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재를 그 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처음 전학 오던 그날부터 나는 형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에게 형재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을 때 나는 좀 우쭐했었다. 형재가 반가워하면서 나를 반길 줄 알았다. 나는 유나름이니까. 나는 3학년 때부터 전학 오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였고 줄곧 반장이었다. 하지만 형재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고개를 들어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책상 아래로 코를 박았다. 그러고는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별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공부는 당연히 못하게 생겼고.’
나는 형재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이 싫어하게 생겼고.’
보나 마나 뻔했다. 수업시간에 책상 밑으로 코를 박고 있는 아이는 인기가 없는 아이일 확률이 높다. 인기는 무슨,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내 예상대로 형재는 반 아이들과 친하지 않았다. 친하기는커녕 우리 반에 없는 아이 같았다. 누구도 형재에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형재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다가가지도 말을 시키지도 않았다. 교실에서도 혼자였고 급식실에서도 혼자였다. 체육 시간에만 선생님이 정해주는 짝꿍이 있었다.
‘내가 잘해줘 볼까?’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형재를 말하게 만들고 아이들과 어울리게 만들면 아이들이 나를 대단하게 볼 거 같았다. 그건 정말 괜찮은 계획 같았다.
“나름아. 너 혹시 형재한테 관심 있는 거야?”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형재 팔을 잡아끄는데 유진이가 물었다. 나는 심장이 멈출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자존심도 상했다. 나는 대단한 아이가 되고 싶은 계획을 포기했다.
“나름이가 형재를 좋아한다더라.”
하지만 유진이가 한 말 때문에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우리 반에서만 놀림을 받았다면 그래도 괜찮다. 시골 학교인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35명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생에게 퍼졌다. 내가 울고불고하고 나서야 그 소문은 잠잠해졌다. 나는 그 소문이 났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형재가 원망스러웠다. 절대 아니라고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나는 형재라는 이름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는 게 싫었다. 그날부터였다. 내가 형재를 그 아이로 부른 것은.
그 아이는 AI 같았다. 아침에 학교에 오면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있었다. 수업을 듣는 건지 조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수업시간 내내 그러고 있다가 화장실이나 급식실 그리고 체육 시간에 강당에 갈 때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름이 너 왜 자꾸 형재를 힐끔거려? 관심 없다면서?”
이번에는 서아가 물었다.
“히, 히, 힐끔거리기는 누가? 그런 적 없거든.”
나는 화를 내며 팔짝 뛰었다.
“아닌데. 내가 계속 지켜봤는데 나름이 네가 형재를 힐끔거렸거든.”
이상한 아이다. 왜 나를 계속 지켜보는데?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울고불고 난리 치는 모습을 보여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투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요러고 형재를 계속 바라봤거든.” 서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형재를 힐끔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그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설마 얘가 서아가 하는 말을 진짜로 믿는 건 아니겠지? 자존심이 상하고 화도 났다.
“왜 그래?”
그때 유진이가 다가왔다.
“나름이가 형재를 자꾸 바라봐서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서아가 말했다.
“냄새가 나서 그랬어. 아주 지독한 냄새. 애가 양치질도 제대로 안 하고 옷도 안 갈아입나 봐. 나는 냄새에 민감하고 예민하단 말이야.”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나는 당황했다. 그 아이에게서 냄새가 나다니! 세상에 어쩜 이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아이들 눈이 모두 나와 그 아이에게로 향했다. 교실은 잠시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양치질도 하지 않고 옷도 잘 갈아입지 않는 아이로 소문이 났다. 그 소문은 전교생 모두에게 퍼졌다. 아이들은 그 아이 옆을 지나갈 때며 코를 쥐어 잡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미안했다.
‘왜 바보처럼 아니라고 말도 못 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아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서 진짜 냄새가 나는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의자를 삐딱하게 놓고 앉았다.
“선생님. 짝꿍도 한 번씩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선생님에게도 볼멘소리를 했다.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싫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바꾸거든. 다음 주에는 짝꿍을 바꿀 거야.”
“선생님. 이번에 바꿀 때는 앉고 싶은 아이랑 앉게 해주세요.”
“맞아요, 선생님 마음대로 하지 마시고 우리 마음대로 하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앞다퉈 말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엄청 높았다. 바람도 산들산들 불었다.
“수업 끝나고 놀다 갈래? 운동장에서 좀 놀다가 이거 같이할 사람?”
유진이가 립밤과 손톱 꾸미기 세트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나.”
서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름이 너도 같이 놀자.”
유진이 말에 나는 망설였다. 나는 등하굣길에 스쿨버스를 타고 다닌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먼 곳에 있다. 걸어서 가려면 20분 이상 걸리는 곳이다.
“좋아, 놀다 갈게.”
그렇다고 해서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손톱 꾸미기를 꼭 하고 싶었다.
“스쿨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절대 안 돼.”
스쿨버스 기사 선생님과 스쿨버스 도우미 선생님은 손사래를 쳤다.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가 도로 올게. 내가 올 동안 기다려야 해.”
나는 유진이에게 말했다.
“좋아. 나름이 네가 올 동안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게. 손톱 꾸미는 거는 네가 오고 나서 하지 뭐.”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스쿨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는 곧장 학교로 내달렸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유진이와 서아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나름이 왔다. 우리 손톱 꾸미기 하자.”
유진이가 가방에서 립밤과 손톱 꾸미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냈다. 나와 유진이 그리고 서아는 강당 뒤에 있는 벤치에 앉아 립밤을 발라보고 손톱 꾸미기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드득
나뭇잎을 치는 빗방울 소리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늘이 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느새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집에 가자.”
유진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굵어졌다. 유진이와 서아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교문을 향해 내달렸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해? 너희는 집이 가깝지만 나는 멀단 말이야.”
나는 소리쳤다. 하지만 요란한 빗소리 때문인지 유진이와 서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교실로 향했다. 혹시 주인 없는 우산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학교는 어둠에 휩싸였다.
‘아, 무서워.’
학교가 거대한 괴물의 입 같았다. 내가 괴물의 입안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재빨리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섰다.
비는 폭우로 변해있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보다 더 무서운 건 어둠이었다. 사방은 캄캄했다. 어둠을 뚫고 집까지 갈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어떻게 해.’
나는 교문 옆에 서서 울면서 유진이와 서아를 원망했다.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들 같으니라고.
‘엄마는 나를 찾지도 않나? 내가 보이지 않으면 찾아 나서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런 시골로 이사를 왔담.’
버섯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이런 곳으로 귀농한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한참 울고 서 있을 때였다. 우산 하나가 쓱 내 머리 위로 들어왔다. 간이 철렁했다. 나는 천천히 뒤돌아봤다. 그 아이였다. 놀랍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가자.”
그 아이가 말했다.
“어, 어디를?”
“네 집까지 데려다줄게.” 관심은 넣어두라고, 참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휴대폰 좀 빌려줘. 내 휴대폰은 가방에 있거든. 가방은 집에 있고,”
나는 그 아이 휴대폰을 빌려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집에 가방이 있어서 엉뚱한 곳만 찾아봤다고 했다. 당장 학교 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여기 조심해.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깊은 웅덩이가 생기는 곳이야.”
그 아이는 길도 잘 알았다.
학교와 집 중간쯤에서 엄마를 만났다.
“학교 앞에 사니? 혼자 가기 무서우면 아줌마가 데려다줄까?”
엄마가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 아이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허리를 푹 숙인 다음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내일 학교에 와서 아이들에게 소문내면 어쩌지? 나를 데려다줬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나에게 뭐라고 할까?’
나는 걱정이 되어 잠도 오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서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내 신경은 온통 그 아이에게 향했다. 그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심장이 덜커덩거렸다. 나는 그 아이가 화장실에 가면 교실 밖으로 따라 나가 복도를 서성거렸다.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둘만의 비밀인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커졌다.
‘나 때문에 지독한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아이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 앞에서 사실대로 말할 용기는 없었다.
“오늘 약속대로 짝꿍을 바꾸기로 하겠어요. 모두 교실 앞으로 나오세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교실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러고는 짝꿍이 되고 싶은 사람끼리 서라고 했다. 한 명 두 명 짝꿍이 되고 싶은 아이들끼리 손을 잡았다. 그때 유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혹시 유진이가 나와 짝꿍이 되고 싶은 건가?’
나는 유진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그 아이 옆에 가서 섰다. 아이들이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요즘 공부를 잘 하지 않아서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거 같아. 학원을 안 다니니까 자꾸 놀고 싶은 생각만 들거든. 내가 좋아하는 아이랑 짝꿍이 되면 매일 놀 생각만 할 거 같아서 말이야. 진짜 짝꿍이 되고 싶은 아이랑은 나중에 될래. 지금은 공부해야 해서 옆에서 말도 안 시키고 조용히 있는 짝꿍이 필요해.”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무슨 거짓말이 이렇게 매끄럽게 나온담. 내가 지금 진짜 짝꿍이 되고 싶은 아이도 그 아이인데 말이다.
“조용한 짝꿍으로는 형재가 최고지.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하지만 말이야.”
유진이가 픽 웃으며 말했다.
“나랑 짝꿍 된 선물.”
나는 그 아이에게 언디 캐릭터가 그려진 치약과 칫솔이 들어있는 통을 주었다. 그 아이는 눈을 끔벅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아이 손에 접은 메모지를 쥐여주었다.
- 오늘 짝꿍 바꾸는 날이야. 내가 네 옆으로 갈게. 다시 짝꿍이 되면 내 계획대로 해. 급식을 먹고 나면 나랑 꼭 양치질을 같이하자. 운동장 수돗가에서. 그럼 너는 지저분한 아이가 아니라고 전교생에게 금세 소문날 거야. 그리고 치약통 안을 보면 작은 향수병이 있어. 전교생이 모이는 날 향수를 뿌려. 너한테 좋은 냄새가 난다고 그 소문도 빛의 속도로 날 거야.
형재야.
미안해.
그리고 그날 고마웠어.
너랑 좋은 짝꿍이 되고 싶어. -
나는 메모를 읽는 형재를 바라봤다. 이제 그 아이를 형재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