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②나의 문학과 정치적 상상력

  • 기획특집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②나의 문학과 정치적 상상력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정당에 가입해 달라는 문자가 왔지만 나는 정당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께서 정당 활동을 하신 것을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봐 왔기 때문이다. 가정에는 소홀하셔서 어머니께서 가계를 이끌어가다시피 하셨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한 표의 소중함을 행사하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등에 업고 먼 거리에 있는 투표장까지 다녀오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가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배웠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선량한 국민들이 폭도가 되고 간첩이 되고 북한군이 되어 죽어나갔다. 1980년 오월 광주사태가 40여 년을 지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었지만 가해자는 아직까지 사죄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그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아래의 시는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작가가 문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이다.


칠천만년의 세월을 견딘 서석대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금남로에서
총탄에 죽어간 평범한 시민들의 넋을
제 갈비뼈에 끼워 넣고 기억한다
오월의 피로 철쭉꽃을 피워낸다
비만 오면 군홧발소리에 쫒긴다며
귀를 막고 읊조리는 이름들
세월은 가도
그 흔적들은 더욱 선명하여
무등산은 등급을 매기지 않으며
모두를 끌어안는다
한 무리의 새들이 광주를 쓰다듬고 지나간 후
높은 하늘은 구름과 낮달을 띄워 올리고
잠시 묵념에 잠긴다
서녘으로 지는 해는 말없이
서석대 갈피마다 비추며
오월 정신을 새로 쓰고 있다

- 이지담, 「무등산 서석대」 전문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아이히만을 보고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상부에서 내린 지시에 충실했을 뿐인 이 ‘평범한 악인’의 문제점은 생각의 무능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사고하지 못했던 아이히만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냈을 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 없이 실행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철저히 파편화되고 소외된 개인들이 마치 죽어 있는 듯 생각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한 결과이다. 그 당시 군인들이 학살과 폭력에 대해 제대로 사고했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 통수권자의 명령에 계엄군이 무조건 복종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였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광주 수산시장의 대어들.”
“육질이 빨간 게 확실하네요.”
“거즈 덮어놓았습니다.”
“에미야, 홍어 좀 밖에 널어라."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여러 시신들 사진과 함께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글이다.

“우리 세월호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게 아니라
진도 명물 꽃게밥이 되어 꽃게가 아주 탱글탱글
알도 꽉 차 있답니다~.”

요리 전의 통통한 꽃게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글이다.
이 포스팅에 ‘좋아요’는 500여 개이고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댓글은 무려 1500개가 넘었다.
‘좋아요’보다 댓글이 더 많은 경우는 흔치 않다.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이다.
문득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범인을 찾은 듯 관객들을 꿰뚫어보는
송강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떠오른다.
밤인은 객석에도 숨어 있고 우리집에도 숨어 있지만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다른 나이다

- 이산하, 「악의 평범성 1」 전문

 

위의 시는 광주 5·18피해자와 세월호 희생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롱한 글이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정치인들의 이념논쟁에 편승하여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집단이 양성되고 있다. 평범한 이웃들이 어떤 죄의식도 없이 악에 물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소수의 있는 자들이 부와 권력을 쥐고 쥐락펴락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누가 선출되었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치거나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여순사건과 제주 4.3이 일어났고,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소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민주주의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은 다행한 일이나 경제 실책으로 빈부격차는 더 심화되는 모순을 낳았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로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다 보니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진 현상을 들 수 있다. 특히 2030 세대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가 없는 한 월급만으로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젊은이들의 좌절은 이번 정권의 김현미 국토부장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재임 3년간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였지만 주택 공급 확대에는 미온적이면서 갖은 규제로 집값 상승을 막아보려 했던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

민주주의의 정의가 살아있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촛불을 든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현재 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온데간데없다. 그들은 아파트 값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5년을 감정을 앞세워 결정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지 않을까.


세 손가락 치켜들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주먹밥 김밥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었듯이
냄비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가요
총칼이 어찌 두렵지 않겠어요
목숨이 어찌 아깝지 않겠어요
내 뒤에 올 푸르름을 위하여
총을 녹여 냄비를 만들어 주세요
군복을 벗고 풀잎으로 흔들려 주세요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 편이에요
혼자가 아니에요
오늘의 상처는 씨앗이 되어
진주가 되어 갑니다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요
세 손가락 치켜들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군부의 총부리가 부끄러울 때까지
오늘의 시련이 진주가 될 때까지

- 이지담, 「진주가 되는 그날」 전문

 

위의 시는 미얀마 군부와 싸우고 있는 미얀마 작가들에게 보내진 시이다. 무구한 시민을 학살한 계엄군의 위법성과 폭력성이 41년 전 광주민주화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 33명이 릴레이 시운동을 펼치며 발표했던 작품 중의 한 작품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지도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여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실만을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국내 언론 대부분이 사실 전달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정파로 나뉘어져 있고, 그것을 감추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언론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거나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자기복제적 기사를 쏟아낸다. 언론은 어느새 제3의 권력기관이 되어, 여론을 수동적으로 형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론을 주도한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보도가 난무하면서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에서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67%의 국민이 공감한다고 답했다. 언론사들은 자사의 입맛에 맞는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은 아예 보도를 하지 않거나 혹은 그것마저 좋은 방향으로 비틀어서 홍보 수준에 가까운 기사를 다량으로 생산해 낸다. 반면에 언론사의 입맛에 맞지 않은 후보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다. 유권자들 또한 편파적 저장탑1) 과 필터버블(Filter Bubble)2) 에 갇혀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 못하고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에 휘둘리고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거저 오지 않았다. 민주열사의 목숨 값이었고 민중의 피로써 대가를 치른 끝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오늘의 이 날선 감정을 잠시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의 88%가 서민층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거 후 결과는 서민층과 거리가 먼 부유층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당의 지지율과 득표율이 높다. 이는 호남과 영남의 갈등을 부추기고 민심을 자극하던 정치인들의 행태에 유권자인 우리가 부화뇌동한 것은 아닐까.

유권자인 우리는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 미래에 대한 비전을 꼼꼼히 따져보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1) 외부와 단절된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저장탑처럼 특정 부서나 단체가 다른 부서나 단체와 소통 및 교류하지 않고 내부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행태를 갖췄을 때, 저장탑(사일로) 효과라고 부름.
2)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해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어 확증편향이 강화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지담
시인,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1958년생
시집 『고전적인 저녁』 『자물통 속의 눈』 『너에게 잠을 부어주다』, 산문집 『길의 안부를 묻다』(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