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대중예술, 순수예술, 호랑이 해

  • 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대중예술, 순수예술, 호랑이 해

원로배우 오영수 씨가 2022년도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79년 골든글러브 역사상 한국 배우로는 처음 받은 상이니, 경인년 호랑이 해 정월에 찾아온 문화계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시상식은 미국 영화계의 불협화음 때문에 세계 각국의 실황 중계없이 치러졌지만,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에 의해서 1949년에 시작된 골든글러브상(Golden Globe Awards)은 아카데미상, 에미상(Emmy Awards)과 함께 미국 영상계의 권위 있는 3대 상의 하나다.

작년 2021년에는 오영수 씨가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오징어게임〉이 90여 개 나라에서 시청률 1위를 휩쓸면서, 한국 문화산업은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 재미동포가 제작, 감독한 영화 〈미나리〉는 골든글러브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획득했고,〈미나리〉에 조연으로 출연한 윤여정 씨는 한국 최초로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것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총 14개의 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전 해인 2020년에는 순수 한국어, 한국 제작품인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4개 부문에서 오스카(Oscar)상을 획득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특히 작품상은 92년 아카데미상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 영화에 주어진 상이라는 놀라운 업적이었다. 음악 부문에서는 BTS의 최신 노래가 미국 대중음악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빌보드(Billboard)에서 10주 연속 인기 1위를 차지하고, 미국음악상(American Music Awards)에서는 아시아 음악그룹으로 최초로 다관왕을 수상하는 큰 영예를 누렸다.

실로 작년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K-pop으로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한국의 대중예술이,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음식까지, 전반적인 한국의 생활양식(life style)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인들이나 관련 학자들은 그동안 한류의 물결에 환호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한때의 유행으로 인기 끌다가 얼마 못 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해 온 것이 사실이다. 국제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데뷔한 경험이 일천한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요 불안감이었지만, 이제는 일단 그런 고비는 넘겼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옥스퍼드영어사전(OED, Oxford English Dictionary)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시쳇말로 영어사전의 끝판왕이다. 언어는 의사전달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이니, 총 2만 페이지가 넘는 지면에 60만 개 이상의 단어를 수록하고, 단어의 의미와 용도뿐만 아니라 어원까지 소상히 설명하고 있는 옥스퍼드사전은 그야말로 영어문화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이 옥스퍼드사전에 작년 9월, 26개의 한국단어가 영어화 되어 새로 수록되고, 동시에 기존에 있던 11개 단어들도 해석이 확대, 개정되었다. 새로 등재된 단어 중에는 반찬(banchan), 치맥(chimaek), 먹방(mukbang), 오빠(oppa), 삼겹살(samgyeopsal), 언니(unni) 등 연세 든 한국인들에게도 낯선 단어들도 있는데, 이런 단어들이 전 세계 영어권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언니”에 대한 설명은, “손위 자매에 대한 호칭”뿐만 아니라 “친척이 아닌 나이가 위인 여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애칭 또는 존칭”이라고 오늘날 사용되는 새로운 맥락도 첨부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는 외국의 한 나라 단어가 일시에 26개나 옥스퍼드사전에 게재된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신기해하고 있다. 영어문화의 끝판왕이 한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20세기 전반을 대부분 일제 식민지로 지나고, 2차대전 종전 후 찾아온 해방 후에도 나라가 양분되어, 어렵사리 남쪽에만 민주정부가 수립된 반쪽짜리 국가가 한국이다. 그나마도 정부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김일성 정권의 남침으로 3년 동안 온 국토가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한국이다. 이런 반쪽나라가 2015년에는 세계 11,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다. 단군 이래 처음이요 20세기 세계역사상 첫 기록이다. 20세기 중반에 오그번(William F. Ogburn)이라는 학자가 문화 지체론(cultural lag)이라는 이론을 제안했다. 간단히 말하면, 기술진척이나 그에 따른 사회의 물적 여건의 변동이나 발전에 비해서 문화는 느리게 변동하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한동안 문화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와 반대 이론도 있고 실제로 반대인 사례도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경제성장이 선행했고, 그 뒤 문화예술의 세계무대 진출이 뒤따랐으니 타당한 이론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안심하거나 방만하기 이르다. 지금도 이제 시작이라는 각성과 각오를 하고 살아야 한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경제열강 중 초짜요 신출내기에 불과하고, 분단국가로서 강대국의 대결구도에 따라 언제 격랑 속의 쪽배가 될지 모를 신세다. 경제 규모는 크다 해도 경제의 질을 나타내는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에서 36~37위에 불과하다. 지금 화폐를 기준으로 적어도 일본의 개인소득인 40,000불 정도는 되어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하는 정신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매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국제경쟁이 치열한 세계화 시대에 적어도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제는 순수예술이 비상해야 할 차례다. 순수, 고급예술(high arts)이 오늘날 대중예술의 위상만큼 성장하여, 순수와 대중예술 두 바퀴가 나란히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견인할 때, 한국은 경제대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앞선 문화국가가 될 것이다.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약관 22세의 나이로 세계 3대 피아노 경연대회인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자,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연주회 관객이 별안간 늘고 대학 음악과, 음악학원 지원생이 갑자기 늘어나는 즐거운 소동이 일어났다. 물론 조성진의 쾌거는 선배들이 축적한 업적 위에서 일어났다. 쇼팽 콩쿠르만 해도 임동민, 임동혁, 손열음이 결선에 올라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었고, 작년에 열린 18회 경연대회에는 피아니스트 이혁이 또 결선에 진출했다. 성악 부문에서는 조수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홍혜경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들이고, 금년 2월에는 테너 최원휘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데뷔하여 음악인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의 음악인들이 세계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면서 한국 음악계의 장래를 밝게 비추고 있다. 남은 과제는 지금까지의 결실은 더 키우고 또 부족한 부분은 새로 시작하고 완성시키는 일이다.

재산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기는 쉬워도, 사람을 인격이나 덕성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자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니 계량화하기 쉽고, 후자는 볼 수도 잡을 수도 없으니 자로 재고 무게로 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의 예술도 국민총생산(GDP)처럼 계산할 수는 없으니, 불확실하지만 대표성이 있을 만한 대상들을 뽑아 가늠할 따름이다. 세계 음악계에는 각국의 유망한 인재들이라면 모두 가고 싶어하는 저명한 음악원(music conservatory, school of music)들이 있다. 15개 내외라고 하는데 영국, 불란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에 한두 곳 있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에 있다. 아시아에 있는 학교는 한 곳도 없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페라단 20여 개도 모두 아시아 밖에 있다. 세계 20대 교향악단의 명단 속에는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한 Festival Orchestra 하나만 아시아 교향악단으로 등재되어 있다. 세계 명 교향악단 지휘자 50명 중에 아시아인으로는 세이지 오자와와 인도 출신 주빈 메타(Zubin Meta) 두 명만 열거되어 있을 뿐이다. 1950년부터 지금까지 그래미상(Grammy Award for Best Chamber Music Performance)을 수상한 실내악단 중에 아시아 악단이라곤 하나도 없고, 다만 도쿄 현악 사중주단(Tokyo String Quartet)이 한 번 후보로 등재되었을 뿐이다. 현존하는 30대 피아니스트라는 목록이 있는데, 중국의 랑랑과 유자 왕은 앞줄에 있는 반면에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조성진, 손열음, 임동혁은 100명 목록에 올라 있다. 시설 면에서 보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당 20개 중에는 도쿄 오페라 홀(Tokyo Opera City Concert Hall), 베이징의 국립극장(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이 있고, 추가로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 하우스(Guangzhou Opera House), 하얼빈 오페라 하우스(Harbin Opera House)도 주목받는 새로운 연주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목록에서 한국의 음악당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문학부문에는 한국에는 없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일본에는 2명, 중국에는 1명(1988년에 불란서로 국적 이적하고, 2000년에 수상한 가오싱젠은 제외)이 있다. 대중예술이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는 데 비하면, 한국의 순수예술 또는 고급예술(high arts)은 아직 세계 수준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대중예술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내시장 그리고 나아가 국제시장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한류지원협력과, 대중문화산업과, 문화산업정책과 등 관련 부서들이 있지만, 한국의 대중예술이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연예사업체들이 스스로 경쟁적으로 능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 훈련하고 이들의 관리하에 국내외 무대에 진출시킨 결과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예술과 달리 순수예술은 시장 경쟁력을 통하여 왕성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장경제 하에서 순수예술은 고사당할 위험이 있다. 시장경제 하에서 순수예술은 절대적으로 우월한 경제력을 가진 대중예술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순수예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과 귀족, 교회 등 지배계층의 후원(patronage)하에 성장해 왔다. 그러나 오랜 역사의 전통적 후원제도는 산업혁명 후 왕과 귀족의 지배체제가 붕괴되면서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종언을 고하고, 현대사회에서는 정부를 비롯하여 기업, 개인들이 제공하는 공적지원 제도가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현대 시장제도에서 대중예술은 왕성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순수 또는 고급예술은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시장경제에서 예술이 시장경쟁력을 못 가진다는 생산성 격차(productivity gap)이론을 소개하고 정부지원의 불가피성을 계량적 자료로 제시한 선구적 학자들은 바우몰과 보웬(Baumol & Bowen)이다. 예를 들면, 1947~1964 기간 중 일반 물가는 약 23% 상승한 데 대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회당 제작비는 120%, 주요 교향악단의 회당 평균 비용은 80%가량 증가했다. 나아가 저자들은 미국과 영국의 극장, 발레, 교향악단 등의 경영자료를 분석하여, 지난 100여 년 동안 공연예술 비용의 연간 상승률이 일반 물가 상승률의 2배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비용 상승 격차의 주된 원인은 생산비를 절감하는 주요 방법인, 기계화, 기술혁신, 숙련도 증가, 경형혁신, 그리고 규모의 경제성을 예술활동에 적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를 연주하는 시간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발레리나들의 실력이 아무리 늘어도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들이 아무리 현대 정보통신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옷이나 자동차, 컴퓨터처럼 매년 더 값싸게 더 좋은 작품을 빨리 만들 수는 없다. 대중예술도 공연이나 작곡, 시나리오 창작 등에 동일한 생산성 격차문제에 직면하였으나, 다행히 20세기의 거대한 오락, 여가산업(entertainment & leisure industries)에 합류함으로써 경제적 난관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대중예술은 대체로 설비, 시설, 기술 등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자본집약적(capital intensive)이고, 반대로 노동집약적인 예술은 고급, 순수예술에 많이 해당된다는 근본적인 차이도 양자의 경제적 처지를 갈라놓았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영화이고, 시, 소설, 회화 등 순수 예술은 예술가 자신의 역량과 노동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대중예술은 19세기 후반 이래 등장한 대중사회 혹은 시민사회의 다수를 고객으로 확보한 반면에, 순수 또는 고급예술은 고학력자 중심의 소수 중상층 계층들 위주로 소비층이 제한됨으로써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공적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순수예술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보통 기대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선진국 관객 자료를 보면 실제로 양자 사이에 그렇게 큰 정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예술진흥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자료를 보면, 지난 20, 30년 동안 예술관객의 수는 오히려 계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레나 오페라 같은 순수예술의 공연 입장료가 대중음악회 입장료보다 일반적으로 더 비싸다. 이런 점에서 수입이 올라가면 순수예술 참여의 기회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예술적 취향이 변하지 않는 한, 증가한 수입은 다른 대체활동-여행, 등산, 스포츠 등에 더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예술분야 종사자들의 55.1%(2020년)만이 전업 예술인이고, 예술활동에서 얻는 평균 연수입은 많을 때(2017년)가 12,800,000원으로 국민평균 소득 3만 불의 1/3 수준이다. 이 수준도 건축, 만화와 방송연예 예술인들이 포함된 수입이다. 순수예술이 자력으로 생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시장실패하는 모든 업종이나 활동분야를 다 공적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견이 분분하나, 순수예술에 대한 공적지원의 타당성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순수예술은 일반 소비재가 아니고 경제학 용어로 가치재(merit goods)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치재가 교육이다. 분명히 자신에게 도움 되고 필요한데도 애들은 보통 공부하기 싫어한다. 즉 교육은 소비자(학생)가 본인이 필요한 양보다 적게 소비(적게 공부)하는 재화다. 그러니 본인을 위해 부모와 교사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억지로 공부(강제 소비)를 시킨다. 과학, 수학공부가 지적 능력(지성)을 개발하는 교육이라면, 예술 교육은 인간의 감정적 능력(감성)을 배양하는 교육이다. 대중예술이 즉각적이고 기초 단계의 감정에 부응하는 예술이라면, 순수 또는 고급예술은 절제되고 높은 단계의 감정과 교감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순수예술을 자연적이 아닌 학습된 취향(aquired taste)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공적부조의 중요한 목적도 청소년들에게 순수 예술에 대한 접근 기회와 취향을 교육을 통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순수, 고급예술이 직접 책을 사거나 공연장, 전시장에 가지 않는 일반 사람들을 포함해서 전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필수적인 혜택 즉 긍정적인 간접, 외부효과(externalities)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한 경쟁이 늘어나면서, 근래에는 경제, 정치, 교육 등 다방면에 걸친 순수예술의 효과를 계량적으로 측정하고 확인한 연구결과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 연구들은 뉴욕, 파리, 비엔나 등 대도시들의 예술자원이 도시의 명성, 관광객 유치, 기업과 우수인력 유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부다비(Abu Dhabi)는 루브르박물관 분점을 유치하여 일시에 관광도시와 중동의 문화도시로 명성을 얻었고, 그 이전에 스페인의 쇠락하던 공업도시 빌바오(Bilbao)는 구겐하임미술관 분점을 유치하여 단숨에 국제적인 인지도가 올라간 사례들이다. 또 예술교육이 학생들의 향학열과 학업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들도 국내외에서 발표되었다. 근자에는 국내외의 여러 병원에서 음악치료, 문학치료를 실시하고 있을 만큼 건강, 보건 증진 효과도 입증되었다. 그 외에도 순수예술이 국가의 시민의식과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많이 발표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나라의 힘은 국민의 행복과 비례한다. 올해 경인년 호랑이해는 한국이 범처럼 다시 도약하여 국민의 행복이 배가되는 해가 되기 바란다. 경제적 번영을 지속하는 동시에, 세계를 놀라게 한 대중예술처럼 순수예술도 괄목할 성취를 이루어,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쌍두마차가 나라의 연성국력(soft power)을 견인하여 한국을 세계의 매력 있는 문화국가로 성장시키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정홍익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1945년생
저서 『문화정책』 『문화행정론』 『조직이론』 『스포츠사회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