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역 『김동리 단편집』
- 불역 『김동리 단편집』
2024년 3월 28일, 대산문화재단이 번역과 출판을 지원한 『김동리 단편집』의 프랑스어 번역판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김동리 단편소설 6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출간하는 프로젝트로, 내가 2011년 한국문학 번역 지원자로 선정된 지 꼭 13년 만이다. 2008년까지 라로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기행수필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자크 살공 작가가 보조 번역을 맡았다. 아시아 관련 도서 전문 출판사인 레 젱드 사방트에서 출간된 프랑스어 단편집에는 「무녀도」, 「황토기」, 「역마」, 「등신불」, 「까치소리」, 「저승새」가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다. 작품 배열순서는 작가의 종교사상이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각 작품의 출판 연도 순이다.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고민했던 것이 「등신불」과 「저승새」였다. 결국 프랑스 독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한 「저승새」를 표제작으로 결정했다. 출판사에서 선택한 단편집의 표지 이미지는 ‘산대극’에 사용했던 무당 탈로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다. ‘무당 탈’의 이미지와 ‘저승새’ 글자의 의미가 어우러지는 책 표지는 김동리의 종교사상의 두 축을 이루는 무속과 불교적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의도한 결과물이 아니라서 더욱더 마음에 든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6편의 단편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상도 사투리와 만연체의 긴 문장들, 그리고 고전적인 분위기의 상세한 세부 묘사, 무당의 굿 노래, 넋두리와 같은 토속적 언어와 색채를 프랑스어로 지켜낸다는 것은 단순한 번역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문을 이해하는 번역자의 언어능력과 프랑스어로의 언어수행을 위한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무속과 같은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임에도 불구하고 김동리의 작품 중 단 세 작품, 『무녀도』(요약본), 『을화』, 『사반의 십자가』만이 프랑스어로 번역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박사 논문에서 김동리를 연구하지 않았고 깊은 울림으로 긴 여운을 주는 그의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았더라면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번역하기 힘든 원작에 충실하면서 완성도가 높은 번역을 하려니 그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이외에도, 번역과 출간이 지연된 데는 개인적 사정과 코로나 19 팬데믹이 크게 작용했다. 번역 지원자로 선정된 다음 해인 2012년에 장 물랭―리옹3대학교 언어대학에 부교수로 임용되어 5~6년 동안은 번역 작업은 거의 하지 않고 한국어 교육과정의 전공 개설과 발전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겨 번역을 끝내고 재단의 최종 심사를 거쳐 출판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 여파로 출판업계도 심각한 영향을 받아 정상 가동을 위해서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물론, 이 기간에 원문과 번역본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번역의 충실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교정 작업을 다시 한번 더 진행할 수 있었다. 『김동리 단편집』은 이런 사연과 과정을 거쳐 올해 초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이다.
수년 전부터, 수많은 한국소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작가’가 쓴 이 6편의 단편소설은 더 선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프랑스 독자들에게 다가가리라 확신한다. 무려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신 대산문화재단과 저작권자로서 번역과 출판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서영은 작가님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 불역 『김동리 단편집』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와 장-자크 살공의 공동번역으로 프랑스 레 젱드 사방트(Les Indes Savantes)에서 2024년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