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맹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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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맹신의 시대

주희는 눈을 뜨자마자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어젯밤부터 이마에 뾰루지가 날 것 같아 신경 쓰였는데, 역시나 뾰루지 예상 지역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 진짜!”

뾰루지가 난 날은 하루 종일 안 좋은 일만 생긴다.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꾹꾹 누르자 발갛게 달아올랐다. 주희는 한숨을 쉬며 방을 나갔다.

“한숨 쉬면 복 나가. 문지방 밟으면 재수 없다니까. 할미 일하러 가야 하니까 빨리 밥 먹어.”

할머니가 밥상을 차리며 경고를 날렸다. 짜증이 난 주희가 보란 듯이 문지방 위를 뛰고 식탁에 앉자 할머니의 매운 손맛이 주희의 허벅지에 꽂혔다.

“다리 떨면 복 나가.”

“칫! 나갈 복이나 있으면.”

“자리 옮겨 앉아. 모서리에 앉으면 큰사람 못 된다.”

“어차피 못 돼. 내가 무슨 수로 큰사람이 돼. 근데 많이 먹으면 커지긴 하겠다. 크크크.”

주희는 할머니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 뒤 키득거렸다.

“밥에 숟가락 꽂지 마라. 재수 없다.”

지치지도 않는 할머니는 늘 복 달아나고 재수 없어질까 봐 걱정했다. 듣다 지친 주희가 왜 문지방을 밟으면 재수 없는지,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나는지 물어봤지만, 할머니는 그 이유를 한 번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복이 달아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원인도 없고 이유도 모르는 걱정을 달고 산다.

“에구구.”

할머니가 상을 차리다 말고 허리를 잡고 신음했다.

“병원 안 갔어?”

주희가 할머니의 몸을 얼른 붙잡았다.

“금방 나을 거야. 이번 달 지나면 다 낫는다고 했어.”

“누가? 혹시 시장에 그 돌팔이 할아버지한테 물어본 거야?”

“돌팔이 아니라니까. 니 엄마 아빠 사고도 맞추고, 나 아픈 것도 맞추고, 다 맞췄어.”

주희는 확신에 찬 할머니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정도는 시장에서 떠도는 소문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얘기기 때문이다.

주희는 할머니의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한심해하며 방으로 들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문지방 위를 폴짝 뛰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할머니한테 세뇌당한 게 분명했다.

학교 가는 내내 손거울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길을 건너기 전에도, 걷는 중에도 계속 뾰루지 상태를 살폈다. 가라앉을 기미가 전혀 안 보였다. 우울한 주희는 핸드폰을 꺼내 별자리 운세를 찾았다.

“전갈자리. 전갈자리. 여기 운세는 별로네.”

주희는 다른 운세 사이트를 찾고 또 찾았다.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 사이트를 찾던 주희가 미소를 지었다.

“전갈자리. 모든 일이 순조롭네요.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고 새로운 인연도 만납니다. 흐흐흐. 바로 이거야.”

맘이 놓인 주희가 그제야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또야? 네 하루를 왜 그런데다 물어보냐?”

짝꿍 소윤이가 주희의 핸드폰 화면을 힐끔 보고 비웃듯 말했다.

“이런 데가 뭐 어때서? 완전 잘 맞거든.”

주희는 입을 삐죽이며 소윤이를 외면했다. 짝이 되면서 친해진 둘은 소윤이가 주희의 행동을 사사건건 따지기 시작하면서 서먹해졌다. 주희는 소윤이가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게 싫었다.

‘내가 뭘 하든 말든. 암튼 오지랖. 누가 이엔에프제이 아니랄까 봐.’

소윤이랑 맞지 않는 게 다 성격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 주희는 이유를 찾아내 마음이 편해졌다. ENFJ는 주희의 ISFJ랑 상극이다. 서로 맞지 않는 성격 유형인 것이다. 소윤이랑 짝이 되자마자 성격 유형을 물어보지 않은 게 큰 실수였다.

주희는 늘 사람들을 만나면 성격 유형부터 물었다. 그럼 서로가 잘 통하는지 맞혀보는 번거로운 시간도 필요 없고, 이렇게 사이가 어색해질 일도 없다. 이제 성격 안 맞는 소윤이와 짝으로 지내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오늘 드디어 짝을 바꾸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희는 고개를 돌려 경지 자리를 쳐다봤다. 아직 경지는 오지 않았다. 경지는 오늘 선생님에게 주희랑 짝이 되고 싶다고 얘기할 참이다. 담임선생님은 원하는 짝을 말하면 들어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즈음, 경지가 주희를 찾아와 별자리와 성격 유형이 자신과 완벽하게 맞는 아이는 주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주희는 어리둥절했지만, 인기 많은 경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별자리와 성격까지 완벽하게 맞는다니 지금껏 찾지 못한 소울메이트를 찾은 것 같아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주희와 경지는 붙어 다니면서 반 아이들의 별자리와 성격 유형을 알아냈고,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이나 친한 친구들은 별자리나 성격 유형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즈음부터 소윤이의 잔소리가 심해졌다.

경지가 교실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주희가 손을 번쩍 들어 경지를 아는 척했다. 하지만 경지는 주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리로 갔다.

“경지야. 주경지.”

주희가 경지를 불렀다. 경지는 움찔했지만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싸늘한 경지의 뒷모습에 주희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심장도 마구 뛰고 뾰루지가 있는 곳도 아픈 것 같았다.

“인사했는데 못 봤어?”

불안한 주희는 경지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봤어. 안녕.”

경지는 평소처럼 손가락을 나풀거리며 인사했지만, 왠지 낯설어 보였다. 마른침을 삼킨 주희는 경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오늘 너랑 꼭 짝 되면 좋겠다. 그치?”

둘이 항상 원했던 거라 이 말을 하면 반가워할 줄 알았다.

“근데 주희야. 나 어제 엄마랑 심리학 교수님 만났었거든.”

경지가 어떤 얘기를 할지 모르는데도 주희의 표정은 자꾸만 굳어졌다.

“아주 정확히 내 성격을 알아봤는데, 나 이엔에프피래. 이에스티제이가 아니고. 너랑 완전 상극인 성격이지. 우린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아.”

경지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씽끗 미소를 지은 뒤 짝의 팔짱을 꼈다. 짝이랑은 성격 유형이 상극이라며 투덜댔는데 말이다.

“하, 하지만 어, 어제까지 우린……”

당황한 주희가 말을 더듬거렸다.

“그렇긴 한데, 교수님이 한 게 더 정확하겠지. 인터넷에 떠도는 건 정확하지 않대. 미안한데, 우린 분명 싸울 거야. 그런 불필요한 일이 생기면 안 되잖아.”

경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한 뒤 짝과 수다를 떨었다. 주희는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한동안 유난스럽게 몰려다니던 둘을 아니꼽게 보던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주희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타올랐다.

“웃겨, 진짜. 너희는 너네 성격 몰라? 지 성격을 왜 그런 유형에 맞추는 건데. 야! 송주희. 선생님 올 시간이야. 빨리 가자.”

소윤이가 주희의 팔을 잡아채 자리로 끌고 갔다. 구세주의 손길 같았다.

이게 다 뾰루지 때문인 것 같았다. 거울 속 붉게 올라온 뾰루지를 원망스럽게 보던 주희는 거울 안에서 소윤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송주희. 성격이든 운이든, 이상한 틀에 널 좀 끼워 넣지 마. 넌, 세상에 하나뿐이야. 사람들을 하나의 유형에 몰아넣고 서로 맞네. 안 맞네. 하는 거 완전 웃겨.”

소윤이의 말에 주희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경지 앞에서 부끄러웠던 거랑은 좀 다른 부끄러움이었다.

“고마워…… 오늘 뾰루지가 나서 운이 안 좋을 줄 알았어.”

“야! 뾰루지는 그냥 뾰루지일 뿐이야.”

소윤이의 한마디에 주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종일 기가 죽었던 주희는 할머니의 채소 가게로 갔다. 가게는 비어있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창고에 쓰러져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놀란 주희가 할머니를 부축하자 옆 가게 할머니도 놀라 뛰어왔다.

“허리 때문이지? 쯧쯧쯧쯧. 주희야. 할머니 고집 좀 그만 부리라 해. 돌팔이 영감한테 사주 좀 그만 보고 병원 좀 가라 하라고.”

옆 가게 할머니가 할머니를 딱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할머니 별자리 성격이 남의 말을 안 듣는 게 특징이라서……”

“뭐? 그게 뭔 소리여?”

옆 가게 할머니가 되묻자 주희는 입술을 말았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도 별자리를 운운한 자신이 미웠다.

“아니에요…… 할머니 나랑 병원 가자.”

주희는 누워있는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병원으로 향했다.

이귤희
동화작가, 1972년생
장편동화 『터널 : 시간이 멈춘 곳』 『특종 전쟁 1, 2』 『고양이 섬』 『다락방 외계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