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초대석
해와 달처럼 변함없는, 지식인의 삶과 문학

-조남현 평론가와의 대화

  • 대산초대석
  • 2022년 봄호 (통권 83호)
해와 달처럼 변함없는, 지식인의 삶과 문학

-조남현 평론가와의 대화

 

이경재
평론가,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6년생
저서 『현장에서 바라본 문학의 의미』 『한국프로문학 연구』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 등

조남현
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48년생
저서 『6·25대하소설 연구』 『소설의 본질』 『한국현대소설사 1,2,3』 『소설신론』 『한국문학잡지사상사』 등

한국현대소설 연구를 본격적인 학문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동시대 한국문학의 흐름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탐구해온 조남현 선생을, 2022년 1월 20일 오후 3시 광화문 교보빌딩 회의실에서 만났다. 연구실에서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온 조남현 선생이 학계와 비평계에 남긴 업적은 실로 뚜렷하다. 최초의 본격적인 소설원론을 집필하여 한국현대소설 연구와 교육의 토대를 놓은 문학이론가, 20세기 한국소설사 전반을 엄정한 시각으로 조망하여 사적 맥락과 흐름을 정리한 문학사가, 반세기 이상 문학의 현장에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특징과 위의를 밝혀 온 평론가 등의 모습은 누구나 동의하는 조남현 선생의 초상일 것이다. 아마도 선생의 그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문학사의 많은 부분은 미지의 공백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종교적인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조남현 선생의 성실함에 경의를 표하면서, 선생의 문학적 입장에 대해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경재(이하 이) 선생님의 문학연구와 비평은 문학이론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작품이나 작가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연구자 개인의 이념을 증명하는 도구로 작품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 내재된 의미를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어 오셨는데요. 이를 위해 중립적이고 실증적인 성향을 무엇보다 중요시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태도를 갖게 된 삶의 이력이나 지적인 배경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남현 평론가(왼쪽)와 이경재 평론가     

 

조남현(이하 조) 실증주의 문제로 좁혀 말하는 것이 좋겠네요. 요즈음에 수십 년 전의 신문이나 잡지를 뒤져 새로운 문학적 사실을 제공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업적을 보면 실증주의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 학번까지의 한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판단에 닿게 됩니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수집은 문학연구의 본질적 행위로 인식되든가 아니면 최소한의 기본 절차로 여겨질 수 있겠지요. 실증주의자들마저도 실증주의는 출발점이요 분석은 과정이요 해석은 도달점이라고 인식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세 가지 모멘트가 한꺼번에 겹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 자신이 『한국문학잡지사상사』나 일련의 개화기 작가론을 쓰면서 체험한 바이지만, 실증주의에 충실하다보면 새로운 해석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결과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겉으로 보아서는 요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 무너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구자에 따라 실증주의의 내용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결실을 맺게 하는 토양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문화연구, 대중문화연구, 미디어연구, 역사연구, 논픽션 연구 등과 같이 문학연구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데는 실증주의의 태도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추측도 해봅니다. 저는 퇴직 후 논문이나 책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러 학교 도서관에 여러 차례 드나들곤 했는데, 과거에는 왜 그리 연구실에 있는 자료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하는 자책감에 젖기도 했습니다.

 이  문학연구에만 치중한 연구자도 선생님처럼 중량감 있는 다수의 연구서를 내기 어렵고, 비평에만 치중한 비평가라도 선생님처럼 예리한 문제의식이 가득한 여러 권의 평론집을 내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전에도 비평과 연구 모두에서 전문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최근에는 더욱더 찾아보기 어려운데요. 선생님이 보여주신 비평과 연구 양면에서의 놀라운 성과는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와 비평을 겸업하시게 된 이유와 연구와 비평의 겸업이 가져올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조  과찬의 말씀이네요. 어떻게 하면 연구도 잘하고 비평도 잘할까 하는 고민은 현직에 있을 때 계속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 이경재 교수가 제가 대략 50대까지 했던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한 대목을 들려주고 싶네요. 현대문학의 경우, 크리티시즘과 스터디를 동의어로 보는 것이라든가 비평은 결국 강단비평이 주도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비평과 연구의 협업을 인정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비평을 하다 보면 동시대의 작품들을 읽고 논할 기회가 많이 생겨 아무래도 작품보는 안목이 커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분명히 단점도 있습니다. 비평활동에 시간과 기력을 많이 빼앗기다 보면 장기적인 작업이 필요한 학술서를 내기가 어렵기는 합니다. 또 그리고 실제 글을 쓸 때에도 비평이 드러내기 쉬운 주관지향성과 논문이 취하기 쉬운 객관지향성 사이에서 방황하다 보면 죽도 밥도 아닌 결과가 나오기 쉽습니다.

 

 

 이  선생님은 강의실에서나 여러 글을 통해서 문학의 고유성을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철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주변 학문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후에, 기껏해야 문학작품을 주변 학문의 개념을 증명해주는 사례 정도로 활용하는 태도를 극히 경계한 것인데요. 이것은 다른 학문의 방법이나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학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태도와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사회과학이나 철학 등의 주변 학문과 구분되는 문학의 고유성과 효용성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  첫 번째 질문이 문학연구의 첫 단계인 실증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한 것이라면 지금 질문은 문학연구의 마지막 단계인 해석주의의 성과와 문제점을 돌아보게 만드는군요. 한국현대문학의 학문으로서의 정초기에 해당하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공부한 사람들은 인접 학문이나 서양의 문학이론을 방법론이니 이론이니 하는 이름으로 한국작품의 상석에다 놓고 보고자 한 면이 있습니다. 졸저 『소설원론』은 이러한 연구자세의 예시가 되는 것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소설원론』이나 『소설신론』이 한국현대소설에 대한 주변학문이나 이론의 지도성을 인정한 것이라면, 2018년에 낸 졸저 『소설의 본질』은 소설본질론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한국작가들과 이론가들을 동서양 이론가들과 대등한 수준에 놓고 보려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소설연구자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난 후에 제 개인의 학문의 역사는 서양이론이나 인접학문에의 의존도를 대폭 줄여나간 과정으로 자기류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문학의 고유성 즉 소설의 고유성이나 효용성을 지키려면 소설은 종합양식이라는 명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명제는 한국소설에서 더 많은 1급 소설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겨줍니다.

 이   1973년에 평론가로 등단하셨으니까, 어느새 평론가로 활동해 오신 지 반세기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비평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문단의 첨예한 논쟁과는 거리를 두고 실제 비평에만 충실한 것으로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이르는 선생님의 비평활동을 조명해보면, 표나게 내세우지 않았을 뿐이지 늘 당대의 뜨거웠던 의제들에 성실하게 맞서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1970년대의 대중문학론, 1980년대의 노동문학론, 1990년대의 문학형질변화론, 2000년대의 문학위기론 등은 당대의 문학과 치열하게 부딪혀온 비평적 고민의 흔적입니다. 이러한 문단의 과제들에 맞서 선생님은 늘 문학의 본질과 원칙을 기준으로 대응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문학이 갖추어야 할 특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조  비평을 포함하여 문학은 시대나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비평가 개인의 입장과 관념에 따라 현실참여 방법은 다르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저는 비평을 창작의 앞에 내세우는 원론비평이나 계도비평보다는 비평을 창작의 뒤에 두는 현장비평과 작품평에서 비평의 역할과 기능을 더 많이 확인하려고 했던 편입니다. 이러다 보니 그때그때의 문학운동이나 문학유파와는 거리가 생기게 되어 간혹 비평계에서는 소극적인 강단비평가로 비쳤을지 모릅니다.

 이   저는 선생님이 집필하신 수많은 책을 읽으며, 한국문학사의 기본 얼개나마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귀한 저서들을 놓고 가치의 경중을 가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1890년부터 1959년까지의 한국현대소설을 사적 맥락에서 정리한 『한국현대소설사 1,2,3』(문학과지성사, 2012·2016)은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학문적 공력이 모인 바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저서는 후학들을 말 그대로 압도합니다. 압도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첫 번째는 말 그대로 한국현대소설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방대함일 것입니다. 그 시대에 발표된 수천 편의 작품을 거의 다 분석하고 해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요. 깊이와 더불어 엄청난 넓이를 지닌 이 저서야말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문학연구에 대한 입장이 압축되어 있는 실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비평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작가나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가능한 많은 작품이나 작가를 논의하는 것이 지니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저는 이런 태도야말로 민주주의적인 감성과 윤리가 낳은 문학적 태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조  역사서술을 통해 그 대상의 본질이랄까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 어떤 존재를 대상으로 하든 역사서술은 대상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서술이 아무리 과거 사실과 사관의 상호작용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역사서술하든지 부인할 수 없는 기본사실이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설사의 대상인 과거 사실은 그때그때 소문난 작품이라든가 베스트셀러로만 채워져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때의 소문난 작품이나 베스트셀러가 1급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면 더 문제될 것은 없겠지요. 당시에 많이 읽혔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든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들이 문학사의 과거사실의 주요 구성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작품을 가려내기 위해 한 편 한 편의 작품을 정독하고 객관평가하고 가능하면 깊이있게 분석하는 작업은 이상론이자 당위론입니다. 1급의 작가를 대상으로 한 작가론은 소설사 서술에 꼭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작업은 몇 년으로도 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집중적으로 소설사를 쓰는 데만 몇 년이 걸렸던 만큼 1급 작가보다는 1급 작품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다고 해야겠죠. 이런 태도가 한 시대 한 시대에 열심히 좋은 작품을 써낸 작가들에 대한 응분의 대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최근에는 무려 563페이지에 이르는 『6·25대하소설 연구』(서정시학, 2021)를 내셨습니다. 6·25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대하소설들인 홍성원의 『남과 북』, 이병주의 『지리산』, 김원일의 『불의 제전』,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연구한 역저입니다. 머리말에도 쓰신 것처럼, 6·25는 단순한 과거지사만도 아니요 남의 일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바로 ‘지금-이곳’의 절실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석사학위논문 「1920년대 한국경향소설 연구」와 박사학위논문 「한국지식인소설 연구」를 쓰신 이래 항상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가나 작품들에 관심을 가져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것인지요? 나아가 문학과 현실, 혹은 문학과 정치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고견도 듣고 싶습니다.

 조  한국전쟁을 대상으로 한 대하소설을 연구서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했습니다만 이제 겨우 단행본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기록이기는 하지만 누가 보든지 예술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이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관념은 이 책을 준비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이데올로기소설의 문제작이면서도 『불의 제전』과 『태백산맥』은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고 있거니와, 『지리산』은 종합문학론의 한 전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과 현실, 혹은 문학과 정치의 이상적인 관계는 뭐라고 할까요. 하드 타임즈라고 표현되는 오늘의 현실의 문제를 심리소설의 측면에서든 사건소설의 관점에서든 다루는 작품들이 많이 보일 법한데 과거보다는 문제작의 대열에 오른 것들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작가들 사이에서 작품의 기본 소재인 현실이라든가 시대의 내포가 놀랄 만큼 세분되어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선배작가들보다 솜씨는 좋으나 흔히 말하는 문학정신은 뒤떨어지는 작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2022년 현재 한국문학과 국문학연구가 모두 만만치 않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되는 많은 작품들이 대중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가고,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대학의 제도적 환경도 점점 열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상황의 반전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평생 동안 누구보다 진지하고 치열하게 평론과 연구에 임해 오신 선생님께서는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  한국문단이나 문학에 대한 무관심 풍조가 심화하고 있고 대학에서의 문학연구자들의 입지가 나날이 좁아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게 된 원인으로 일반인들의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 세상의 빠른 속도의 변화, 일반문화의 분화현상과 전문성 강화, 대중문화의 발달과 영향력 강화, 각종 미디어의 발달, 문학기능의 저하 등을 들 수 있긴 합니다. 문학연구자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실용성이 높은 인접학문과의 적극적인 연계를 시도하는 식으로 자기확대와 자기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만 그리 전망이 밝지는 못합니다.

이경재
평론가,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6년생
저서 『현장에서 바라본 문학의 의미』 『한국프로문학 연구』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