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의 스승
서신

  • 내 글쓰기의 스승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서신

이원 선생님께

 

2008년,

스물여섯의 저는 서신의 첫 문장에는 날씨의 안부를 묻고 실패에 틀어박힌 무기력, 복잡하고 헐레벌떡-덤벙대는 감각 같은 것에 대해 토로하는 학생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시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는 다 알고 있으니 계속 쓰라고 응원해주셨는데요. 2012년 《문학사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2019년 김수영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다만 응원해주셨는데요.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던 서신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나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2017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때였지요.

이름이요. 이름……
그러니까, ‘권민자’에서 ‘권박’이 된 계기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인해서였는데요. 그 무렵 여성의 이름에 주목해 공부하고 있던 터라, 여러 번 이름을 바꾸어야겠다고 했지만 바꾸지 못했던 것에 결단을 내릴 때라고, 굳히게 된 거죠. 바꾸어야겠다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렇게 「마구마구 피뢰침」을 쓰기 시작했지요.

 

이원 선생님의 서신  

 

2022년,

저는 시인 ‘권박’으로 활동하면서, 여전히 ‘권민자’로 생활하면서, 진짜-진짜 저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은, 저에게 있어서 ‘첫사랑 같은’ 것이기도 해요. 열세 살의 소년이 열세 살의 소녀에게 해준 진지했던 조언이 떠오를 때마다 웃게 되거든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고민하였던 이름에 대한 문제에 처음으로 받은 이해였는걸요. 그런데 첫사랑도 아니고, ‘첫사랑 같은’은 뭐냐, 물으실 것 같은데……

대답 아닌 대답을 위해, 다른 이야기로, NHK에서 방영 되었던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2022)에 대해 말해볼까 해요. 극 중 남자주인공의 나이가 저와 같은 데다 성격과 상황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덜컥 공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아아……! 날개빛 양배추!!), 그보다는 저의 어떤 부분에 대해 이해받게 된 것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까지 이해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드라마 방영 당시 매 회차마다 드라마 사이트에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 성향을 가지고 있는 스태프,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스태프, NPO 법인의 학교에서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 성향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교류회를 개최하고 있는 스태프들의 글을 게재했는데요. 고증하기 어려운 것을 고증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더불어 고증을 기반으로 하여 연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감각, 연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의 표현 등등 독자들의 공감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대본을 쓰고 촬영한 과정을 기록한 제작일지를 읽으면서, 결혼, 가족, 육아, 결론적으로는 사랑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답은 없다.

없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이다.

 

“시를 계속 쓸 것. 절망할 것. 더 좋은 언어를 찾아야겠다는 욕망을 가질 것. 그렇게 한 생을 지날 것.”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던 서신에서 마음으로 밑줄 치고 읽고 또 읽는 부분인데요.

선생님, 저는 최근에는 사랑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계기를 발견했거든요. ‘권박’이라는 필명의 의미처럼 없는 이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권박’이라는 필명을 짓게 된 것처럼 사랑을 제대로 마주 볼 자신은 생겼습니다. 그렇게 없는 답을 계속 쓰겠습니다. 절망하고, 욕망하고, 그렇게, 살겠습니다.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이번 서신에는 말미에 날씨의 건강, 시의 방향을 전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권박 드림

권박
시인, 1983년생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 『아름답습니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