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리뷰
부엉이 울음을 간직한 숲

- 영역 편혜영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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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부엉이 울음을 간직한 숲

- 영역 편혜영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 2012)가 소라 김-러셀(Sora Kim-Russell)의 영역으로 출간되었다. 『The Owl Cries』(Arcade, 2023)로 제목을 달리했다. 그간 영어로 번역된 편혜영의 작품은 Shirley Jackson Award를 수상한 『The Hole』(2017) 외에 『City of Ash and Red』(2018), 『The Law of Lines』(2020)가 있었으니 이번이 4권째다.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나왔다. 소설가와 번역가, 출판사의 호흡이 맞춤으로 어우러진 결과이고, 이를 통해 영어권 독자들도 일정 부분 확보하고 있으니 기쁜 일이다.

편혜영의 소설을 좋아해서 따라 읽는 필자로서도 이번 영역본을 읽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광대한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실종된 형을 찾아 나선 전직 변호사 이하인이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하인은 형 이경인의 후임자 박인수를 만나는데, 박인수는 이경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경인 실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독자의 기대는 이하인이 교통사고로 죽는 1부에서 일찍 어긋난다. 이로써 서쪽 숲의 비밀을 파헤칠 인물은 박인수가 된다. 이경인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또 이하인은 왜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죽었나?

이제 비밀을 풀 임무는 박인수에게 있지만 늘 술에 절어 사는 그가 합당한 역할을 할지 의문이다. 박인수는 “숲에부엉이가산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그에 자극받아 서쪽 숲 깊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한다. 기묘한 두려움을 안고 숲으로 들어간 박인수가 벌목으로 허허벌판이 된 나무무덤을 보고 눈물을 터트리고 부엉이 울음소리인지 기계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따라 숲으로 사라지는 소설 말미에 이르면, 독자는 이 소설이 누군가의 죽음을 밝히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이 세계의 어두운 진실에 다가가는 발걸음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게 된다.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스티븐 킹(Stephen King),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혹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등과 비견되는 편혜영의 디스토피아 소설은 이번에 숲을 배경으로 이 세계가 품고 있는 건조하고 잔혹한 삶의 원리를 대면하게 한다.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서스펜스 추리물로 읽으면 사건의 섣부른 해결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기대는 배반된다. 빠른 전개가 아닌 느릿한 긴장으로 이어지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하인이나 박인수, 혹은 불법 벌목의 중심에 있는 진선생도 아니고, 그 모든 삶의 어둠을 품은 숲, 숲속의 부엉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점에서 ‘서쪽 숲에 갔다’라는 서정적인 제목을 ‘The Owl Cries’로 바꾼 것은 절묘한 선택이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라지는 숲에서 울고 있는 부엉이는 이 세계의 불모와 비의를 전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촘촘히 작품을 잘 읽는 듬직한 역자 소라 김-러셀의 번역이 작품을 더 빛낸다. 원작의 잘못된 챕터 번호가 역서에서 수정되어 개운하고, 작품의 시적 효과를 더하는 번역이 매끄럽게 잘 읽힌다. 영역본 기준 16장 “숲에부엉이가산다”는 메모도 대담하게 “INTHEFORESTTHEOWLLIVES”로 옮겼고, 그 기이한 메모를 이해하기 위한 박인수 생각의 흐름을 문장을 달리 나누어 설득렸 있게 전달한 점도 충실하면서도 창의적인 번역으로 돋보이는 부분이다. 17장, “모든 일은 소박한 운명에 좌우되곤 했다”를 “Everything came down to simple twists of fate.”라고 옮긴 예라든가 주어 동사가 있는 원작의 평범한 문장을 짧은 스타카토로 끊어 관계절로 독립시켜서 읽는 호흡을 가쁘게 몰아간 예 등 사려 깊은 번역이 돋보인다. 문학 번역은 한 세계의 새로운 영토에서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유일한 길이고 좋은 번역가는 작품의 가장 충실한 독자이자 예리한 비평가다. 좋은 번역가와 출판사가 있어 지금-여기의 독자들과 지금-거기의 먼 독자들을 함께 만날 수 있는 편혜영은 이 세계의 절망과 불모를 파헤치는 고된 여정 속에서도 행복한 작가임이 틀림없다.

 

※ 영역 『서쪽 숲에 갔다』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김소라의 번역으로 2023년 미국 아케이드 출판사(Arcade Publishing)에서 출간되었다.

정은귀
번역가, 작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1969년생
역서 『밤엔 더 용감하지』 『패터슨』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고블린 도깨비 시장』 『야생 붓꽃』 『신실하고 고결한 밤』 『아베르노』, 산문집 『딸기 따러 가자』 『바람이 부는 시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