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②결혼식 가는 길

  • 단편소설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②결혼식 가는 길

그해 여름 나는 오랜만에 류 선배를 보았다. 그의 결혼식 날이었다. 8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었고, 새벽부터 가느다란 부슬비가 소리 없이 내렸던 기억이 난다. 그날 아침 나는 검회색 리넨 재킷에 발목이 드러나는 정장 바지 차림으로 현관 앞을 서성거렸다. 과연 내가 류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해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태 마음을 못 정했어?

그렇지만 예식 참석 여부를 묻는 친구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나는 가려고, 일단 가보려고, 하는 답장을 적어 보냈다. 그러고 나서야 내 마음이 진즉 정해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만 몰랐던 나의 마음. 매번 언어라는 형식으로 구체화되고 나서야 가까스로 포착되는 나의 마음을. 그러나 신발장에서 비닐우산을 꺼내어 집을 나서는 길에도, 골목 어귀를 돌아 지하철역에 다다랐을 즈음에도 가슴 한편에 얼룩처럼 남아 있던 의구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짙은 빛깔로 선명해지는 듯했지.

그것은 류 선배가 보내온 청첩장에 담긴 이중적 뉘앙스 때문이었다. 하나는 누구에게나 통용될 만한 의미로서 간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이 기회에 연락 좀 하고 지내자는 취지의 반가운 인사. 다른 하나는―이건 아마도 나에게만 감지되는 뉘앙스일 텐데―봤지? 이제 알겠지? 그럼 알아서 나가떨어지라는 의미로서 발행된 절교장이라고밖에는. 그러므로 나는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강 위의 철교를 건너기 시작한 열차 안에서, 그 덜컹거리는 진동 안에서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차창 너머로 부옇게 피어오른 물안개를 건너다보면서, 그것이 잿빛 하늘과 강물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우는 모습을 관망하면서 새삼 류 선배와의 기억들을 되짚어볼 수밖에.

*

내가 류 선배를 만난 것은 첫 직장을 그만두고 스물다섯의 나이로 예술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였다. 대학원이라고는 하지만 2년의 석사과정이 전부인, 재학생 총 인원이 열 명 남짓한 규모의 문예창작학과였다. 그해 봄, 중강당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대학원 건물 4층의 학과 연구실로 향했던 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샛노란 문을 열어젖혔다. 그날은 신입생들이 2학년 선배들을 만나 이른 저녁 식사로 치킨과 피자를 함께 먹으며 인사를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책상들을 한쪽으로 치운 바닥에 돗자리와 신문지를 겹쳐 깔고 모두 동그랗게 모여 앉았는데, 공간이 협소하여 서로의 무릎과 발끝이 닿을 정도로, 옆 사람의 긴 머리카락이 팔뚝에 스칠 정도로 가까이 붙어야만 했다. 그러자 나는 예상보다 심한 강도로 어깨와 목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식은땀만 흘렸다.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지도 못했고, 끝내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오기까지 했지. 이후로도 나는 학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돌기만 했다.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회사를 그만둘 즈음부터 앓게 된 불안 장애 탓이었다.

국내 제약회사와 도매상들을 상대로 수입 의료품과 원료를 판매하는 무역 회사에 다닐 때였다. 영업1팀 막내였던 나는 입사한 지 반년 만에 문제 사원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난생처음 참석했던 접대 술자리에서 멋모르고 저지른 일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거래처 담당자들을 찾아가 눈도장을 찍고, 명함이 꽂힌 카탈로그와 함께 드링크제를 돌리는 식의 홍보 업무를 주로 했다. 단정한 양복 차림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신제품의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것. 그게 영업의 전부인 줄 알았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과장님과 부장님의 호출로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중년 남성 셋을 만났다. 경쟁 업체에서도 노리고 있는, 대규모 입찰을 준비 중인 모 제약회사의 직원들이라 했다. 그 밤 나는 부장님이 끊임없이 주문해대는 양갈비와 수입 맥주를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했다. 그러면서 나의 상사들이 어느새 제약회사 사람들과 직위를 생략한 채 형님, 아우님, 하며 말을 놓고 농담까지 주고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것이 영업인가.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으나 거기까지는 뭐, 그런가 보다 싶었다. 문제는 2차로 간 노래방에서 소위 ‘아가씨’들이 등장한 순간 벌어졌다. 나는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이 없었기에―무엇보다 그런 상황이 처음이었기에―당황했고, 소파 끄트머리에 얼떨떨한 얼굴로 앉아 있기만 했다. 이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었기에…… 나는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나름의 저항이랄까 대처를 하고 말았다. 분위기 좀 띄워보라며 부장님이 건네는 마이크를 애써 모르는 척했고, 과장님이 탬버린으로 엉덩이를 쳐가며 <이브의 경고>를 부르는 내내 벽 쪽에 붙어 서서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얼근하게 취한 제약회사 형님들이 만 원권 지폐를 술에 적셔 노래방 모니터에 철썩철썩 붙여놓는 식으로 아가씨들 팁을 주는 모습을 경악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부장님과 눈이 마주쳤지.

“저걸 어따 쓸꼬.”

그날 이후로 나는 대외 홍보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매주 시행되던 직무 능력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기 시작했고, 툭하면 옥상으로 불려가 피우지도 않는 담배 연기를 맡으며 충고인지 힐난인지 모를 말들을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질구레한 일만 떠맡으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지.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공기청정기 필터가 제때 교체되었는지를 확인하거나 누군가 대충 기입한 지출결의서의 영수증을 찾아다니거나 물류 창고에서 라벨이 잘못 붙은 제품을 골라내는 작업 따위에 동원되었다. 그런 식의 따돌림이랄까 괴롭힘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첫 직장 생활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나온 뒤로는 얼마간 외출을 삼간 채 자취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점점 버거움을 느끼던 차였으니까. 그즈음 나는 친분에 상관없이 누구를 만나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손끝을 덜덜 떨었다. 전화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목이 죄어오는 듯한 감각에 말 한마디 뱉지 못했지. 결국 나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 열흘에 한 번 꼴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대인공포증 같네요.”

상담의는 가지런히 쓸어 넘긴 백발에 별것 아닌 말에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두 달 정도 경과를 지켜보더니 약물 말고 다른 노력도 시도해보자고 권했다. 작은 수첩이나 노트를 갖고 다니면서 평소에 느끼는 감정이나 불현듯 떠오르는 이미지 같은 걸 글로 옮겨 적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요?”

“음, 본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요?”

“아니요. 어떤 모양 어떤 꼴이 되고 싶은지요.”

상담 내용을 곱씹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오후, 나는 대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에 뛰어들 무렵을 가만히 돌아보게 되었다. 역대 최악의 취업난이니 뭐니 하는 말에 겁먹고 동아리 활동이나 친구 사귀는 건 일절 포기한 채 공부에만 매달려 국문학과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던 것. 그럼에도 서류 전형에서 몇십 번이나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던 것. 생각지도 않았던 무역 회사 영업부에 덜컥 합격해버린 것. 생경한 직무와 투박한 회사 분위기에 이제 좀 적응해가나 싶었는데 그런 일로 눈 밖에 날 줄이야. 그러면서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전공 선택 과목으로 두 번인가 들었던 창작 수업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렴풋한 예감만으로 첫 문장을 타이핑하고, 미로 속을 헤매듯 이리저리 행간을 떠돌다가, 마침내 계단을 한 칸 뛰어오르듯이 도약하는 느낌으로 마지막 문장을 적어 넣던 순간들. 그때의 고양감. 삶이 조금은 명료해지면서 손에 잡힐 듯 여겨졌던 기분까지. 그날 나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텅 빈 도로의 끝을 건너다보면서, 비탈을 올라 서서히 다가오는 푸른색 간선버스를 바라보면서, 내게 있을 또 다른 생의 경로들을 상상해보았고, 그것만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푸릇한 기운과 함께 색색의 꽃이 만개하던 봄, 나는 운 좋게 입학시험을 통과하여 대학원 진학에 성공했으나 막연히 품었던 기대와 달리 대인 기피 증세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기존에 먹던 신경안정제에 항우울제와 혈압 조절제 등을 추가로 복용했음에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여전히 고초를 겪다시피 했다. 강의실 구석에 앉아 잠자코 수업을 듣는 정도는 괜찮았으나 교수님이 나를 지목해 질문이라도 건네면―그놈의 세미나식 수업―별안간 호흡이 불규칙해지면서 온몸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답변을 기다리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마친 뒤 동기들이 강의실에 남아 복습을 겸한 스터디를 진행할 때에도, 자기들끼리 연구실에 모여 선배들과 친목을 쌓아갈 때에도 나는 혼자 대학원 건물을 빠져나와 중앙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5층 예술자료실 창가 자리에 앉아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피로감에 눈앞이 흐릿해지면 고개를 들어 학교 뒷산의 가문비나무 숲을 건너다보았다. 진하고 연한 초록빛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바람에 천천히 너울거리는 형태를, 잎사귀들 사이로 잘게 부서져 내리는 볕뉘를 눈으로 좇으며 더 이상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간다면 또 어디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쳐갈 즈음이었다. 기말고사를 목전에 둔 6월, 그날도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겨 대학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좁고 호젓한 길을 따라서,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언덕길을 올라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날은 지하 독서실부터 꼭대기 층 영상자료실까지 빈자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몰린 데다가 얼마 전에 내린 폭우로 천장에 누수가 생기면서 일부 열람실 운영이 중지된 탓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공교롭게도 조교 누나와 마주쳤다.

“너 또 혼자구나.”

그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더니 나를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았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매.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4년 넘게 조교로 일해 온 그는 대학원생 누구를 만나든 퉁명스레 쏘아붙이고 하대하는 것으로 ―어차피 다 후배들이잖아―동기들 사이에서도 제법 불편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근무 시간에 본인 작업에 열중하느라 학생들의 요청을 미루고 미룬 끝에 처리해준다는 둥, 술만 마시면 교수님도 못 말릴 정도로 막무가내라는 둥 소문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조교 누나가 마치 나를 쭉 지켜보고 있었다는 식으로 말을 걸어와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공부할 데가 없어? 연구실 가면 되잖아.”

그는 딱히 대답을 들으려는 기색 없이 질문을 툭툭 던지다가 “하, 너도 참 이상한 애구나” 하면서 팔짱을 꼈다. 가늘고 흰 목선이 드러나도록 고개를 좌우로 꺾더니 연구실을 이용하기가 정 싫으면 취업전략실에라도 가보라고 말했다.

“거기를…… 왜요.”

내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묻자 조교 누나는 한쪽 눈썹을 실룩이며 대답했다.

“아니면 따로 갈 데나 있니.”

“그런데 예술학교에 무슨, 그런 게 있어요?”

“얘 봐라.”

그 질문에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예술인은 취업 안 해도 되니? 전략 없이 막 살아도 돼?”

알고 보니 취업전략실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이수했으나 일부러 졸업 작품을 제출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있는 졸업유예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재작년에 졸업유예생 숫자가 처음으로 재학생 수를 넘어섰을 때 학교에서 특별 조치해 만든 곳으로, 명목상으로는 졸업유예생들을 위한 전용 연구실이었으나 실상은 등록금을 내지 않고 학교 수업과 시설물을 이용하는 골칫거리들을 한데 몰아넣기 위한 격리실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비좁고 창문도 없는 지하 방 한 칸을 내주면서 거기가 너네 공간이니 그곳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감히 다른 곳을 넘보지 말라는 뜻으로 만든 곳. 학교 측의 이러한 의도는 제법 성공적인 효과를 발휘해서―그 무렵 졸업유예생의 청강과 도서관 이용도 불허되었다―오래지 않아 그들은 하나둘 졸업장을 받아 학교를 떠났다. 취업전략실이라는 명칭부터 모욕적이었다는 말과 함께. 졸업을 계속 미루더라도 학교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황에 아랑곳없이 취업전략실에 남기로 결정한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류 선배였다.

“너구나?”

그날 류 선배는 취업전략실 문 앞에서 배회하던 나를 발견하자마자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큰 소리로 외치며 다가왔다. 훤칠한 키에 거뭇한 턱수염, 양쪽 소매를 걷어 올린 흰색 셔츠 차림이 먼발치에서도 눈에 띄었다.

“난 또 무슨 어마어마한 공주님이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

내가 엉거주춤 물러서자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짙은 눈썹에 콧대가 우뚝했고, 옷깃에서는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났다.

“조교한테 얘기 못 들었어? 난 아까 연락받았는데.”

나는 얼마 동안 대답을 우물거리기만 했다. 취업전략실이 텅 비어 있을 거라는 조교 누나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으니까. 그런 나를 바라보며 류 선배는 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막 떠올랐다는 듯 내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제 소설을요?”

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끝을 찡긋했다.

“몰랐구나. 입학시험 때 제출한 작품, 합격자 발표 나오면 다들 돌려가면서 봐. 조교한테 부탁하면 다른 애들 것도 보여줄걸.”

그러더니 고개를 기울여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맞아, 그때 나는 언젠가 네가 여기로 올 줄 알았어. 느낌이 딱 왔거든.”

“무슨 느낌이요.”

“뭐랄까.”

류 선배는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씨익 웃어 보였다. 가지런한 치열에, 왼쪽 볼에만 보조개가 깊게 파이는 미소였다.

“왠지 나 같은 애라는 거?”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내가 흠칫 놀라 얼굴을 붉히는 사이 취업전략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도서관에 자리가 없거나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을 때면 취업전략실을 찾아갔다. 대학원 건물 지하 2층, 복도 끝에 위치한 3평 크기의 방을. 과거에는 변전실로 쓰였다는 그 옹색하고 습한 공간을 찾아가 늘 혼자서 소설을 쓰고 있던 류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그 방에서 류 선배와 함께 있을 때에는 긴장감에 몸이 굳거나 말을 더듬는 증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고, 나는 상담의의 권유에 따라―그분이랑 좀 더 대화를 나눠보세요―방학 중에도 틈틈이 취업전략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방은 회색 콘크리트 벽을 따라 둘러놓은 목제 책상 세 개와 잉크젯 프린터 하나, 5단 책장, 손잡이 부분이 낡고 해진 일인용 가죽 소파가 전부인 공간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내가 학교에서 유일하게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류 선배가 워낙 허물없이 친근하게 대해준 덕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를 ‘나 같은 사람’이라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싶다. 그 부분에 대해 한 번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으나…… 당시에 나는 우리가 동일한 성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분명 그러하리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류 선배가 말했던 ‘느낌’이라는 게 어느 순간 내게도 ‘딱’ 왔기 때문에.

그러나 아니었지.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취업전략실에 전공 서적이며 텀블러, 독서대 같은 무거운 소지품들을 놓고 다녔다. 수업을 마치고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신 그곳의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류 선배와 자못 절친한 사이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람없이 이것저것 묻기도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가 어떤 연유로 취업전략실에 남게 됐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갈 데가 없어서.”

“에, 그런 이유예요?”

내가 어이없어하자 류 선배는 그제야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듯 골똘해졌다. 책상에 한쪽 팔꿈치를 괴는 자세로 앉더니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취업전략실이 생겼을 때 사실 나는 다른 애들처럼 모욕감 같은 걸 느끼진 않았어. 명칭이야 뭐, 아무런들 어때. 나는 그저 대학원씩이나 들어왔는데 뭔가 이루어낸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해서…… 이것으로 됐다, 끝났다, 싶은 기분이랄까 홀가분함이 느껴질 때까지만 학교에 남아 있으려고 했어. 맞아,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있는 것 같아……”

그런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다가도 우리는 밥때가 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매번 볼품없는 식단을 한탄하면서도 잔반 하나 남기는 일 없이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대극장 앞 벤치에 앉아 자판기에서 뽑아 온 밀크커피를 홀짝이며 석양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진한 오렌지색에서 귀퉁이부터 조금씩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핏빛으로, 멍투성이의 보랏빛으로, 남색으로, 그러다가 한순간에 까마득한 어둠에 잠식되고 마는 하늘을. 그 아름답고 덧없는 과정을.

사위가 어둑해지면 취업전략실로 돌아와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던 추분 무렵에는 건물 옥상에 종이 박스를 깔고 앉아 한가로이 캔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날 저녁,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우리가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말들. 술기운이 살짝 올랐는지 귓등이 붉어진 류 선배가 내게 떠보는 식의 질문을 던질 때마다―그런데 너는 여자친구 없어? 남자친구는?―나는 잠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 속에서 되묻곤 했다.

“그러는 선배는요? 남자친구도 괜찮아요?”

“나야 뭐, 마음만 잘 맞으면…… 상관없지.”

그때 나는 간지럼을 타는 아이처럼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어째서인지 내 안의 깊은 곳이 보드라운 깃털로 살살 어루만져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이윽고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을 때, 류 선배는 내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 손에 이끌려 화천의 할머니 댁에 맡겨졌던 일이며, 걸핏하면 시비에 휘말려 싸움을 벌이곤 했다던 남중 남고 군대 시절까지. 과거와 절연하다시피 상경한 끝에 누리게 된 현재의 자유로움과 쓸쓸함에 대해서도 길게 털어놓았다. “똑같지는 않은데, 저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을 때 그는 왠지 쑥스러워하는 기색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래? 아무튼 비밀이니까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밤이 깊어지자 학교 뒷산에서는 마른 이파리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늘고 여린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자꾸만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쓸어 넘겼고, 너무 후덥지근하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그 시기의 온도가 얼마나 찰나의 것인지 알았기에 문득 애틋한 심정이 되어 류 선배를 건너다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나 역시 대학원에 오기 전, 회사를 그만두게 된 정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는 차마 꺼내놓지 못하던 이야기였는데, 그날은 아무렇지 않게 조금은 웃기도 하면서 말을 늘어놓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류 선배는 심상한 얼굴로 듣기만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살아보니까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고.”

“그래요?”

“응,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많이 믿거나 의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더라.”

그 말을 끝으로 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비슷한 경험’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류 선배가 빈 캔을 우그러뜨리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바람에 입을 닫고 말았다.

우리는 선호하는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흥미롭게 읽었던 시와 소설은 물론이고―류 선배는 기형도와 롤랑 바르트, 마르셀 프루스트의 추종자였다―좋아하는 영화, 음악, 쇼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도 심심찮게 공유했다. 그러면서 류 선배도 알고 나도 아는 작품의 한 장면을 장난삼아 따라 하기도 했으며―그는 <타짜>의 김혜수 성대모사를 즐겨 했다. 작업 직전에 “쏠 수 있어!”를 “쓸 수 있어!”로 바꾸어 소리쳤다―드물게는 미술 전시나 연극을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접한 류 선배의 문화적 취향과 안목에서 내 나름의 확신을 다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번은 그가 관심 있어 하는 공연을 같이 보러 가기도 했다. 종로에 위치한 아트센터에서 열린 창작 뮤지컬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당대 문인들이 항거의 의미를 담아 문학잡지를 발행해나가는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 한 남성 문인이 일본인 남자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면서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는.

“재미있었어?”

관람을 마치고 공연장을 나섰을 때 바깥은 이미 어두침침해져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서는 작은 빗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고, 예기치 못한 날씨에 우리는 차양 아래에서 얼마간 비가 그치길 기다려야 했다.

“재밌었는데, 왜요? 선배는 어땠는데요.”

내가 묻자 류 선배는 어, 하면서 시간을 끌더니 “실은 그냥 그랬어”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놉시스와 평점만 보고는 재미있을 줄 알고 나를 데려왔는데 관람하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너도 솔직하게 말해봐. 정말 재미있었어?”

나는 왠지 조마조마해하는 류 선배의 얼굴을 바라보며―그 모습이 귀여워서―어,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실은 그냥 그랬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 말과 동시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끝부분에, 그 장면은 좋지 않았어요?”

내 말에 류 선배는 “아, 그거”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죽기 전날 밤에 마지막으로 연인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었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연서인지 유서인지 모를 내용을 한참 동안 써 내려갔다. 그러곤 펜을 놓고 창밖에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다가 이 편지는 자신에게 먹빛과 빗소리, 희미한 물 비린내, 그리고 눅눅한 습기와 사랑으로 영원히 기억되리라 노래했다. 그런 다음 밀봉한 편지를 쇠창살 밖으로 내밀어 쏟아지는 빗줄기에 흘려보냈다.

“별건 아니었는데, 그 장면 하나로 충분히 좋았어요, 저는.”

그러면서 내가 비를 가늠해보려 허공에 손을 뻗어 올리자 류 선배는 “다행이네”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 손 옆으로 자신의 손을 나란히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나도 그 장면 좋았거든.”

“정말 좋았어요?”

“응, 좋았어.”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한동안 먹빛과 빗소리, 희미한 물 비린내, 그리고 눅눅한 습기 속에서 함께 있었다. 손바닥 위로 떨어져 내려 산산이 부서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그럼에도 영원히 기억될지 모를 하나의 감정을 상상해보면서.

 

두어 달에 한 번, 우리는 공모전 마감을 앞두고 서로의 소설을 읽고 합평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취업전략실에서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바깥에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나누었던 이야기들. 내 소설을 프린트한 A4 용지에 그가 깨알 같은 글씨로 필기해 붙여놓았던 포스트잇과 연두색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문장들이 떠오른다. 인상 깊었던 단락 옆에 조그맣게 그려놓았던 하트까지. 무엇보다 류 선배는 내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양식에서조차 자유롭게 적어 넣지 못하던, 쓰는 이의 숨겨진 욕망이랄지 부끄러움까지 감지해 내게 일러주곤 했다.

“여기는 못 쓴 거야, 일부러 안 쓴 거야?”

“이건 내 생각인데, 어디에서도 쓸 수 없는 문장을 소설에서는 써야 해.”

그때마다 나는 쓰이지 않은 문장들을 통해 오히려 간파되는 기분에 아찔해졌고, 나의 이면을 그에게 좀 더 들키고 싶다는 야릇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류 선배는 나한테 첫 사람, 내가 늘 감추고 억누르려고만 했던 마음을 알아봐준 첫 남자이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류 선배의 모든 면을 좋아하고 따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르게 몰아닥친 추위에 한파주의보까지 내렸던 12월, 마지막 신춘문예 공모를 이틀인가 앞두었을 때였다.

“아프다는 사람이 여태 이러고 있었어요?”

지독한 몸살 기운에도 밤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던 류 선배를 내가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당장에라도 모니터에 들어갈 것처럼 상체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그가 몸을 천천히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어쩌겠어. 마감이 코앞인데.”

부스스한 머리칼 아래로 보이던 그의 안색은 파리했고, 며칠째 갈아입지 못한 스웨터의 목둘레는 후줄근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류 선배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려다가 책상 한편에 뜯지도 않고 내버려둔 해열제 봉투를 발견했다.

“뭐야. 어제 사다 준 약도 안 먹었어요?”

“응, 먹으면 졸리니까.”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아이 참, 공모가 이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 기회도 있잖아요. 몸 상하면 어쩌려고…… 왜 미련을 떨어요.”
“야.”

그때 류 선배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짚으며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뭘 하냐. 이번이 마지막이다, 최후의 투고다, 이런 각오로 해도 될까 말깐데.”

“뭐가 마지막이에요. 이번이 아니면 죽기라도 해요?”

“그렇지. 이러다가 졸업하면 다 끝나는 거지.”

그 말에 나는 조그맣게 헛웃음을 지었다.

“에이 무슨. 졸업하고도 얼마든지 글 쓸 수 있잖아요.”

“뭐? 얼마든지?”

류 선배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 번 더 말했다.

“얼마든지?”

그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안 돼. 그렇게 알량한 태도로 글 쓰다가 쫓겨나서 잘된 인간을 본 역사가 없다.”

류 선배는 작가로 데뷔하지 못한 채 졸업한 동기와 선배들에 관해 말할 때면 ‘쫓겨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패소한 이혼녀라고도 했고 퇴출당한 연습생이라고도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자조적인 뉘앙스로 한탄하듯 읊조렸기에 나는 그저 웃고 말았는데, 한편으로는 매사에 너그럽고 유머러스한 류 선배가 그 부분에 있어 얼마나 칼을 갈고 있는지를 즉감할 수 있었다. 그것이 류 선배의 역린이구나, 버튼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열성적인 그의 모습에 잠시나마 경외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뭐랄까, 그의 엄격함이랄지 과단성이 어느 시점에는 독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저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한순간에 툭 꺾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너는 겨우 고급 독자가 되려고 여기까지 왔니? 우리가 여기서 쏟아붓고 있는 노력의 대가가 뭐야. 데뷔 말고는 없어. 그 선을 넘어가지 못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라고.”

“그렇지만 데뷔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한 모두 작가라고 하잖아요. 선생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하, 진짜.”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의견을 좁히지 못한 채 대화를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그의 말마따나 데뷔의 중요성이랄까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이었지만 류 선배가 지금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말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라고 예견했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어깃장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마치 내가 글쓰기와 류 선배 덕분에 조금씩 다시 찾게 된 안정, 즐거움, 희망 같은 단어들을 단숨에 뭉개버리는 듯했으니까. 류 선배가 나와의 시간을―관계를―무가치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그에게서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몸을 떨었던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를 알아챈 류 선배가 말을 멈추고 다가왔을 때,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포개놓았을 때, 나는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센 물결처럼 일렁이던 마음이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고, 류 선배가 여전히 내가 알던 그 사람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찾아온 봄. 온기가 조금씩 돌아오는가 싶더니 꽃샘추위가 몇 주째 기승을 부렸다. 맑은 하늘에서 난데없이 소낙비가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그즈음 2학년이 된 나는 우연한 기회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만큼 내 불안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용하던 약물의 숫자를 서서히 줄여나가다가 해를 넘기면서 3밀리그램짜리 수면유지제 하나만 남겼을 무렵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협동 과제를 맡게 된 동기 둘과 수업 시간에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그들과 함께 카페에 가게 되면서, 테이크아웃이 되지 않는 메뉴 탓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근황을 나누면서, 얼결에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면서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던 벽 같은 것이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던 초조함과 위기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견딜 만한 수준으로 잦아들었다는 것. 그러한 깨달음이 내 안에 따스한 물처럼 차오르는 듯한 감각에, 그 밤 나는 동기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을 느꼈다. 이후로 나는 신입생 후배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고, 낯선 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상황에서도 거의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다시 원만히 지내게 된 일이 마냥 유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망각하고 있었던 인간관계의 피로함이랄지 곤란 또한 감당해야 했으니까. 한번은 동기들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우연히 본 류 선배에 관해 별 뜻 없이 늘어놓는 말을 듣기도 했다. “3년 넘게 취업전략실에 있었다며. 그럼 『지하로부터의 수기』 같은 걸 썼으려나.”

“생긴 건 멀끔하던데, 좀 이상한 사람인가.”

“민성 씨는 그분이랑 친하지 않아요? 얘기 좀 해봐요.”

그때 나는 부지불식중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행동했다. 괜히 어색해지는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글쎄요, 요즘은 잘 안 만나서, 모르겠는데, 하며 웃어넘겼지. 비로소 동기들과 적당히 어울려 지내게 되었는데 공연히 류 선배와 엮여 나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그런 식으로 류 선배를 잠시 외면한다고 해서 류 선배가 그 사실을 알게 될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기만의 순간들이 어느 날부터 내가 취업전략실로 향하려는 발길을 조금씩 돌려놓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류 선배와 나 사이에 균열을 일으켜 아주 조금씩, 그렇지만 분명하게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으리라고. 무엇보다 그러한 변화를 나보다 그가 먼저 감지했으리라는 생각이 이제 와서야 든다. 내가 수업을 마친 뒤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며 학과 연구실에 드나들었던 그해 여름에도 류 선배는 취업전략실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었을 테니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낮게 울려 퍼지던 지하 방에서 그는 이따금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곳에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러다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 한두 시간쯤 앉아 있다 갔을 것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류 선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추측해 볼 뿐이다. 류 선배는 다른 사람들과 웬만큼 어울리며 지내게 된 내가 대견했을까. 아니면 자신과 소원해진 만큼 섭섭하고 못마땅한 감정을, 배은망덕함을 느꼈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간헐적인 방문과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태도에 조금씩 거부감을 느꼈겠지. 자신을 찾아오는 일이 동정이나 적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점차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런 자신을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류 선배의 그 소식을 2학기에 접어들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고 적갈색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던 늦가을, 동기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졸업 작품 준비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다들 졸업유예생이 될 생각은 없다면서 다른 학교로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하거나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지. 그즈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조교 누나를 찾아갔다. 졸업을 유예하기 위해 따로 제출해야 할 서류는 없는지, 일정한 대금을 치르더라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류 선배와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었던 것은 물론이고 학교생활이란 것에 막 재미를 붙여가던 무렵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 나는 조교실에서 예기치 못한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류 선배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광고 회사에 취직했으며, 이번에 졸업 작품을 제출하고 학교를 떠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몰랐어? 둘이 붙어 다니길래, 너는 당연히 아는 줄 알았지.”

그 길로 학교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배신감을 억눌러야 했다. 그동안 내가 류 선배에게 소홀했던 것은 생각지도 않은 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따져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만을 고민했다. 류 선배는 언제부터 취업을 준비했던 것일까. 어째서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의중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류 선배가 글쓰기를 포기하고 학교를 떠난다는 소식도 놀라웠지만 이런 결정을 줄곧 내게 숨겨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혹감을 느꼈다. 당시에는 변심의 이유를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기에, 찾아가 추궁할 용기도 나지 않았기에 혼자 급속도로 서운한 감정에 빠져들었지. 그래서 나는 버스가 서너 정거장을 지나치는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창밖만 노려보았다. 이것으로 됐다, 끝났다, 싶은 기분이랄까 홀가분함이 느껴질 때 떠나겠다더니. 선배, 이제 홀가분해요? 됐다 싶어요? 나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건너다보며 묻고 또 물었다. 선배, 왜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네? 말해봐요, 선배. 도대체 선배한테 글쓰기는 뭐였어요? 취업전략실은 뭐였고, 그동안 선배한테 나는…… 뭐였어요?

 

그리고 졸업식 날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이었음에도 간밤에 내린 비로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던 날, 나는 그해 졸업생 중 한 명이었음에도 오후 2시 대강당에서 치러진 학위수여식에 불참했다. 동기들이 은빛 수술이 달린 학사모에 검은색 가운 차림으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교수님과 후배들에게 인사하는 세리머니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뒤풀이가 열린 호프집에 밤 9시가 넘어서야 찾아갔다. 회색 트레이닝복에 두꺼운 패딩 점퍼를 걸치고 붉은색 털목도리를 칭칭 둘러 멘 차림으로. 그 밤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흥겹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를 씩씩거리며 비집고 다녔다. 우리 학과뿐 아니라 영화학과, 무대미술과 졸업생들까지 모인 자리였기에 호프집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나는 아는 얼굴과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하며 류 선배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2층 창가 자리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인 그를 발견했을 때―먼저 졸업한 류 선배의 동기들이라 했다―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배, 축하해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의 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처음에 류 선배는 머뭇거리며 잔을 집어 들더니 어느새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그러지 않아도 기다렸는데 보이지를 않아서, 안 오는 줄 알았어.”

“에이, 와야죠. 선배도 저도 이제 졸업인데, 당연히 와야죠.”

“그래, 너도 축하한다.”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실제로도 그랬다. 류 선배의 취직 소식을 들은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취업전략실을 찾아가지 않았고 그에게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다. 류 선배 역시 내게 문자메시지 한 통 보내오지 않았지. 그러므로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그 밤의 대화는 우리가 거의 석 달 만에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대화가 될 지도 몰랐다. 그러니 나는 덤덤한 얼굴로 ‘고맙다’ ‘축하한다’ 같은 말이나 하는 류 선배를 건너다보면서, 호프집 할로겐 조명에 적당히 음영이 생겨 평소보다 잘생겨 보이는 그를 바라보면서 점점 부아가 치밀었고 아, 안 되겠다, 이대로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겠다, 싶어 예정보다 빠른 속도로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의 남자가 콜라와 소주와 맥주를 1:1:2 비율로 섞은 폭탄주―이른바 고진감래주―를 제조해 돌렸을 때 그것을 받아 마시기까지 했지.

“야, 류희재.”

그렇게 취기가 서서히 오르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조교 누나가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사람들을 밀쳐가며 굳이 내 옆자리에 앉더니 빈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셨다.

“희재야, 졸업과 취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런데 너 말이야, 호박씨 대박이다.”

한껏 꼬부라진 목소리에 주변 이들이 눈치를 주듯 힐끔거리는데도 조교 누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먹고살려면 일은 해야지. 소설 쓴다고 무슨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렇지. 나는 문학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희재가 이럴 줄은 몰랐네? 취업전략실에서 정말로 취업 전략을 짜고 있었을 줄이야. 안 그러니?”

순간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류 선배에게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어떤 감정을 삼키고 있을지도. 그때였다.

“어이, 이민성. 너도 말 좀 해봐.”

조교 누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너는 희재가 취업 준비하는 거 알았어, 몰랐어. 전혀 몰랐지? 그러니까 내가 말했을 때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어우, 말도 마. 우리 민성이가 제일 불쌍하지. 얘가 얼마나 희재를 좋아하고 따랐는데. 그냥 좋아만 했게. 보는 나까지 기분이 딸랑딸랑해질 정도였는데…… 우리 민성이 불쌍해서 어째.”

그러더니 조교 누나는 양손을 뻗어 내 얼굴을 세게 붙들었다. 그의 입에서 진한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쳤다. 프라이드치킨을 먹다가 왔는지 엄지와 집게손가락에는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왜 이래요, 진짜.”

나는 애써 웃는 얼굴로 그의 두 손을 떨쳐냈다.

“교양 좀 차려요.”

농담처럼 뱉고는 아주 짧게, 테이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맞은편에 앉은 류 선배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분위기상 보조개가 파일 정도로 입꼬리는 올라가 있으나 미간은 살짝 찌푸려진,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을. 류 선배의 동기들이 “진짜야?” “둘이 사귀기라도 했어?” 하고 짓궂게 묻는 말에 한마디 대꾸도 없이 지어 보이던 그 일그러진 표정을. 순간 나는 그 일그러짐이 뜻하는 바를 알 것 같았고, 더는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상체를 비스듬히 틀어 앉았다. 조교 누나의 주정을 좀 더 받아주는 척하며 술잔만 연달아 비웠지.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사람들이 다른 화젯거리를 입에 올리며 떠들어대기 시작했을 때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가게 문을 열자 캄캄한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 나는 점퍼의 후드를 뒤집어쓴 채 지하철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왜 하필 지금. 복잡하게 엉킨 골목을 지나 비탈을 오르자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대로변이 보였다. 왜 하필 지금…… 조교 누나는 나타나서 내 계획을 망쳐놓는 것일까. 나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의 미친 자는 나여야 했는데. 오늘 류 선배를 조롱하고 욕보일 사람은 나여야 했는데.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교차로 신호등 앞에 다다랐을 때에는 점퍼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의 진동을 느꼈다. 꺼내보니 액정 화면에 류 선배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민성아,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해.”

“어디쯤 갔니. 얼마나 갔어.”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지. 신호등에 녹색 불이 켜지고 곁에 서 있던 여자가 홀로 눈을 맞으며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동안에도, 다시 적색 불이 켜지고 진창이 된 도로 위를 자동차들이 어지럽게 오가는 걸 보면서도 나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쥔 채 덜덜 떨기만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지금 어디 있느냐고.”

“야, 이민성.”

류 선배는 그런 식으로 몇 번인가 나를 다그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불규칙한 소음과 그의 거친 숨소리만 연거푸 들려왔다. 그사이에도 나는 몇 번이나 입을 열어 대꾸해보려 했으나 어떤 말도 꺼내놓지 못했다.

“민성아, 그래,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 듣기만이라도 해.”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것 같다.”

“듣고 있니?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 정말.”

그 순간 나는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왈칵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선배.”

한참 만에야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배.”

내 음성이 뚝뚝 끊어진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어, 그래. 민성아, 말해. 지금 어디에 있어?”

“선배,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죠?”

“어, 알지. 그런데 너 지금 지하철역 근처야?”

“나 선배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한다고요…… 알고 있지 않아요?”

그때 수화기 너머로 짧게 흐르던 정적.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

“안다고요?”

“……”

나는 얼마 동안 대답을 기다리다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휴대전화를 꼭 움켜쥔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뱉어낸 입김 너머로 하얗고 굵은 눈송이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어둠보다 흰빛이 도처에 만연했다. 눈송이들은 내 이마와 볼 위로 떨어져 내렸고 오래지 않아 액체가 되어 미끄러졌다. 나는 부옇게 물들어가는 풍경 속에서 차갑고 뜨거운 눈물이 동시에 흘러내리는 감촉을 느꼈다.

이윽고 휴대전화 화면에 다시금 류 선배의 이름이 떠올랐을 때,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매 끝으로 턱을 닦으며 그것을 내려다보기만 했지. 그러다가 휴대전화의 진동이 완전히 멎었을 때, 화면이 어두컴컴해지면서 그의 이름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을 때, 나는 고개를 꺾어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한기에 오들오들 떨면서 가로등이 비추는 눈길 위의 발자국들을 멀거니 응시했다. 아마도 호프집 입구에서부터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죽 이어져 있을 흔적들을. 머지않아 흰 눈으로 뒤덮여 사라질, 오직 한 사람의 궤적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을.


*

플랫폼을 빠져나와 출구 계단 끝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비가 멎어 있었다. 암운 사이로 연푸른색 하늘이 얼핏 드러나 보였고 실낱같은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비쳤다. 나는 우산을 접어든 채 청첩장에 그려진 약도를 따라 걸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젖은 풀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물웅덩이를 피해 네 블록쯤 걷자 웃자란 장미 화단 너머로 웨딩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과 적갈색 정복 차림의 주차관리원들도 보였다.

나는 건물 입구에 서서 빗물제거기에 우산을 문질렀다. 그러면서 아직은 돌아갈 수 있다고, 돌아갈까, 도망갈까 궁리했다. 대체 나는 무슨 꼴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애써 마음을 추스르곤 로비에 들어가 벽에 걸린 안내판을 살펴보았다. 한자로 쓰인 호칭과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류 선배를 발견했고 그 옆에 적힌 내용들을 확인했다. 오후 1시, 2층, 그랜드볼룸홀, 신랑 류희재. 나는 그중에서 마지막 구절을 무심코 되뇌었다. 신랑 류희재. 신랑 류희재.
신랑 류희재.

그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들이 치맛단을 움켜쥔 채 빠르게 내 곁을 지나갔다. 복도 끝에서 꽃바구니를 든 아이들이 소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계를 보니 예식이 거행되기 10분 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로비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로 다가가 플라스틱 함에 꽂힌 축의 봉투를 집어 들었다. 펜을 쥔 채 뒷면 하단에 내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그런데 글씨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새로운 봉투를 꺼내 쓰고, 다시 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느 정도 괜찮다 싶은 필적이 나왔을 때에는 여기에 얼마를 넣어야 할까, 얼마를 넣어야 나를 잊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내 헛웃음이 나왔고, 나는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기 직전에 따로 챙겨두었던,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편지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지난밤 류 선배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적어보려 했는데, 도무지 뭐라고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텅 비워둔 채 가져오게 된 그것을.

나는 그 편지지를 반듯하게 펼쳐놓은 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공백을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를 만나면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랄지, 내지르고 싶었던 일갈이랄지, 축복의 인사랄지, 뭐든 한마디라도 써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예식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새하얀 눈길처럼, 아무도 거닐지 않은 듯한 흰 종이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것을 반으로 접었다. 한 번 더 접은 뒤 내 이름이 적힌 축의 봉투에 고이 집어넣었다.

1시 정각에는 그랜드볼룸홀 문 안쪽에서 하객들 너머로 턱시도 차림의 류 선배를 건너다보았다. 그는 신랑 입장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중앙의 흰색 단 위에 올라서 있었다. 핀 조명을 받아 얼굴에 음영이 생긴, 사뭇 긴장한 듯한, 여전히 잘생긴 옆모습이었다.

선배.

나는 속으로 그를 불러보았다.

선배.

그는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침내 신랑 입장을 알리는 연주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뒤돌아서 식장을 빠져나왔다.

 

박선우
소설가, 1986년생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