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작
내가 아닌 나의 이야기

- 데뷔작 『그 개와 같은 말』

  • 나의 데뷔작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내가 아닌 나의 이야기

- 데뷔작 『그 개와 같은 말』

나는 여전히 나를 소개하는 일이 조금 민망한데, 비슷하게 내 소설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해야 할 때도 그랬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진짜 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래서인지 듣는 사람도 없는데 너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데뷔작은 특히 더 그런 경우라서 일종의 자기소개서를 다시 소개하는 기분이랄까. 『그 개와 같은 말』은 내가 처음 쓴 소설은 아니지만, 처음 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다.

사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인정이 빨랐다고 해야할까. 의사나 변호사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서 장래희망란에 작가라고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이것저것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걸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문장을 쓰면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는 것도 나름 이해하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길게 쓰면 잘 읽어주지 않았다.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데에도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무언가 써보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이전보다는 더 긴 이야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대신 시를 쓰듯이 비슷한 감정의 장면들을 얼기설기 엮거나 하나의 사건보다는 별다른 인과 관계가 없는 일화들을 배치하는 수준이었는데, 대부분은 뭐라고 딱 짚어 말하기 곤란하지만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말이나 상황들, 표정이나 풍경들, 과거에는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기억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예컨대, 나는 2000년 1월 1일 보신각 타종 행사를 구경하러 종로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서울의 교통상황이나 지리에 어두웠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억양이나 말투가 낯설었고, 지하철 노선이나 식당에서 먹는 싱거운 김치맛도 모두 낯설었다.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홀로 새천년의 새해를 맞이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나는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서울에 올라왔다. 그러고는 종로나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때 보았던 것을 들려주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사고들, 누군가 넘어지고 밟히고 고함치던 장면들, 입간판이 쓰러지고 주차된 차량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 신문기사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으나 분명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매번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내게는 대단하고 의미있던 장면들이었는데, 그걸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심했던 탓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을 아무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나 혼자뿐인가. 내가 목격한 건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럼 다들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쩐지 외로운 기분도 들었다.

이 일화가 『그 개와 같은 말』에 담길 때에는 조금 달라진 점도 있었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는 ‘나'가 오래 전 헤어진 ‘연경’으로부터 밀레니엄의 종각역 풍경이 어땠는지 전해 듣는 장면으로 그렸다. 나는 같은 말들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또 어떨 때는 위안이 되는 말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말 자체라기보다는 그걸 누가 말하고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것은 그 소설을 쓴 다음의 나였다. 분명 나의 경험이 ‘연경’에게 옮겨갔을 뿐인데, 그걸 쓰고 있는 현실의 내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으니까.

임현
소설가, 1983년생
중편소설 『당신과 다른 나』,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그들의 이해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