다. 특히 방학이면 동네 아이들은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밥을 먹고 골목에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해가 질 때까지 손발이 더러워지도록, 얼굴이 까맣게 타도록 놀다 저녁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들의 부름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끌려갔다.

그때의 밥 먹으란 소리는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놀이의 흔적이 남은 텅 빈 골목을 이윽히 돌아보는 일과 그 골목을 빨갛게 물들인 저녁노을은 왜 그리도 쓸쓸했던지.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차별과 차이로 얼룩진 학교생활에 잘 적응 못하던 나를 동네 아이들은 항상 놀이에 참여시켜주었고, 나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해주었으니까. 골목의 아이일 때 나는 조금도 차별받지 않았고 외톨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가난했던 그들은 내게 소중한 놀이의 추억을 부자만큼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고 계급과 차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집에 살던 얼굴 하얀 아이. 그 아이는 골목 놀이에 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당시 늘 궁금했다. 저 아이는 집에서 혼자 뭘 하며 놀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돈은 많이 벌었지만 사는 게 재미없어서 게임을 기획하고 직접 그 게임에 참여까지 했던 오징어 게임 속 노인 ‘오일남’처럼 가장 즐겁고 행복한 추억은 어린 시절 골목 친구들과 허물없이 즐겼던 놀이라는 것. 대궐 같은 집에 살던 얼굴 하얀 아이는 어쩌면 커다란 거실 유리창으로 뒷골목 우리의 놀이를 몰래 구경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구경의 기억만 있을 뿐 놀이의 추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 있던 남자아이들이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야, 우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자.’ 정말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요즘 아이들의 낯선 외침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오징어 게임 속 놀이가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국자를 들고 띠기나 한번 만들어볼까.

장은진
소설가, 1976년생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날씨와 사랑』,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당신의 외진 곳』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