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후기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국어역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번역후기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국어역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나는 우수한 문학작품을 사랑한다. 나는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에 빨려 들어가면서 행복을 느낀다.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을 달구는 위대한 문학작품은 이를 넘어 영혼을 터치하며 깊은 내면세계로부터 꿈을 만들어 낸다.

나는 한복 같은 정갈한 표현으로 민족의 얼을 담아내는 정호승 시인의 작품을 좋아한다. 나는 색동저고리처럼 무지개의 꿈을 품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사랑한다. 나는 어머니 가슴같이 깊은 애정과 슬픔을 갖고 한민족의 정서를 섬세히 담아내는 정호승 시인의 글에서 힘과 용기를 얻는다. 나는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영혼의 깊은 통찰을 통해 희망과 꿈을 선물해주는 정호승 시인의 숭고한 가치관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내가 번역한 정호승 시인의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어쩌면 한민족의 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작은 날갯짓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번역은 어쩌면 상이한 언어와 문화라는 두터운 장벽을 허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그 위에 새로이 원작을 재현하는 재건축이자 다른 토양의 문화에 옮겨 심어 생명을 잃지 않고 꽃을 피울 수 있게 하는 원예 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번역가로서 느끼는 중압감은 오직 번역가가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모든 번역이 다 어렵지만 비논리 세계의 시의 번역은 더욱더 어려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격적인 번역 작업에 착수하게 되면서 나에게는 좋은 번역을 위한 거룩한 두려움이 동반되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갖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영혼을 읽었기에, 그리고 한국문학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를 텃밭으로 해를 거르지 않고 한국문학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농부로서의 대산문화재단의 꿈을 알기에,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좋은 번역이란 어쩌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좋은 번역을 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어보고 수정하는 과정은 자신을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일이다. 역설적이지만 지친 신심으로는 결코 좋은 번역을 창출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번역이라는 고된 일 가운데서도 오히려 창의적 번역을 즐길 수는 없을까? 나는 그 비결이 바로 작품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 들어가고 작품에 동화되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번역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닌 여유로운 영적 산책이 되었다.

이처럼 번역은 더 적합한 표현을 조우하는 과정이 거듭되며 어렵게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번역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중국의 독자들과 만나기까지는 출판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전혀 다른 이념체계를 지닌 중국에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는 예상치 않은 난관이 따랐다. 특별히 한중관계가 요동치고 있는 시기에 중국 출판계의 정책들은 한국의 문학작품을 중국독자에게 알리는 데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중국에서 출판은 정부가 검열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있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처럼 한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해도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하기에 중국출판사를 설득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하였다.

마침내 대산문화재단의 열정과 담당자들의 값진 노력으로 한중관계의 복잡함과 코로나의 역경 속에서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집을 성공적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호승 시인의 아름다운 문학작품이 중국 땅에 씨앗으로 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가 정치적 이념을 넘어서 중국인들의 심령에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코로나의 창궐로 온 세상이 신음하고 있는 이 시대에 사람들의 외로움은 가중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가 메마른 영혼들을 적셔주고 많은 이들에게 시가 흐르는 삶을 선사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 중국어역 『외로우니까 사람이다(孤独,所以才是人)』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중국 광동인민출판사(广东人民出版社)에서 2021년 출간되었다.

 

김명순
번역가, 세명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1971년생
저서 『중국진출을 위한 중국어 면접』 『베테랑 통역 가이드 路』, 역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항아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