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의 순간들
조세희의 『하얀 저고리』 유감

  • 우리 문학의 순간들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조세희의 『하얀 저고리』 유감

- 이경호 씨, 나, 소설 계약한 거 못 하겠어.

1990년대 말에 『머나먼 쏭바강』의 작가 박영한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던져버린 폭탄선언이었다. 박영한과의 신작 장편소설 계약은 세계사 전임 주간이었던 최승호가 재직하던 시기에 마련된 일이었다. 박영한의 어조는 거침이 없었다. 평소 그의 언행을 판단해보면 거절의 배후에 곤혹스런 심정이 깔려있는 상황을 어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착잡하게도 다른 이유 쪽으로 쏠리는 추측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이 1990년대의 출판계 풍토가 만들어낸 부작용이라는 사실을.

88올림픽을 전후해서 대한민국 문화계 전반에는 출판물을 주축으로 홍보와 광고 열풍이 불어 닥쳤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마저도 사보를 제작하고 신문과 잡지의 지면은 크게 확장되었는데 늘어난 지면을 채우는 광고도 증가했다. 홍보와 광고의 열풍은 문학출판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니 이른바 “전업 작가”를 양산해낸 결과가 그것이었다. 이전에는 글쓰기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극소수의 인기 필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인들은 별도의 직업을 마련한 상태로 글을 쓰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출판물이 대폭 확장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과감하게 직업을 포기하고 글쓰기에만 전념하는 현상이 마련된 것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예지도 많이 창간되었으나 무엇보다도 작가들을 전업의 모험 속으로 뛰어들도록 부추긴 결정적인 계기는 기업체 사보와 크게 늘어난 출판사들이었다. 문예지 원고료의 몇 배인 기업체 사보에 에세이나 콩트를 쓰고 문학출판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신생출판사에 ‘전작 장편소설’을 계약하고 선금을 챙기면 생계비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작 장편소설이란 다른 지면에 연재하거나 나누어 발표하지 않고 한꺼번에 완성한 작품을 해당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관행이었는데 1990년대부터 크게 활성화된 장편소설 출간 방식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세계사 주간으로 부임하고 계약서 장부를 뒤적여보니 이삼백만 원의 계약금이 지불된 작가들의 명단이 열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박영한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계약이 파기될 경우에 이미 지급된 계약금이 회수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었다. 계약서가 작성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 대부분의 계약은 묵시적인 신용이나 관행으로 처리될 때가 많았는데 사실상 계약의 주도권을 장악한 쪽은 출판사가 아니라 지명도를 확보한 작가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하여 박영한과의 계약은 계약금만 날리고 흐지부지한 상태로 종결되고 말았다. 내가 출판사 사장의 지시와 집착으로 몰입해야만 했던 대상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대상이 바로 조세희였다.

조세희의 경우도 전임 주간인 최승호가 장편소설 계약 건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조세희의 신작 장편소설이라면 그야말로 문단 안팎에서 초미의 관심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대박 상품이었다. 그는 아직 본격적인 장편소설을 선보인 적이 없었으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연작소설만으로 최고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최대의 베스트셀러를 생산해낸 화제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그 무렵을 전후하여 유력한 일간지에서 문학계 전문가들에게 설문을 돌린 결과 해방 이후에 발표된 소설들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것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기도 했다. 만약에 세계사에서 조세희의 신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을 펴내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문학출판의 명예와 경제적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포획하는 성과를 누리는 셈이었다. 그 장편소설의 제목은 『하얀 저고리』였다.

『하얀 저고리』는 1980년대 후반기에 전반부 내용이 종합월간지에 연재되다가 중단된 작품이었다. 세계사가 펴내는 계간문예지 《작가세계》에 원고를 다듬어서 새로 연재하고 단행본을 펴내기로 계약을 진행하면서 조세희는 세계사 사장으로부터 꽤나 많은 액수의 계약금과 생활 보조금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두어 차례에 걸쳐서 상당한 분량의 수정된 원고가 분재되기까지 했었다. 문제는 그 후로 연재가 멈추어지고 작품은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점이었다. 그리고 최승호 주간이 세계사를 떠나고 황현산 주간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조세희의 『하얀 저고리』는 진행이 되지 않았으며 마침내 1998년에 새로운 주간으로 내가 부임하면서 떠맡은 최고의 지상과제가 바로 그 작품을 완성시켜 출간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해마다 설날과 추석을 맞이할 즈음이 되면 세계사 사장과 함께 조세희의 집이나 작업실을 방문하는 일이 의례적인 절차가 되어버렸다. 명절 인사는 점점 기약하기 어려워지는 장편소설 집필을 환기해주고 압박하는 실낱같은 방편이었다. 조세희는 그런 우리의 인사치레를 크게 부담스러워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의 건강 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벽과 책상에 빼곡하니 들어찬 창작 메모지들을 목도하면서 그가 『하얀 저고리』에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지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바로 ‘문체의 작가’라는 점이었다. 일찍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평가에서 무엇보다도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산업사회의 불평등이나 정치적 억압이라는 주제의식과 서사를 감당해내는 정련된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어둡고 무거운 시대의 현실 속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현실을 벼리고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잉태한 언어의 결정체들이 빚어낸 성과였다. 그런 언어의 결정체를 조세희는 『하얀 저고리』에서도 빚어내고 싶어 했다. 그 열망 때문에 그의 밤과 잠은 불편했으며 훼손된 건강은 수전증마저 초래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밤을 밝히며 고통스럽게 작성한 문장들을 다음 날 오전이 되면 마치 페넬로페가 힘겹게 지어낸 옷감을 풀어내 버리듯이 모두 폐기처분해 버렸다. 언어에 대한 결벽증이 초래한 결과였다.

2000년대 중반이었던가, 마침내 조세희는 두툼한 묶음의 출력원고를 세계사로 보내주었다. 예정된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넘어서는 원고가 넘겨진 셈이었다. 나는 주체하기 어려운 설렘에 휘둘리며 원고를 읽어나갔으나 그 내용은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세희가 이런 정도로 작품을 완성하지는 않을 듯한 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만은 없어서 나는 세계사 사장과 협의한 후에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연락을 넣고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여기까지가 『하얀 저고리』의 운명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곧 조세희의 신작 장편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성급한 기사가 작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거기까지였다. 조세희는 작품의 마무리보다 작품에 대한 결벽증과의 싸움을 끝까지 밀고나가려는 듯했다. 원고는 다시 미루어지고 그의 심신은 더욱 힘겨운 처지로 내몰린 듯했다. 그로부터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오래 거주했던 강동구의 주공아파트가 재개발 예정지로 확정되면서 그는 집을 처분하고 많은 금액을 세계사 사장에게 송금해 버렸다. 신작 장편소설 계약을 취소하는 책임 있는 조치를 마련한 셈이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서 『하얀 저고리』의 주인공 나이는 이미 100세를 넘어서고 있었다. 작품의 현실 속에서도 생존하기 어려워진 주인공은 결국 계약 말소된 장편소설과 함께 자연사하는 운명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경호
평론가, 1955년생
저서 『문학과 현실의 원근법』 『문학의 현기증』 『상처학교의 시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