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기도 전에 소음이 먼저 몰려온다.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드는 소리, 벌써 5년에 접어드는 이명이었다.
처음엔 가는 구리선 같은 작은 소리였다. 그날 외출에서 돌아온 은영은 심한 피로감에 바로 소파에 누웠다. 그때 갑자기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벌레 소리 같기도 하고 전자파에 소리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은영은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 때문에 소파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TV는 꺼져 있었고 남편 기우는 아직 퇴근 전이어서 집안엔 은영 혼자였다. 소파 아래에 있는 전기 콘센트를 보려 고개를 숙이는데 갑자기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거실에 걸린 사진액자가 휘익, 도는 느낌에 은영은 다시 소파에 누웠다. 속까지 메슥거렸다. 그제야 은영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구리선 같은 소리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이명이었다.
다음날 더 심해진 어지럼증과 이명 때문에 남편의 팔을 잡고 이비인후과 병원에 갔다. 혼자서는 똑바로 걸을 수도 없는 어지럼증이었다.
“이명입니다. 어지러운 건 이석증 때문이고요.”
의사는 침대에 눕게 한 후 몇 가지 교정 자세를 알려 주었다. 하루에 서너 번씩 그 자세들을 반복하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다 보니 어지럼증은 차차 호전되었다. 그러나 이명은 그날 이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다. 두 번 더 병원에 가봤지만, 의사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명의 원인은 수도 없이 많아서 치료 방법도 딱히 없습니다. 일단 면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어요.”
은영은 그 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몸이라도 해쳐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어지럼증이나 이명이 억울하진 않았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처음엔 가는 구리선 같던 소리가 점점 커져 지금은 동아줄처럼 굵어졌다. 잠잘 때 외에는 쉬지 않고 신경을 긁어댔다. 아직은 참을 만하지만 더 커지면 어떻게 견딜지, 생각하면 공포감이 몰려왔다.
은영은 30분쯤 더 누워 있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만히 눈을 감아 보았다. 소리가 더 맹렬히 몰려온다. 한때 명상을 한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은 방에 가부좌하고 앉아서 마음을 모아봤지만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니 소리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침묵이나 정적은 불가능해져 버린 삶이 돼 버렸다. 대학 친구 주희의 명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린 대가로 얻은, 선물이었다.
목걸이를 잃어버린 대가로 7년간 은영이 치른 시간은 혹독하기 짝이 없었다. 살고 있던 서울 근교의 전세 아파트는 월세로 바꿔야 했고, 이미 한도를 넘은 은행 대출이 불가능해 남편과 은영의 카드를 총동원해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고금리의 이자와 5천만 원이나 올려 달라는 집주인 때문에 대출을 받은 전세대출금 이자가 남편 월급으론 어림도 없어 은영은 고깃집 식당에 나가 일을 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은영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죄책감은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걸로 겨우 상쇄되었다. 은영은 고기 불판을 닦으며 연체고지서와 대환론으로 넘어간 빚을 갚으라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걸려온 사내의 목소리를 잊었다. 쇠수세미로 불판을 닦다 보면 절대로 그의 협박에 지지 않겠다는 투지가 솟았다. 설거지부터 서빙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은영은 기진맥진했지만 한편으론 묘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기우는 밤늦게야 돌아오는 그녀를 안쓰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모두가 은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애초에 고가의 명품 목걸이를 주희에게 빌려왔을 때부터 남편은 못마땅해했다.
“꼭 그런 게 필요한가? 그런 거 안 해도 당신 충분히 돋보여.”
은영은 그러나 동창생들의 모임에서 기죽고 싶지 않았다. 강남의 여자고등학교 동창회는 명품 전시장이었다. 가방이나 구두는 기본이고 귀고리 목걸이도 명품 로고들이 새겨진 게 아니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동창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를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착실히 불려 흔들림 없는 안정감에 아이들도 성장해 시간적 여유까지 누리고 있었다. 은영은 세 번의 유산 후 시험관 아기까지 시도했으나 두 번은 석 달을 못 넘겼고 한 번은 5개월째에 유산이 되었다. 은영은 동창들이 아이 소식을 물을 때마다 군살없는 몸매와 한때 ‘위노나 라이더’로 불렸던 별명으로 겨우 상실감을 버텨냈다.
“역시 애를 안 낳아야 돼. 너는 어쩌면 이렇게 나이가 안 들어 보이니? 목주름도 하나 없이 피부가 도자기 같네. 그 목걸이가 딱 임자를 만났구나.”
넌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이 정도의 외모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넉넉하고 쳐진 군살은 모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생긴 훈장이기도 했다. 그날 은영은 유난히 깊이 파이고 몸에 딱 붙는 브이넥 니트와 스키니 청바지, 그리고 명품 목걸이 덕에 20대 같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은영은 만원 지하철에서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한기가 몰려왔다. 낡은 연립주택은 창호도 틀어지고 얇아 벌어진 창틀 사이로 열이 다 새나갔다. 은영은 잘 때만 겨우 전기장판을 켜고 난방은 끄고 지냈다. 그러나 한겨울에 접어든 1월 초순의 시린 아침 냉기가 은영은 싫지 않았다. 아니 살갗을 파고드는 냉기가 통쾌했다. 추위는 자신에 대한 채찍이자 신의 장난 같은 운명의 조롱이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주희로부터 잃어버린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명품이 아니라 가짜였다는 말을 들은 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과 배신감이 몰려왔다. 그동안 은영의 피를 말리고 이명이 생기도록 지낸 7년의 그 시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자신의 인생을 쥐고 이토록 어이없는 장난을 친단 말인가? 은영은 정신없이 주희와 헤어지고 돌아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신감에 휩싸였다. 온몸의 피가 격렬히 요동치고, 두통이 몰려온 머릿속은 곧 터져나갈 듯 부글거렸다. 이명은 창처럼 머릿속을 관통했다. 곧 온몸이 무기력해지면서 지독한 몸살이 찾아왔다. 입맛까지 잃어버리자 남편은 옆집에 사는 간호사를 불러 영양제를 맞게 했다. 그녀가 돌아가자 은영은 바늘을 빼 버렸다. 꼬박 열흘 동안 앓고 난 은영은 남편 기우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왜 내가 당신에게 버림받아야 하지?”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걸 안 남편은 당장 그 목걸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아주 현실적인 분노였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혼란스러움 끝에 나온 말이었다. 은영은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는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원룸은 이사 첫날부터 수도계량기가 터졌다. 전 세입자와 은영의 입주 사이 일주일의 시차 동안 비어 있던 집은 연일 계속된 강추위에 계량기가 터지고 실내 수도도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큰 캐리어 두 개를 들고 3층까지 계단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며 꽁꽁 얼어붙은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은영은 몸속에서 그동안 묵은 비늘들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혈관을 막고 있던 노폐물들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가는 것처럼 머릿속 두통도 날아가고 안도감이 몰려왔다. 은영은 놀랐다. 남편 기우는 자존심 강한 사람답게 은영을 원망하지 않았고 함께 빚도 갚아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토록 자유로운 것일까? 아니 운명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느낀 순간, 왜 그토록 그와 헤어지고 싶었던 걸까. 은영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따라 가보기로 했던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남편은 짐을 챙겨 집을 나온 은영을 이해할 수 없다며 화가 나 이삿날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가버렸다.
그토록 찬란하게 반짝이던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말을 들은 은영은 갑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짜가 아닐까, 의심이 몰려왔다. 허영심이었을까, 어쩌면 열등감일지도 몰라. 아니 허영심이야말로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되풀이되는 자문에 은영은 지쳐갔다. 왜 그토록 값비싼 목걸이가 필요했던 걸까. 은영은 전신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늘어난 눈가의 주름살이 마음에 들었다. 길고 매끄럽던 손도 덴 자국과 쇠수세미에 긁힌 자국, 굳은살이 박여 마디는 뭉툭하고 사포처럼 거칠어졌으며 핏줄들은 불룩불룩 튀어나왔다. 그토록 매끈하던 목도 가로로 주름이 생기기 시작해 선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한때 칼자국이라도 내고 싶었던 목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기까지도 은영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주방 유리창은 얼어서 얇은 곰팡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껴입은 경량패딩으로 막아내기엔 어림도 없는 추위였다. 추위 속에서 이명은 더욱 날카롭게 머릿속을 파고든다. 한파가 몰고 온 얼음의 날카로운 단면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기분이다. 이름모를 어떤 별에서 보낸 신호음일지도 몰라, 이명 초기에 은영은 어쩌면 자신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소리일 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피곤해서 생긴 호르몬 작용일 뿐이야.”
기우의 말에 은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아직도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몰랐다. 7년 만에 은행과 카드사의 빚을 모두 다 갚은 날, 은영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벅찬 감정이 차올랐다. 한 번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7년 동안 오직 한 곳을 향해 달렸다는 데 쾌감이 몰려왔다. 그날 저녁, 은영은 생전 처음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값비싼 저녁식사와 와인까지 한 잔 곁들여 마셨다. 남편 기우와도 동행하지 않고 혼자 온 것은 그런 자신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어째! 은영아, 그 목걸이 가짜였어.”
그런데 주희의 이 한마디는 은영의 모든 걸 뒤흔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아니 명백히 잘못 살았다는 회의가 몰려왔다. 7년간의 그 험한 시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으로 끝없이 거슬러가 자신의 존재마저 모두 부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목걸이가 아니라 자신의 50 평생이 모두 가짜 같았다. 신의 조롱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처음으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힘으로 내 운명을 만들어가고 싶어. 이제부터라도 내 안에서 나는 이 소리를 따라 가보고 싶어.”
은영은 화를 내며 이유를 묻는 기우에게 말했다. 경고인지 조롱인지 모를 이명이 언젠가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진언이 될 때까지 홀로 가보고 싶었다. 은영은 누구의 말에도 설득되지 않고 고집을 부려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은영은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빵을 좋아하는 자신의 입맛대로 양배추와 당근을 듬뿍 넣은 샐러드와 크로아상, 커피가 놓인 식탁이다. 꼭 밥을 먹어야 하는 기우 때문에 간식으로나 먹던 빵, 오늘따라 은영은 달게 아침을 먹는다. 면접이 있는 날이다. 홀로 된 은영이 시작한 첫 번째 일은 청각장애인 아이를 위한 활동지원사였다. 소리가 안 들리는 열 살짜리 아이에게 이 소란한 세계를 잘 전할 수 있을까, 은영은 아이의 정적과 자신의 소란을 나누고 싶었다. 이명이 쉬지 않고 머릿속을 파고든다. 은영은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가만히 감싼다. 은영이 살아있는 한 절대 그칠 리 없는 소리, 은영은 문득 이명이 지난 시간의 흔적기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정할 수 없고, 떼어낼 수도 없는 흔적이자 몸의 일부가 돼 버린 존재. 은영은 두 팔을 교차해 어깨를 감싸 안는다. 손가락 끝 마디마디로 소름이 돋은 몸의 감각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은영은 적어도 이것만은 놓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해진다. 내가 감각하는 것들, 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은영은 자신의 몸 전체를 감싸 안는다. 쉰 살 여자의 몸이 자박자박 떨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