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칼럼
성숙하고 진보하는 나라를 기다리며

  • 대산칼럼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성숙하고 진보하는 나라를 기다리며

백일 정도 후면 대선이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켜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구독 중인 신문이라든지 시사잡지를 펼쳐든 순간, 그리고 시내에 나가 길을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옥외 멀티비전을 올려다본 순간, 그러니까 시선이 가는 모든 미디어에서는 내년에 치러질 대선과 관련된 소식이 타전되고 있다. 그런데 피로하다. 각 정당의 후보들이 경선을 준비할 때부터 내내 그랬다. 보도되는 뉴스와 기사에서는 각 후보들이 어떤 정책을 준비했고 그 토대가 된 철학은 무엇인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하고 역사의 전환기에서 각자 무슨 활동을 했는지, 환경과 기후와 사회 양극화 같은 미래로 뻗어나가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이 있는지 좀처럼 파악할 수가 없어서이다. 대신 서로의 치부를 조금이라도 더 밝혀내기 위한 낯 뜨거운 (말)싸움―논쟁이 아니다―이 있다. 누군가는 정치가 원래 그렇다고, 선거가 점잖을 수는 없다고 어른의 말인 양 전하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이라면 이미 지치고 지겨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

 

2022년의 대선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2016년에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그것도 국민의 뜻이 관철된 탄핵이라는 유의미한 사건이 있었기에 제19대 대선뿐 아니라 이번 선거도 가능했다. 탄핵 전에는 광장에 모인 촛불들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지금도 국민 대다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세월호라는 국가적 재난이 있었다. 이렇듯 누군가의 염원과 누군가의 아픔에 닿아 있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한 사람인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 것이다. 유례없이 긴 팬데믹 시대 이후 더 가난해지고 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국민들을 위해 무슨 정책을 준비할 것인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하게 서 있는지, 설혹 의지가 강하더라도 기업이나 주변 국가와 상조해가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한국의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데 어리고 젊은 세대가 스스로를 절멸에 이르게 하는 이 비극에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은 없는지, 그 책임감을 바탕으로 어떻게 그들에게 살아갈 의지와 이유를 제시해줄 것인지,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행된다지만 이 법에는 허점 역시 분명한데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사회의 산업 재해를 어떻게 줄여나갈 생각인지, 폭력에 노출되어 다치거나 죽어가는 아이들과 여성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그런데 내가 알고 싶은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어도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한 사회의 진보 정도는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타살을 최소화하는지로, 한 사회의 성숙 정도는 사회적 희생이 발생할 경우 그 희생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희생의 하중을 사회구성원에게 세분해 이식하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윤여일,『물음을 위한 물음』, 갈무리, 2021).

독재는 이미 오래전에 청산되었고 경제 규모나 순위는 분명 선진국에 진입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염원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광장의 시간도 우리는 경험했다. 그렇게 맞이한 2020년대,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더 진보하고 더 성숙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성장을 위한 희생이라는 집단적 이기성을 내려놓고 공존과 분배라는 가치를 앞세울 수는 없을까. 사회적 타살이 제로가 되거나 제로에 가까워지는 나라, 혹여 그런 비극이 생긴다 해도 사회 구성원이 책임과 아픔을 공유하는 나라, 나는 그런 성숙한 나라와 그 성숙한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조해진
소설가,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6년생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