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⑤ 편지

  • 기획특집
  • 2024년 여름호 (통권 92호)
⑤ 편지

 

콜레트가 가장 먼저 손을 벌린 사람은 그녀가 아직 아이일 때 양장점 보조 재봉사와 결혼하여 큰 도시로 떠난 언니였다. 결혼식 날 콜레트는 수줍은 신랑과 신부보다 세 걸음 앞서 걸으며 길 위에 분홍색 장미 꽃잎을 흩뿌렸고, 언니는 신랑의 사수 재단사가 빌려준 제법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뒤따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위로 들리고 아래로 꺼지는 프릴의 결을 따라 아득한 깊이의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고 싶어서 행진 도중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던 기억, 끝없이 이어지는 연속적인 아름다움에 풍랑 속 배를 탄 듯 속이 울렁거렸던 그날의 느낌을 콜레트는 수화기 너머 언니에게 열정적으로 늘어놓았다. 아마도 그때의 특별한 경험이 지금 자신이 가려는 길로 이끌어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언니는 뛰는 조카들에게 사나운 목소리로 주의를 주며 콜레트의 얘기를 대강 듣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별을 공부하고 싶다는 거야?”

“맞아.”

“별을 왜?”

“언니, 나는 도무지 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대학에 갈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러자 언니는 어린 두 남매가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이제는 정식 재단사가 된 남편이 너무도 구두쇠여서 새 재킷을 맞춘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콜레트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몇 년간 이런저런 품삯 일을 하며 부모님 곁에 있는 게 어떠냐고, 그때가 되면 필요한 돈의 일부는 부모님이 마련해주실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언니마저도 스스로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부모는 모아둔 재산이 없는 것은 물론, 살아오며 인생에 재미를 붙일 만한 것을 거의 잃었기에 자식들에 대한 일말의 온정 역시 남아있지 않았다.

콜레트는 포기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매달렸다.

“입학금과 학비, 두 달 정도의 생활비면 충분할 텐데. 일단 학교에 다니며 그곳에서 품삯 일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아, 정말 너란 애는……”

언니는 순간 어린 동생을 흠씬 혼내고 싶은 충동이 인 것에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음이 진정되자 미안함이 몰려왔다.

“루아젤 부부한테 부탁해보는 게 어때? 그 노인들은 자식이 없어서 우리가 자랄 때 아주 예뻐했잖아.”

콜레트도 그 이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이 든 루아젤 부인은 콜레트가 오랫동안 씻지 않아 꾀죄죄한 몰골로 다니는 것을 눈여겨보다가, 여름 캠프를 떠나기 전에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푸르스름한 비누로 씻겨주었다.

“하지만 그분들이 도와주실지 모르겠어.”

콜레트가 자신 없게 중얼거렸지만, 언니는 접시를 엎은 조카에게 달려갔다가 이내 아무튼 잘 지내라는 인사를 남기곤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얘야, 네가 이렇게 컸니?”

다행히 루아젤 부부는 오랜만에 보는 콜레트를 친한 친구처럼 맞아주었다. 두 노인이 번갈아 부산하게 움직이며 차를 내주고 버터 냄새가 따뜻하고 달콤하게 녹아있는 큰 빵을 직접 잘라 접시에 담아주었다. 그러고는 딱 두 사람이 쓰기에 적당한 좁은 탁자 건너편에 앉아 콜레트를 바라봤다. 자랄수록 얼굴에 언니와 닮은 모습이 보인다며 두 자매의 귀여웠던 아이 때 모습을 추억했다.

“그렇지 않아도 언니가 두 분을 한번 찾아뵈라고 말했어요. 건강하신지 궁금하다고요.”

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루아젤 부부는 무척 감동받았다. 마음이 풀린 노인들은 내밀한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몇 년 전부터 마을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까닭은 노부인이 얻은 병환 때문이었고, 늙은 남편이 홀로 아내를 돌보고 있었다. 큰 병원이 있는 도시에 검사를 위해 몇 번 다녀오기도 했고, 요양을 할 만한 조용한 별장을 빌려 몇 달씩 집을 떠나있었던 적도 있었다.

“저는 전혀 몰랐어요.”

“이제 네 얘기를 해보렴. 들려줄 소식이 있어서 온 거겠지?”

다정히 몸을 기울이며 묻는 루아젤 부인의 얼굴은 병환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모든 것, 피부와 몸집과 말투와 냄새와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었다. 콜레트를 잘 보기 위해 한쪽 손으로 턱을 괴자 그녀의 얼룩덜룩한 팔뚝, 어두운 빛깔의 손톱, 쳐진 눈매와 탁한 눈동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콜레트는 그런 모습을 마주한 채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해야 했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별에 대한 애정과 두서없는 부탁이 뒤섞인 긴 이야기가 끝나자 부인이 말했다.

“의외구나. 난 네가 결혼을 하는 줄 알았거든.”

부부는 잠시 서로를 마주 봤다. 과묵한 루아젤 씨도 내심 그런 짐작을 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해진 콜레트가 서둘러 덧붙였다.

“물론 적은 액수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조금씩 갚으면 제가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모두 돌려드릴 수 있을 거예요.”

“우리한테 지금 그 정도 돈은 없단다. 내 치료와 요양에 꽤 많은 지출이 있었거든.”

부인의 말에 콜레트는 절망감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두 손을 힘껏 맞잡았다. 이토록 힘을 주어도 손아귀에 어떤 별도 움켜쥘 수 없는 현실이 한탄스러웠다.

콜레트의 표정을 살피던 부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떠난 부엌은 한 송이 꽃도, 별다른 장식도, 사진 액자도 없는 빛바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요리를 하는 화구 앞 작은 창문에 달린 유일한 장식 커튼은 식탁보를 수선한 것이었다. 부인은 납작한 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콜레트에게 직접 상자를 열어보라고 내주었다.

“목걸이네요.”

“내 평생 하나뿐인 목걸이지.”

콜레트는 그것의 가격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고가의 보석이 분명했다. 그러나 크고 화려한 세공은 지금 시대의 유행과 너무도 달라서 누군가 목에 착용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 같았고, 박물관 어딘가에 두어야 어울릴법했다. 목걸이의 상태는 상하거나 빛바랜 곳 없이 깨끗했다.

“네가 만약 결혼을 한다고 찾아왔다면 결혼식에 이 목걸이를 빌려줬을 거야.”

콜렉트는 속으로 기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부인의 말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 목걸이가 팔리면 필요한 돈을 빌려주마. 네가 적당한 구매자를 구해준다면 입학금 정도는 선물로 줄 수도 있어.”

“감사해요. 믿기지가 않네요.”

“단, 조건이 있어. 온전히 목걸이를 보존할 사람에게만 팔 거란다. 부속품을 해체해 여기저기 내다 팔 사람에게는 줄 수 없어.”

 

콜레트가 직접 찾아간 세 군데 보석상은 목걸이값으로 각각 2만 프랑, 1만 6천 프랑, 2만 3천 프랑을 불렀다. 목걸이로서의 가치는 쳐줄 수 없고 오직 다이아몬드의 몫으로 책정된 가격이었다. 있는 그대로 전하자 루아젤 부인은 조용히 듣다가 그 정도 가격으로 거래해도 좋다고 조그만 목소리로 허락했다. 조건만 지켜진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하였지만, 그녀가 실망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콜레트는 보석상 중 하나를 통해 적당한 구매자를 찾았다. 첼로 연주자 부인을 둔 사업가가 루아젤 부부의 집으로 찾아와 물건을 확인한 뒤 흔쾌히 사겠노라고 나섰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아내가 골동품 수집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뜻밖에 과묵한 루아젤 씨가 고개를 저었다.

“이 목걸이는 골동품이 아닙니다.”

그러고는 루아젤 부인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아무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지만 사업가에게 목걸이를 팔지 않음으로써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

다음에 물건을 보러온 사람은 어린 귀부인으로 보석에 조예가 깊었다. 그녀가 목걸이의 조잡한 흠을 잡자 루아젤 부부는 또다시 팔기를 거부했다.

그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콜레트는 늙은 부부의 심술을 납득할 수 없어 부아가 치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두 노인은 손님이 다녀가면 의자에 앉아 안도하듯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오래된 부부는 말로 의견을 주고받는 일 없이 늘 서로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년의 신사가 찾아왔다. 그는 신중하게 목걸이를 살피고 준비해온 장갑을 낀 채 이리저리 목줄을 들어보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콜레트에게 목걸이를 한 번 착용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콜레트는 그렇게 해주었고 그 모습을 루아젤 부부가 지켜봤다. 신사가 구매 의사를 내비치지 않고 그냥 돌아가서 물건이 마음에 차지 않은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며칠 뒤 딸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나이는 콜레트 정도 돼 보였다.

“마음에 드니?”

“정말 아름다워요. 공주가 된 것 같아요.”

그 말이 루아젤 부인의 마음을 움직이던 순간을 콜레트는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자 뒤로 다가갔다.

“목걸이는 어디에 차고 갈 건가요?”

“언제나 지니고 있을 거예요. 이번에 떠나면 다시 한동안 아빠를 보지 못할 테니까요.”

여자는 엄마와 새아빠와 함께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신사가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온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움을 담아 이따금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부녀만의 오랜 비밀이라고 그들은 알려주었다.

사정을 들은 루아젤 부인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녀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루아젤 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햇볕을 차단하면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반투명한 유리 상자와 보석을 닦을 수 있는 부드러운 천, 기름, 작은 솔을 챙겨 가방에 담아주었다. 그가 저렴한 값을 부르자 신사는 크게 감사하며 바로 대금을 치렀다. 딸은 목걸이를 차고 가겠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던 루아젤 부인이 돌연 여자에게 말했다.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했죠? 나는 지금 많이 아프고 곧 죽을 거예요. 몇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목걸이를 차다가 생각이 나면 나에게 편지를 써줄래요?”

여자는 처음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지만 결국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믐 전후의 깜깜한 밤, 언덕 위에 지어진 꼭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천문대에 누워있으면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별의 소곤거림처럼 들려왔다. 아주 고요하면서도 시끌시끌한 그 느낌을, 자신을 감싸고 도는 수많은 언어를 결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느낌을 콜레트는 좋아했다. 가끔은 그 노인들을 떠올렸다. 숨을 참으며 서늘한 망원렌즈를 향해 얼굴을 내밀 때, 그 어두운 속에서 밤하늘의 신비로운 반짝임을 발견할 때, 그리고 청소 순서가 돌아와 특수한 천을 쥐고 값비싼 렌즈를 조심조심 닦아낼 때 보지 않았던 장면도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루아젤 씨가 목걸이를 꺼내 햇빛에 비춰보며 정성스레 닦는 모습, 그리고 둥글게 굽은 그 등을 뒤에서 바라보는 루아젤 부인. 그녀는 되려 숨을 삼키는 듯한 조용한 한숨을 내쉴 테고, 그 장면을 외면하기 위해 뒤돌아설 테고, 식사를 하며 또 잠자리에 들며 목걸이가 있는 옷장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콜레트는 왜인지 그런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런 루아젤 부부의 이야기를 언니에게 전하기도 했다.

“첫 방학이 시작되고 그분들을 찾아갔을 때, 목걸이를 사간 애한테서 편지가 왔어. 루아젤 씨가 직접 읽어주기까지 했는데 내용이 정말 밝고 귀엽더라. 사랑받은 아이는 빛이 난다더니 정말 그랬어.”

그 편지를 듣는 순간 콜레트는 자기 또래의 아이가 아빠와 팔짱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걷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놀랍게도 루아젤 씨가 콜레트의 마음을 읽어냈다. “아가, 너는 정말 훌륭하게 자랐어. 너한테는 지금 진짜 가지고 싶은 것이 있잖니. 부모도 아닌 우리가 이렇게 널 자랑스러워해도 될지 모르겠구나.” 콜레트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으시다고, 그들을 부모처럼 여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때 이미 루아젤 부인은 침대에서 잘 일어나지 못했지만, 즐거운 순간에 누운 채로도 소리 내 웃는 법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애,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빠와는 계속 편지를 주고받는지, 사이가 멀어진 건 아닌지 걱정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언니가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대화는 중단됐다.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를 때린 모양이었다. 어둠 너머에서 오는 미약한 빛줄기처럼 언니의 기척이 웅얼거림 뒤로 사라졌다. 콜레트는 자신이 매번 들려주는 무궁무진한 천문학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언니, 하루에 한 번도 자신과 같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언니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언니의 목소리가 돌아오길 익숙하고도 친근한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우다영
소설가, 1990년생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밤의 징조와 연인들』, 중편소설 『북해에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