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샤먼으로서의 작가, 한판 굿으로서의 소설

-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

  • 창작후기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샤먼으로서의 작가, 한판 굿으로서의 소설

-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

 

자연인으로서의 무녀의 삶과 그 애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꽤 오래 묵은 작품이다. 2011년경에 초고를 완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작품은 「황금거울」이라는 제목으로 ‘진주가을문예’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이후, 장편 분량으로 수정하여 2018년과 2021년 두 번의 도전 끝에 대산창작기금 선정 소식을 들었다. 대산창작기금 선정은 신인 작가들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일일 것이다. 신인에서 중견작가로 올라서는 주요 관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신력이 있는 기금이기에 유명출판사에서 출간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여겼다. 그러나 내게 책 출간은 또다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누군가는 아직 무명에 불과한 40대 남성 작가의 작품을 출간해주는 출판사는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맞는 말일 성도 싶었다.

처음에는 문학 전문 출판사의 리스트를 뽑고 차례대로 원고를 보냈다. 2~3개월 주기로 거절의 변을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대개 무속이라는 소재의 시의성을 문제 삼았다. 유명 문예지에서 오랫동안 편집위원을 한 적이 있는 옛 은사에게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1년을 기다린 뒤에야 답변을 얻었다. 결과는 역시나 출간 불가였다. 결국, 기금 선정 3년이 지나고서야 이 작품은 빛을 보게 되었다. 무속에 대해 이해가 깊은 편집장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 3년간이 내게는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지만, 선정작인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이하 『선녀 씨』)에게는 과히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출판사 거절의 변과 은사의 피드백 등을 받을 때마다 작품을 보다 객관화할 수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장면이 추가되었고 불필요하거나 과잉된 내용은 삭제되었다. 무엇보다, 시와 무속, 퀴어라는 세 가지 이질적인 요소가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낸 것이 큰 수확이었다. 어머니의 20주기 기일에 맞춰 출간을 준비했으나 결국은 시일을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20주기를 기념해 연 오구굿을 보며 새로운 영감에 사로잡혔고, 덕분에 작품 속 오구굿을 형상화하는 데에 밀도를 키울 수 있었다. 조금 미진하게 느껴졌던 결말이 전체의 맥락과 딱 떨어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했다. 어머니 기일에 맞춰 무리하게 책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선녀 씨』의 본령은 기금에 선정된 이전보다 이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이번 소설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띤다. 어머니를 무녀로 둔 남다른 가족사가 노출되는 첫 작품이었다. 요즘 문단을 보면, 소위 오토픽션이라는 이름으로 작가 자신의 삶을 소설화하는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듯하다. 아마 이러한 현상은 얼마간 한국의 소설 문학에서 자취를 감췄던 진정성에 대한 갈구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나 또한 『선녀 씨』를 통해, 이미 낡아 버린 것이라고 치부되는 ‘진정성’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는지.

내게 어머니 혹은 무속의 세계는 내가 문학을 선택한 최초의 동기이자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작가가 쓰고 싶은 것을 비로소 써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내림굿을 받고 성무(成巫)가 된 샤먼처럼, 이 소설을 쓰고 나서야 나는 진짜배기 작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가 물려준 샤먼의 유전자가 소설가의 자질로서 발현되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는 『선녀 씨』를 썼다. 쓰는 행위 자체가 한판 어머니를 애도하는 오구굿이었다.

고 박경리 선생은 소설은 공수이고 소설가는 무당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주는 것, 샤먼과 소설가는 그 지점에서 만난다. 소설가는 타자화된 존재들을 통해 이 세상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10여 년 넘게 『선녀 씨』를 써왔던 지난 시간이 그것을 깨닫는 성숙의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잘 보내드렸다는 후련함은 덤으로 얻는 행운이었다. 작가 후기에 남긴 무녀 ‘선녀 씨’의 축원을 덧붙인다.

 

이 책 지니신 모든 분들, 복(福)받으시고 원(願)이루시길.

 

※ 필자의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4년 실천문학사에서 출판되었다.

김개영
소설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6년생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 소설집 『거울사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