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여름의 조각, 쓰고 받는 마음

- 시집 『한여름 손잡기』

  • 창작후기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여름의 조각, 쓰고 받는 마음

- 시집 『한여름 손잡기』

 

2013년 여름, 광화문에서 버스를 탔다. 그때 나는 아직 청소년이었고, 가뿐히 흘러넘치는 슬픔과 후회를 갈무리하지 못했고, 사랑보다 미움의 손을 들어주는 때가 잦았다. 버스는 수련소로 향했다. 캠프는 이박 삼일짜리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성실한 ‘백일장 키드’는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캠프에서 이미 익숙한 얼굴인 서로가 서로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어정쩡하게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내 일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고, 먹고, 보고, 듣고, 쓰는 것이 거의 다였다. 그게 지금의 생활과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렇지도 않지만.

 

나는 2013년 여름의 ‘대산청소년문학상’ 문예캠프를 이렇게 기억한다.

 

정갈한 식사와 무거운 식기, 종종걸음으로 식판을 들고 쏟지 않기 위해 집중하며 걸어갔던 감각, 너무 조용해서 더 어둡게 느껴졌던 밤의 산, 그리고 아침의 창백한 푸름, 작은 소리들, 영화 <월플라워>(2012)와 쏟아지던 눈물, ‘벽장’에 대한 글과 시상식 전날 밤 나누었던 대화.

 

나는 글을 쓰고 싶어 하거나 글을 쓰고 있는 청소년들을 볼 때면, 늘 캠프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결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끔 누군가에게 상상에 도움이 될 만한 ‘미래’가 되고 싶기도 하다.
사실, 그 캠프를 가기 위해 내가 썼던 글과 결국 상을 받게 했던 글은 소설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나”로서 전기와 후기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그 말은 곧, 내가 시를 쓰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고백과 진배없기도 하다. 또, 얼마 전 『한여름 손잡기』 북토크에서는 시를 쓰는 일을 늘 사랑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런 말을 할 때면 언제나 부끄럽고, 낯선 마음이 든다. 이 부끄럽고 ‘이상한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나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에 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을 어렵게 쓰고, 시가 쉽게 쓰이는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시집 『한여름 손잡기』에 수록된 시는 대부분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발생했고, 일부는 2021년에 쓰였다. 2019년부터 2021년의 시작까지 두 해 동안, 폭발적으로 아주 많은 텍스트를 만들었다. 시와 소설, 에세이, 일기와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하기에 나는 언제나 반복하고 되풀이하고 재생하고 복기하는 글쓰기를 해 왔다. 같은 말을 다른 장면에서 보고, 같은 생각을 다른 장소에서 하는 식으로. 변하지 않는 바람과 조금씩 단단해지는 마음에 대해 썼다. 그 근간에 있었던 건 사랑이었다. 아마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사랑받기 위해 글을 썼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사랑하기 위해 글을 썼고, 언젠가는 글을 쓰기 위해 사랑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확장되었고, 외연은 사진을 찍듯 조금씩 이동하여 펼쳐졌다. 요즘은 조금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시를 쓴다.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믿는 것을 잊기 않기 위해서.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닮은 점이 많다. 내가 어렵게 쓰는 소설도, 나로부터 쉽게 쓰이는 시도, 나의 출생과 계절감, 사랑과 믿음, 타이핑, 흘러가는 시간을 체감하는 것, 그것의 빠르고 느림, 혹은 안정감도. 나는 나의 현재이지만, 역시 종종 누군가의 미래가 되고 싶은 마음과 시절의 과거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쓰게 한다.
쓰게 한다는 것을, 나는 쓰면서 알게 되었다.

 

※ 필자의 시집 『한여름 손잡기』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봄날의책에서 2022년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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