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②큐브

  • 단편소설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②큐브

최근에 나는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엄마를 병간호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다. 간병할 수 있는 직계가족이라고는 언니와 오빠, 그리고 내가 다였는데 언니와 오빠는 결혼해 둘 다 가정이 있었고 배우자와 자식은 물론 직장도 있었다. 그들은 짧은 가족회의를 거쳐 엄마를 간호할 주된 간병인으로 나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의기투합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고 목표물을 향한 집중력은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집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이가 들어 행동이 가볍지 않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출퇴근할 필요도 없어져서 종일 자취방에서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물론 직장 상실의 슬픔을 느낄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내는 게 두루두루 좋은 거라며 예의 바르게 말했지만 그 말이 그 말이었다. 당연한 거였다. 부부는 아이를, 미혼 자식은 부모를 돌보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니까.

병간호는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지속되었다. 언니와 오빠 부부는 간혹 얼굴을 내비친 다음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체하고는 각별히 내게도 효성을 다하라는 잔소리를 한 바가지씩 퍼부으면서 그들의 효성을 확인하는 듯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차비에 쓰라고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나 두 장을 건넨 후 문을 나섰다. 나는 입을 꽉 다문 채 눈만 끔뻑거렸으나 생각까지 얼어붙은 건 아니라서 결혼하지 않은 비애, 자식 없는 비애, 직장 잃은 비애를 겹 바가지로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절망스러운 건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이 없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가족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주기적으로 아팠다. 늘 비실비실하다가 일 년에 한 번은 푹 쓰러져서 어딘가 골절되었고, 수술 부위가 잘 아물지도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한두 달씩 병원 신세를 졌다. 호출되는 건 나였다. 직장인이었을 때와 다른 점은 그전에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부탁하는 투였다면 이번에는 뻔뻔하다 싶은 정도로 당당하게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취방과 병원을 오가느라 늘 허둥거렸고, 잠에서 깨어나서도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늘 어리둥절했다. 잠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녘 주위의 기척에 놀라 눈을 뜨면 역광을 받고 선 검은 형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나는 내 방 머리맡까지 유유히 걸어들어온 낯선 형상을 보고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 했다. 그 형상 뒤에서 희끄무레한 형상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서야 그들이 회진 중인 의사 일행이며 따라서 내가 있는 곳은 자취방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그들은 나를 연고가 없는 행려병자로 분류하더니 어딘가로 이송한다고 했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취방이었다. 스마트폰이 울리고 있었기 때문에 꿈과 현실을 가늠해볼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집에서도 엄마의 다급한 호출에 불려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호출은 아무 때나 왔다. 새벽 세 시와 네 시에도 왔고, 다섯 시와 여섯 시에도 왔다.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으면 서둘러 택시를 타야 했다.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유쾌하지 않은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나름의 인지심리학적 정보를 근거로 친구 셋에게 번갈아 전화하는 식으로 각자가 받을 부담을 조금씩 줄여주는 것에도 꽤 신경을 썼다. 같은 소리를 세 번씩 하는 건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세 번은 토해내야 위장까지 깨끗하게 비워지는 것 같았고, 군더더기가 사라지면서 이야기의 꼴도 내 중심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야기 탓인지 친구 둘은 이 주일도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셋에게 쏟아내던 말을 남은 하나에게만 토해내야 했다.

재용은 전 직장 후배였는데 어딘가 약간 모자라 보이는 게 말을 잘 들었다. 언젠가 그렇게 말하자 재용은 씨익 웃으며 자기도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딘가 많이 모자라 보이는 게 말을 잘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재용은 크게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작게는 어디로 튈지 모를 의외성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술집에서 구룡포막회에 소주를 마셨다. 술을 마실수록 둘 다 우울해졌는데 그러면서도 뭔가에 화가 났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통에 위장병이 생겼다며 화를 내다가 그 때문에 내장에 화가 내재해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다시 침울해졌다. 그렇게 술집에서 나와 길을 걸었다. 봄밤의 부드러운 바람이 우리를 감싸자 싱그러운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길을 따라 조르르 서 있는 벚나무도 가로등 불빛을 받아 아름다웠다. 가지마다 맺혀 있는 하얀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팝콘 같았다. 아름다운 건 어째서 서글픈 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재용이 갑자기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당연히 꽃망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씩씩거리는 재용을 보고 킥킥 웃었다. 그러자 재용은 멱살잡이하듯 나무 기둥을 붙잡고는 거세게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땅 밑에서 흔들려라! 뿌리까지 뽑혀버려라! 재용이 괜한 데 화풀이하며 기둥을 마구 흔들자 나무 밑동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꽃망울도 후두두 떨어졌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풀이 대상을 찾은 것 같아 통쾌했다. 그래서 나도 재용의 옆으로 가서 같이 나무를 흔들었다. 우리는 나뭇가지에 달린 꽃망울이란 꽃망울을 죄다 떨어뜨린 다음에 옆에 있는 나무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렇게 길가에 서 있는 벚나무를 흔들면서 둘 다 기진맥진해졌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깨가 뽑힐 듯이 아팠다. 팔도 욱신거렸다. 재용은 눈물을 흘리는 것도 같았는데 그 모습을 보자 나도 괜히 울컥해져서 눈물이 났다. 우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채 피지도 않은 꽃송이들이 길가에 눈송이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근육통에 시달리며 얼마간 병원에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재용은 직장을 잃자마자 쉴 틈도 없이 고령 백수의 세계에 들어선 나를 보며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슬프다고 했다. 나이 든 백수의 진정한 고달픔은 늙은 부모의 손발이 되어줄 때 나오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얼마 전에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엄마가 느닷없이 쓰지 탕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엄마는 소 힘줄이 많이 들어간 곰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병원 근처 음식점 골목으로 나가 곰탕집마다 들어가서는 쓰지에 대해 설명했다. 직원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가까스로 쓰지 어묵탕 한 그릇을 살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오 킬로미터도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엄마는 눈물겨운 내 노동의 결과물인 쓰지 어묵탕에서 소 힘줄만 쏙쏙 골라 먹은 후 남은 걸 내게 주면서 아까우니까 마저 먹으라고 했다. 내 말을 듣던 재용은 그르니까, 그르니까, 그르니까 말이지 하며 그게 바로 오 킬로미터 밖까지 늘어진 엄마의 손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부모의 요구대로 시시각각 변신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고도 했는데 변신의 종류는 금융인, 회계사, 변호인,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운전기사, 설비 기사, 가사도우미, 하우스키퍼, 퍼스널 쇼퍼 등 생각보다 다양했다. 재용은 재취업 준비도 할 겸 여러 직업군을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능력치를 키워나가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모의 자산 규모로 볼 때 우리가 경제적인 부양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는 거라고도 했다. 그 말을 다 들은 후에 나는 마흔도 되지 않은 우리가 어떻게 고령 백수냐고 따져 물었다. 재용은 어린 간병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를 한다며 나를 나무랐다. 재용의 부모는 사지가 멀쩡했는데 시력이 좋지 않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에 적응하기 어려워했으며 그만큼 반응 속도도 느렸다. 기계를 다루는 것도 서툴러서 식당에서도 음식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물건을 주문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워했다. 툭하면 직장에 있는 그를 불러 온갖 질문을 퍼붓고는 결국에는 갖은 심부름을 시켰다. 재용은 직장이나 집이나 어디나 다 똑같다며 투덜거렸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더니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부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받아 재택근무를 하면서 부모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대신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부모는 그간 누적된 피로감을 위로받으려는 듯 <전원일기>와 <여섯 시 내 고향>,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재용은 필요할 때마다 생활비를 타 썼다. 재용의 다섯 누나는 모두 결혼해 배우자와 자식이 있었고, 그중에는 직장에 다니는 누나들도 있었다. 재용은 자신이 부모님이 고령까지 노력한 결과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라는 것을, 역시나 자조 섞인 어조로 강조했는데 그런 이유로 경제활동 대신 봉양에 더욱 힘쓰게 된 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나는 재충전 후 구직활동에 전념할 거라고 알려줬지만 그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는 환각에 시달렸다. 정신을 놓은 채 늘 누군가 자신을 쫓아온다고 두려워하다가 갑자기 정색하고는 내게 왜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왜 안 왔어? 하고 채근했다. 담당의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도, 남편이야? 하고 물었고, 그런 다음에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나는 의사가 가고 난 다음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남편이 어디에 있어요? 온 가족이 합세해서 내 결혼을 반대해놓고는 지금 와서 남편이라니…… 벌써 다 잊은 거예요?

짜증 섞인 대꾸에 엄마는 씨익 웃고는 다시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의사한테 우리 형은이 남편이냐고 묻는 것은 귀여운 축에 속했다. 엄마는 자주 환상을 봤다. 어릴 적 알던 누군가, 예를 들면 교회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게 누구냐고 물으면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방금 그 오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달렸다고 했다. 저기 있잖아? 엄마가 병실 유리창 쪽을 가리켰다. 당연히 그곳에 그 오빠가 있을 리 없었다. 나를 부르고 있잖아? 엄마는 유리창 쪽을 빤히 보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했다. 어딘지 모를 곳,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시간대로 불려 나가고 여기에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것처럼 엄마도 과거의 어떤 시간에 호출당해 늘 어딘가를 헤매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내 얼굴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편안한 눈빛으로 돌아왔고, 우렁찬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각종 심부름을 시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러려고 나의 결혼을 그렇게 반대한 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나이 들어서도 초 단위로 불러 심부름을 시키려고?

 

 

십 년 전에 삼 년을 만난 한 남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그와의 결혼은 좌절되었다. 엄마는 가난한 사랑이 밥 먹여 주느냐며 나를 몰아붙였다. 언니와 오빠는 내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며 엄마 편을 들었다. 나 정도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도 했는데 그렇게 말한 근거는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돈독해졌다. 이별 뒤 나는 가족이 소개해준 몇몇 사람과 만나느라 얼마간은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차츰 소개받는 사람도 줄어들었고, 아니, 거의 없었고, 그보다 풍족하다는 사람들이 그보다 더 좋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언젠가부터는 결혼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고, 그다음은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낀 심리적 고충을 토로하거나 뒷말을 가장한 자랑을 늘어놓거나 누군가를 욕했다. 그러자 기억 속에서 그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완벽한 사람이 되어 형상을 키웠고, 나는 아름다운 형상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 현실의 결핍을 느낄수록 그의 모습은 이상적인 사랑의 현전이 되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일상을 함께하거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 공동체도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불만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나이 들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기억의 집에서 그와 함께 살았다. 그러니까 가족의 소개로 다른 사람을 만나던 삼 년을 제외하면 칠 년간 홀로 플라토닉한 사랑을 키워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작용도 있었다. 이상적인 사랑의 환상 속에서 현실로 불려 나올 때마다 가족에 대한 원망은 늘어났다. 미래의 행복을 이유로 내 인생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행복한가? 서른 중반을 넘어선 미혼에 홀어머니의 간병인, 가족의 치다꺼리를 대신해주는 도우미, 실직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내세울 것 없는,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이 나누어서 해야 할 일을 혼자 떠맡아서 하는데도 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들은 직장 상사가 말단 직원에게 보고받듯 내게 엄마의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른 지시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음을 달래주기는커녕 효성을 시험받아야 했으며 산더미처럼 늘어나는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네가 있어서 참으로 든든하다,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전화하는 것 잊지 말고, 조금만 더 수고해라, 아가씨,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조만간 들를게요. 우리 처제가 고생이 많구나, 우리 모두 너를 많이 사랑한단다 등 전화를 끊기 전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비슷한 말을 했는데 내게는 그 말이 인공지능 자동응답서비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처럼 들렸다. 그들은 일이 주에 한 번씩 얼굴을 비추고는 사은품으로 받은 보조 가방과 무릎담요, 오랫동안 쓰지 않아 수납장 깊숙이 넣어놓았던 찻잔과 그릇 세트,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나 두 장 따위를 내게 주었다. 그런 걸 받으면 나는 예순다섯이라는 나이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들의 부모님은 다들 건강한데 엄마만 비실비실 맥이 없는 것 같았다.

엄마가 정신을 놔버렸어. 나는 재용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이번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줌마라고 불렀어. 기가 차서 웃음만 나왔지 뭐야.

심각하네. 재용은 그렇게 말하고는 치매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은지 우물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의사가 그러는데 환자들은 간혹 그러기도 한대. 안정을 되찾으면 대부분 바로 좋아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내가 말했다.

다행히 일시적인 문제구나.

그렇지. 하지만 일시적인 문제가 너무 자주 반복되니까 장기적인 문제지.

둘은 침묵했다.

무의식도 의식일 텐데 왜 아줌마라고 불렀을까? 재용이 불쑥 물었다.

심부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대꾸하자 재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쾌활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빨리 회복하려면 건강에 좋은 걸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며칠 전에 한우를 샀거든.

그 비싸다는 한우를? 재용은 화제가 전환되는 게 기쁜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엄마 카드로, 그런데 버티면서 계속 안 먹는 거지.

소 힘줄은 잘 드셨잖아?

그땐 정신을 놓기 전이니까 그런 거지. 그래서 내가 입안에 스테이크를 막 욱여넣었거든. 그 뒤로 무섭다면서 나를 슬금슬금 피하는 거야.

차라리 잘 된 건가? 너 좀 쉬게…… 쉬고 싶어 했잖아. 재용이 웃었다.

아니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거지. 호시탐탐 도망갈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잘 안 될 것 같으면 언니, 오빠, 형부, 올케한테 차례대로 전화해서 나를 욕하더라고. 이 아줌마 누구냐고 고래고래 소리치고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엄마를 버려둔다면서 정말로 버림받은 아이처럼 엉엉 울어. 그러면 곧바로 언니, 오빠, 형부, 올케한테 순서대로 전화가 온다. 간병에 더욱 힘쓰라는 잔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느라 정작 간병에 힘쓸 시간이 없다는 아이러니에 빠진 거지.

관리시스템이네.

거의 조직이지.

그래도 다른 자식은 자식인 줄 아는 거네.

그렇지. 형부 올케까지 알아보는데 정작 돌봐주는 사람한테는 아줌마라는 거지.

얼른 들어가 봐. 엄마 도망가셨겠다.

척추뼈 골절 수술해서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해. 덕분에 내가 엄마의 몸이 되었어. 원래 그렇게 부지런한 분은 아니었는데 나를 새로운 몸이라고 생각하는지 엄청나게 부려 먹더라고. 십 초에 한 번씩 불러. 나야말로 완전히 버림받은 기분인데 심부름하느라 울 시간도 없어.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서나 심부름만 하다가 죽게 될 것 같아 아주 슬프다. 매일 불려 다니다가 인생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다 그런 거지 뭐. 재용이 풀 죽은 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좋은 소식도 있어. 나는 화제를 돌렸다. 며칠간 오지 말래. 간병인을 부른다더라고.

만날래? 재용이 물었다.

집에 가서 좀 쉬어야지.

그럼 내일 기분 전환할까?

좋아!

집은 성곽길 근처에 있었다.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꺾어져 언덕을 오르면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을 따라 경관조명이 어슴푸레한 빛을 발했다. 갈색 불빛 탓인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과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 홀로 걷는 노인들과 같이 걷는 연인들도 환영 같았다. 그와 함께 걷던 길이었다. 오래전 그는 성곽길 근처에 있는 작은 빌라에 세 들어 살았다. 독립을 결심하고서도 이쪽에 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나 방을 구하던 시기와 맞물려 그가 살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이 하나 나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첫 자취생활을 이곳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그가 살던 빌라가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잠시 멈춰 오층 유리창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는 했다. 그러면 과거의 시간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세계에 변형이 일어나 순식간에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집에서도 이어졌다.

자취방 유리창으로 성곽길이 내려다보였다. 그 길 위에 노을 진 하늘이 펼쳐졌다. 저녁놀을 보자 심부름만 실컷 하다가 또 하루가 저무는 게 허무하게 여겨졌다. 하루하루 노예처럼 살다가 내 삶도 핏빛 얼룩을 남기며 이대로 저물어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런 생각 끝에는 탈출구라도 된다는 듯 어김없이 그가 떠올랐다. 이 도시 어딘가에 그도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고즈넉해졌고, 고즈넉해진 마음에 쓸쓸한 평화가 깃들더니 느닷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디에 사는지는 몰라도 도시의 석양빛 아래서 동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알았기에 그것에 안도했다.

너와 함께 보던 장밋빛 노을을 지금은 나 혼자 보고 있어. 나는 창가에 앉아 괜히 중얼거려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감상적인 편은 아니었는데 그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문장이 튀어나왔고, 물이 고이듯 스스로 생겨나는 그렇고 그런 문장을 구사할 때마다 병원 침대에 포박된 듯한 갑갑함을 느꼈다. 나는 그 갑갑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어? 질문이 조금 고루하다는 느낌이 들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와 함께 보던 장밋빛 노을을 지금은 나 혼자 보고 있지 뭐야. 그래서 처음 했던 말을 살짝 바꿔 다시 말해보고는 조금 나은가 하고 생각해봤다. 너와 함께 걷던 그 길을 오늘도 혼자 걸었지 뭐야.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너도 내가 보고 싶을까? 우후죽순으로 떠오르는 말은 다양한 이유로 고루했는데 그다음은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까 구체적인 질문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한 기분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흔해 빠진 말이었다. 게다가 미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칠 것 같다는 말을 바꿔 돌아버릴 것 같다고 해봤다. 마찬가지였다.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구사할만한 문장은 많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느낌을 나만의 느낌인 양 느꼈고, 들은 적 있는 소리를 나만의 소리인 양 내면서도 그것이 나만의 오롯한 감정이라고 착각했다. 효성에 전형이 있듯 이별한 사람의 감정에도 원형이 있었고, 나는 그 안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진심은 어째서 고루할까? 진정하면 진정할수록 판에 박힌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표정과 몸짓, 생각과 언어에 깊이 새겨진 전형성이 삶 전체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온몸으로 사회의 문장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감옥 같았다. 몸이 우주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어도 감옥이라니, 무서웠다. 오랜 사회화의 결과인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아니,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게 나였다. 그게 다였다. 그러면서도 판에 박힌 생각을 그에게 표현하고 싶었고, 판에 박힌 일상을 그와 공유하고 싶었고, 심지어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대상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망쳐버릴 거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흠칫 놀라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 두려움은 곧바로 공포로 바뀌었다. 느닷없이 뜬장에 갇힌 개가 된 기분이었다.

어릴 적 집에서 키운 개 이름은 큐빅이었다. 당시 오빠는 루빅큐브를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큐브>라는 제목의 공포영화를 본 뒤로 더 그런다고 했다. 몇 명의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정육면체의 방에서 깨어나 느닷없이 다른 방으로 옮겨간다는 설정으로 배후를 알 수 없는 살인 기계 이야기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던 것 같은데 그 연관성이 잘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빠는 그 개를 보자마자 큐브라고 불렀다. 언니와 나는 개 이름이 왜 그러느냐며 다른 이름을 지어줄 거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큐빅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반짝반짝 빛나라는 의미를 붙여주었다. 그래서 그 개는 큐빅이 되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그 개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으로 왔다. 누군가가 데려다 놓았는데 그게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목욕은커녕 털 관리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 금세 더러워졌다. 엄마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서 뜬장을 사 오더니 그 안에 개를 가둬버렸다. 개는 조그만 뜬장에 갇힌 채 거기서 용변을 보고 밥을 먹고 물을 마셨다. 거기서 짖었고 거기서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그 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귀찮아했다. 정수기 점검원은 뜬장에 갇힌 그 개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집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하며 검침원에게 개를 넘겼다. 그 개는 영문도 모른 채 우리 집으로 와 몇 달간 조그만 뜬장에 갇혀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집으로 옮겨갔다. 개의 의사와는 상관없었다. 그 개는 그 집에서 제가 가진 역량을 발휘했을 거였다. 그러니까 살기 위해 사람을 기쁘게 해주다가 늙어 죽었을 거였다. 물론 그 개에게는 행운이었겠지만.

나는 그 개에 관해서라면 아예, 완전히, 싹 다 잊고 있었기 때문에 불쑥 떠오르는 기억에 크게 당황했다. 과거의 시간이 일순 되살아나 나를 호출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잊고 태연하게 살아왔는지 의아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방향을 알 수 없는 돌풍이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를 흔들어 깨우자 어떤 시간의 문이 확 열린 기분이랄까? 스노볼이 흔들리듯 과거의 기억이 허공으로 떠올라 어지럽게 흩날렸다. 어떤 세계에서는 돌풍이 이는데 실제는 너무 고요했다.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관절을 구부릴 수도 없는 조그만 뜬장에 갇혀 그 안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뒤늦게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더 늦기 전에 그를 만나야 했다. 그를 만나지 않으면 현재와 과거 그 중간 어디쯤의 뜬장 안으로 반복해서 불려 들어가게 될 것 같았다.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같은 괴로움이 되풀이될 거였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메일 보관함을 살폈다. 오래전 그에게서 받은 메일이 있었다. 나의 것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몸이 떨려왔다. 나는 그에게 만나자고 쓴 다음 메일을 보냈다. 수요일에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메일 끝에 그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요일이면 이틀 뒤였다. 답장은 너무 쉽게 왔다.

오전 여섯 시와 일곱 시에 오 분 간격으로 알람이 두 번 맞춰져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 오 분 전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직장이든 병원이든 어딘가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며 나는 침대에 누워 그를 생각했다. 그러자 유리창으로 햇빛이 비쳐들었다. 침실 벽면에 창문의 형태대로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그 안으로 창밖 풍경이 흘러들었다. 그림자 안에서 가로수 우듬지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바람의 방향도 보였다. 낙엽이 벽면에 빗금을 그으며 아래로 떨어졌다. 몇 마리의 새가 나뭇가지 위로 날아들었다. 나는 벽면을 바라보며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었다. 창을 통해 흘러들어온 햇살과 그것을 투영하는 또 하나의 유리창이 한데 어우러져서 침실은 주황색으로 가득찬 빛의 세계로 변모했다. 실내에 퍼지는 여러 겹의 빛줄기 속에 금가루, 은가루, 꽃가루 같은 게 천천히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것들은 빛과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방이 미러볼이 된 걸까? 공중에서 흩날리는 그것들은 눈송이가 되었다가 다시 누군가 불어 날린 비눗방울이 되어 허공에서 퐁퐁 터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아줌마라고 믿고 있는 동안 나는 사랑이 가득한 이미지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사랑이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집에서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우리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러자 침실은 환등의 세계가 되었다가 영롱한 불빛의 세계로 변모했다.

아! 공간이 아름답게 변화하고 있어!

나는 재용에게 전화해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재용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놓쳐버린 수많은 사랑의 경험을 내 이야기에 투영하는 듯했다. 한마디로 나보다 더 내 상황에 빠져든 듯했는데 재용의 그런 태도가 나의 사랑을 더 귀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재용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을 다물었는데 내가 계속 채근하자 못 이기는 체하며 다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럼 십 년 전에 만났던 사람인 거야? 재용이 물었다.

그렇지.

그리고 칠 년이나 그리워했고?

그렇지.

심각하군.

생사 확인은 했는데 만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병고 확인하는 거지.

그러고는?

그러고는? 얼굴 보고 오는 거지.

얼굴만 보다가 와?

많이 달라졌겠지. 재용은 무슨 생각하는지 뜸들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십 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 않아?

그렇겠지.

너 말이야.

아! 물론 그렇지.

준비해야지!

뭐를?

가꿔야지! 재용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뭐를?

너를!

생각을 다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무슨 생각을?

그러니까 과거사 정리도 하지 못했고, 과거를 정리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현재를 정리하지도 못했어. 미래까지 가려면 아직도 길이 멀다고.

만나면 다 정리될 거야.

결혼하자고 하면 어떻게 해?

코앞에 닥친 것만 보자. 재용이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가꾼다고 도움이 될까?

이참에 방치했던 너를 돌보는 거지. 피부에 수분만 공급해도 오 년은 젊어 보일 거야.

나머지 오 년은 어떻게 보완하지?

옷장을 열어야지. 그리고 그 앞에 서서 과거사를 정리해. 그러면 어느 순간 몇 개의 옷이 눈에 들어올 거다. 무엇을 입을지 고른 다음에 부족한 부분은 쇼핑으로 보완하는 거지. 그러고 나면 네가 정리하겠다는 그것도 정리되어 있을 거야.

만나면 눈물이 나려나?

얼굴 부으니까 조심하자.

그렇지. 화장도 번질 테고.

준비하고 있어. 좀 이따 사랑이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너의 집으로 갈게. 재용이 놀리듯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야 그와 만난다는 게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재회가 실감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실감 났을 뿐이었다. 재용의 말이 옳았다. 나를 보고 실망할 수도 있었다. 혹시라도 그리워했다면 그리워한 시간이 손상될 수도 있었다. 그가 느꼈을 그리움의 감정을 훼손하기 싫었다. 오랜 시간 그리워하면 환상이 자라는 법이니까. 게다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실제로 정리되는 것은 없었고 괜히 마음만 더 조급해졌다. 나는 마음도 가라앉히고 생각할 시간도 벌 겸 샤워를 했다. 그런 다음 손톱을 자르려는데 로션 탓인지 손가락이 미끄러워 손톱깎이가 잘 잡히지 않았다. 네일 숍에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투명 젤 네일로 바르면 단정해 보일 거였다. 눈썹 정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자 이번에는 지저분한 머리가 신경 쓰였다. 네일 숍과 브로우 숍, 미용실에 다녀오려면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일정을 짜야 했다. 들어오는 길에 귀걸이와 목걸이도 하나씩 사기로 했다. 준비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입고 갈 옷도 골라야 했으며 혹시 모를 방문에 대비해 청소도 해야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을 아껴야 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었다. 동시에 빼곡하게 적힌 과거의 계획들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뭐가 이렇게 많은가 싶어 대충 훑어보니 별 내용도 없었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도 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늘의 할 일을 적어두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그런 다음 그에 맞춰 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계획이라기보다는 생필품과 식료품 따위의 쇼핑 목록이 대부분이었다. 간병을 하면서도 그랬다. 간병에 필요한 물건들이 꽤 많았다. 일기 같은 건 아예 없었고, 업무 관련 메모는 언제 했는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나 있었다. 나는 새 문서를 펼쳤다. 동선을 고려해 집에서 해야 할 일과 밖에서 해야 할 일을 나누어 적었다. 그런 다음 옷장 문을 죄다 열어놓고 그 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해야 할 일이 떠오르면 메모했고, 지저분한 게 눈에 띄면 걸레질을 했다. 옷걸이에 걸린 상의와 하의도 따로 꺼내 서로 어울리는지 맞혀봤다. 기계적으로 일을 해치우면서도 내가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분히 앉아 그간의 시간을 정리해보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메모장에 적어 놓은 것들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메모장에 적힌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재용은 집에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취소했다. 하지만 통화할 시간은 조금 있다고 했다. 나는 재용과 영상으로 통화했다.

누가 봐도 신부 같군. 재용이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럼 가죽 재킷 입을까? 내가 물었다.

가죽은 너무 차가워 보이지 않을까? 따뜻해 보이는 모직 코트 안에 부드러워 보이는 카디건을 입는 게 나을 것 같아.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거지.

그런데 운동화가 너무 더러운데. 지금 빨면 마를까?

안 마르지.

큰일이네. 이것도 좀 구겨졌는데. 나는 옷장에서 꺼낸 모직 코트를 재용에게 보여줬다.

최소한 구김 없는 옷과 깨끗한 운동화 정도는 착용하고 가야지. 옷도 구깃구깃 운동화도 더러운 건 좀 그렇지.

평소에 좀 깨끗하게 하고 다닐걸.

첼시부츠 신어. 그게 예뻐.

그렇지만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청바지에 첼시부츠가 꾸민 것처럼 보이겠어?

늦가을엔 역시 첼시부츠에다 트렌치코트지. 코트 안에 카디건 입으면 되겠다. 부드러워 보이도록.

그게 좋겠다.

머릿결도 너무 푸석한 것 같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뭐든 다해야지. 언제 만난다고?

내일 오전 열 시, 한강공원.

십 년 만에 만나는데 이 추운 날 한강공원에서 오전 열 시라…… 왜 그렇게 잡았어?

모르겠어. 그렇게 하자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어.

둘이 자주 갔었어?

아니.

그런데 왜 거기서?

그것도 모르겠어. 그리로 오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어.

무슨 사정이 있는 건가? 그냥 오전부터 죽 같이 있자는 건가?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은 네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왜 도와주는 거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만나보면 뭔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모르지.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지. 정리하게 될지도.

다음 날 새벽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앞이었다. 병원 입구로 향하는 보도블록에 낙엽이 깔려 있었다. 나는 붉게 물든 길을 걸어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출입구 앞에서 두리번거렸다. 도로 쪽에서 걸어오던 여자가 남자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활짝 웃었다. 남자 옆 휠체어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회전문을 통과했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출입구를 향해 걸어오던 노인이 나를 보고 놀랐는지 흠칫거리며 방향을 틀었다. 아이고, 귀신인 줄 알았네! 내 뒤에서 노인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재회의 순간을 그려보느라 새벽까지 뒤척였다. 잠이 들려는 찰나 스마트폰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빨리 오라고 했다. 엄마가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간병인은 물론 간호사도 손쓸 도리가 없다고 했다.

힘이 장사야, 장사! 간병인이 병실에 도착한 나를 붙잡고 말을 이었다.

꿈에 누군가 엄마를 불렀다고 했다. 이리로 좀 와 봐라, 같이 가야 할 데가 있다, 빨리 일어나라, 이런 말들이 들렸다고 했다. 엄마는 비명을 지르다가 벌떡 일어나 발작을 일으켰고, 그런 다음에는 손에 잡히는 것을 죄다 부쉈다고 했다.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뽑아버리고는 복대 안의 붕대도 풀어버렸다고 했다. 간호사 몇이 다시 처치해주었는데 엄마는 그것도 모조리 풀어버렸다고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간호사들을 쳤다고 했다. 집으로 가겠다며 침상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바닥을 기었다고 했다. 안정제를 맞고, 조금 전에 잠들었다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살폈다. 이불과 베개에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냘픈 손등과 팔뚝에도 핏방울이 말라붙어 있었고 그 주위는 멍이 들어 시퍼렜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검사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통에 불안감만 높아지는 것 같았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몸은 더욱 쇠약해지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퇴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간호사와 간병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 새 이불을 가져다가 엄마를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간병인에게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집에 들렀다가 다시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면 약속에 늦을 것 같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카디건은 옷장에 걸려 있을 거였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병원에서 온 건가 싶어 확인해보니 포털 계정에 저장된 비밀번호가 유출되었다는 메일이었다. 비밀번호를 변경하라고 했다. 비슷한 종류의 메일이 메일함에도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쇼핑몰에서 온 쿠폰 및 적립금 안내 문자, 구매 확정 요구 문자와 미용실과 브로우 숍, 네일 숍 이용 후기 및 평가 요청 문자 등 확인하고 삭제해야 할 게 많았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조용한 데 들어가 일주일만이라도 푹 쉬고 싶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랬다. 늘 쉬고 싶었다. 연차를 이어 쓸 때마다 부서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서둘러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휴가 도중에 다시 사무실 책상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안달복달하다가 겨우 한 발짝 내디디면 몸 저쪽에 스프링이 달린 듯 다시 회사였다. 당연히 연차는 다 쓰지 못했고 쌓일 대로 쌓여 있다가 신년이 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노예처럼 일한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업무가 꼴도 보기 싫더니 때려죽여도 못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시키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얼마 안 가 한직으로 내몰렸다. 곧이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실직인지 사직인지 그 사이 어디쯤인지 어중간한 모양새로 직장을 나오게 되었는데 아쉬움은 없었다. 충전을 해야 기계도 돌아가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는 가족에게 소환되어 충전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살아 있는 한 나를 부르는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였다. 나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고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서른일곱 해에 걸쳐 배워온 교양인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나를 위한 게 있기는 한 걸까 싶었다. 이 세계에서 무탈하게 살아가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역할이 필요한 걸까 생각하자 한숨이 밀려 나왔다. 택시가 한강공원에 나를 내려놨다.

오전 열 시의 가을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산책로 갓길 한쪽에는 누가 쓸었는지 돌탑처럼 쌓인 낙엽 더미가 주르르 이어져 있었다. 비질로 꾸며 만든 하트 모양의 낙엽도 눈에 띄었다. 강에 조금 더 가까워지자 편의점이 보였다. 그 앞 벤치에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캐주얼한 정장 차림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정장을 입은 모습도 낯선데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딘가 달라 보였지만 그였다. 그가 맞았다. 그가 나를 봤다.

형은아.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미소 지으려 애쓰며 그에게 걸어갔다. 그도 어색한지 벤치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한강을 마주 보고 나란히 앉았다. 시선을 돌리는체하며 그의 옆얼굴을 힐끔 보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나이가 들었구나.

시간이 흘렀으니까. 나는 침착하려고 애쓰며 대꾸했다.

그런 다음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평일 오전에도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과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 홀로 걷는 노인들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났다.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그들이 듣는 음악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장르도 빠르게 바뀌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의 목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스마트폰을 귓가에 대고 걷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다른 소리와 주변의 소음이 허공에서 섞이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사람들이 왜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사람을 밀치고 다니는지 알아? 그가 물었다.

글쎄.

안 보여서 그래.

재회하자마자 하는 이야기치고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 때문인지 긴장이 조금 풀렸다.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지 알아? 그가 우리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글쎄. 외로워서 그런가? 자기 좀 봐달라고.

아니.

잘 모르겠어.

생각해봐.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려고 그러나? 아주 좋은 음악이니 함께 듣자고. 그가 보는 풍경을 나도 보고 있다는 데 감격해 건성으로 대꾸했다.

안 들려서 그래. 귀가 안 들리니까 음악을 저렇게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거야. 자기가 들으려고. 그가 웃었다.

말도 안 돼. 나는 시답잖은 그의 말에 느닷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예전에는 시끄럽다고 욕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알게 됐어. 그는 계속 우리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 나이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물었다.

노안이 일찍 왔대. 게임을 너무 많이 하니까.

그가 겸연쩍게 웃는 것 같았는데 나란히 앉은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주 보고 앉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란히 앉는 건 예상에 없던 거였다. 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과거의 연인이 처음 하는 대화도 이런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떻게 지냈어? 내가 물었다.

똑같지. 회사 다니고 게임하고.

오늘은 휴가 냈구나.

곧 들어가야 해. 점심시간 이용해 잠깐 나온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내가 생각한 재회의 장면은 이런 게 아니었다. 서운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나온 사람과 이런 이야기나 하자고 그토록 오래 그리워했던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왜 한강이야? 나는 실망감을 감추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탁 트인 데 나오고 싶더라고. 최근 들어 어머니가 우울해하셔서 집안에 우울한 기운이 흘러. 회사든 집이든 어디든 우울하지. 게임이 유일한 낙이야. 그가 말을 더 이어나갔는데 옆 벤치에 있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잘 들리지 않았다. 막 도착한 라이더 몇이 로드바이크를 바닥에 눕힌 뒤 먼저 와 있던 일행과 합류했다. 그들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들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도 너무 컸다.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말해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침묵했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사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는 제가 입은 티셔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젊은이들! 이거 무슨 색으로 보이나?

남색이요. 그가 티셔츠를 보고 대꾸했다.

그렇지! 남색이지? 남자가 손뼉을 치며 말하고는 돌아서서 외쳤다. 그거 봐! 이거 남색이라잖아. 아니, 남색을 어떻게 녹색이라고 하는 거야? 일행에게 되돌아간 남자가 껄껄 웃었다.

남색이래? 일행 중 하나가 되물었다.

분명히 녹색인데. 일행 중 다른 하나가 아쉽다는 투로 쩝쩝거리는 소리를 냈다.

젊은이들이라 역시 눈이 좋아. 그들 중 하나가 일행에게 말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캔 커피 두 개를 사 들고 나와 조금 걷기로 했다.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가로지르면 강 쪽에 오솔길이 하나 더 있었다. 포장하지 않은 길이라 사람들이 없었다. 그가 그쪽으로 갔다. 나도 그쪽으로 걸었다. 오솔길을 따라 커다란 미루나무가 양옆으로 죽 이어져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서 툭 튀어나온 듯 수형이 독특했다. 나뭇가지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그런지 빛의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옆에서 나와 나란히 걷고 있는 그를 힐끗 봤다. 역시 옆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미루나무가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봤어. 나무에 걸린 표지를 보고 내가 말했다.

넌 늘 처음 본다고 하지.

본 적 있었나?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 앞에 우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두 개의 그림자는 두 그루의 미루나무처럼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우리가 각자 보냈던 시간, 그래서 서로가 알지 못하는 시간의 그림자 같았다. 밝히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 같았고, 미처 하지 못한 말의 풍선 같았다. 나는 괜히 캔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캔 커피가 따뜻해 손가락도 따뜻했다. 그의 팔이 내 옆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와 손을 맞잡고 미루나무 숲길을 걷고 싶다는 감정에 휩싸여 그를 봤다. 그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주변을 환히 밝히던 열정이 사그라들어 그에게서 흘러나오던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형상을 그려보며 보았던 광휘가 그에게는 없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웠다거나 보고 싶었다거나 다시 만나자거나 따위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오솔길 끝은 강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길이 곧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마찬가지였다. 그리워했는지 보고 싶었는지 따위의 하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진실한 내 마음을 토로하고 싶었는데 생각나는 말들은 모두 빤했다. 길 끝에 다다랐을 때 강둑이 나왔다. 우리는 그 앞까지 가서 발아래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다. 나는 짧은 만남이 아쉬워서 점심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팀장이 찾아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다음에는 좀 더 길게 만나자고 했다. 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나는 강을 바라봤다. 강둑으로 물살이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주말에 볼래? 내가 물었다.

그는 그러자고 했다.

이번 주말?

요즘은 주말마다 좀 바빠. 그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일로?

사실은 주말에 총공격을 가기로 했거든. 그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총공격?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그를 쳐다봤다.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총공격 가기로 했어. 그는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변명하듯 덧붙였다. 어찌 된 일인지 방장이 바뀐 뒤로는 총공격을 많이 가게 되네.

내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자기가 최근에 빠진 게임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일 오전에 만나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라고 했다. 기가 찼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며 괜히 강을 바라보는 체했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는 보지 않았다.

바쁜가 보네. 아까부터 울리던데. 그가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강을 바라봤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마주 봤다. 어떻게 생겼는지 눈코입 하나하나 제대로 뜯어봤다. 당황하는 그의 얼굴에 대고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감정의 찌꺼기였다. 과한 자기연민과 자기애였다.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고, 아플 때 병간호해 줄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에게 더욱 바짝 다가갔다. 그런 다음 있는 힘껏 그를 밀었다.

어! 그가 소리 내며 그대로 물에 빠졌다. 그가 허우적거렸다.

별것 없었다. 그냥 단 한 번, 온 힘을 다해 힘껏 밀어 버리면 되는 거였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내 귓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야. 그것은 극복할 수 있단다. 그런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자그마치 서른일곱 해를 살았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면 다른 방이었고, 다시 눈을 감으면 또 다른 방이었다. 그리고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몸은 현실에, 의식은 과거에 매인 채 그렇고 그런 뻔한 말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었다. 벚나무를 흔들며 애꿎은 데 분풀이할 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작정 뛰었다. 오솔길을 되돌아 나왔을 때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더 좁게 난 길을 택해 그쪽으로 향했다.

최정나
소설가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