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전북 지역의 ‘표준어’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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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전북 지역의 ‘표준어’ 단상

며칠 전 임실의 어느 보리밥집에서 밥을 비비는데, 느닷없이 “거섭을 많이 너야 혀(넣어야 해)”하는 친구의 말에 빵 터졌다. 대체 얼마 만에 들어본 우리의 사투리(방언?)인가. 물론 국어사전에도 있는 표제어이니 사투리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거섭을 마니(많이) 너야(넣어야) 만나다(맛있다)”고 한 할머니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귀향한 지 5년여, 불쑥불쑥 이런 탯말(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준 영혼의 말)을 들으면 40년도 더 넘게 산 서울이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진짜 내가 고향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말은 사실 수두룩 박박이다. 희한한 것은 많아야 30여 가구 사는 동네마다 꼭 ‘공공의 적’이 있다는 거다. 예전엔 두레도 있고 품앗이도 하며 수공업적으로 농사를 지었건만, 시방(지금)은 아조(아주) 인심이 썩 나빠져 안타깝다. 그중에서도 공동체 생활을 할 자질이 안되고, 되레 동네일에 해코지(훼방이나 비방)를 하는 인간들이 한두 명 있다는 말이다. 술자리에서 동네 형이 어느 사람을 지칭해 “그놈은 폴새(진작에) 어장을 내버리고 추방(덕석말이, ‘덕석’은 멍석)시켰어야 헌디”라고 해 ‘어장을 내다’의 뜻을 물었다. 뜻 반, 느낌 반으로 짐작건대 ‘결단을 내다’는 의미일 터.

이웃집 형수가 자두를 한 바가지 따주면서 “삼촌, 물짜게 생깃지만 함 먹어보시오” 하는데 ‘물짜다(못나다)’는 말도 생경했다. 보기에 형편없다, 진짜 못생겼다는 뜻. 그런가 하면 팔순이 넘은 할매가 “선거를 크게 졌는디도 여적(아직도) 영금을 못 본 모양”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 이때의 ‘영금’은 따끔한 맛. “영금을 더 봐야-혀”등으로 쓴다. 민심 안 따르는 꼴불견 정치인들을 힐난하는 말일 터. ‘영쌩’이라는 말도 있다. 자기의 입맛이나 취미에 전혀 맞지 않은 것을 강조할 때 쓴다. “아이고, 나는 그거 영쌩이여”하면 칠색 팔색한다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이런 단어야말로 진짜 탯말이다. 이런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아주 자연스러운 말인데도 처음 들어본 것을 보면, 나도 대도시 물이 묻기는 많이 묻은 것 같아 씁쓸하다.

시골에 살다 보면 천지삐까리인 이런 말들이 할머니·할아버지, 아버지·어머니들이 잇따라 돌아가시면 이 땅에서 싸그리(몽땅) 사라질 게 분명하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언어박물관’이 하나씩 없어진다는 말이 어찌 빈말이랴. 살려 쓰고, 자주 쓰고 싶은 토박이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주변에서 차차 잊혀 가고 있다. 멸실 위기라는 제주도 방언을 어찌 알아듣기 쉽겠는가. 하지만 그런 말이 없어진다면 어찌 ‘제주도’라 할 수 있으랴. 동식물을 보전하고 환경 보호도 시급하지만, 우리의 언어도 보전대책이 시급한 까닭이다.

흔히 ‘조선팔도’라 하는데, 팔도마다 특유의 사투리와 방언이 있다. 그 사투리와 방언은 그 지방의 ‘표준어’에 다름 아닐 터. 다른 지역 사람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특유의 말씨, 억양, 고저장단이 있다. 그것을 흉내 내고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며 몸에 밴 ‘숨은 유전자’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총선 과정에서 한 후보가 경상도 말로 “쫄았제?”라 해 화제가 됐는데, 팔도 버전(쫀겨? 쫄았능가? 쫄아부렸냐잉? 등)이 곧바로 출시돼 한동안 웃은 적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들으면, 나는 갑자기 사는 게 즐거워진다.

얼마 전, 모모한 인사들을 초대한 저녁 자리가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꾸덕꾸덕 말린 홍어를 직화로 구워 쭉쭉 찢어 고추장을 찍어 먹는데, 일미였다. 라면을 몇 개 끓여 저녁을 대신하는데, 숟가락이 엇갈리며 내용물이 조금 남았다. 한 분이 연장자에게 들이대며 하는 말씀에 정말 모처럼 빠앙 터졌다. “냉기면(남기면) 쓰것소. 저녁으로 때와 버리시요” 와아! 때와 버리라니? 이것은 그냥 읽거나 쓰면 재미가 ‘1도’ 없다. 몇 번을 들어도 재밌고 만나다(맛이 있다). 전라도 토종 버전으로 해야 죽여주는 것을. 들려줄 수 없어 유감이지만, 그 억양과 말씨, 소리의 고저장단을 어찌 글로 숭내(흉내)낼 수 있으랴. 나는 전북 출신이므로 당연히 전라북도의 요로코럼 재미난 ‘표준어’를 사랑한다. 큼메마시!

최영록
생활 글 작가, 1957년생
저서 『백수의 월요병』 『나는 휴머니스트다』 『어느 백수의 노래』 『은행잎편지 108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