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②바람과 비의 까닭

  • 기획특집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②바람과 비의 까닭

“저 사람 저거, 온종일 저러고 있는 거 맞지?”

조 선달은 장막 사이를 째고 들어온 해 질 녘 파리한 햇살에 눈살을 찡그리며 동이의 팔뚝을 꽉 그러쥐었다. 땅바닥에 처박힐 듯 고개를 짓수그린 허 생원의 꼴이 이해가 될 리 없었지만, 그보다 먼저는 걱정이었다. 장돌뱅이 스무 해의 거지반만 같이 있었다 해도 아내와 살붙여 산 날의 몇 십 배는 좋이 될 거란 생각이 조 선달의 뇌리를 스쳤다. 그 생각 끝에 따스한 기억 한 줌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농탕치듯 휘저었다. 이제는 볼일 없는 사내들 아무에게나 붙어버린 생원이니 선달이니 하는 호칭의 저 안쪽 언저리를 아스라이 건드리는 추억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추억자리가 충주집이다. 주막의 여인도 그랬지만, 팔자에 없는 장꾼 이력이 이제 좀 붙나 싶던 아직 젊은 두 남자의 이마 새파랗고 귀밑의 머리칼 칠흑같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있었나 의심도 들지만, 없는 것 지어내는 재주 따윈 젬병이니 있었음이 분명하다.

“후우, 그게 언제냐……”

조 선달의 잦아드는 한숨을 동이가 그윽이 내려다봤다. 허공에서 마주한 훤칠한 청년의 얼굴에다 어줍은 미소 한 조각을 남겨놓고 조 선달은 얼른 다시 허 생원의 수그린 정수리로 고개를 틀었다. 할 말이 있는 듯 동이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고 조 선달의 손등을 힘껏 싸쥐고는 장 안쪽으로 끌었다. 희뜩 올려다본 조 선달의 눈에 동이의 튼실한 뒷목이 잡혔는데, 방금 스친 자신들의 새파란 시절이 괜스레 다시 스쳤다. 장 안쪽으로 들어선 둘은 다황이며 남포기름 남포심지에 부시랑 부시쌈지에 황개비니 부등가리며 화승(火繩)까지 화기 일습이 더북하게 쌓인 좌판 뒤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쪼그려 앉았다. 그러나 눈길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허 생원 쪽이었다.

“아까 말이래요.”

입이 먼저 떼어진 건 동이였다.

“아까? 언제?”

기다렸다는 듯 조 선달이 되물었다.

“국수 비벼먹고 나온 뒤요.”

“저 인간은 젓가락만 깨작거렸지.”

조 선달의 말에 동이의 얇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제법 긴 한숨이 새나왔다. 이 친구는 또 왜 이래, 하며 조 선달이 눈살을 가늘게 만들어 동이의 송충이 눈썹 사이 골짜기를 쏘았다.

“국숫집 나와서 뒷간엘 다녀오다가 약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드래요.”

“누가? 허 생원이?”

조 선달은 틈도 없이 이었다.

“뭣이? 약방엘 가더라고?”

달달 볶듯하는 조 선달을 멀뚱히 지켜보던 동이가 휘파람이라도 불 듯 입을 오므렸다가 폈다. 뭔가 찝찝할 때 하는 동이의 여느 버릇이었지만, 조 선달에게 그건 동이가 아니라 허 생원에게 해당되는 일이었다. 장에 따라다닌 지 몇 달 됐다고 그새 배웠나, 싶었다.

“네, 생원님이 약방엘요.”

동이의 말에 조 선달의 고개가 가로로 흔들렸다. 이해불능보다 걱정이 앞섰던 이유가 있었구나, 조 선달은 엉덩이를 들썩이는 걸로 동이를 재촉했다. 어디가 아프길래, 라는 물음이 조 선달의 두 눈에 넘칠 듯 담겼다.

“어디가 편찮은가, 해서 저도 모르게 발길이 약방 가까이로 갔는데, 근데 글쎄, 애먼 얘기를 듣고 말았네요.”

“애멀다고? 뭔 얘기길래 애가 멀어?”

속이 끓어 참기가 힘들다는 듯 조 선달의 엉덩이가 연신 들썩였다. 동이도 제 나름으론 힘든지 어금니를 꽉 깨물어 양쪽 볼 아래턱을 불켰다. 얘기를 떼었으니 마무리를 져야 하는데 그게 마음 같지가 않았다. 괜히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해야지 싶기도 했다.

“그게 글쎄…….”

일단 그렇게 운을 떼고는 멀찍이 떨어진 허 생원을 힐끔 보곤 조 선달의 얼굴로 건너왔다.

“의원한테 묻더만요.”

“뭘? 뭘 물어?”

“왼손잽이한테서 왼손잽이가 나오는 거냐…… 그러냐, 이렇게요.”

“왼손……?”

조 선달은 동이의 말을 되씹으며 자신의 왼손을 눈앞에다 펼쳤다. ‘왼손이 왜?’하다가 불쑥 눈길을 들었는데, 동이의 두 눈이 성큼 들어선다. 돌아가는 터수가 묘했다. 절로 그의 눈길이 청년의 몸통 왼편으로 떨어졌다. 그리곤 물었다.

“그래서, 그 돌팔이가 뭐라 했는가?”

“그 의원이 돌팔이요?”

“팔꿈치 세 번 부러져보지 않으면 명색만 의원일 뿐 다 돌팔이지.”

뭔 소리인가 두 눈을 휘둥거리는 동이에게 조 선달은 명심보감1)을 들먹여주다 말고 그 얘긴 나중에 해줄 테니 어서 의원이 뭐라고 했는지부터 대답하라고 다그쳤다.

“돌팔이란 건 괜히 하는 소리지요? 등창 났을 때 낫게 해준 것도 약방 의원님이고, 토사곽란 죽을 고비에서 건져준 것도 그분인데……”

“그래, 알았으니 그 양반이 뭐라 했는지 일러보기나 하라고!”

“그러니까 의원님 말씀이.”

동이는 목을 한 번 큼큼거리고는 제법 의원 흉내를 냈다.

“자던 소가 웃을 일이지, 왼손잽이가 왼손잽이 부모한테서만 난다면 세상에 왼손잽이가 귀할 리가 있는가, 그랬드래요. 말씀인즉, 오른손을 잘 쓰는 거나 왼손을 잘 쓰는 건, 귀가 크거나 작거나, 눈이 크거나 작거나 하는 거랑은 다르다고요.”

“그래? 그 돌팔이가 그랬다고? 음……”

생각 같아서는 말을 좀 더 잇고 싶었으나 심정 저 안쪽 아스라한 곳으로 싸하게 한줄기 바람이 불어가는 걸 느낀 조 선달은 그만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리곤 두 손바닥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한 번 쓱 훑었다. 마음에 묻어둔 얘기를 꺼내기 전 그가 하는 버릇 같은 거였다. 새까맣기는 해도 아직은 주름 없이 팽팽한 그의 낯이 질 녘의 햇살에 빗겨 번득거리는 걸 동이는 쪼그려 앉은 채로 올려다보았다.

“……?”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동이도 침만 꾹 삼켰다. 조 선달은 허 생원에게로 갈 것이고, 가서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는 이유를 물을 것이다. 죽마고우 이상으로 사이가 돈독한 건 두 사람을 따라 다니던 달간에 자연 알게 되었지만, 동이를 짜릿하게 만든 건 그 돈독이 생겨난 까닭이었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걸 정말 들었다고 할 수 있는지엔 자신이 없었다.


“몰래 먹다가 탈이라도 난겨? 설사 백 번 한 얼굴하고 있는 꼴이 뭐래?”

슬그머니 허 생원 곁으로 다가앉으며 조 선달이 핀잔 섞인 하루안부를 물었다. 이미 예상은 한 거지만 허 생원은 미동도 없다. 조 선달은 허 생원의 드팀전에 언제부턴가 놓이기 시작한 돌돌 말린 박다위2)를 괜히 왼손으로 툭 쳐보고는 눈치를 살폈다. 눈치를 봐서 어떤 얘기부터 꺼낼지 고를 요량이었다. 그리곤 오늘 하루를 빠르게 되돌려 봤는데,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아무리 여름해가 일찍 일어서도 그렇지 대화장에 들어선 시각부터가 그랬다. 바지런한 손님들이 한 순배 휘돌고 간 뒤에도 코빼기조차 안 보이더니 꽤 게으른 손님들마저 희뜩거리며 장거리를 떠난 뒤에야 슬슬 나타난 것인데, 나타나면 뭐하나, 전 펼 생각은 않고 피륙 보따리들 뒤켠에 똥마려운 개꼴로 웅크리고 있기만 한 게 좋이 한 식경이었다. 동이가 나서서 혼자 장막을 다 칠 때까지도 똥 눌 생각이 없는 못된 놈의 개 그대로였다. 그러다 한마디 한다는 게 “가서 자네 일봐,” 그뿐이었다. 그나마도 힘이 쏙 빠졌는데, 전날 봉평장 충주집에서 녀석의 뺨을 척 올려붙일 때랑은 판이했다. 점심 때 메밀국수 안에다 젓가락만 찔러 넣고 있던 꼴은 또 얼마나 사나웠던지.

“그 생각나나?”

뜬금없어 할 때 흔히 나오던 반응조차 없자 조 선달은 머쓱한 기운을 털고 말을 이었다.

“충주댁한테 우리 둘이 한창 열 올릴 때 말이야. 그대는 생원이고 나는 선달이니 내가 한 계급 앞선다, 그러니 앞으로 날 선달님, 하고 불러라 했더니 그대가 콧방귀를 뀌면서 했던 말. 급제하고도 벼슬이 안 내려진 이유를 모르는 선달이나 겨우 사서오경 떼고 초시 붙은 팔자로 나이만 먹은 생원이나 계급 따질 게 뭐 있냐며 그대가 던졌던 말, 말이야.”

거기서 언급하길 뚝 끊고 조 선달은 생각했다. 허 생원이 그걸 모를 리 있는가. 그때 그의 입에서 떨어지던 문장들에 놀라 그의 얼금뱅이 얼굴을, 왼손잡이 서툰 손을, 입 딱 벌린 채로 한참이나 봤던 기억이 생생했다. 추억이 다 아스라하기는 하겠지만, 조 선달은 그때의 허 생원을 흉내 내며 후르르 읊었다.

“그대 장자를 읽어봤다면 알세그려. 외지를 떠돌며 간난신고 거듭하는 자를 이르는 말을 알세그려. 즐풍(櫛風)에 목우(沐雨)라, 부는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내리는 비로 목욕을 하는 자, 천하의 장돌뱅이를 장자 선상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신 걸 알세그려.”

그제야 허 생원의 몸이 지렁이만큼 꿈틀거렸다는 걸 조 선달은 눈치로 깠다. 이제 할 일은 하나, 가만히 기다리는 거다. 기다리며 사설 한 자락 나오기를 쫑긋귀 세우고 있는 거다. 그런데 툭, 괜한 소리한다는 핀잔처럼 허 생원의 입에서 엉뚱한 얘기가 뱉어 나왔다.

“봉평서 대화, 대화서 평창까지가 모두 70리지 않는가. 헌데 평창서 제천까지는 길도 두 배가 넘고 주천쪽 산들도 어지간히 뾰족하니 이 나이로 나귀까지 끌고 가자면 닷새는 걸릴 터. 내 이번 평창장은 건너뛸 걸세. 오랜만에 미탄장에도 가볼까 했네만 거기도 담을 기약하고. 나귀도 그대한테 맡겨놓을 테니 어디 가지 말고 대화에 눌러앉아 점방이나 찾아보게. 제천에 갔다가 쉬 안 돌아오더라도, 괜히 동무 잃었다고 막걸리잔 찌그러뜨리지 말고. 안사람 불러오기 전에 괜히 봉평 가서 충주댁한테 수작 부리지도 말고.”

이건 또 뭔 사설인가, 하며 조 선달이 입맛을 다셨다.

“봉평, 미탄 다 건너뛰고 제천엘 가겠다고? 그러면…….”

조 선달이 멈춘 말에 허 생원이 토를 달았다.

“그래, 내가 아무렴 하룻밤 송사에 평생의 목을 매고 사는 모자란 놈이긴 하지만, 정이란 게 본시 그런 거 아닌가. 어떻게든 운명에 끌어다 붙여보는 거, 나는 잊어도 그 사람은 잊지 않았겠지 미련 부리는 거, 그런 거 아니겠나.”

허 생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설이 까닭 있게 서글펐다. 그런 탓인가, 조 선달의 까만 손이 허 생원의 어깨 위에 얹혔다.

“동이 앞장세워 가면 이백 리라도 혼자 가는 백 리보다 빠를 거야.”

흰소리 하고 있네, 정도를 예상했으나 쉬 대답이 없는 허 생원에게로 넌지시 고개를 돌리던 조 선달의 눈에 몹쓸 장면이 들어섰다. 허 생원의 눈에서 흐른 물기 한 방울이 흙바닥 위로 톡 떨어진 거였다. 허 생원의 어깨에 얹혀 있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직 물기가 남은 허 생원의 얼굴이 느릿하게 들렸다.

“혼자 갈 거야. 동이는 자네 점방 찾는 데 델고 다녀. 나중에 점방 차리면 자리도 하나 주고. 나는 혼자가 제격이야. 처음부터 바람이랑 비가 부모고 처자고 동무였으니 길 가다 엎어져 죽을 팔자지만, 젊은 녀석이 그런 꼴로 사는 건 못 봐주겠어.”

이 무슨 변괴인가. 의원 그 돌팔이가 지껄인 한 마디에 이 자의 팔팔함이 하룻낮에 팍삭 소리가 나도록 스러진 까닭이 야속했다. 조 선달의 눈앞으로 텅 빈 바람이 지나갔다. 그 빈 바람 사이로 빗방울도 흩날렸다.

“…….”

“…….”

둘 사이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속절없이 사위어가는 초로의 남정네 둘의 눈시울이 괜히 뜨끈해진다 싶을 때, 장 안쪽머리에서 활달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동이가 보였다. 동이가 쪼그려 앉은 둘 앞에 거목처럼 우뚝 섰다.

“어르신들, 얼른 파하고 막걸리 한잔 걸치러 가드래요. 오늘은 지 놈의 장사가 괜찮았으니 대접은 제가 할게요.”

그러곤 휙 돌아서서 드팀전 장막을 화닥화닥 걷어내기 시작했다.


1) “팔꿈치를 세 번은 부러뜨려보아야 좋은 의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의 ‘삼절굉지위양의(三折肱知爲良醫)’의 원출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13년이지만,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수록되어 있다.
2) 짐짝을 걸어서 메는 데에 쓰는, 종이나 삼노를 꼬아서 길게 엮어 만든 멜빵.

하창수
소설가, 1960년생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허무총』 『그들의 나라』 『1987』 『봄을 잃다』 『사랑을 그리다』,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 『달의 연대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