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③너와 나

  • 글밭단상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③너와 나

작년 초봄, 비가 내렸다. 조도가 낮은 방에 앉아 있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리게 떨리는 울음이었다. 우산을 쓰고 집 근처를 돌아보았지만, 꾸준히 비가 내릴 뿐이었다.

사흘 정도 뒤에 비는 그쳤다. 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동안 고양이가 왔다. 이사 온 이후 밥을 챙겨주는 고양이였다. 고양이 뒤에 움츠러든 몸으로 상황을 살피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은 멀어지는 어미 고양이를 바라보다 내 눈치를 한 번 보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나는 어미 고양이에게 손짓으로 말했다. 검지만 빼 들고 공동 주택 현관을 가리키면 밥을 가져오겠다, 화단 쪽으로 손가락을 뻗으면 저기 밥이 있다, 말을 전했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손짓을 보던 어미 고양이는 점차 익숙해져 사료 가지고 오는 것을 기다리거나, 그릇이 놓인 위치로 올곧게 찾아갔다.

늦봄 동안 새끼 고양이는 어미 옆에 붙어 있었다. 아직 나를 마주하면 재빠르게 숨었지만,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조용히 그릇을 두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풀리고 대기가 따스해졌을 때 새끼 고양이는 홀로 집 앞에 오기 시작했다. 작은 몸이 제법 자라고 검은 털에 윤기가 맴돌았다.

고양이와 나는 자주 보았다. 건조된 열빙어를 잘게 잘라 간식으로 주었다. 사료가 담긴 그릇은 계단을 오갈 때 사각거렸다. 우리는 매일 아침 8시 30분에 만났다. 고양이가 먼저와 기다리다 나를 반겼다. 높게 자란 은행나무에 올라타 굵은 가지에서 부를 때가 많았고 오르막 근처 화단에서 내 쪽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종종 밥을 내버려두고 몸을 뒹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물을 떠주었다. 물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배를 뒤집고 누운 고양이를 관찰하다 놀이용 낚싯대를 구매했다. 깃털이 달린 낚싯대를 허공에 가볍게 흔들었다. 자동차 밑에 들어가 있던 녀석이 손을 뻗어 깃털을 낚아챘다. 그것을 물고 잡아당겼다. 놓지 않으려고 했다.

집 가까운 곳엔 소공원이 있다. 낙엽이 쌓인 소공원이다. 분홍 깃털이 달린 낚싯대를 뒷짐 진 손에 쥐고 걸으면 고양이가 따라온다. 호기심 가득하지만, 겁도 많은 눈으로 가분가분 온다. 짧은 거리지만 자동차나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주의하며 함께 걷는다. 소공원에 가면 풀 냄새를 맡고 바위를 눌러보기도 하며 고양이는 움직인다. 그러다 내게 돌아온다. 그렇게 우린 집 앞으로 향한다.

겨울이 오고, 다시 비가 왔다. 자주 나가 세워둔 우산을 고정하고 사료를 챙기고 서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떨고 있었다. 시린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날이 추우면 이곳에서 나를 부르라고 속으로 말했다. 전해질까 싶었지만, 그래도 말을 눌러 담아 눈빛으로 전했다. 이틀 후에 눈이 내렸다. 공동 현관 근처에서 기다렸지만, 고양이는 오지 않았다. 방에 돌아와 글을 쓰는데 닫아둔 창으로 울음소리였나, 싶은 순간이 있었고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을 때 눈이 흩날렸다. 얼어붙은 눈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이 희미하게 빛났다. 고양이는 그날 이후 다시 오지 않았다.

소공원에 가 자주 담배를 태웠다. 그곳 수풀은 낮아서 숨어든 것이 없었다. 오전 8시 30분은 없다. 분홍 깃털 산책도 없다. 동네를 배회했다. 송곳니에 못다 한 말을 묶으며, 은행나무에 오르듯 옥상에 갔다. 난간에 머리 내밀고 바람을 맞았다. 울음 없이 적요했다.

이자켓
시인, 제18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1995년생
시 「축구를 사랑해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