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식당
도처(到處)가 인생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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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도처(到處)가 인생식당

바다낚시를 다니고, 잡히는 물고기에 대해 한두 번 글을 쓰다 보니, 제철 해산물 식당을 소개해 달라는 지인들이 꽤 있었다. 잡은 고기를 직접 회를 치고 요리해서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바닷가에 자주 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수집한 정보가 꽤 있어 성심껏 답해주곤 했다. 그런 소문이 났는지 한 일간지에서 ‘해산물 식당 기행’이란 타이틀로 달포에 한 번 정도 기행문을 기고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전남 영광의 굴비, 완도의 전복, 거제 외포리의 대구, 경주 양포의 가자미, 충남 보령의 꽃게, 영덕 강구항의 대게, 강원 고성의 문어 등을 맛보고 다니며 10여 차례 글을 썼다. 그 이후에도 제철 해산물을 본고장에 가서 소개하는 책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철 해산물을 찾아다녔다.

신문 연재 때야 일종의 취재이니 마감이 다가오면 혼자라도 가서 먹고 기사를 쓰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마음에 맞는 문우(文友)와 함께 가서 여행도 하면서 제철 해산물을 즐겼다. 2018년 여름에는 시인 황동규, 홍신선, 김명인, 김윤배, 평론가 이숭원 선생 등과 함께 민어의 본고장 임자도에 가서 8kg짜리 수놈 한 마리를 1박 2일 동안 해치우고 오기도 했다. 민어는 수놈이 대접을 받고, 그중에서도 7kg가 넘어야 제맛이 난다.

그 무렵 낚시를 좋아하는 문인 몇 명이 모여 모임을 결성하고 모임 이름을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全朝鮮文學家釣士同盟)’으로 정했다. 통일되면 낚시를 좋아하는 북한의 문인과도 함께 낚시를 즐기기 위해 이름 앞에 ‘전(全)’을 붙였다. 남북한 모든 문인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의미에서다. 모임의 회원은 ‘맹원’이라 부르고 회장은 ‘서기장’이라 부르기로 했다. 1920년대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KAPF)을 장난삼아 모방한 거다.

 

서귀포 정방폭포 앞에서. (왼쪽부터) 하응백, 이병철, 장석남, 조용호, 여영현, 백가흠    

 

인생고기, 2.4kg의 돌돔    

현재 멤버는 하응백과 소설가 조용호, 백가흠, 시인 장석남, 정동철, 여영현, 이병철 등 모두 7명이다. 서기장은 영광스럽게도 하응백이다. 이들은 수시로 백조기, 우럭, 주꾸미, 갑오징어 등을 잡으러 출조한다. 모두 다 참여할 때도 있고, 두세 명이 갈 때도 있다. 멀리 원정 갈 때는 낚시도 하고 일박하면서 잡은 고기로 요리도 해 먹는다. 함께 하면 문학과 낚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논다. 2019년 12월에는 통영으로 낚시 갔다. 그때 SNS에 이렇게 기록했다.

“주말,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 전 멤버가 통영으로 낚시 갔습니다. 거제 해금강과 매물도 앞바다에서 열기, 말쥐치, 붉은쏨뱅이를 잡아 회와 구이로 먹었습니다. 굴도 굽고 물메기탕으로 아침도 먹고 거나하게 놀다 왔지요.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습니다. 실컷 먹고도 남아 조금씩 나눠 가졌습니다.

누구는 운전하고, 누구는 회를 치고, 누구는 설거지하고, 누구는 동영상 기록을 하고, 누구는 먹고 자기만 했습니다. 통일되어 북한 문학가 낚시꾼이 합류하면 ‘전’조선이 되겠지요.”

멤버 중에 여성 맹원이 없다는 총각 맹원의 간곡한 민원에 따라 작년에는 여성 문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기로 하고 SNS를 통해 맹원 공개 모집을 하기도 했다.

“전조선 문학가조사 동맹, 동지를 찾습니다. 다음 요건을 갖춘 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댓글로 신청하면 됩니다. 바다낚시를 아주 좋아하면서, 시간 약속 어기지 않고, 24시간 정도는 안 자도 잘 견디며(늘 한밤중에 출발합니다), 운전도 잘하고, 멀미 안 하고, 회도 좀 뜰 줄 알면서, 바다에 호기심이 아주 많은 그런 분을 맹원 동지로 모십니다.”

이렇게 했더니, “뱃사람 모집 광고 같아요”, “UDT 대원 모집 요강 같음”이라는 댓글만 달리고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결국 인원 충원에는 실패했다. 맹원을 위로하고 돌돔 낚시도 하기 위해 2021년 5월 초 제주로 향했다. 먼저 막 맛이 들어가는 제주의 별미 자리돔을 풀코스로 먹기 위해 모슬포항 입구에 있는 돈지식당을 찾았다.

돈지식당은 계절별로 제주의 제철 해산물을 푸짐하게 내놓는다. 초여름에는 자리돔,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한치, 겨울철에는 방어나 부시리가 전문이다. 모두 인근 바다에서 잡아 신선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제주의 향토 미각을 살린다. 서귀포 바로 옆의 보목항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자리돔이 뼈가 가장 연해 자리돔 중에서도 으뜸이라 하지만, 모슬포나 서귀포나 큰 차이는 없다.

 

돈지식당의 자리돔 한상    

 

자리돔은 사실 보잘것없는 작은 생선이다. 하지만 요리만 잘하면 어떤 고급 어종보다 맛있다. 먼저 세로로 뼈째 썬 회가 나온다. 김에 회를 놓고 밥을 조금 넣고 된장을 발라 마늘대 장아찌와 같이 싸서 먹어야 제맛이다. 아주 고소하고 기름지다. 차례로 무침 회와 구이가 나온다. 회에 못지않다. 구이는 한 마리씩 들고 뜯어 먹어야 제맛이다. 가시가 좀 있더라도 잘 발라 먹으면 특유의 고소함이 입에 남는다. 다음에는 자리돔으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요리, 자리돔 물회다. 된장을 풀었기에 구수하고 뼈회는 목에 걸리지 않아 마실 수 있다. 물회는 훌훌, 술은 술술 넘어간다. 밥을 말아 먹어도 좋다. 역시 소문대로 오뉴월 물회다.

돈지식당은 자리돔을 다루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다. 일행은 대만족. 모두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취한다. 이런 족함이 따로 없다.

발길 닿는 곳이 인생식당이다. 그게 인생고기를 찾아다니는 떠돌이 낚시꾼의 별유천지(別有天地)다.

 

자리돔 구이    

자리돔 물회   

하응백
평론가, 소설가, 휴먼앤북스 대표, 1961년생
소설 『남중』, 저서 『개뿔 같은 내 인생』 『김남천 문학연구』 『문학으로 가는 길』 『낮은 목소리의 비평』 『황동규 깊이 읽기』 『친구야 이제 다리를 건너거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