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①동틀 무렵

  • 기획특집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①동틀 무렵

동살이 잡히자 허 생원은 일행을 재우쳐서 부랴부랴 평창 읍내를 벗어났다. 어제 한낮부터 가랑비가 오다 말다 해서 일찌거니 전을 걷고 민틋한 산등성이의 오솔길을 반나절이나 빠져나와서 읍내 장거리 들목에 당도하니 땅거미가 거뭇거뭇해졌다. 곧장 단골 주막집에 들러서 나귀를 말뚝에 묶어놓고 오줌독 곁에서 머뭇거리니 행객 네댓 중에는 아무래도 낯익다 싶은 장돌뱅이가 둘이나 껴묻어 있었다. 오래전에 객기로 노름판에서 사흘 동안 눌어붙어 있다가 장사 밑천까지 탈탈 다 빨리고 빈털터리로 일어서던 그때, 손속 좋은 치들로부터 악착같이 개평을 뜯어내던 그 각다귀가 틀림없었다. 신근을 빼내 뿌리째 털고 있던 오른손을 얼핏 보니 진부에서 옹기점을 꾸리고 있다던 그 작자가 골패짝을 집을 때마다 팔뚝의 검누런 화상 자국을 보란 듯이 내둘리던 광경이 떠올랐다. 토방에 들어서도 못 본 체하고 돌아누워 짐짓 코를 골았으나, 식전에 또 부전부전 말이나 걸어오면 그 등쌀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나는 일이었다.

밤이 한껏 짧은 절기라서 해는 제물에 일찌감치 삼방산 능선 위로 솟구치더니 온종일 허 생원 일행의 보리짚모자들 위에다 불볕더위를 퍼부었다. 늙은 나귀는 그래도 매일 저녁 더운 여물을 낫게 먹더니 허 생원보다는 기운이 살아서 다행이었다. 동이나 조 선달의 나귀도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겠으나, 태평스러운 주인들의 마음보를 닮아서 그런지 꾸벅꾸벅 잔걸음을 재게 떼어놓았다.

시방 허 생원은 마음자리가 연방 얼룩덜룩해서 얄궂기 짝이 없다. 휘영청 밝은 달빛을 한 아름에 보듬을 듯이 산허리를 통째 뒤덮은 메밀꽃의 그 환한 꽃 치레 같은가 하면, 무서리를 덮어쓴 길섶의 들국화가 함초롬히 보이다 말다 하는 초가을의 그 정취처럼 싸한 기운도 스며들고 있다. 이제야 참으로 희한한 인연을 상면하러 가는 길이지만, 장차 무슨 봉변을 당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새 이틀이나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 버렸지만, 동이의 실한 등짝에 업혀 개울을 건넌 그날 대화장 입새까지 한달음에 내려와 주막에서 뜨거운 선짓국을 한술 뜨자마자 뻑뻑한 막걸리 사발을 꿀꺽꿀꺽 반이나 쭉 들이키고 나서였다. 온몸이 뻑적지근하니 대근했으나, 술기운이 대번에 목울대를 타고 넘어와서 팔다리를 노글노글 풀어주고, 덕분에 눅눅한 고의적삼에도 훈기가 서리었다.

“카아, 이 집 술맛은 늘 그럴듯하네. 모름지기 장돌뱅이는 이 맛에 조선 팔도가 비좁다고 떠돌아다니느니, 안 그런가, 조 선다님?”

“술맛이야 늘 똑같다마다. 우리 허 생원께서야 아까 초상집에 무명 한 짝을 다 팔아넘겼으니 그 기분이야 알조지.”

허겁지겁 선짓국에 코를 박고 있던 동이도 거들었다.

“오늘 이 집 밥값은 생원 나리께서 내시겠지요.”

“아무렴, 이르다마다. 장사가 술술 풀리면 차제에 나귀 대신에 노새라도 한 마리 사서 몰아얄 걸.”
“말도 마시게. 나는 양반 노릇은 딱 싫네.”

“개명한 세상인데 장돌림이라고 늘 나귀만 타란 법이 있나. 양반도 노새 타고 거들먹거리다가는 큰코다칠 걸세.”

“말도 못 들었는가, 저쪽 영주 지경의 웬 양반 가문은 왜정의 농가 이민 시책에 반대하다가 장골 머슴 둘을 데리고 주재소로 끌려가 초주검이 돼서야 풀려났다더만. 아닌 말로 농투성이들을 도국놈들 본토로 만주로 죄다 몰아가고 나면 우리 장돌뱅이들은 무명 한 필인들 누구한테 팔아넘기겠나.”

“실로 험악한 세상이네. 이럴 땔수록 우리 장돌뱅이야 한 푼 보고 십 리 걸음 안 애낀다는 그 심보를 이마빡에 딱 붙이고 살아야지.”

“암, 말부터 애끼고 몸이나 사리며 또박또박 살아야지.” 허 생원은 막걸리 사발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 동이를 빤히 건너다보며 명색 동업자답게 친근하니 권했다. “자네도 한 모금 하지 그러나. 술이사 노소가 없는 법이제.”

“우리 어머니는 생화가 자리 잡기 전까지는 절대로 술 배우지 마라고, 어쩌다가 한두 잔 하더래도 일찌거니 자리를 떠버리는 게 상수라고, 그래야 남는 게 있다고, 사내가 엉덩짝 무거우면 천하에 몹쓸 망나니가 되고 만다고 늘 그 다짐만 하는걸요.”

허 생원은 조 선달보다 두어 살 손위에다 쉰 줄이 코앞에 닥치기도 했지만, 말씨도 너그럽기 이를 데 없다. 장사꾼은 우선 말씨부터 부드러워야 장바닥 구경꾼의 주머니 끈을 풀게 한다는 이치를 익혔기 때문이다.

“자네 모친의 근본을 대강 알 만하네. 암, 술이야 한두 잔으로 족하지. 두 잔은 아쉽고 세 잔은 과하다는 말도 있네. 돈도 몸도 굳히려면 사내는 어떡하든지 주색부터 삼가야 하느니.”
“어쩌다가 얻어걸린 의부가 날마다 술청에 눌어붙어 앉으나 서나 술타령만 벌이는 것이 다 생업이 없어서 그렇다고, 사내 꼭지는 어떡하든지 밥상머리를 타 넘고 밖에 나가 땀을 흘려야 쇠푼이 걸어온다고 그 말만 하지요.”

“옳거니, 조만간 제천에서 자네 모친의 장삿속을 볼 날이 있을 터인즉 그때는 나도 술상에 왜놈 지전을 지르겠네.”

“그러고 보니 생원 나리께서는 술값을 하려는지 얼굴이 불콰하니 좋습니다.”

“내 상모가 원래 홍시처럼 붉어서 그나마 얽거든 검지나 말랬다는 말만은 피하고 사는데, 장돌뱅이로 나서고부터 낮에는 온종일 장바닥에서 땡볕에 타지, 밤에는 막걸리 두어 사발에 목울대를 태우니 검붉은 기운을 뺄 여가가 안 생기네.”

눈치도 빠르게 조 선달이 말을 가로맡고 나섰다.

“남 말할 것 없이 동이 자네도 외양이 반듯하고, 입이 쭉 찢어져서 밥은 안 굶겠고, 안색에 핏기가 고루 박혀서 장차 기집을 들이면 뒷심이 나귀만치는 버틴다는 소리를 듣고 살겠네.”

“선다님은 어째 남의 관상도 다 보십니까?”

“허어, 들은풍월로 지껄이는 소리지. 나중에라도 내 말이 그럴싸하거들랑 부리나케 찾아와서 술을 딱 두 사발만 사도록 하게.”

술김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허 생원은 그때부터 왠지 가슴이 벌름거리고, 마음자리가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물어볼 말이 자꾸 치밀어오는 판이라 입이 달싹거리는데도 막상 말문이 터지지 않았다. 언제 술상을 밀쳐내고 쓰러져 잤는지 술 한기에 일어나 보니, 동이는 나귀에다 고리짝을 싣고 있었다. 먼눈으로 동이를 살피니 그 너머의 조 선달은 소세한 몰골로 고이춤을 붙잡고 정랑 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왠지 이때다 싶어 허 생원은 동이에게 친근히 말을 걸었다.

“오늘 대화장 보고 나면 평창 읍내로 내려가서 하루 묵었다가 다음 날 새벽에 술떡이나 두어 줌씩 지니고 제천까지 휑허니 가보세. 하루해에 닿을라, 80리가 넘는 길인데. 그라고 짚이는 데가 있어 그러니 뭘 좀 물어보세, 정녕 봉평이 자네 모친 고향일작시면 시방 제천에는 일가권속이 더러 있는가?” “무슨 일론지 성가 살림이 졸지에 거덜이 나서 뿔뿔이 흩어졌다 하고, 어머니는 서당골 진외가에 맡기고 외가는 잠시 충주로 내뺐다지요. 봉평장터의 그 충주댁도 혹시나 해서 이 말 저 말 걸어봤어도 성가 찾기야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지요.”

“성가렸다. 그 참 기연일세.”

허 생원은 눈길을 섬돌 위의 햇살에다 꽂아놓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장돌림에 나선 저 선머슴애가 여태 애비 성을 모른다니, 이바구가 될까 말까 하더니만 이것도 오죽 기가 막힌 인연인가. 성 서방네 그 처녀야 보름달처럼 훤했지. 이 몸이 이때껏 왜 달밤을 그렇게나 찾고 기렸겠나. 발길을 떼놓을 때마다 헙헙하던 그날 새벽 기운을 어찌 잊겠나. 설마 나를 못 알아볼리야 있을라.”

주천면에서 떡갈나무 잎사귀로 둘러싼 술떡을 끌러서 점심 요기를 하고, 송학면을 에둘러 가파른 산골짜기를 내려온 지도 반나절이 넘었건만 아직도 길이 줄지를 않는다. 허 생원은 마음이 바쁘기도 하려니와 장돌뱅이라서 길눈이 밝다.

훤한 대처가 한눈에 보이자 앞장선 동이가 나귀를 멈춰 세우며 이른다.

“이제야 다 왔네요. 저기 원화산이 보이고, 그 오지랖에 유실이란 마을이 있지요. 우리 어머니가 그 술도깨비 의붓애비 멱을 따놓고 말겠다고 칼자루를 휘두른 지가 서너 해 전부턴데, 제가 지난해 장삿길에 오르자 머리 굵어진 내 눈치를 보더니 비루먹은 강아지 새끼처럼 종적을 감췄어요.”

“거적문이 문인가란 말도 있으니 의붓아비가 아비일라. 피가 다른데. 피야 못 속이지.”

허 생원의 심상한 말을 새겨듣는 조 선달이 벌써 사리를 맞춰가느라고 말품조차 아끼고 있다.

이윽고 동구가 까물까물 보이고, 장이 안 선 날이라서 인적 없는 어귀에 돛베 주기(酒旗)가 저녁 바람에 펄럭인다. 사립문도 없는 초가집이 시큼한 술내를 풍기며 아스라이 다가오고, 그 너머의 인가에는 제법 포실한 훈기가 여름밤의 모깃불처럼 어룽거린다.

장돌뱅이로 이십 년을 떠돌아다니다가 오늘에야 몸을 부리려는 이 눈앞의 주막이 허 생원에게는 왠지 설게 안겨 온다.

햇살이 많이 기울었으나, 아직 석유등을 켜지 않아도 대추나무 박인 아래채 기역 자 주막은 덩실하니 떠올라 있다. 동이가 술꾼 서넛이 웅성거리는 가겟방 곁을 지나 위채의 정짓간으로 잽싸게 다가간다. 석양을 받아 훤한 살강 아래서는 중늙은이가 토막도마 위에 앉아 댕기 머리 하나를 데리고 내일 제천 장날에 쓸 막걸리를 거르고 있다.

“엄니, 저 동이 왔어요.”

“하이고, 동이구나, 아침부터 까치가 그렇게나 그악스레 깍깍거리더니 니가 올라고 그랬구나. 어여, 땀부터 들이고 등물이라도 해라. 긴긴 해에 시장하것다.”

“잠시 일손 거두고 일루 평상으로 나와서 여기 봉평장터 터줏대감 두 분과 옛말부터 맞춰보셔요.”

어느새 주막 곁의 한데다 나귀를 부려놓고 널평상에 걸터앉은 허 생원과 조 선달의 눈짓이 심상찮다. 허 생원은 검정 고무신 한 짝을 벗고 허벅지를 평상 위에 눕히고는 정짓간 쪽에다 눈길을 겨누고 있다.

“웬 고향 까마귀가 둘이나 동무해서 장돌림으로 나다닐까.”

정짓간을 나서며 지껄이는 주모의 듬직한 외양에 이어 안면을 훑듯이 살피는 허 생원의 눈길이 가늘어지면서 머리통이 저절로 끄덕여진다.

“임자가 혹 성 서방네 그 처녀 맞소?”

“이녁은 뉘신데 남의 희성을 여태 잘도 꿰고 있소?”

“허어, 어디서부터 말을 더듬어야 하나. 그때가 3.1 만세전인데, 성 서방이 방환지 실환지로 왜경에 불려 다니다가 결국에는 산주까지 얽어서 징역을 살린다 만다 하는 등쌀에 살림이 아주 거덜이 났지 않소. 장바닥에 소문이 파다했구만서도. 인자 봉평장에서 숯 구경은 다했다고, 그라다가 그 숯쟁이 성 서방네가 어느 날 야반도주했다더만. 임자도 그 곡경을 치르면서 울고불고 하지 않았나 모르지.”

하도 의미심장한 사연이라 동이 에미도 전대 달린 행주치마를 훌쩍 추스르며 엉덩짝을 평상에 걸치고 외어앉으면서도 연방 허 생원의 소말소말한 안면을 훑어보고, 행색도 힐끔거린다. 조 선달은 아예 책상다리로 허 생원 곁에 앉아서 주모의 온달처럼 두툼한 안면과 육덕이 착실한 몸피를 살피며 이제야 말품을 거들 때임을 알아챈다.

“우리 허 생원이 보름달만 뜨면 왕년에 물레방앗간에서 맺은 기막힌 인연 타령으로, 당나귀야, 너도 듣거랍시고 꼭 읊어대는 통에 나도 다 외우고 있소. 그 사단이 만세전이라면 세상이 그새 너무 변해서 말이 될까 말까 하나, 그 처자가 봉평서는 제일가는 일색인 걸 허 생원이 아직도 안 잊어버린 것도 기연치고는 수상쩍기 짝이 없소.”

허 생원의 눈길은 어느새 나귀를 대추나무에 비끄러매고 나서 함지박에다 물을 퍼붓고 있는 동이의 자태에 머물러 있다. 마침 동이 에미의 어웅한 눈매도 동이의 거동에 머물자 동살이 잡혀가던 예전의 그 물방앗간에서 온몸에 깔끄럽게 달라붙던 짚북데기가 문득 떠오른다.

허 생원이 초가집 처마에 어룽거리는 어스레한 석양빛을 보며 말문을 열어간다.

“참으로 이상한 밤이었소. 환한 달빛에 차마 부끄러워 옷을 벗으러 하필이면 그 물방앗간으로 기어들어간 것도 그렇고, 거기서 마냥 훌쩍거리고 있던 성 서방네 처자와 마조쳤던 것도, 동이 트기도 전에 모밀밭을 헤치고 개울에 가서 미역을 감고 오니 방금까지 지푸라기를 집어 꼬고 있던 그 처자가 행방을 감춘 것도, 꼭 하룻밤에 꾸는 두 가지 세 가지 색다른 꿈 같았소. 임자가 참말로 창녕 성씨에 봉평이 안태본일작시면 설마 그때 그 정경을 잊었을라.”

허 생원이 동이 에미의 말길을 재촉하느라고 눈살을 찌푸리자 조 선달이 답답하다는 듯이 엉덩이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거들고 나선다.

“그 사단이 만세전이었다니까 동이 나이와도 얼추 맞네그려. 제천, 청주, 충주로 성 서방네 처자를 찾으러 눈이 빠지도록 돌아다녔다는 이바구도 빠뜨릴 수 없지. 동이 엄씨도 안 잊히는 사연이 있거들랑 한 토막이라도 털어놓아서 앞뒤 말이 대나무 마디처럼 쭉쭉 곧게 이어지도록 읊으시구려, 그래야 오매불망 기다리던 동이 아비가 진짠지 가짠지 알아맞힐 거 아니요.”

떡심이 풀어진 주모가 말문을 열자 의외로 조리가 반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꿈인가 생신가 싶은 것은 꼭 마찬가지요. 가슴이 이렇게 펄럭거리는 것도 꼭 같소. 이녁 얼굴에 손님이 왔다 간 흔적이 저렇게 박힌 거야 와 잊어먹겠소. 장날마다 그토록 얽은 유자 얼굴을 찾겠다고 얼쩡거린 것도 잠시고, 저 동이 키우느라고 서방인지 네 방인지는 생각할 짬도 없이 살았시요. 그래도 여기 제천 땅 고암천변 위에 3.1 만세 장꾼들이 하얗게 뒤덮였을 때는 충주서 목도꾼으로 입을 산다던 우리 아부지도 보고 싶고, 동이 애비도 어디서 만세야 부르것지 싶어서 한숨을 모아 쉬며 살았네요. 그 고생을 다 말할라면 내일 아침 동이 틀 때까지도 모자랄 것이요. 어서 그 먼지 덮어쓴 얼굴이나 저쪽 우물가에 가서 씻고 나서 보시오. 저녁이야 손도 데리고 왔으니 평상에다 볼 것이요.”

말을 거두며 일어선 주모가 의심증을 떨치려는지 머리통을 외로 갸웃거리면서도 정줏간으로 다가가는 걸음에는 그나마 생기가 올라붙어 있다. 반쯤이나 이지러진 달이 떠오르려면 아직 한 식경이나 남아 있는 한여름날이다.

김원우
소설가, 1947년생
장편소설 『일인극 가족』 『운미 회상록』 『이 세상 만세』, 소설이론집 『작가를 위하여』, 산문집 『편견 예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