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판계 ‘빅뉴스’ 중 하나는 지난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6월 26일부터 닷새간 열린 이 행사엔 유료 관람객 15만 명이 몰렸다. 지난해 13만 명보다 15% 넘게 늘었다. 주말엔 입장하는 데만 1~2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행사장 내 각 출판사가 마련한 부스마다 긴 줄이 늘어섰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사람이 많아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단 후기가 쏟아졌다.
서울국제도서전이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긴 하지만, 출판계에선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을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의 갈등으로 예산 지원이 중단된 데다, 갈수록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출판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가운데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종합독서율은 43.0%에 그쳤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약 6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단 뜻이다. 1994년부터 해당 조사를 실시한 이래로 가장 낮은 수치다. 참고로 1994년 성인 연간 종합독서율은 86.8%에 달했다.
출판사 영업이익도 급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형 출판사 71개사의 총영업이익은 1,136억 원으로, 전년보다 4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교·교원 등 교육 출판 43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45.7% 줄었고, 문학동네·창비 등 단행본 출판사 21곳의 영업이익은 39.6% 감소했다. 교보문고·알라딘·예스24·리브로·영풍문고 등 5대 대형서점의 영업이익은 2022년 196억 원 흑자에서 지난해 114억 원 적자로 전환했다. 출협은 “원자잿값과 인건비 등 생산비가 상승했지만, 책값은 별로 오르지 않아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국내 최고 권위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의 주관 출판사가 47년 만에 바뀐 것도 출판시장 불황과 연관이 없지 않다. 이 상은 1977년 문학사상이 작가 이상을 기리며 제정한 상이다. 1회 수상자인 소설가 김승옥을 비롯해 박완서·이청준·오정희·최인호·이문열·양귀자·신경숙·한강 등이 수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해마다 펴내는 수상작품집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출판사의 경영난과 저작권 논란으로 인한 권위 추락 등이 겹쳐 지난 6월 다산북스에 매각됐다.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창간한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도 휴간에 들어갔고, 신인문학상 시행도 중단됐다. 불황 속에 문학의 역사 한 페이지가 스러졌다.
이토록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불구하고, 서울국제도서전은 어떻게 흥행할 수 있었을까. 먼저 흥행을 이끈 주체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올해 도서전 방문객의 70~80%는 2030세대다.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자란 이들은 ‘직접 경험’에 목말라 있다. 취미나 관심사와 관련한 물건이나 장소로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선호하는 세대기도 하다. K-콘텐츠가 풍성한 환경에서 ‘팬덤 문화’를 즐기는 것에도 익숙하다.
도서전이 젊은 세대의 이 같은 욕망을 충족시켰다는 분석이다. 이번 도서전엔 책을 홍보하는 일반적인 부스뿐 아니라 각종 굿즈를 판매하고 북토크·사인회 등 이벤트를 여는 부스도 적지 않았다. 문학동네는 조지 오웰·톨스토이·제인 오스틴 등 대문호들의 인물 사진으로 티셔츠를 만들어 ‘완판’시켰다. 민음사가 한정수량으로 제작한 북커버를 구입하기 위해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대형 출판사와 중소형 출판사를 불문하고 각종 책갈피와 스티커 등 ‘굿즈 열전’을 펼쳤다. 고전과 명작, 베스트셀러 리커버 한정판도 인기였다.
유명 작가의 사인회나 북토크는 물론 체험형 이벤트에도 젊은 관람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전시회장 내 설치된 ‘시 선물 전화부스’는 전화를 걸면 시를 낭송해주는 이벤트로, 2000건이 넘는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책을 직접 제작하는 프로그램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취향에 맞는 에세이를 추천해주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그 밖에도 작가가 책을 구입한 독자에게 프리 허그를 해주거나 고민 상담을 해주는 이벤트도 이어졌다.
SNS 등에서 유행하는 ‘텍스트 힙’ 문화가 한몫했다는 설명도 있다. ‘텍스트 힙’은 활자를 의미하는 ‘텍스트’와 멋있거나 개성 있는 것을 뜻하는 ‘힙하다’를 합친 신조어로, 독서 행위를 멋지게 보고 자랑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유튜브 쇼츠나 틱톡 등 짧은 영상이 범람하면서 반대급부로 오히려 책을 읽는 행위가 특별하고 개성 있는 문화로 떠올랐단 설명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SNS에선 책 표지를 찍어 올리거나, 책을 쌓아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도서전 방문 역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일종의 ‘힙한’ 문화가 됐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독서 행위가 ‘보여지기식 문화’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보내지만, 반대로 출판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반응이 더 많다. 무엇이든 가까이하다 보면 친해지고 애정이 가기 마련이다. 보여주기로 시작한 독서일지라도, 책을 가볍고 재밌게 접하는 계기가 늘어나면 결국엔 책을 사랑하는 열독자도 함께 덩치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도서전에서 한 출판사가 홍보부스에 붙여둔 문구로 글을 마무리한다.
Q.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을 부르는 말은?
오답 : 지적허영
정답 : 출판계의 빛과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