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문학이 더욱 절실한 때……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지금, 다가오는 이야기’

  • 이 계절의 문학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문학이 더욱 절실한 때……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지금, 다가오는 이야기’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절반 이상이 최근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발표된 ‘2021 문학 실태’의 내용은 더 어둡다. 문학 독서율은 43%로, 종합 독서율(47.5%)보다 낮았으며, 전년 대비 문학도서 구매량이 ‘감소했다’는 응답도 30%나 됐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디지털 시대의 필연적 풍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상상력의 세계”라고 규정한 어슐러 르 귄의 말을 떠올리면, 이를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위험한 일이다. 책에서 멀어질수록, 문학에 흥미를 잃을수록, 우리는 인간다워질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기에.

  

 (출처 : 문체부,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2021.)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형태를 바꾸고, 의미를 재정립하고 있다. 전례 없는 삶 속에 놓인 인류에게, 지금 가장 절실하고 간절한 것은 문학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상황이 와도, 우리를 지킬 수 있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인간다움’이니까. 그리하여, 다시, 문학을 꿈꾸는 봄이다. 그것만이 르 귄이 말한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터. 지금, 다가오는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올해는 시작부터 풍요로웠다. 1월에만 굵직한 작품이 여럿 당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세대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 읽혀온 은희경과, 새로운 세대를 이끌며 오래도록 읽힐 조남주다. 은희경이 6년여 만에 선보인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문학동네)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네 편의 연작 소설이 실렸다. 예외적인 상황과 시선 속에서 재설정되는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 그러니까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은희경식 실험이자 답이다. ‘우리’ 사이의 거리가 명확해진, 안과 밖이 더없이 뚜렷해진 지난 2년 동안 쓰인 소설로, 은희경은 “소설 속 인물들이 위축되고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공감하려고 애쓰기를” 바랐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페미니즘 담론에 불을 붙이고, K-문학 열풍을 이끈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는 『서영동 이야기』(한겨레출판)에서 이제, ‘부동산’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그 서사에서 예외일 수 없으니, 부동산은 우리를 울고 웃게 하고, 또 자주 이중적으로 만든다. “쓰는 내내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작가 자신도,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제3자일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오르지 않는 아파트 가격에 분통이 터지고, 누구는 당장 갈 곳이 없어 직장에서 도둑잠을 잔다. 또, 누구는 갭투자로 아파트를 점점 넓혀가지만, 행복이라 생각한 그 끝에서 층간 소음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에 전세를 사는 딸은, 남동생의 아파트 증여 소식에 분노와 수치심을 함께 느낀다. 서울의 한 가상 동네 ‘서영동’의 부동산을 둘러싼 이 천태만상은 더할 것도 덜 것도 없이 지금, 여기, ‘우리’를 비춘다.

은희경과 조남주라는 ‘흡족한’ 이름으로 시작한 2022년의 한국문학은 다가올 이야기들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오랜만에 ‘거장의 귀환’이란 표현을 꺼내볼 수 있어 반갑다. 김훈과 황석영이 각각 소설집과 우화소설을 펴낸다. 문학동네에서 선보일 김훈의 책은 소설집으로는 무려 16년 만. 2013년부터 9년간 쓴 단편소설들을 묶었다. 창비 플랫폼 스위치를 통해 연재된 황석영의 「별찌에게」(가제)는 팬데믹 시대를 배경으로 생명과 생존의 본질을 우화로 전한다. 올해는 황석영의 등단 60주년이기도 하다.

이승우의 새 장편 「이국에서」(가제)도 주목된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출간될 소설은 지방선거 불법 개입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대선과 총선 등 선거로 점철될 2022년. 이 소설이 당도한 한국 사회에서, 우린 어떤 좌표를 그리게 될까. K-스릴러 대표 작가 김언수의 신작 「빅 아이」(가제)도 기대작. 원양어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집필을 위해 작가가 직접 6개월간 직접 원양어선을 탔다. ‘젊은 거장’ 김애란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후 11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도 놓칠 수 없다. 이정현·이기호·최은미 등 중진 작가들의 새 장편과 더불어, 올해도 역시 젊은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전망된다. 강화길·김유담·한정현·황모과가 신작을 준비 중이며,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백수린을 비롯해, 이주란·김성중 등이 첫 장편소설을 선보일 예정이다.

독서율이 감소하고, 문학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는 우려에도 변함없이 ‘쓰기’를 놓지 않는 이들이 있고, ‘읽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 문학적 연대가 흔들리지 않는 한, 문학이 지닌 ‘이야기의 힘’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 영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이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로 가고, 『82년생 김지영』이 책뿐만 아니라 영화로 아시아 전역의 여성들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무대화될 한국문학도 눈여겨보아야 하겠다. 이것은 ‘상상력의 세계’를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줄, 또 하나의 연대방식이 될 테니. 지난해 서울시극단이 선보인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이어, 올해도 다수의 소설들이 연달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가깝게는 3월 초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GV 빌런 고태경〉. 소설가 겸 영화감독인 정대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여름엔 〈82년생 김지영〉이 백암아트홀에서 공연하며, 가을엔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국립극단의 무대로 만나게 된다. 이 연극은 벨기에 리에주 극장과 공동 제작하는 것으로, 연출도 벨기에의 배우 겸 감독인 셀마 알루이가 맡았다. 9월 서울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후 벨기에 리에주에서 해외 관객들을 만난다.

박동미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