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①일심(一心)

  • 글밭단상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①일심(一心)

써야 한다. 쓰긴 써야 하는데 도무지 쓰질 못하고 있다. 아니 무얼 써야 할지조차 여태 정하지 못한 채 그저 노닥거리고만 있다. 원고 마감일이 지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편집자에게 죄송하다, 언제까지는 반드시 써서 보내겠다, 철석같이 약속하고 다짐했건만, 머리는 녹이 슬어 버석거리고 손가락들 사이론 모래알갱이들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미치겠다. 그리고 서글프다. 써야 하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좀 아까까지 원고를 거의 다 썼었는데 싹 지우고 말았다. 정말인데, 그러길 이미 서너 번째다. 미칠 노릇이다.

민망한 이야기를 더 적자면 이렇다. 실은 나도 오늘 아침에 필자들에게 원고 독촉 문자를 보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도 계간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마감일이 지났으니 원고를 보내 달라고 연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끄러웠던 까닭은 내가 아직 청탁 받은 원고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다. 거짓말은 아닌데 거의 거짓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과 원고 독촉을 한 건 생각해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묶으려는 건, 순 억지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또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다. 예상했겠지만 원고 독촉 문자를 보내면서 난 살짝 위로와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만 원고를 쓰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위안을 받았고, 원고 마감일을 연장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에 흔쾌히 승낙하고는 내가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지 배포가 큰지를 셈하면서 자긍심을 가졌고, 더 나아가선 이들 중에 한두 명은 필히 원고를 쓰지 못할 거라고 원래 이쪽 일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냐고 싱글거리며 비장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이런 일들을 두고 예컨대 ‘글이란 빚진 것 없이 빚진 자의 윤리’라는 내용으로 글을 쓰면 꽤 근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치사하게 말이다. 내친김에 밝히자면, 아까까지 한창 쓰던 글은 시집 원고를 투고한 어느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쓰다 보니 그분의 시가 투박하긴 하지만 그 정성만큼은 대단했다는 요컨대 다분히 교술적인 아니 교조적인 쪽으로 스멀스멀 흘러가고 있었다. 창피했다. 그보다 내가 또 누군가의 순정을 우려먹고 있구나 싶어 차마 더는 쓸 수 없었다. 그전에 썼던 글은 근래 이래저래 말이 좀 많았던 예술원에 대한 것이었는데, 군소 시인 축에도 낄까 말까 한 나까지 말을 보태는 게 영 멋쩍어서 그만두었다. 실은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어서였는데, 아무리 봐도 이분은 시를 못 쓰는데 어떻게 예술원 회원이 되었을까, 그런 시답잖은 걸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전엔 목부작에 대해 썼었는데 죽은 나무 속에 나무가 산다는 둥 지나치게 젠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쓰다 말았다. 그리고 그전에는, 아, 모르겠다. 이젠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여하튼 뭔가를 쓰고는 있었는데 다 맘에 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적고 있는데 얼마 전에 시집을 낸 박순원 시인이 쓴 “아무거나 써 놓고 시라고 우기는 정신 오직 그 정신만이 시를 만든다”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애처롭고 애틋한 문장이다. 물론 내가 지금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으니까 괜히 더 그런 거겠지만, 절박하고 간곡하기까지 하다. 연금술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어쩌면 연금술사의 마음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돌멩이가 반드시 금이 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주문을 외우고 때때로 밤을 새우고 그러다 코피도 좀 터지고 가끔은 좌절도 의심도 낙심도 하면서 다시 그런 자신을 호되게 자책하고 달래 가면서 일생을 바쳤을 연금술사들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 특히 시인의 운명은 그처럼 다만 애잔하다.

채상우
시인, 1973년생
시집 『멜랑콜리』 『리튬』 『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