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③여리고 단단한

  • 글밭단상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③여리고 단단한

겨울 동안 잠잠하던 화분이 날이 따듯해지니 연둣빛 잎을 밀어 올린다. 베란다에 두었던 마오리 소포라에 새잎이 났다. 하나둘씩 서서히 나지 않고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한꺼번에 우르르 돋았다. 나는 신이 나서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아기를 불렀다. 새잎이 올라왔다고,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아기는 내 말을 듣고 우와~ 하며 감탄했다. 나의 호들갑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호응해주는 것 같았다. 너무 예쁘지? 묻는 말에 응! 하고 대답하고는 새로 돋아난 나뭇잎처럼 생긴 손으로 작은 잎을 톡톡 쳐보고는 씩- 웃었다. 모든 새로운 잎은 아기의 손톱과 닮았다. 처음엔 한없이 연하고 부드럽다가 햇빛과 물, 바람을 머금으며 시간을 보내면 색도 짙어지고 질감도 단단해진다.

내가 사람의 손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 것은 아기가 태어난 이후부터다. 살면서 숱하게 보고, 만지고, 깎았던 손톱이었음에도 이토록 세세하게 자주 들여다보고 신경 쓰며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손톱은 어느 날 보면 자라있는 것, 생각날 때 한 번씩 깎아주면 되는 것이었는데. 아기의 손톱을 관리하는 것이 내 역할 중 하나가 되고 보니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건 가까이서 보고 겪는 일에 대해 더 오래, 더 많이 사유하게 되는 이치와 같았다.

아기의 손톱은 너무 작고 얇아서 손톱 가위로 잘라줘야 했는데 다른 가족들은 자신 없어 했다. 시어머니는 눈이 침침하여 손톱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너무 여린 것 앞에서, 내가 혹시 그것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양육자인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으나, 누구 하나는 해야 했기 때문에 눈을 깜빡이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기의 손톱을 잘라주었다.

손톱은 이삼일에 한 번은 관리를 해줘야 했다. 자르고 뒤돌아서면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콩나물처럼 다시 자라나 있었다. 아기의 손을 손싸개로 감싸고 있을 때는 잘 몰랐으나 손싸개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그 작은 손톱이 아기의 얼굴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보면 코 옆에, 눈가에, 볼에, 손톱으로 긁어 파인 상처가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해주어도 그랬다. 연약한 것처럼 보이는데도 단단한 상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무언가를 쉽게 약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자랄 미래의 시간까지 아기의 여린 손톱 안에 담겨 있어, 그 힘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울창한 나무를 품고 있는 새싹처럼. 커다란 통유리창을 담은 유리 조각처럼.

사람의 손톱은 태아가 엄마 배 속에 있은 지 20주가 될 무렵부터 생긴다고 한다. 그 시기의 태아는 눈을 감아도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고도 한다.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할 수 있게 될 때, 손톱도 함께 생기는 이유는 무얼까. 그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만 같고, 그것은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밝고 어두운 것을 붙잡을 수 있는 손을 만들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밝은 것뿐만 아니라 어두운 것도 잘 잡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손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삶을 지탱하는 힘을 기르는 위해. 종이의 두께를 가진 유리 같던 손톱은 단단하고 유연하게 변하면서 손끝을 지탱해준다.

나는 아기의 자람을 키나 몸무게가 아닌, 손톱의 변화로 체감하고 있다. 손톱 가위로 오려줘야 했던 아기의 손톱은 점점 두껍고 단단해지고 크기도 커져서 손톱깎이로도 탁탁 소리를 내며 깎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기가 많이 자랐음을 깨닫게 된다. 그 소리는 바람에 크게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침에 창문을 뚫고 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재채기 같기도 하다.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단단한 내 손톱도 손끝으로 한번 쓸어본다. 깎을 때가 되었다.

안미옥
시인, 1984년생
시집 『온』 『힌트 없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