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①일몰 日沒

  • 단편소설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①일몰 日沒

1

창밖 햇빛이 환하다.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아름다운 순간이 머물다 사라진다. 지나간 세월이 고작 하루 같다. 곧 밤이 온다. 방안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사위가 고요하다. 가끔 바람소리가 나와 세상과의 적막 사이에 머물다 간다.

나는 아내의 잠든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전쟁 같았던 하루가 지나고 겨우 평온한 끝이다. 그녀는 꿈속 어느 곳을 오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미 잃어버린 기억의 저편을 보고 있는지, 꿈속에서라도 가능한 일이면 좋겠다. 나도, 아내도 삶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많은 것들이 이미 지나가 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속으로 함몰됐다. 우리는 그저 생을 버틴다. 아무런 소망도 없고 더 이상 절망도 없다. 죽고 싶지도 않고 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베란다에 나가 우두커니 겨울밤을 바라본다. 11평 임대아파트로 이사한 지는 수년이 지났다. 그만그만한 집들의 불빛이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내어주는 위로가 밤에서 밤으로 전해진다.

아내는 초저녁에 잠들어서 이른 새벽이면 잠에서 깬다. 아마도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또 한바탕 난리를 치를 것이다. 운이 좋다면 나를 알아볼 것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는 작년부터 부쩍 상태가 안 좋아졌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하루 자기를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이 정겹다. 미간을 찌푸릴 때마다 멀리 맞은편 아파트 불빛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모아진다. 희미하게 사람들의 움직임도 간혹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내 착각일 뿐이지 실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을 보니 늦은 저녁을 먹거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이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있을 무렵이다. 나는 아들 선규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신호음이 길게 여러 번 이어져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선규와 연락이 끊긴 지 오 년 즈음 되었다. 연속해서 전화를 다시 걸어보지만 마찬가지다. 통화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연결음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한결 나아지기 때문이다.

“응, 선희야, 나다.”

대신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희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선규에게서는 연락 없었어?”

선희는 아주 가끔 집에 들러 반찬 같은 것을 두고 가곤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발길을 끊고 오지 않는다.

“없어요. 아빠, 이제 포기하세요.”

선희가 한참 만에 말했다.

“아버지, 오빠 일로 나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저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시간 날 때 들러서 엄마도 보고 가고 그래. 엄마는 이제 더 안 좋아졌어. 곧 너도 나도 잊을 거다.”

선희는 대답이 없다. 얼마 전에 선희 막내딸이 대학시험에 떨어졌다. 시름이 하나 더 늘었을 것이다.

“어차피 저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봐서 뭐해요.”

선희는 새벽부터 나가 해 질 녘까지 빌딩에서 청소하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했는데, 얼마 전에 두 곳 모두에서 일을 잃었다. 지금은 어떻게 먹고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빠, 나 일하는 중이에요. 이렇게 한가하게 전화할 시간이 없어요.”

“미안해, 내가 너무 힘들다.”

선희의 사정을 뻔히 알지만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

“저도 힘들어요.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네 오빠도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 거야.”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거예요. 아버지도 나도.”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희도 말이 없다.

“김 서방은 좀 어떠냐?”

“똑같죠, 뭐. 더 나빠지고 있는 중이죠.”

선희에게 더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내겐 이제 아무도 없다. 선희 남편도 지난해 쓰러져 자리에 누워 있다. 선규가 선희에게까지 돈을 빌렸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선희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날리고 큰 빚도 떠안게 되었다.

“내가 미안하다, 선희야.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선규도 그런 건 아니었을 거야.”

통화할 때마다 같은 말이었지만 매번 말문이 막혔다.

“뭐가요. 뭐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에요. 아빠, 우리 오빠한테 다 당한 거예요. 플로리다에서 잘 산다잖아요. 부모 등치고, 동생 돈 떼먹고, 회삿돈 훔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니까요. 아버지, 오빠 두둔하지 마세요. 그게 더 화가 나서 죽을 거 같으니까.”

선희의 말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선규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남매고 가족이잖니. 네가 좀 이해하고…….”

“가족이요? 가족한테 그러면 안 되죠. 저한테 가족은 우리 자식들하고 누워있는 남편이 다예요.”

나는 괜스레 입안에 쓴맛이 돌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저 일 해야 돼요. 끊어요.”

“요즘은 무슨 일을 하니?”

내 물음이 다 끝나기 전에 선희는 전화를 끊는다. 창밖으로 하찮은 겨울밤이 오고 있다.

내게 밤은 너무 길고 낮은 더 길다. 나는 아내가 잠든 방, 문에 자물쇠를 채운다. 아내는 한번 잠들면 중간에 깨는 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아내는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 않는 것뿐이다. 몇 시간은 쉴 수 있을 것이다. 잠을 자둬야 하는데 쉬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몸이 쇳덩이처럼 무겁다. 나는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거나 창밖에 시선을 둔다. 서서히 동이 터오는 것을 바라보며 잠깐 잠에 들곤 한다. 아내가 깨기 전에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 강박감이 불면을 가져오는 것 같다. 곰곰 오늘이 며칠이었던가, 가늠해 본다. 생활비가 얼마 남았는지, 밀린 공과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생각을 멀리 밀어내는 법을 찾을 길 없으니 난감하다. 나는 이런저런 걱정으로 밤을 보낸다.

어제 낮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치매 노인돌봄서비스 도우미가 왔다 갔다. 일주일에 몇 번 있는 그 시간이 내게는 나름 자유시간이다. 아내는 음악 놀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데 때마다 집이 떠나가라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고함을 지르는 것에 가까운데 아내에게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는 와중에도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은 그 시간이 내 생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도 한다. 아내는 하는 짓이 점점 어린아이 같아진다.

아내는 아프고 난 뒤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말투나 성격,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것이 모두 변해 버렸다. 식성마저도 변해서 낯선 사람과 사는 것 같다. 그녀도 나도 이제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가 된 것 같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 언젠가는 이런 노래도 기억에서 사라지나요?”

“어머, 그건 잘 모르겠네요. 보통은…….”

돌봄 도우미가 말을 흐렸다. 나도 더 묻지 않는다. 끝내는 말을 잊는다고 했다. 알면서도 나는 묻는다. 아직도 바람이 남았다면 지금만 같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아버지, 나랑 여기 앉아서 같이 불러요.”

아내가 나를 부른다. 아내는 가끔 나를 죽은 내 아버지하고 헷갈린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었나 보다. 그게 왜 그렇게 절망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0여 년이 흘렀는데도 그 소멸의 시간이 너무 선명해서 그렇다. 더 절망스럽다. 시간이 지나도 확연해지는 것과 잊고 싶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절망의 본심이다.

밤에는 낮의 일을 떠올리고 낮에는 지난밤의 시간을 되새긴다. 우리의 하루는 매일 그렇게 다시 채워지고 있다. 반복적이지만 반복적이지 않은 절망의 무게와 선연한 기억의 시간이 내게 쌓이고 있다.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스스로 묻고 묻지만, 나는 나에게 대답이 없다.

캄캄한 이쪽의 저편에서 미명이 몰려온다. 다시 망각의 세계가 열리는 시간이다.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아름다운 시간이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곧 아침이 온다.

 

2

선규와 아내, 내가 제주도를 갔던 날에는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쳤다. 5년 전인가 그랬다. 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 이사했으니 5년 전이 맞다. 마지막 가족여행이었으니 내가 잊었을 리 없다. 한겨울, 아들과 아내와 나, 셋은 고흥 녹동항에서 아침에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예정에 없던,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다. 그 길이 참 고되었음에도 아내와 나는 불만이 없었다. 무엇보다 선규가 원하는 일이니 들어주고 싶었다.

“이 추운데 웬 제주도 여행이라니?”

떠나기 전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선규는 대문 밖에 세워둔 차의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우리를 재촉했다.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없잖아요. 급하게 그렇게 되긴 했는데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죠.”

선규는 현관에 서서 무심하게 얘기했다.

“일단, 잠깐 들어와서 좀 앉아.”

내가 선규의 손목을 잡아끌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바로 출발해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그럴 거면 미리 좀 얘기라도 하지 그랬니.”

아내가 눈치를 보며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규의 등 뒤, 현관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어쨌든 그렇게 됐다니까요. 저 못 믿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못 믿다니.”

나도 아내도 선규에게 더 반박은 하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간단히 짐을 챙겨 선규를 따라나섰다. 집을 나서며 현관에 서서 집을 둘러보는 나를 아내가 슬그머니 잡아끌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해 질 녘 출발해서 한밤중에 전남 고흥에 도착했다. 휴게소에 들르지도 않았고 저녁 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누구도 뭔가를 먹자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도 나도 화장실이 급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도 그랬겠지만, 나는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전남 고흥은 멀었고 자꾸 그런 마음을 밀어내는 데 이미 지쳐버렸다.

허름한 모텔 방에 우리 셋은 함께 묵었다. 선규는 도착하자마자 우릴 남겨두고 나갔다가 잔뜩 취해서 돌아왔다.

“이거라도 드세요. 문 연 곳이 거기밖에 없더라고요.”

선규가 검정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만두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내와 나는 그것을 꾸역꾸역 삼켰다.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지만 피곤한 몸임에도 셋 중 누구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서로의 한숨이 들킬까 조심스럽게 숨을 뱉었다. 돌이켜 보니 그래도 그때는 아내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버렸다. 선희는 선규가 미국에서 잘살고 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날 밤, 느꼈던 불길함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아내도 나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피로한 몸과는 달리 좀체 잠이 오질 않았다. 우리 셋은 일찍 모텔을 나섰다. 여객터미널 앞에서 셋이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이른 새벽, 여주인은 엄청나게 큰 식당을 혼자서 지키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이상한 풍경처럼 기억에 남았다. 배가 고팠는데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자꾸 입안에서 쓴맛이 돌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는지 반 이상을 남겼다.

“엄마, 왜 그렇게 못 먹어요.”

“그러게 속이 좋질 않네. 너 더 먹어.”

나는 둘의 대화를 듣다가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 코를 박고 마구 숟가락질을 했다.

제주도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배를 타고 4시간 남짓 가는 동안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봄 아침 같았고, 가을 오후 같았다. 바다에 내려앉은 햇살이 눈부셨다. 아내와 나는 잠깐 바람을 맞다 객실로 돌아왔다. 실은 선규를 찾으러 간 것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우려와는 달리 선규는 한참 만에 돌아왔다.

“어디 다녀왔어? 한참 찾으러 다녔어.”

“왜요. 죽기라도 했을까 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찾아도 안 보이니 걱정했다는 거지.”

선규는 눕더니 팔을 이마에 얹었다.

“불 꺼줄까?”

“아니, 괜찮아요.”

아내가 선규에게 객실에 비치된 담요를 덮어주었다. 선규는 끝이 없을 것 같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밤에 먹었던 술 때문인지 몰라도 술 냄새가 풍겼다. 4인실 온돌 객실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나와 아내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멍하니 둔 채 말이 없었다. 선규는 그대로 잠이 든 것인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인지 미동 없이 그대로 누워있었다. 뉴스 채널에서는 대선주자들의 행보에 대한 뉴스가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해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때 당선된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다음 대통령 선거도 끝이 났으니 5년 전이 아니라 6년, 아니 7년 전 일이 확실했다. 점점 나도 아내를 닮아가는 것 같다.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점심때 제주에 닿았는데 밥을 먹고 나왔더니 그 새 날씨가 변해 있었다. 비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차 뒷좌석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선규도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듯 운전대를 잡고서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아내와 나는 아주 간단한 짐만 챙긴 상태였고 수중에 돈도 얼마 없었다. 그 사실이 점점 불안을 키웠다.

내가 느닷없이 울음이 터진 이유는 환한 햇빛 때문이다. 겨울이었지만 볕이 유난히 좋은 날이다. 아내는 오전 내 창밖에 시선을 둔 채 거실을 서성거렸다. 나는 아내가 바라보는 쪽을 나도 모르게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십여 년 전이었던가. 십오 년 전이었던가. 특별할 거 없었던 어느 하루가 불쑥 떠올랐는데 순간, 그게 그렇게 슬펐다. 아마도 봄이었을 것이다. 볕 좋은 오후 집 근처 카페에 나란히 앉아 우리는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평생 출판교정자로 일했는데 그때까지도 일을 놓지 않고 있었고, 나는 퇴직 전이었으니 학생들 과제 같은 것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환갑 무렵이었나, 그 전이었나. 간혹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엷은 웃음을 지어주던 아내가 떠올랐다. 그러자 울음이 터졌다. 아내의 얼굴이 그리 환하였던가.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베란다 창 너머 어디쯤 시선을 두고 서 있는 아내를 바라본다.

“여보, 무엇을 찾고 있는 거야?”

나는 울먹이며 물었지만, 아내는 창밖에 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아내는 오전 내내 거실을 서성이며 뭔가를 보고 있다.

“뭘 보냐니까?”

나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묻는다. 내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아내가 움찔한다. 아내는 지금껏 보고 있는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중인가 보다. 정신이 돌아온 듯 주위를 둘러본다. 갑자기 마주한 세계를 자각하느라 자기가 보고 있었던 곳을 잊어가고 있나 보다. 아내가 천천히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여보, 언제 왔어? ……그새 왜 이렇게 늙었어요?”

아내가 놀란 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겨우 멈추었던 울음이 다시 터진다. 하염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여보,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아내가 나를 안으며 어깨를 토닥인다.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아내 품에 안겨 울음을 쏟아낸다.

“괜찮아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제가 있잖아요.”

아내가 나를 위로할수록 울음이 커진다. 그날 아내에게 내려앉았던 환하고 따뜻한 볕이 아내 품에 여전히 남아있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던 아내의 표정이 거기에서 미소짓고 있다. 그녀가 가만히 내 등을 쓴다. 나는 아이처럼 그녀 품에 안겨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다.

다른 날과는 달리 아내의 컨디션이 좋은 날이다. 현재로 돌아온 시간이다. 나는 이 순간을 오래 붙잡으려 애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멀어진다. 아내를 보면 우주의 섭리를 알 것 같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무질서의 시간, 무질서함으로 질서를 만드는 진리를 말이다. 아내와 가끔 별을 보러 갔었다.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 도시의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한적한 곳을 찾아가던 밤, 아내도 나도 젊은 날이었다. 우리가 바라본 것들은 수십억 광년 전에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달려온 별빛을 간직하는 것은 꽤 근사한 일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캄캄한 어둠이 무서워 내게 바짝 붙어서 걸으며, 온기를 전하던 아내가 선연하게 떠오른다.

별들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죽어가는 일생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 차라리 멈춰져 있는 것과 같다. 눈 깜짝하는 한순간도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계산을 해본다. 빛이 1초에 300,000km를 가니까, 300,000km 곱하기, 60초 곱하기, 60분 곱하기, 24시간 곱하기, 365 곱하면, 멀다, 모르겠다. 빛이 겨우 1년 가는 거리가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니 새삼 경이롭다. 그렇게 빛이 수십억 년 동안 달려간 거리에 별이 있었다니, 이런 시간 속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은 언제나 복잡하고, 길고,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졌던가.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리고 난 뒤에 보니, 정말 일생이 멈춰진 시간처럼 찰나의 한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별에서 지금의 이곳을 본다면 이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허상, 그곳의 지금은 여기의 지금이 아니므로 우리는 서로 존재했었으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의 생이 찰나적이라는 것, 하지만 그 순간이 버겁고 견디기 힘들다.

아내는 모처럼 자기가 밥을 차려주겠다고 나선다. 아마 항상 해오던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지금을 붙잡고 있는 이 시간이 오래 지속하길 바란다. 방해하지 않으려 자극을 주지 않으려 애쓴다. 부디 그녀가 지금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꼭 그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녀는 집중하면 할수록, 붙잡으려 할수록 현재를 잃어버린다. 현재를 잊고, 현재와 가까운 과거일수록 쉽게 잃어버린다. 일 분 전보다 몇 초 전을 쉽게 잊고, 한 달 전보다 어제를 기억 못 한다. 그녀는 일 년 전보다 십 년 전을, 십 년 전보다 삼십 년 전을 잘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녀의 기억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므로 언제나 현재진행 중이다.

모처럼 아내의 기분이 좋은 날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그녀를 말없이 바라본다. 생각하지 않고 본능으로, 느낌으로 자기를 지키면 그나마 현재의 시간이 길어진다. 의사는 아마도 선규 때문에 아내의 병이 깊어진 것 같다고 했다. 선규가 사라짐과 동시에 아내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으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내가 선규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아들이 돌아온다면 아내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다른 생각에 잠깐 빠져 있던 순간, 그녀의 현재도 순식간에 멈춘다.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 안을 들여다보며 서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조급해진다. 그녀는 과거 어디쯤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아내에게 다가간다.

“장을 좀 봐야겠어요, 여보.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서며 안도한다. 다시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이렇게 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그냥 대충 먹어야 할 거 같아요. 내가 좀 정신이 없죠? 장을 보는 걸 깜빡했네.”

“응, 응, 그럼. 난 괜찮으니 대충 먹읍시다.”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선희가 다녀간 지도 몇 개월이 지났고 하루 배달되는 도시락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정도이니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다.

“누룽지 끓여 먹으면 어때?”

“아, 그럴까요?”

아내가 익숙하게 냉동 칸에서 누룽지를 꺼낸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나는 되뇐다.

“그런데 선규가 어제 놓고 간 고등어를 어디 둔 거지? 전혀 기억이 없네, 참.”

아내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며 혼잣말을 뱉는다.

 

3

오랜만에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아내는 설거지까지 도맡았다. 나는 내동 식탁에 가만히 앉아 아내를 바라보았다. 나는 제대로 살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더 힘들다. 아내가 평생 내게 헌신했던 시간에 대해 내가 갚을 차례다. 하지만 바라보는 일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간만의 평화로움이 깨진 것은 운동 선생님의 방문 때문이었다. 인터폰에 뜬 낯선 사람을 바라보다가 아내는 또 현재를 잃어버린다.

돌봄 도우미들은 그간의 사정에 대한 배려가 없다. 본인이 맡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운동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여성인데 돌봄 도우미 중에서도 가장 활기 넘치는 사람이다. 집에 들이닥친 낯선 사람 때문에 아내는 어리둥절하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아내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 사모님 몸을 흔들 시간이에요. 저 따라서 이렇게 해 봐요.”

운동 선생님은 자기를 기억하건 말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내가 주어진 시간에 운동하는 게 목적이다. 운동 선생님은 간단한 인사도 생략하고 바로 운동을 시작한다. 들고 온 작은 스피커에서 신나는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그녀는 몸을 흔든다. 멈칫하던 아내도 이내 그녀를 따라 율동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을 잊어간다. 나도 멀찍이 떨어져서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친다.

아내는 정적인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어서 평소의 그녀라면 적응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아내는 운동 선생의 리드에 열심히 몸을 맡긴다. 아내는 원래 동적인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아직도 아내의 그런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가끔 아내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할 때가 있는데, 마치 내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게 가끔 서운하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느낌이다. 아내는 지쳤는지 운동 선생님이 돌아가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나는 다가가서 아내를 깨우지만, 아내는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는다. 낮잠을 자면 밤이 더 길어진다. 곤혹스러운 밤이 될 것이다. 아내가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흔들어 깨운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졸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처럼 아내는 앉아서도 눈을 감고 있다, 모로 털썩 쓰러진다. 나는 아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만, 때마다 침대로 고꾸라진다. 아내는 이미 잠든 것 같다.

선규, 아내와 제주도에 갔던 날,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눈보라가 몰아쳤던 날, 우리는 눈길을 뚫고 무작정 해안도로를 달렸다. 아내도 나도 선규에게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간혹 아내와 나는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바깥 풍경을 보며 억지로 감탄사를 뱉는 게 다였다.

“이런 날씨에도 제주도는 참 아름답다. 그렇지 여보?”

“응, 그럼, 오히려 이런 풍경이 엄청나네.”

아내가 내게 동의를 구하면 나는 과장해서 맞장구를 치곤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로에 눈이 쌓였다. 우리는 돌고 돌아 배에서 내렸던 제주항으로 해 질 무렵 돌아왔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어도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선규야, 너 일볼 거 있으면 보고 와.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일은 내일 잠깐이면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내와 나는 선규의 눈치를 봤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선규는 여러 번 우리에게서 돈을 가져갔는데 그 무렵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퇴직금과 교원 연금까지 해지하고 목돈을 가져간 뒤여서 우리도 뭘 더 해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평생 노후를 위해 노력해온 것이 모두 아들을 위해 쓰였다. 더는 뭘 해줄 게 없는 게 불안함을 더 키웠다. 선규는 점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며느리와 손자, 손녀는 미국으로 이미 건너간 지 몇 년 지난 후였다. 우리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 전이다. 선규의 눈치를 보느라 차마 미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조차 물을 수도 없었다.

“숙소를 좀 알아볼게요. 차에 좀 계세요.”

사위가 어둑어둑해졌고 눈발은 더 심해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선규가 우리를 차에 두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를 그냥 이곳에 버린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한참 만에 입을 뗐다.

“여보, 실은 당신한테 말 안 한 게 있어.”

“뭔데요?”

아내와 나는 차 안에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눈보라는 점점 더 거세졌다.

“두 달 즘 됐나, 선규가 우리 앞으로 보험을 들자 하더라고. 그래서 서류에 사인해줬어.”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무슨 보험이요?”

아내가 놀란 듯 되물었다.

“모르지, 나야.”

“…….”

우리는 대화가 끊겼다. 아내가 뭔가를 물어도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 걱정해서 한 거겠지, 뭐.”

 

 

내가 말했지만 아내는 대꾸가 없었다. 나는 추위를 잊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했다.

“우리 연금까지 갖다 쓴 게 마음 쓰였을 거야. 혹시 모르잖아. 우리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막막한 상황이 될 테니.”

아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금방 돌아올 것 같던 선규는 두 시간여 만에 돌아왔다. 차 트렁크에 뭔가를 실었다.

“장을 좀 보느라 늦었어요. 추웠죠?”

안 그래도 추운 차 안에 선규가 풍기는 한기가 더해졌다.

“같이 하지 그랬어.”

아내가 말했다. 아내와 나는 추위에 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선규야, 좀 많이 피곤하구나, 어서 가서 좀 쉬자.”

아내가 이어서 얘기했다. 우리는 눈길을 다시 한 시간여 달려 중산간의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바람은 멈추었고 눈발은 더욱 심해졌다. 막막하기만 했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꿈결, 그날 제주의 풍경 속에 있었는가 보다. 늦은 오후, 낮잠을 자는 아내 옆에서 나도 잠깐 졸았다. 정말 아주 잠깐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보니 사위는 어두웠고 아내는 옆에 없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여보, 여보.”

나는 고함치듯 아내를 부른다. 집안 어디에서도 대답이 없자 등줄기에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나는 차마 거실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아내를 부르며 어두운 방 안에 서 있었다. 한밤중 집을 나간 아내를 찾으러 다니던 몇 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내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은 제주도를 다녀오고부터였다. 가벼운 뇌졸중 증세가 찾아왔고 간단한 수술을 했다. 문제는 뇌졸중이 아니라 후유증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선망 증세 중 하나인 의심증이 심해졌다. 나아질 거로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아내는 내가 자기를 해할 거라고 여겼고 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었다. 아내는 신혼을 살고 있었다. 매일 밤이 악몽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몇 주면 사라진다는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옆자리가 허전해서 일어나보면 아내는 마당을 서성이고 있거나 대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서서히 진행되는 치매 증상도 있지만 그렇게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는 한동안 밤마다 옛날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나는 급기야 아내를 가두고 안방 문을 걸어 잠갔다.

아내가 잠이 들면 자물쇠를 채워놓는 통에 한동안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난감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흥분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는 천천히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아내가 그 앞에 앉아있다.

“여보, 거기서 뭐 해?”

아내는 뭔가를 먹고 있다. 먹을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 뭔가를 먹고 있다. 겁이 난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내는 우두둑우두둑 뭔가를 씹고 있다. 나는 아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누룽지를 열정적으로 씹고 있다. 나는 매몰차게 아내에게서 누룽지를 빼앗는다. 아내는 그러자 이번에는 총각무김치를 손으로 한 움큼 쥐더니 입으로 가져간다. 김치를 빼앗으려는 나와 아내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아내는 움켜쥔 총각무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아내는 식탐이 엄청 많아졌는데 매일 그런 것은 아니고, 어떤 날에만 그렇다. 그러니까 과거의 어떤 때에 정신이 머물게 되면 식탐이 생기는 모양인데 때마다 아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 없어서 문제가 생기곤 한다.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을 때 문제가 일어난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을 때도 있고 먹을 게 없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도 있다. 일생 너무 먹지 않아서 문제가 많았는데 아프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체중도 부쩍 늘어서 점점 내가 힘에 부친다.

생각해 보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우리는 저녁을 거른 채 꽤 오랜 시간 잤던 것이었다. 나는 문 앞에 배달된 도시락을 들고 온다. 두 곳의 단체에서 일주일에 세 번 도시락을 배달해준다. 우리 사정이 딱한 것을 알고 다음 날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음식을 배달해 주지만 늘어난 아내의 식성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매번 먹을 게 부족하다.

아내 옷은 김칫국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그런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식탁 위에 도시락을 펼쳐준다. 나는 아내가 자꾸 손으로 집어 먹으려는 것을 말리며 숟가락을 쥐여 주고, 천천히 먹으라고 다그친다. 오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이다. 아내는 내 몫까지 말끔하게 식사를 마친다. 내일은 주말이라 도시락배달이 오지 않는데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프다. 허기가 진다. 나는 누룽지를 한 움큼 입에 털어놓고 우두둑 씹는다. 순간 뭔가 잘못됐단 것을 알았다. 그땐 이미 늦은 뒤다. 후회는 항상 그렇게 될 줄 알고도 일을 저지를 때 큰 법이다. 나는 씹던 누룽지를 뱉어낸다. 제법 큰 어금니 조각이 씹던 누룽지와 섞여 있다. 이가 깨진 자리를 혀로 만져보니 아픈 것보다 허전함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아내를 씻기기 위해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한밤중 하루의 시작이 벌써 고되다. 아내는 목욕하는 것을 자기를 해하려는 것으로 안다. 자꾸 도망치려는 아내와 어떻게든 씻기려는 나와의 알력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금세 지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다.

 

4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돌쇠라는 진돗개였는데 아내는 털이 날리고 냄새나는 것을 싫어해서 돌쇠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쇠가 집을 나가버렸다. 마음이 헛헛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포기하고 잊었는데, 나중에야 아내가 돌쇠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싸웠던가, 며칠을 모른 척하고 지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목욕탕 안에서 아내는 내게 적대적이다. 상스러운 욕을 내게 뱉는다. 아내가 미워질 때면 사라진 돌쇠가 생각난다.

밤이 길다. 아내를 달래어 목욕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돌봄 서비스 중에는 몇 주에 한 번 목욕차가 와서 아내를 씻겨주는 일도 있었다. 씻지 않으려는 사람을 억지로 씻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목욕을 마칠 수 없었다. 목욕 차를 부르는 일이 점점 미안해졌고 이 일은 오롯이 내 일이 되었다. 아내에게서 점점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깔끔해서 탈이었던 지난날이 있었는가 싶었다. 기운이 빠졌는지 아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나는 자꾸 누우려는 아내를 일으켜 세워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뭐든지 아내가 호응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고 고된 일이 된다. 나는 완전히 지쳐버린다.

점점 아내의 무게를 이기기 버겁다. 졸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수면제 두 알을 먹인다. 내일은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점점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날이 늘어난다. 꺼림칙했던 마음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안방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대로 맨바닥에 눕는다. 기력이 없다. 한기가 등에 올라오지만 당장 꼼짝할 수가 없을 만큼 지쳤다. 생각해 보니 오후에 아내가 차려준 누룽지를 먹은 게 다였다. 나는 혀로 깨진 어금니가 있던 자리를 느껴본다. 느낌이 이상하고 허전한 마음이 든다. 졸음이 몰려온다. 이렇게 잠들어 깨어나지 못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점점 정신이 또렷해진다. 몸은 자길 원하고 정신은 깨어있길 원하는 것 같다.

제주 여행은 예정보다 길어졌다. 아니 예정이랄 게 없었으니 길어진 것은 아니다. 엄청난 폭설로 육지로 오가는 교통이 막혔다. 어쩔 수 없이 이틀을 더 있게 되었다.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게 우리 가족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규는 가끔 눈길을 헤치고 나갔다왔다. 아내와 나는 이상하게도 때마다 선규가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불안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몸이 젖어 돌아온 아들이 반가워서 우리는 어쩔 줄을 몰랐다. 마지막 날에도 선규는 꽤 오랜 시간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내일은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눈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갔네.”

선규는 많이 취해있었다.

“어딜 가면 뭐가 다르니.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낸 게 중요하지.”

아내가 선규를 다독였다.

“맞아, 우린 너무 좋으니 개의치말렴.”

내가 말을 덧붙였다. 선규가 갑자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오십이 다 된 아들이 엉엉 우는 것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아내와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같이 죽으려고 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이 없어요.”

선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정확히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다.”

나는 선규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내가 말하며 따라 울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 선규는 울다 지쳐 쓰러졌고 우리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밖에 나와 보니 사위가 환했다. 온통 눈 덮인 하얀 세상을 달빛이 더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깔이 너무 아름다워서 찔끔 눈물이 났다.

다음 날 오후, 우리는 제주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우리 셋은 별말이 없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배에선 혹시 선규가 어떻게 될까 봐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선규가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긴 시간 끝에 돌고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선규는 우리를 집 앞에 내려주고, 붙잡는 손길을 뿌리치고 바로 떠났다. 선규가 못내 아쉽고 걱정스러워서 차가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게 선규와의 마지막이었다.

얼마 후에 선규가 사라졌다는 것을 선희를 통해 듣게 되었다. 전화가 왔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해서 전화도 못 하고 떠난다고 전해달래. 나쁜 자식, 우리는 망했어. 아버지, 이제, 우리 어떡해요.”

수화기 너머 선희는 울부짖었다. 선규가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일이 시작됐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매일 빚쟁이들이 몰려들었다. 사채업자들의 행패가 시작됐다. 우리가 살던 집이 은행에 넘어갔고, 선희의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전 재산이 사라졌고 선희는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선규는 뒤로 연락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견뎌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우리는 작은 임대아파트로 옮겨오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가 아프다. 그 새 5년이, 아니 6년이 지났다. 아들은 미국에 있다고 들었고 딸은 근처에 살지만 본 지 오래전이다. 뭐가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 아내에게 나밖에 없으나 나한테도 나밖에 없다. 나는 노인이다. 똑똑했던 아내가 아프다. 내가 안쓰럽고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예전의 자신이 아닌 것으로 사는 것, 앞으로 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두렵다.

미명이 온다. 길고 길었던 겨울밤도 부쩍 짧아지고 있나 보다. 나는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서야 수면제 두 알을 먹는다.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내일은 다른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라본다. 아내가 잠깐이라도 현재로 돌아오면 좋겠다, 소망해 본다. 잠에 빠진다.

잠을 깨운 것은 선희다. 눈을 떠보니 선희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나는 잠에서 깨어서도 정신이 들지 않아 어리둥절하다. 선희는 울고 있다.

“아버지, 어떡해, 어떡해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안방을 바라본다. 아내는 아직도 자는 모양이다. 자물쇠가 그대로 걸려 있다.

“왜, 선희야, 무슨 일이야. 네 엄마는 자고 있는데?”

“오빠가 죽었대. 보험회사에서 좀 아까 연락 왔어요. 우리 앞으로 보험금을 조금 남겼다나 봐. 잘 사는 줄 알고 원망했는데, 미안해서 어떡해.”

“그게 무슨 말이야. 선규는 미국에 있잖아.”

“몰라, 나도. 제주에서 고깃배를 탔다나 봐요. 무슨 사고를 당한 모양인데…….”

나는 엎드려 우는 선희의 등을 가만히 쓴다. 목이 메고 숨을 쉬기 어려웠지만 나는 견딘다.

“선희야, 엄마, 들을라. 작게, 작게…… 울어라.”

나는 금세 쉰 목소리로 말한다. 선희가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킨다.

며칠 전부터 허공에 시선을 두고 거실을 서성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선규를 보고 있었던가. 아름다움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익숙하고 오랫동안 알아 왔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현재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날은 매일 우리에게 꿈처럼 다가올 것이다. 현실인지 잠속인지 구분도 할 수 없게 말이다. 그렇게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리 없이 눈이 쌓인 밤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눈 쌓이는 소리 들으며 우리는 함께 돌아갈 것이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현재일 것이다. 그날 제주에서 보았던 눈 세상을 더 밝고 환하게 비추던 달빛처럼 말이다. 오늘, 누구하고든 헤어지기 좋은 날이다.*

 


* <석별>(정미조 노래, 정진희 작곡, 이주엽 작사) 가사에서 따옴.

 

백가흠
소설가,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74년생
장편소설 『나프탈렌』 『향』 『마담뺑덕』,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四十四』 『같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