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⑥달밤이라 그래

  • 기획특집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⑥달밤이라 그래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분은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자리끼로 목을 축였지만 갈증이 가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가슴 한가운데에 돌덩이를 얹어둔 양 꽉 막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다시 눕고 싶지 않아 분은 문 쪽을 향해 엉금엉금 기었다. 문을 열자 바람 한 줄기가 재빨리 스몄다. 밤공기에 조금 숨을 돌리는 사이 호흡은 이내 소리 없는 한숨으로 바뀌어 캄캄한 하늘로 흩어져 나갔다.

또 무슨 걱정이 들어 이렇게 잠에 들지 못하는 걸까. 지난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하루도 편히 잠에 들어본 적도, 개운한 아침을 맞이한 적도 없는 분이건만 오늘은 새삼스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분은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멀리 있을 동이를 떠올렸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몇 십 리의 밤길을 지나 장으로 향할 터였다. 동이를 생각하면 분은 늘 가슴이 아팠다. 달도 채우지 못하고 나온 아이, 아껴줄 친척도 없는 아이, 술장사하는 어미 밑에서 큰 아이, 허구한 날 의부에게 얻어터져 몸 성할 날 없던 아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장판을 떠돌며 살게 된 아이, 그리고 생부조차 모르는 아이.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께에 돌덩이 하나가 더 올라앉는 기분이 들어 분은 다시금 크게 숨을 들이켰다. 동이의 생부라면 자신도 고작 몇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 둘만이 함께였던 건 단 한 번이었다. 그 한 번의 만남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은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어쩌면 꿈과 같은 밤이었으나 동이가 있어 그 밤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어쩐지 참게 되었던 숨을 한 번에 뱉어내며 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이는 이 밤을 잘 건너고 있을까. 산짐승을 만나진 않을까. 봇짐을 고쳐 메며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던 동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러면 그 사람도 어딘가에서 이 밤을 걷고 있을까. 여전히 장돌뱅이로 살아가려나. 나 같은 건 잊고 오순도순 가정을 이루었을 수도 있겠지. 그이의 얼굴은 동이의 얼굴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겹겹이 쌓인 시간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점차 희미해져만 갔다. 제 아비를 닮았을 텐데. 동이의 얼굴을 배경 삼아 그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십 년 전의 일이었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얼굴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음에도 생생한 것이 있었다. 분의 눈물을 훔쳐내 주던 손의 온기만큼은 어제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분은 손으로 제 얼굴을 훔쳐보았다. 자신의 손은 그의 것만큼 따뜻하지 않았고, 얼굴 또한 그때의 저만큼 보드랍지 않았다. 고난의 세월을 증명하듯 푸석한 피부결을 연거푸 쓸어내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분의 등 뒤에서 뒤척임이 들려왔다.

 

“왜 자지 않구 그리 있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청은 눈도 뜨지 않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청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밤새 답을 찾지 못한 터였다. 동이 걱정이라 할까. 오늘 같은 밤이면 문득 그 사람이 생각이 나서랄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에 구름이 걷히고 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환한 빛이 열린 문틈으로 쏟아져 길을 내었다. 발치에 맺힌 빛을 툭툭 건드리던 분이 둥글게 뜬 달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달밤이라 그래.”

 

*

청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구구, 죽겠다. 앓는 소리도 함께였다. 장사에 시달려 고된 하루를 보냈건만 저것은 잠도 없는 모양이지. 몸을 일으키자 분은 암말 않고 자리끼를 밀어주었다. 남은 물을 몽땅 마시고 청은 분을 바라보았다. 감추고 싶었을 텐데, 눈치 없는 달은 분의 얼굴을 훤히 비추어 반짝이는 눈가까지 모두 보여주었다. 못 본 척 눈을 돌리고 청은 몸을 기울여 문 너머로 휘영청 뜬 달을 건너보았다. 달밤이라 그렇다더니. 정말로 그 말이 나올 법한 달이었다.

 

“동이 걱정에 그러니?”

 

청의 물음에 분은 으응, 하고 답했지만 그 말끝이 영 시원치 않았다. 아무래도 그 사람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이런 달밤이면 분은 꼭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꼬박 날을 새곤 했으니까. 무슨 일이 있냐고 하면 몇 번을 물어본 뒤에야 “그 양반 생각이 나서 그래”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분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을 터였다. 오늘 밤도 자기는 글렀네. 청은 속으로 생각하며 못 이기는 척 물었다.

 

“오늘 같은 밤이지 않았든?”

 

청을 돌아보며 분은 슬며시 웃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청은 자신보다 분을 더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전망나니 남편에게 간신히 벗어나 다시 제천에 왔을 때 비슷한 처지의 청을 만나 장사를 시작한 지도 벌써 십 년에 가까웠다. 그 세월 동안 언젠가 또 이런 밤이 올 때면 분은 청에게 두런두런 그날의 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었다. 바로 지금처럼.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는 없었지.”

 

그럼 그렇지. 분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청이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이었다. 싫증을 낼 법했으나 달빛에 비친 분이 어느새 눈물을 거두고 생기 가득한 얼굴이 된 터라 청은 잠자코 몸을 바로 세웠다. 봉평에서 제일가는 일색이었다지. 장사에 찌든 평소 때는 그것을 실감할 수 없었으나 이럴 때면 청은 그 말을 십분 이해했다. 그 밤을 이야기하는 분의 얼굴은 십 수 년 전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맑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달빛에 손을 뻗으며 말하는 분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힘찼다.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음에도 쥐어보려는 손짓이 꼭 지나가버린 세월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는 것 같아 마음이 찌르르했다. 꼭 오늘 같은 밤이었다, 청아. 몇 번 손을 쥐락펴락한 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세월은 잡지 못했을지언정 오래전 기억의 시작은 여러 번 쥐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청이 무어라 대꾸하지 않아도 분은 달을 벗 삼아 술술 이야기를 풀어낼 터였다.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이지만 청 역시도 옛이야기를 하듯 조곤조곤한 분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

꼭 한 번의 첫 일이었는데 어찌 이리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까. 동이 때문일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 그 밤은 봉평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어. 가세가 기울어 다 뿔뿔이 흩어져야 할 판이었지. 부모님께 나는 짐이었을 거야. 나이가 꽉 찼는데도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까.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을 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나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도 한참 그런 이야기로 씨름을 했다. 술집에 팔아버린다는 등 아버지가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도망 나온 길이었다. 도망을 나왔다고는 하지만 오갈 데가 없었지. 게다가 달이 어찌나 훤하던지. 어딜 가든 날 따라오는 탓에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근처에 있는 물방앗간에나 숨어 한바탕 울고 갈 참이었지. 그날따라 달은 왜 이리 밝고, 메밀꽃은 이리 활짝 핀 것인지. 내 속도 모르고, 내 처지도 모르는 것들이 원망스러워 엉엉 울던 밤이었다. 그런데 청아, 그 사람이 그곳에 온 거야. 달에, 메밀꽃에 온통 낮 같던 하얀 밤이었는데 그나마 있던 어둑한 구석에 그 사람이 찾아들어온 거야. 참 신기하지. 그래서일까. 그렇게 밝았는데도 그 사람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 시간이 흐른 탓이기도 하겠지. 이곳에 누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그 사람도 잠깐 주춤대더니 묻더구나. 누가 오기로 하였소? 물방앗간에서 밀회를 나누기라도 약속한 듯이 묻기에 은근 부아가 치밀기도 했었다.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흔드는데 그길로 곧장 돌아 나갈 줄 알았던 사람이 몇 번을 망설이더니 근처에 앉더라. 바투 앉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로. 그 모양새가 웃겨 눈물이 잠깐 줄기도 했다. 왜 가지 않냐 묻지 않고, 흐르는 것도 닦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가까이 와서는 눈물을 훔쳐 주었어. 그때만 해도 내 피부가 참 고왔는데. 장돌뱅이 거친 손이 왠지 모르게 내 살결보다 더 부드럽게 느껴졌던 밤이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속의 이야기를 다 하게 되었던 거야.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쩌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으응? 눈물을 닦아준 다음에는 어찌 되었느냐고? 청이 넌 왜 만날 그 부분에서만 묻니? 응……?

 

  

*

그래서 우리 동이가 이리 나오게 된 것이지. 이야기를 마칠 무렵이면 늘 달이 저물곤 했었는데, 오늘따라 달마저도 희미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달도 내 이야기를 경청한 모양이지. 분이 키득대며 문을 좀 더 활짝 열었다. 문득 청은 묻고 싶었다. 그래서 꼭 한 번의 그 밤이 네게는 사랑이었던 거냐고. 그렇게 물으면 분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분은 그 밤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답할 것이다. 그 밤에 걸맞은 말은 위로였다고 하지 않을까. 분이 사랑을 말할 수 있다면 그 밤이 아니라 동이를 키우며 지내왔던 시간들이 적당하리라고 청은 생각했다. 이렇게 달이 환하게 뜬 밤이면, 그리고 지금과 같은 메밀꽃 필 무렵이면 그 밤을 되새기며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를 떠올리는 시간이야말로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청은 굳이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이런 밤이 올 때마다 알 수 있으므로. 우리 동이는 잘 가고 있겠지. 돌아오면 봉평으로 같이 가자고 하던데. 우리 같이 가자, 청아. 분의 말에 청은 그래, 그러자 하고 답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지. 분이 중얼거리며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그 참에 바람이 잠시 불었고 메밀꽃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역시 그때가 되었네. 어디선가 이르게 하나 둘 봉우리를 틔우고 있을 하얀 꽃을 생각하며 분은 눈을 감았다. 아득해지는 너머로 나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작중 분의 이름은 영화 <메밀꽃 필 무렵>(1967)에서 원작의 성 처녀 역할이었던 ‘분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 분의 말 중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는 없었지.”,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은 원작에서의 허 생원의 말을 그대로 가져왔다.

소유정
평론가, 1992년생
저서 『세 개의 바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