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②예상 밖의 전복의 서*

  • 글밭단상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②예상 밖의 전복의 서*

가장 긴 선은, 최초에, 가장 짧은 선이었다.

점을 초월하려는 진정되지 않는 욕망 자체였다.**

 

최초의 어떤 것.

문학을 생각하는 최초의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날 그런 질문을 받았었다. 겨울치곤 따뜻한 날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나와, 그리고 나보다 좋은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 좋은 날. 그날 나는 어렵지 않게 한 이름을 떠올렸다.

 

이바나.

최초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망설임도 없이 따라오는 그 이름. 나에게 문학은 문학이지만 한때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바나와 같은.

이바나를 설명하기 전, 이바나의 역사를 이야기 해봐야겠다. 나는 어느 시점 이후 이바나와, 그리고 이바나의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 그 친구들의 이름은 『에세이스트의 책상』,『당나귀들』, 『독학자』이다. 누군가가 떠오르기 시작한다고, 아마도 배수아. 그럼 배수아를 말하는 거야? 라고 한다면 글쎄. 혹은 아니, 다. 모두 다. 전부 다.
이바나, 그리고 이바나와 친구들.

이바나와 그 친구들과는 아주 멀리까지 다녔다. 지원금을 얻어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했을 때도, 호기롭게 무작정 독일로 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대학원의 소중한 친구인 가문을 만나러 대만을 돌 때도,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의 뉴욕에서도, 내 삶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마음의 시기를 보냈던 도쿄에서도. 그리고 ‘내 고국은 프랑스가 아니라 일본’이라고 생각했다던 아멜리 노통브 마냥, 내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뉴질랜드라고 확신했던 뉴질랜드의 웰링턴에도 말이다. 그러니 역시 시작은 뉴질랜드였다. 나중엔 대학에 들어가 영주권을 얻을 생각을 했으나, 처음엔 교환학생으로 간 것이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가장 중요한 책 몇 권만 가져가자, 싶었고 고민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 이바나와 그 친구들이라고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사실상 나와 같이 다닌 건 『에세이스트의 책상』이었다. 나는 금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면 언제나 아르바이트 두 개를 소화하려 달려나갔었는데 그래도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챙겨 달렸다. 한인 레스토랑과 일본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지만 공통적으로 앞치마를 두른 채 홀서빙을 했기 때문에 앞치마 주머니에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항상 담겨져 있었다. 뉴질랜드를 정말 사랑했던 건 이런 거였다, 그 누구도 ‘서빙하는데 웬 책?’ 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 주방에서 조리를 맡으셨던 리화 아주머니는 항상 조금도 지친 기색도 없이 그러셨지, 나도 한때는 박경리를 읽었는데, 라고.

한국과 정반대의 계절을 가진 6월의 브레이크 방학 때는 순전히 돈을 아끼겠다고 남섬에 갔었다. 뉴질랜드인들은 모두 탈출해, 키위 친구인 빈센트를 대신해 잠시 일했던 카페의 주인이 그런 말을 했었다. 뉴질랜드의 겨울엔 남섬에 가지 마. 눈의 여왕이 너를 지배할 거야. 그러나 나는 이바나와 함께 떠났다. 헐값에 최대 휴양지인 퀸스타운의 롯지를 빌릴 수 있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눅눅한 피시앤칩스와 맥도널드의 커피만 마셔도 배가 더워질 거야. 이바나의 주인공들이 불안을 피해 이바나를 타고 이바나를 향해 간 것처럼, 나 또한 이바나를 들고 남섬을 향해 갔다. 밀퍼드사운드를 지날 무렵 중학생 때 읽었던 반지의 제왕이 생각났는데 나는 해리포터는 별로였지만 반지의 제왕은 책장을 낱장으로 찢어 학교에 들고 다닐 만큼 사랑했다. 우습게도 한때 그런 것은 나의 긍지였지만 이젠 그저 취향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퀸스타운에 가까워질 무렵, 나는 눈속에 버려진 경찰차를 보았다. 라디오에서는 기록적 폭설이 남섬을 뒤덮고 있다고 했다. 왜였을까, 나는 내가 탄 차의 모습을 그곳에서 본 것만 같았으니.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그러하다. 나는 이바나를 패딩 주머니에 넣은 채 어그부츠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치며 기름을 구하러 갔다. 그때의 뉴질랜드는 인터넷이 종량제였다. 나에겐 GPS도 무엇도 없었다. 조금씩 손에 감각이 없어지고 시야가 흐려졌을 때, 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이바나. 이바나라고 불렸던 소녀.

모두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그 아이. 그 아이가 다른 점은 뭐였을까. 말을 조금 더듬는다고 그랬다. 누군가는 키가 너무 커서 거슬린다고 했다. 눈을 자주 깜박이는 게 영 기분 나쁘다고도 그랬다. 책 이야기가 나오면 불같이 흥분하여 밥알을 쏟아내는 줄도 모른다고 했다. 정현이 너도 걔가 재수없지? 네 입에서 내 이름 한정현이 나오는 게 더 재수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던 방관자. 나는 도서실에 비치된 『붉은 손 클럽』의 뒷면에 오로지 나와 이바나의 이름만 함께였던 걸 보았다. 나는 이바나가 싫지 않았다. 좋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이바나는 나에게 그저 이바나였다. 나는 도서실에 갈 때마다 하품을 참는 대신 이바나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눈속에서 나는 이바나가 든 패딩을 조금 더 여몄다.

남섬에서 나는 이바나와 함께 열 가구가 전부인 마을 사람의 사람들로부터 구조되었다. 다 함께 젠가를 하며 신나게 맥주를 마시던 마을의 사람들. 밤에 하늘을 보면 애석하게도 은하수가 보였다, 뉴질랜드 위에 오존층이 없어졌기에. 어떤 아름다움은 그런 끔찍함을 전제한다는 것을, 그것이 세상이 숨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나는 그곳의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이바나를 실컷 읽을 수 있었다. 여간해선 꺼내지 않는 『당나귀들』도 꺼내 읽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넌 대체 왜 고기를 안 먹니? 어차피 동물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를 참기 위해 읽었던 『당나귀들』은, 뉴질랜드에서는 마치 편안한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한 달 내내 샐러드만 먹고 살아도 그 누구도 나를 손가락질하지 않는 곳. 이곳에서 꼭 살아야지, 이바나와 친구들과 함께. 최소한의 돈을 벌어 공부를 할 정도의 에너지만을 얻으며 살아가야지.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

돈을 벌어야 하는 사정에 처해 결국 졸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왔을 때, 나는 대학도 마치기 전에 가장 치열한 곳에서 일했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병을 얻었다. 어차피 당시 병원에서 의심하던 내 질환은 자가면역질환과 백혈병 사이였고 그것은 난치와 불치의 사이였다. 나는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접고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는 『독학자』를 읽었다. 오, 그것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 혼자 가리라, 주문서처럼 그 문장을 읽으며 ‘배수아 좋아하지 마, 등단 못 하니까.’ 하던 사람들을 견뎠지. 판타지 좋아한다고 하지 마, 급 떨어지니까. 네 소설 같은 착한 소설 쓰면 등단 못 해.

이런 사람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얼굴과 몸집만 달라졌을 뿐, 중학생 시절 그 얼굴들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던 그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바나, 그리고 이바나와 그의 친구들. 최초의 그 어떤 것.

이 모든, 예상 밖의 전복의 서.

 

* 에드몽 자베스, 『에상 밖의 전복의 서』, 최성웅 옮김, 읻다, 2017.

** 위의 책.

한정현
소설가, 1985년생
장편소설 『줄리아나도쿄』,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