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위 패스포트
남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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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남극으로 가는 길

 드론으로 촬영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지난겨울 나는 남극에 있었다.

겨울이 오는구나 할 때 떠나 봄이 왔구나 할 때 돌아왔으니, 한 계절을 폴짝 뛰어넘어 다른 계절에 도착한 셈이다. 하지만 어쩐지 계절을 건너뛴 것이 아니라 계절을 거슬러 오른 느낌이 든다. 겨울이 아니라 여름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빨리 감기가 아니라 되감기로. 다녀온 것이 아니라 지나온 느낌. 그러니 이렇게 말해볼까?

지난여름 나는 남극을 통과했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출발점이 어디든 남극은 무조건 멀다. 가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 그랬다. 남극에서 과학연구를 한다는 것은 달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과 같다고. 인간의 호기심에 관한 얘기였다. 하지만 실제 가는 길 또한 우주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서울에서 12,740km. 비행으로 20시간 거리. 팬데믹으로 인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 2주간 격리를 해야 했고, 거기서 남극 테라노바 만까지 쇄빙선을 타고 12일을 이동해야 했으므로, 오고가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린 셈이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아무튼 남극으로 향하는 길은 그저 어딘가 아주 멀고도 아득한 곳으로 가는 길.

 

곤드와나  

 

바다색이 바뀌고 기온이 달라졌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밤이 사라졌다. 밤이 물러나자 해빙이 나타났다. 대륙에 가까워질수록 해빙은 더욱 두껍고 단단해져 갔고, 쇄빙의 속도는 그만큼 느려졌다.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이윽고 얼음 위에 멈추어 섰을 때, 멜버른 화산을 등지고 장보고 기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그야말로 우주에 진입한 우주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안도했고 충만했다. 아름다웠다. 무언가 벅차오르는 아름다움이랄까? 나도 덩달아 아름다워지고 싶은 아름다움이랄까.

항해 중에 수백 마리의 풀마갈매기들을 보았을 때도 그와 비슷했다. 갈매기들은 배와 함께 날고 있었다. 배와 같은 속도로. 부딪칠 듯 말 듯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파도처럼 일렁이며. 바다와 한 몸 같기도, 바람의 일부 같기도, 빛의 조각 같기도 했다. 선율 같았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했다. 배와 속도를 맞춘 새들의 항해는 이틀간 이어졌다. 나는 자주 선상에 나가 새들이 파도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몸의 중심을 잡으려면 뒤꿈치에 힘을 딱 주고 배와 같은 리듬으로 움직여야 했다. 더이상 뒤뚱거리지 않게 되었을 때, 배와 한 몸처럼 느껴졌을 때, 배가 아니라 새가 된 것 같았다. 나도 덩달아 날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배의 리듬이 아니라 새의 리듬으로. 비유가 아니라 실제였다.

그래서 그 순간 나는 어린애처럼 두 팔을 펄럭이며 소리쳤다. 난다, 날아! 킬킬킬 웃으며 좋아라 했다. 눈물이 찔끔 난 것도 같았다. 새들이 방향을 바꿔 배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손나팔을 하고 외쳤다. 잘 가, 또 보자. 고마워, 행복했어. 그렇게 외치고 나니 더없이 행복해졌다. 내가 좀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그 느낌이 퍽 좋았다.

 

남극 멜버른화산   

 

그러고 보니 7년 전 세종기지를 떠날 때도 그런 말을 했었다. 잘 있어, 또 올게. 또 온다 했지만, 다시 못 올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찔끔 눈물이 났던 것도 같다. 그땐 누구에게 인사를 했을까. 아마도 이끼? 남극잔디? 어쩌면 꽃.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이끼군락지.

남극잔디는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가는 단 며칠, 때를 기다려 일제히 꽃을 피운다. 그날을 식물들은 어찌 알아차리는지. 하루하루 기상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일과를 결정하는 우리 인간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경지다. 볕 좋은 날 소풍삼아 이끼 군락지에서 한나절 노닐다 온 기억이 난다. 햇빛은 따사로웠고 이끼 군락지는 폭신폭신했다. 이끼에서 뿜어져 나온 산소가 아지랑이를 만들었다. 납작하게 엎드려 이끼의 호흡에 내 호흡을 맞추었다. 들숨날숨. 태양의 힘으로 이끼들은 자라고, 이끼들이 내뱉은 산소를 내가 들이마시고.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태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태양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우주적 존재라는 사실을.

그 짜릿한 순간 때문이었다. 기어이 다시 남극을 다시 찾은 이유가. 7년을 준비했다. 남극을 향한 길이 과학 연구자들에게만 열리는 것이라면, 내가 그리되겠다 했다. 에코과학부에 입학했고 동물행동학을 공부했다. 문과생 출신이, 그것도 나이 오십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흥미로웠지만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다. 학생이 된다고 남극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저 탐험하듯 조금씩 나갈 뿐이었다. 그러다 길이 열렸다. 물범 연구팀에 결원이 생겨 사람을 구한다 했다. 한두 달이 아니라 가고 오는 것까지 오 개월이라 했다. 물범이라니. 그것도 오 개월씩이나. 이보다 좋을 수가. 그렇게 나는 다시 남극에 갔다. 소설가가 아니라 물범 행동연구자로. 취재나 체험이 아니라 연구를 목적으로.

 

남극의 새, 스쿠아   

 

아델리펭귄   

 

오늘의 날씨 맑음. 영하 8.7도에 풍속이 1~2미터니 포근하겠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상정보 확인이다. 남극에서 날씨는 목숨과 관련이 있다. 기온보다는 바람. 바람이 거의 불지 않고 구름이 없으니 물범들도 해안에 잔뜩 올라와 있을 것이다.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빛을 쐬며 몸의 온도를 높이고 있겠지. 작업 나가기 좋은 날. 바이오로거(Bio-logger)와 접착제를 챙기고 뜨거운 물과 간식거리도 챙기고 곤두와나 기지로 출발. 물범들의 해안까지는 바위언덕을 넘어 돌길로 2km. 가는 길에 스쿠아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겠지만, 언제부턴가 손바닥을 쫙 펼쳐 팔을 들어 올리는 기술만으로도 무사통과. 털갈이 중인 아델리펭귄이나 황제펭귄을 만나는 것은 덤. 임시부두에 자리 잡은 아델리펭귄은 벌써 나흘째 그 자리다. 빨리 털갈이를 끝내고 먹이사냥을 나갈 수 있기를 멀리서 응원도 해 보고. 사나운 게잡이 물범이 길목을 막고 누워 있으면, 쫄보여서 사납게 군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내가 쫄아서 멀찍이 돌아서 지나가고.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화산석 하나를 주워 그 안에 감람석이 박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그렇게 물범을 향해 가는 길.

웨델물범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차분해진다. 그리고 내가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던 물범들이 짧은 팔을 들어 옆구리를 긁는 모습은 언제 봐도 웃음이 나지만, 심장이 쿵 울리며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은 물범에게서 어떤 소리가 들릴 때다. 짧게 끊어지는 휘파람 소리. 입술을 오므려 쪽쪽 빠는 소리. 이를 딱딱딱딱 부딪칠 때와 비슷한 소리. 뱃퉁을 둥둥둥둥 두들기는 소리. 어떤 신호를 보내는 건지, 노래인지 잠꼬대인지,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듣기가 참 좋다. 감미로운 전자음악 같다 할까, 심해의 해양포유류 소리 같다 할까. 오묘하게 몽롱한 기분에 취하게 하는 소리다.

육지에서 웨델물범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 데 보낸다. 움직이지 않는 게 체온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옆에 바짝 붙어 앉아도 눈만 샐쭉 뜨고는 다시 잔다. 네가 뭐든 난 잔다 하는 태도다. 성격테스트를 하려면 좀 다양한 반응을 보여줘야 하는데, 물범 중에서도 가장 순하고 경계심도 없는 웨델물범은 그저 자거나 자리를 바꿀 뿐이다. 그중에서 적당한 크기에 털갈이를 완전히 마친 물범을 골라 행동테스트를 한 다음 블루건을 쏘아 마취를 시킨다. 대략 5분에서 10분 사이에 잠이 들고 마취 상태는 20분가량 유지된다. 그 사이 정수리에 바이오로거를 붙인다. 접착제가 완전히 굳는 시간이 15분이니 물범이 잠든 사이 고정까지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몸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장비고 해마다 털갈이를 하니 후년에는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데이터를 통해 얼마나 멀리 깊이 먹이사냥을 나가는지, 당시 해수의 온도와 염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마취약에 대한 반응이 다르듯, 물범들도 그러하다. 바로 잠이 들어 작업을 마치자 깨어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졸기만 할 뿐 잠이 들지 않는 아이도 있고, 잠든 걸 확인하고 로고를 장착하는 순간 잠이 깨는 아이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씨름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800kg이 넘는 물범을 상대하기에 세 명의 여자인간 연구원의 힘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우리는 모두 18마리의 웨델물범에게 바이오로거를 달았다. 어쩔 수 없이 물범을 끌어안고 씨름을 하던 그 순간이 오히려 좋았다. 따뜻하고 촉촉하고 포근했다. 물론 물범의 몸부림에 땅바닥에 나가떨어지는 순간이 더 많았지만.

 

운석을 찾는 순간   

 

황제펭귄 무리(위)와 웨델물범(아래)    

 

꿈에 물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물범을 끌어안고 있는 꿈이었다. 손을 잡고 있거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도 했다. 가지 마, 가지 마, 잠꼬대를 하더라는 얘기는 룸메이트에게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물범을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 작업을 모두 마친 후에도 날씨가 허락하는 한 매일 물범들의 해안으로 산책을 나갔다. 가만히 앉아 물범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물범들과 함께 햇빛을 쐬었다. 금세 추워져서 물범들처럼 오래 누워 있을 수는 없었지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극지연구소에서 운영 중인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지난겨울 나는 아주 먼 곳에서 다른 시간을 살다 왔다. 물범과 함께 있으면서 물범 꿈을 꾸었고 지금도 여전히 물범 꿈을 꾼다. 자주는 아니지만, 물범을 끌어안고 있지는 않지만, 물범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꿈에 어딘가로 가고 있으면 물범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여긴다. 이상하게 그리 믿어진다. 그 길은 이끼 군락지를 향해 있기도 하고, 우주를 향해 있기도 하다. 우리가 태양의 힘으로 꽉 붙어 있음이 느껴진다. 남극의 여름을 통과하면 그리 되는 것 같다.

 

바다가 어는 순간   

천운영
소설가, 1984년생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산문집 『돈키호테의 식탁』 『쓰고 달콤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