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첩
시시한 시는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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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시시한 시는 쓰지 말자

나해철 시인(왼쪽)과 필자   

 

대학 1학년(1975) 봄날의 사진입니다. 시 쓰는 동무 나해철과 교정의 꽃 핀 벚나무 아래 섰습니다.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온 해철이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랑 데이트할 때 입었던 바바리코트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요. 그때 우리는 매일 만나 농과대학의 숲으로 들어가 같은 제목으로 하루 한 편의 시를 썼습니다. 두 시간쯤 걸렸지요. 시 쓰기가 끝나면 원고를 서로 바꿔보며 합평했습니다. 둘뿐이었지만 격렬한 합평을 했지요. 기성시인의 흉내를 내는 것을 서로 참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이 버릇은 남아서 야, 제발 그런 시시한 시 좀 그만 써라, 고 면전에서 얘기합니다. 당일은 싸우지만 다음날 사랑한다 해철아, 사랑한다 재구야 라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전화하지요. 우리 생의 가장 따스한 추억이 깃든 사진입니다.

곽재구
시인, 순천대학교 명예교수, 1954년생
시집 『사평역에서』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꽃으로 엮은 방패』 『와온바다』,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포구기행』 『우리가 사랑한 일초들』 『길귀신의 노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