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눈물을 머금은 미소

- 라오서 장편소설 『이혼』

  • 명작순례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눈물을 머금은 미소

- 라오서 장편소설 『이혼』

 

출간도 알리고 기념도 할 겸 해서 몇몇 지인들에게 번역본을 돌렸다. 그런데 표지를 보자마자 내보인 반응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대뜸 ‘하필이면 제목이……’,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라는 둥 ‘이혼’이라는 제목에 다소 민망해하는 눈치였다. ‘지금 상상하고 계시는 그런 소설 아닙니다’라며 멋쩍게 대꾸하기는 했지만 이 제목에 이미 익숙해진 필자로서는 생각지 못한 반응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라오서가 바로 이런 반응을 의도하고 제목을 ‘이혼’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 이 소설이 판매고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앞으로는 증정하더라도 받는 사람의 부부 사이가 원만한지를 미리 알아보고 해야지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라오서 소설의 주요한 특징은 유머이며 『이혼』은 그 유머가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의 최고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낙타샹즈』보다 낫다고 공언할 정도로 작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을 전후한 베이징. 북벌 전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장제스(蔣介石)가 난징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베이징은 치열한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다소 거리를 두게 되고, 이후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곳은 의외로 평온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당시 중국이 가진 문제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비록 북벌이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군벌 세력은 신분만 바뀐 채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은 날로 심화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시민들의 의식은 베이징을 두텁게 둘러싸고 있는 성벽마냥 과거에 갇혀 있었다. 근현대 중국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세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송가황조>를 보면, 열차로 이동 중이던 순원(孫文)이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있다. 그를 환영하기 위해 역에 모여있던 군중들이 ‘순원 만세’를 외치자 들것에 실려 가던 순원은 ‘만세는 무슨 만세. 저들은 아직도 황제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몰라!’라고 개탄한다. 만세는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표현인데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수천 년간 중국 사회를 지배한 봉건제가 종식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섰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여전히 봉건의 굴레에 얽매여 있었다. 이는 단지 영화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베이징 시민들 또한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하게 현실에 안주하며 타성에 젖은 채 무기력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소설은 중매와 이혼 퇴치를 사명으로 여긴 나머지 공무원으로서의 임무는 내팽겨 둔 채 중매에만 열심인 장다거 부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와 더불어 첩과 태극권만 아는 우 선생과 떡판처럼 생긴 우 부인, 아내에 쥐여사는 추 선생과 가방끈이 길고 기가 센 추 부인, 산아 제한과는 거리가 먼 순 선생, 야비한 사기꾼 샤오자오 등은 당시 관료 사회의 무능과 부패를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무사안일’, ‘복지부동’ 같은 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유일하게 이 문제들을 꿰뚫고 있는 라오리는 비록 이들을 혐오하는 깨어있는 지식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촌에서 자란 아내를 부끄러워하며 부질없는 낭만을 추구할 뿐 구시대를 과감하게 탈피하지 못한다. 이에 더하여 날라리 대학생이자 장다거의 아들인 톈전은 얼토당토않게 공산당으로 몰려 정체도 모르는 기관에 잡혀가고, 철부지 여고생인 딸 슈전은 샤오자오의 달콤한 꾀임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다. 마 선생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어린 아내를 버리고 가출했다가 돌아온 공산주의자다.

 

이러한 인물들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여러 사건과 예기치 않은 반전은 자못 읽는 재미가 있고, 과연 작가의 유머가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라오서의 유머는 단지 웃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찍이 영국에서 선진적인 근대 사회를 경험한 그는 중국에서도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중국의 미래는 암울했고 그 실현은 불가능해 보였다. 라오서는 그것을 웃음으로 적당히 가리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사회의 모순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의 유머를 ‘눈물을 머금은 미소’라고 규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혼』은 종종 우리 문학 가운데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비교되기도 한다. 직접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 『이혼』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2022년 발간되었다.

김의진
번역가, 가톨릭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1963년생
역서 『이혼』 『남자의 반은 여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