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초대석
우리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하는 생태적 전환의 길

- 최재천 교수와의 대화

  • 대산초대석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우리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하는 생태적 전환의 길

- 최재천 교수와의 대화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위원장, 1954년생
저서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 『다윈 지능』 『생명, 알면 사랑하게 되지요』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다르면 다를수록』 『지식의 통섭』(공저) 등

안서현 안녕하세요, 선생님.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시월 한파가 불어닥쳤습니다. 이런 이상 기온 현상이 점점 잦아지면서 기후 변화를 현실로 실감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한반도의 경작물 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뉴스도 봤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유명 사과 산지에서는 열대작물을 기른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가 눈치채지 못하는 기후 변화의 크고 작은 징후들을 다 유심히 보고 계실 것 같은데요, 기후 변화를 실감하시는 일들, 더 있으신지요.

최재천 네, 농작물 경작 지도를 이야기하셨으니까 이런 이야기로 이어가 보면 어떨까요. 우리 삶에는 절기라는 게 있잖아요. 이 절기라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어마어마한 빅테이터라고 할 수 있죠. 우리 조상들이 오랜 세월 농사를 지으면서 언제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 절기로 알잖아요. 지금쯤은 농기구 꺼내서 닦기 시작해야 된다, 이런 거지요. 그런데 절기가 더 이상 맞지 않는 겁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가 그 절기에 맞춰서 살아왔는데, 이제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거죠. 지금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절기에 맞추다가는 다 망친다는 거예요. 참 큰일입니다.

 안  자연의 리듬이 완전히 무너진 거네요.

 최  네.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 되기 전인데요, 어느 해, 미국에서 하루는 갑자기 추워진 날이 있었어요. 우리 며칠 전처럼요. 그랬더니 트럼프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하고는 앨 고어의 노벨상을 박탈하라,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아니 지구 온난화가 일어난다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하고요. 지구 온난화라고 해서 무조건 어제보다 오늘이 더 따뜻해진다는 뜻이 아니잖아요. 전반적인 경향을 말하는 거지요. 부동산 업자이기도 한 트럼프가, 통계의 개념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리고 지금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일 주목하는 것은 이상 기후 현상이에요. 작년 여름에는 비가 50일 이상 쏟아지면서 역대 최장의 장마를 겪었잖아요. 요 며칠은 10월 중순인데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한파가 찾아왔고요. 균형이 깨진 거죠.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이제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 눈앞의 현실로 닥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잘못 얘기하면 무슨 종말론자의 이야기처럼 들릴까 봐 민망하기도 하지만요, 이제 올 게 온 건가, 그런 걱정이 들어요.

 안  네, 선생님. 동감, 또 동감입니다. 방금 종말론은 아니라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는데요,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어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여러 학자들이 우리는 기후변화를 돌이킬 수 있는 지점, 소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이미 지났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비관주의가 갖는 나름의 효용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비관주의로만 가면 ‘어차피 늦었다,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식이 되어버릴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청년들은 ‘기후 변화는 다 같이 죽으니까 괜찮은데, 경제 불평등은 나만 죽는 것이니까 싫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비관적인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력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쪽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최  우리가 축적한 자료에 기반해서 보건대, 지금 당장 우리 모두가 문명의 이기를 다 버리고 자연인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한동안은 기후 변화가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쏟아낸 온실 기체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우리가 그럴 리도 없거니와, 설령 우리가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기후 위기는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대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기다가 가자’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죠. 일부 사람들은 그런 자포자기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 점에 있어서는 코로나19가 고맙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시국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이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회복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 한정한다면요. CNN 기자가 뉴델리에서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인터뷰를 했는데요, 한 인도 남성이 ‘나 평생 여기 살았는데, 에베레스트를 처음 봤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렇게 한편에서는 질병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연이 정말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는 것을 우리 눈으로 봤어요. 그래서 저는 생물학자, 또 생태학자로서 이런 의심을 강력하게 제기하려고 해요. 우리가 그동안 자연의 회복력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한 건 아닐까 하고요.

 

최재천 교수(왼쪽)와 안서현 평론가(오른쪽)   

 

제가 국립생태원장을 할 때인데요, 충남 서천에 국립생태원을 지어서 2013년에 개원을 했어요. 그 공사가 4~5년 걸렸어요. 사실 금강변에도 후보지가 있었는데 거기 짓지를 못하고 다른 부지에 짓게 되었어요. 원래 논바닥이었어요. 조금은 실망스러웠죠. 그런데 다 짓고 난 다음에 초대 원장으로서 손님맞이를 할 때, 민망하게도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됐어요. ‘역시 최 교수님이 지으셔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이렇게 지어주셨다’는 거예요. 공사하는 동안 논 옆에 있던 저수지의 물이 흘러들며 고여서 저절로 늠름한 습지가 형성이 됐거든요. 갈대밭도요. 그래서 처음 오시는 분은 오래된 습지로 착각을 하실 정도였던 거죠. 처음에는 그런 인사를 받을 때 ‘사실은 그게 아니구요’ 하고 변명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일일이 말하기도 입이 아파서 칭찬하시면 ‘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받기도 했어요. (웃음) 정말 놀랐어요. 이 사건을 통해 자연의 회복력을 참 감동적으로 체험했어요.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죠. 우리나라도 미세먼지, 황사로 골치였는데 작년하고 올해에는 공기가 참 깨끗해졌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자연은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강한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일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포기하지 말자,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깨끗한 자연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는 은근한 희망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요. 아까 그 인도 양반도, ‘우리 앞으로는 에베레스트 산 보면서 살자’ 이런 생각을 했을 테고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자연은 뜻밖에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굉장히 빨리 우리 곁으로 되돌아올지도 몰라요.

 안  근거 있는 낙관주의, 그쪽으로 가야 할까요.

 최  제가 이거 갖고 논문까지 쓸 자신은 없어서, 근거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웃음)

 안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지금의 코로나19 상황도, 물론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저작인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김영사, 2021)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은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강조해 주셔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쓰는 ‘언어학적 전환’이라는 말을 바꾸어, 지금은 바로 생태적 전환의 시대라고 진단을 해주셨는데요. 풀어서 말해본다면, 전 분야에서 생태적인 문제가 주목을 받고 생태적인 관점이 도입되는 시기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을 경험했잖아요. 지금 사회에서는 기술 전환(technological turn)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정보 전환(informational turn)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 시대에 잘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하여간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석학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 바로 지금은 문명사적 대전환기라는 거였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저도 부지런히 책으로도 찾아서 읽어보고, 강연도 들어보고 했는데요, 그렇게 선언만 하지, 그러면 어떤 전환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거죠. 기술 전환이나 정보 전환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다 너무 여유로운 얘기 아니냐, 5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바로 생태적 전환 아니겠느냐 하고요. 지금이야말로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류의 삶은 끊임없는 질병과의 싸움이 되겠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생태학적 전환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현대 경제는 성장 신화에 갇혀 있죠. 성장에만 초점을 두고 굴러가는 경제는,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볼 때는 멸망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심지어는 경제에 있어서까지도 생태적 전환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요. 모두가 더 풍요롭게 살고 싶어 하고요, 그러다 보니 한마디라도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너는 풍요롭게 살다가 그런 소리를 하나 보다, 나는 아직 한 번도 풍요롭게 살아보지를 못했는데 이제 와서 성장을 억제하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런 항의도 나오니, 참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지금이 새로운 계몽의 시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도 그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인류 전체가 어떤 전환을 하지 않으면 함께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어요. 바로 헌법 개정 운동입니다. 헌법을 개정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도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요,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프랑스는 환경을 보존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안건이 하원을 통과했어요. 물론 프랑스는 상원이 보수적이어서, 아마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오죠. 저도 비슷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3항에 ‘대한민국 국민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고 후손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줄 의무를 지닌다’ 이 내용을 넣자는 거예요. 이 헌법 개정을 위한 투표를 대통령 선거 때 같이 하면 됩니다. 투표용지 한 장만 더 만들면 되잖아요. 대선 후보들끼리만 합의를 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니고요. 얼마 전에 재미있는 설문 결과가 하나 있었는데요, 대한민국 국민의 90% 이상이 지금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 결과를 놓고 본다면, 찬반 투표만 성사된다면 헌법 개정도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헌법이 개정되면, 그때부터는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거예요.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하는 모든 일은 헌법에 의거해야 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생태적 전환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잖아요. 만약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계가 분명히 따라올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문화 방면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기후 변화 대응에서도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쥐고 나가자는 거지요.

 안  놀라운 생각이세요, 선생님.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씀은 그런 구체적인 변화까지도 염두에 두신 말씀이었네요. 그렇게 헌법에 명시가 된다면 사회의 기본 가치가 바뀌는 것이니까,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최  네, 그렇게 안 하면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장 눈앞의 삶의 풍요를 포기하기가 어렵잖아요. 그걸 조금씩 포기해야 합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과연 몸이 따라줄까요. 하지만 만약 헌법이 개정되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환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요.

 안  네, 실정적인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꼭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기후 헌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저도 널리 알릴게요.
아까 말씀 중에 ‘너희는 누리고 살다가 우리는 못 누리게 하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게 이른바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문제이기도 하고요. 국가 내에서는 세대 문제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 세대가 한창 자녀 양육을 하는 세대인데요, 아무래도 고민이 많습니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작은 행동 하나라도 바꿔야겠다고 다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참 어렵더라고요. 서로 힘을 합쳐 전반적인 삶의 규모나 사회의 속도를 조금씩 줄여나가지 않는다면, 한두 사람의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희는 사실 풍요롭게 자란 세대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풍요에 익숙한 만큼 그것을 포기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의 자녀 세대에게는 처음부터 지속가능한 방식의 삶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길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우리는 그렇게 안 살았으면서 아이들에게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요. 주변을 보면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최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교육에 의존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사회운동도 좋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아이들부터 서서히 변화해 가야만 해요. 그래야 다음 세대의 삶이 바뀌는 거잖아요. 저는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게요, 대한민국의 교육이 꼭 그렇게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교육으로 이만큼 성장한 나라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을 잘 받아서 민도가 굉장히 높아요.
예로 들면 이런 거예요. 코로나19 백신 관련해서 대한민국 언론이 화이자나 모더나는 좋은 백신이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마치 2등 백신인 것처럼 떠들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 백신 안 맞겠다는 사람들도 나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처음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날 보니, 그래도 80% 이상의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였단 말이에요. 저도 그날 맞은 사람이고요.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어도,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결국에는 그래도 맞는 게 낫겠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이라는 거예요. 현명한 국민이죠.
저는 우리 국민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커요. 교육이 가능한 나라라는 거예요. 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사회 교육이 되는 나라라는 거죠.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미국 정부에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당분간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미국 사람들이 총 들고 뛰어나왔잖아요. ‘내 자유를 구속하지 말라’고 하면서요. 제 미국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미국은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여서 그렇다고요. 제가 그 친구들하고 이메일로 몇 달을 싸웠어요. 그건 자유가 아니다, 너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바로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었냐, 그건 정부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대한민국은 민도가 높아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나와서 어찌어찌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하게 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면 5천만 국민 중에 그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말했지요. 그러다가 제 친구가 ‘제이야—제가 미국에서 쓰던 이름이 제이예요—우리는 그 옛날 네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단다’ 하고 말하는 바람에 휴전했지요(웃음).
저는 우리나라가 학교 교육에는 문제가 많을지 모르지만 사회 교육은 굉장히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교육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끊임없이 읽고, 끊임없이 듣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그런 민도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또 한 번 확인된 거지요. 그래서 저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권위적이어서 그렇다든가 유교 문화라서 그렇다든가 하는 말은 맞지 않아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세대예요. 그렇지만 미국 젊은이들과 달리 스스로 판단하고 나서 스스로 협조하는 거지요.

 안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열쇠일 것 같다는 생각도요.
코로나19에 관한 것 한 가지만 더 여쭤볼까요. 선생님의 최근 책에서 제가 인상 깊게 읽은 내용이 있는데요. 우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말할 때 ‘박멸’, ‘퇴치’, ‘종식’ 등의 전쟁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하셨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바로 우리의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일 텐데요, 우리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바이러스의 ‘진화’를 살피면서 대응해야 하고, 결국에는 바이러스와도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통찰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특히 일상 회복 단계로 나가는 이 시기에 꼭 필요한 통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대목에 대해서 한 번 더 짚어주시겠어요?

연구실 한쪽의 장식물들     

 최  언어 이야기를 하시니 말인데요, 제가 이번에 코로나19 일상회복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았잖아요. 하나 아쉬웠던 점은 제가 작명을 했다면 저는 ‘회(回)’ 자를 빼고 대신 ‘일상복원지원위원회’라고 했을 것 같아요. ‘회’자가 들어가 버리니까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 같거든요. 우리가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영어 표현을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뉴 업노멀(New Upnormal)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전의 일상이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겪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이 애브노멀(abnormal)이었어요. 지금 뉴 애브노멀(New Abnormal)로 가자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ab-’라는 접두사보다는 ‘up-’을 쓰자는 거예요. 더 나은 일상, 그걸 만들어보자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일상회복위원장을 수락하게 된 김에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그런 일상을 만들어 보려고 해요.
교육 방면의 예를 들자면, 이런 경험까지 해놓고도 계속 국영수만 가르치는 그런 교육을 할 거냐는 거예요.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싶어요.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제 고향 강릉에 있는 운산분교라는 시골 학교에 가요. 전교생이 4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예요. 2년 전부터 아이들하고 자연에 대해서 같이 알아가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확신이 있어요. 그 아이들은 이다음에 어른이 됐을 때 절대로 우리가 하던 대로 살지 않을 거거든요. 저하고 자연을 계속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교육이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제가 코로나19 사태 터지고서 바이러스 종식, 퇴치, 박멸 이런 식으로 이 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관계 속에서 봐야 하는 거다, 그런 말을 계속했어요. 제 전공 분야가 생태학, 진화학이기도 하니까요. 세상 모든 것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문이지요. 그런 관점에서는 바이러스와 인간이 관계 속에서 서로 어떻게 적응하느냐, 그런 식으로 문제를 바라봅니다. 대한민국이 방역을 참 잘한 나라거든요. 그거는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방역‘만’ 했다는 점이에요. 부처의 이름만 봐도 ‘질병관리청’이지 ‘질병방역청’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정작 ‘관리’는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 늦었지만 이렇게 일상회복위원장 직을 권유받게 된 거예요. 좀 더 일찍 관계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해봐야지요.

 안  앞으로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최  네, 바빠질 것 같습니다.

 안  말씀을 나누다 보니 우리가 거리두기의 시간을 지나 일상 회복의 시간으로 가려 한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이 되는데요, 그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지내온 사람들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전으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의미를 꼭 같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최  고맙습니다.

안서현
평론가, 계간 문예지 《자음과 모음》 편집위원, 1982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