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가장 먼 곳

  • 글밭단상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가장 먼 곳

가장 먼 곳을 본다. 그러나 가장 먼 곳은 가장 멀어서 나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눈으로 보이는 곳 너머야말로 가장 먼 곳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가장 먼 곳은 본다기보다 보고자 하는 곳에 가까울 거다. 나는 가장 먼 곳을 보고 싶다.

 

*

 

중학생 때 보았던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이 나왔다. 남녀 주인공은 오랜 기간 사귀다 헤어진 연인 사이인데 사업 때문에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밤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네가 한 번 되어 봤으면 좋겠어. 나는 한여름이 돼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좀 알았으면 좋겠어.”2)

성실히 드라마를 챙겨 보던 10년 전의 나는 그 대사를 상황적으로는 이해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닌 네가 되고 싶다는 말이, 네가 되어 너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마음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은 그때까지의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저 대사를 이해하게 되리란 서늘한 예감이 있었던 걸까? 드라마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다른 대사는 전부 흐릿한데, 유독 저 대사만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꽤 자주 저 문장을 속으로 읊조린다. 10년 전 보았던 남자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이제야 생각하면서.

요즘은 독서 논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은데 가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독서 노트를 쓰게 할 때마다 진이 빠진다. 얼마 전에는 2학년 아이가 노트에 도저히 쓸 말이 없다고 하길래 옆에 앉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날 아이는 「무지개 물고기」를 읽었는데, 읽고 난 후 느낌을 적는 칸이 텅텅 비어 있었다. 아이는 아무런 느낌도 안 들었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무지개 물고기의 행동이 어때 보이는지, 이야기의 초반과 후반 중 언제가 더 행복해 보이는지 등을 물었는데 아이는 계속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그러다 내가 아이에게 “태하가 무지개 물고기였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라고 물었는데,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그렇지, 사실 그게 맞는 걸지도 모르지. 너나 나나 물고기가 아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무지개색 비늘은커녕 그냥 비늘도 없으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런 상황이 되어보기란 어려운 일일 테니까.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아이에게 힘들면 그만 써도 된다고 말한 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책을 정리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네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하던 남자와 그 장면을 골똘히 바라보던 그때의 나를 생각했다. 왜 그토록 오래 그 대사를 곱씹으며 지내왔는지도.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는 종종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기를 꿈꿨다. 내 몸을 찢고 나가서 다른 몸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라는 경계를 지우개로 지우거나 곡괭이로 허물고 싶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더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게 되었을 때, 가까운 이들의 우울을 의심하게 될 때,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을 때, 이곳이 싫다는 말이 꼭 나를 떠날 거라는 말처럼 들릴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 앞에서 주저하게 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나여서 너를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게 무서웠다.

즐겨 듣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흐른다. “환생이 있다면 사람은 노래 따윈 부르지 않겠지.”3)

처음 듣자마자 이거였네, 하고 속으로 외쳤다. 여러 번 살 수 있다면, 여러 몸으로 여러 삶을 살 수 있다면 노래 따윈 부르지 않았을 거라는 게 무슨 마음인지 너무나 알 것 같았다. 환생할 수 없어서 나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읽고 쓴다. 여러 몸, 여러 마음에 잠시 깃들어 보려고. 내가 나를 찢을 수 없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넓히는 것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실 그때 태하에게 하려다 못한 말이 있다. ‘그런 걸 생각하려고 우리가 책을 읽는 게 아닐까?’라는 말. 나의 믿음을 강요하는 것 같아 말하지 못했지만, 그 생각은 나에게는 여전히 진실하다. 적어도 나는 누군가가 되어보고 싶어서 읽고 쓴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는 걸 계속한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읽고 써도 이해는 녹록지 못하다. 네가 되지 못한 채 너를 헤아리는 일이란 필연적으로 실패의 가능성이 더 농후한 법이므로.10년을 지나오면서 나는 이제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인물의 마음과 나의 마음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다름이 있을 것이고, 그러니 앞에 썼던 문장은 이렇게 고쳐야 더 정확할 것이다. ‘10년 전 보았던 남자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계속 생각하면서’라고.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 사람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가장 멀리 떨어진 사이라는 말이 주는 서늘함을 좋아한다. 가장 먼 곳이란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가장 먼 곳을 보기 위해 그저 계속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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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은지 시인의 시 「정말 먼 곳」을 변형하였다.

2) <연애의 발견>, 2014

3) 호시노 겐의 <환생(生まれ変わり)>

강수빈
소설가, 제22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1999년생
단편소설 「봄에 나는 것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