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600년 팽나무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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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600년 팽나무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제마을 팽나무     

 

시를 써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다가 문단에 이름을 올린 지 40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여러 곳의 직장을 다녔다. 은행원, 상호신용금고 사원, 고등학교와 대학의 시간강사, 문인단체 사무국장, 출판사 직원, 기업 사사 기획위원, 방송진행자, 대학의 전임교원, 문예진흥원 사무총장, 등으로 생계를 해결하다가 대학에서 교수로서 정년으로 퇴직하였다.

삶이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고 나를 말할 수 있는데 시를 잘쓰기는커녕 잘 살지도 못해 저지른 잘못이나 모자란 부분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얼굴은 화끈거린다. 특히 시나 소설을 쓰겠다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서의 모자람이 가슴 아프다. 나를 믿고 따른 학생들에게 서투른 교육방식으로 오도하거나 크게는 절망하게 한 일이 많았던 점들이 떠올라 회한이 된다. 그러면서 남은 내 생의 시간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시 몇 편은 꼭 써서 조금이라도 보답해야겠다며 산다.

그런 방편의 하나로 고향 군산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몇 편의 글을 썼다. 채만식 문학비나 아메리칸 타운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던 중 가장 벅차게 만난 현장이 하제마을 팽나무와 그 팽나무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과 땀을 흘리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나에게 그것은 이 고장의 역사와 상처를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는 최전선의 문학현장이다.

하제 팽나무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간 곳은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산 205번지였다. 야트막한 동산을 뒤로 하고 옆에는 미군기지 철조망을 끼고 600년 팽나무는 연리지가 된 것처럼 두 갈래로 나누어지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산림청 산하기관인 한국임업진흥원에 의해 발급된 결과서(2020.6.26)에 의하면 수령이 537년 50년으로 추정된다(『600년 팽나무를 통해본 하제마을 이야기』, 양광희, HAUM, 2021, 67쪽.). 당시는 초가을이어서 잎이 무성하였고 고 그 옆에 텐트를 치고 팽나무 지킴이 역할을 하는 최재석씨를 만나 팽나무지킴이 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팽나무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모임인 ‘하제팽나무지킴이모임’(이하 팽나무 모임)은 2019년 10월 팽나무 앞에서 집회를 열며 결성되었다.

그 이전까지 팽나무는 마을 속에 숨어(?)있었는데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미군기지 탄약고 안전거리 확보를 이유로 강제로 이주되고 집과 건물이 철거되면서 팽나무가 돌연히 출현된 형국이 됐다. 팽나무 모임의 사무국장인 구중서 씨를 만나며 그가 이 모임과 더불어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운동 사무국장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을에서 이주한 사람이 버리고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무신 한짝,하얀 고무신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 서 있는 문정현 신부     

 

1990년대 후반 미군기지에 국내 민항기가 활주로를 빌려쓰면서 낸 이용료를 미군이 터무니없이 올리면서 SOFA 협정 문제점이 불거지고, 이전부터 있었던 미군기지로 인한 문제에 대한 시민대책위원회가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으로 바뀌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몇 번의 팽나무 집회에 참여하면서 올해 여든 셋의 나이에도 빠짐없이 집회에 참여하고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하여 많은 활동가를 만난 일은 나에게 너무나도 벅차고 감격적인 일이었다. 이 모임에는 이곳에서 살다가 이주하거나 강제로 집이 수용되어 쫓겨난 마을 사람들을 비롯하여 미군기지가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물론 새만금 지역이 지닌 환경생태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팽나무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일대의 들판은 1920년대 초반 일제에 의해 진행된 간척사업으로 조성되었다. 간척사업 전에는 무의인도(無衣人島)라는 섬이 있는 바다였다. 간척사업 이후 이곳은 섬 안의 마을 이름인 상제 중제 하제를 비롯하여 인근의 새로 조성된 들판도 여러 이름의 마을로 구분되며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다. 이 지역은 동진강과 만경강에서 흘러온 강물이 서해 바다와 만나는 곳이어서 각종 어류가 풍부했고 조개 껍질에 아로새겨진 무늬가 수백 수천의 무늬를 이루고 있어 백합이라 부르는 조개를 비롯한 많은 수산물이 나와 풍성한 어시장을 이루어 한때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백합의 70%에 달한 때도 있었다고 전한다.

1987년 7월에 정부가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의 이름의 첫 자를 딴 금만경이란 말을 ‘만금’으로 뒤집고 새롭다는 뜻의 접두어 ‘새’자를 붙여 ‘새만금 간척 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급변하였다. 군산 부안 사이에 33.9km의 방조제 건설과 농업용지 개발을 내세웠고 이에 대한 반대운동 등 수많은 곡절 끝에 2006년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끝내면서 일단락되고 2010년에는 방조제 공사 완성과 도로개통을 하면서 이곳 하제마을을 비롯한 선연리 일대는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또 다른 역사와도 함께 있다. 이곳 군산비행장 지역은 일본 식민지 시절 가미카제 훈련을 했던 ‘다치아라이’ 비행학교가 있었고 해방 이후 ‘미군 군정기’에서부터 미군의 기지였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땅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후 기지는 계속 더 넓게 확장되었으며 2001년에는 ‘탄약고 안전거리법’에 의거 국방부는 기지 주변의 6개 마을(신하제, 신오산촌, 신난산, 하제, 중제, 난산)의 644세대에 달하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현재 두 가구만 남아 강제 이주에 따른 보상 처리 등에 반발하여 법적 투쟁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4년에 313만 평이던 미군기지 규모는 2019년기준으로 377만 평에 이르고 여기에 대체공여지 12만 7천 평이 추가되어 현재 그 면적이 389만 평에 이른다(자료집 「군산미군기지한눈에 알아보기」).

새만금 사업이 시작되기 전 인근에 있었던 섬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용지 등으로 바뀌었다. 하제 마을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지워지고 미군의 전투기와 탄약고로 바뀌어 미군 군사기지로 출현하고 있다. 그 모든 사실과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사람들의 삶이 어찌해야 평화롭게 영위될 수 있는지 성찰하고 생각해보라고 600년 팽나무는 출현한 것은 아닐까? 이 팽나무가 이곳에 최초로 출현한 것은 조선시대 초기였다고 추정된다. 팽나무가 지켜보았던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은 뼈아픈 역사이며 현장이다. ‘찾지 않는 한 현장은 없고 세우지 않는 한 역사는 없다’는 말을 해주시던 박태순 선생님이 그립다. 이 팽나무가 내 문학의 새로운 현장이 되도록 진력하자는 다짐을 해본다.

강형철
시인, 1955년생
시집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환생』, 평론집 『시인의 길 사람의 길』 『발효의 시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