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 단편소설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숲속에 위치한 리조트에 가기로 했다. 넷이 모여, 집에 가야 할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함께 노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우리가 대학 내 답사 동아리에서 만나 어울려 지내던 시절에는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40대 후반을 향하고 있었고, 1년에 한 번 만나는 것조차 어려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앙금이 쌓였거나 다퉈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부분의 이 나이대 사람들이 그러하듯 각자의 인생을 사는 데 바빴을 뿐. 우선 오랫동안 독일에서 유학했던 주미는 이제 캐나다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남자와 살고 있었다. 외국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주미를 보기가 힘든 건 당연했지만 같은 한국 하늘 아래 살더라도 결혼해 신도시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소희와 결혼을 안 한 나나 다혜 사이엔 예전만큼 접점이 많지 않았다. 정규직 회사원인 다혜와 프리랜서 통역가인 나의 일상이 겹치기도 힘들었고. 넷이서 마지막으로 다 같이 시간을 보낸 게 언제더라? 어쩌면 11년 전, 그 사고 이후 주미가 한국을 방문한 걸 계기로 새로 분양받은 소희네 집에 집들이 겸 갔을 때가 마지막이었을지도 몰랐다. 2년 전 다혜 아버지의 장례식이 주미를 뺀 나머지 셋이라도 함께 했던 마지막 기억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안타깝게도 그 자리엔 내가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갑작스러운 염증 반응으로 온몸이 퉁퉁 붓고 고열에 시달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온갖 검사를 하고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의사는 스트레스와 긴장 탓일 것 같다며 일을 줄이라고 권했지만, 나는 끝내 줄이지 못했다.

주미가 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즈음 나는 몇 달째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어 몇 시간 동안 천장을 보며 누워 있는 날들이 계속되었는데, 그건 그때까지 내 인생에는 없던 일이었다. 나는 그 누구도 강제한 적 없지만 언제나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깨자마자 공복에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신 후 조깅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한 다음 한국어로 된 신문을 정독하거나 영어로 된 뉴스를 보며 언제고 일거리가 주어졌을 때를 대비해 어휘와 표현을 공부했다.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말하는 유튜버의 동영상을 우연히 본 이후에는 짜투리 시간에 경제 관련 책을 읽었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인생의 동력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목표와 나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적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건 미래가 불안정한 프리랜서 통역사의 삶을 선택한 이상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 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 직업과 무관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라는 깨달음이 느닷없이 나를 찾아왔다. 내 상태를 걱정하기 시작한 애인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상담자는 안경을 손끝으로 올리며 그것이 나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일정 부분 맞는 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정주부였던 엄마를 잃은 이후, 나는 내가 엄마의 삶이 유의미했음을 세상에 알려줄 유일한 증거라고 믿었고 ― 나와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아 왔으나, 삼수를 하고서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도 못했고, 지금껏 변변한 직업조차 갖지 못한 채 오십 대가 되어버린 오빠가 아니라 내가 ―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지 않게 느껴지거나, 인생의 활기를 마법처럼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혜가 단체 채팅창에 주미가 모처럼 아이도 없이 혼자 한국에 와 머무는데 1박 2일 호캉스를 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주미가 3년 만에 귀국한 것인데도. 그만큼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귀찮기만 했고, 어디를 가기는커녕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애인은 무기력할수록 다녀와야 한다고 나를 독려했다. “기분 전환이 될 거야.” 그러려나. 마음이 조금 동하긴 했지만 내가 마침내 좋다고 메시지를 보낸 건 애인의 독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다혜 아버지의 장례식이 이맘때였다는 것을 다행히 기억해냈고 가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이런 식으로나마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겨울엔 스키객으로, 한여름엔 워터파크 이용객으로 붐비는 리조트였다. 다혜가 회사를 통해 꽤 좋은 객실을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는데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어차피 만나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목적인 호캉스 계획이었으므로 누구도 반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계획대로 6월의 어느 주말,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리조트로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오랜만에 다 같이 붙어 지내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우려가 됐는데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런 걱정을 한 게 무색해졌다. 한강이 반짝이고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차 안에서 내다보다 보니 오래전 함께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떠났던 여행의 기억이, 그때의 설렜던 기분이 조금씩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우리가 답사 활동과 무관하게 처음으로 넷이서 함께 간 여행지는 남이섬이었다. 당시 인기있던 여행지여서 선택했을 텐데 그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비추던 길고 길었던 초봄의 햇빛만은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우리를 향해 희망을 속삭이는 듯했던 그 햇빛.

숙소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잠시 차에서 내려 연잎으로 뒤덮인 강을 내다보며 점심을 먹기도 했다. 숯불닭갈비는 물론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도 들기름 향이 고소한 막국수도 모두 맛있어 나는 몇 달간 식욕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 무색하게 제법 음식을 먹었다. 다혜가 덕분에 장례식을 잘 치렀는데 변변히 답례도 하지 못했다며 점심 식사 비용을 내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미안해. 장례식에도 못 가고.”

“괜찮다니까. 아팠잖아. 조의금도 두둑히 줬고.”다혜가 웃으며 내 어깨를 다독였다.

그런 다음 우리는 마당에 나란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카운터 앞에 놓여 있던 야구르트를 하나씩 마셨다. 강물에 떠 있는 연초록의 연잎들이 은은한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처럼 반짝이며 움직였고, 옥수숫대가 들판마다 푸르게 솟아 있었다.

허름한 외관의 골프웨어 할인매장들과 강변을 따라 핀 능소화를 지나쳐 숙소에 도착한 것은 4시쯤이었다. 다혜가 예약한 방의 내부는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 확인한 것보다 컸다. 방 두 개에 거실이 하나인 구조였는데 전체적으로 깔끔한 화이트톤 벽지에 원목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거실에선 창 너머로 워터파크와 숲이 보였다. 6월이라, 신록으로 물든 산이 아름다웠다.

“와, 뷰가 끝내주네.”

주미가 테라스로 향한 문을 열며 말했다.

“애들도 데려오면 좋아했겠다, 그치?”

주미가 소희를 향해 말했다.

“글쎄다. 우리 애들은 다 커서. 엄마랑 다니는 거 이제 별로 안 좋아해.”

“애들이 이제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내가 물었다.

“첫째가 고2 둘째는 중2. 얼마 전에 우리 둘째가 뭐라는 줄 알아? 시험 성적 가지고 야단을 쳤더니, 그러는 거야. 엄마처럼 대학 가면 뭐해? 그래봤자 집에서 설거지나 하는 걸.”

“정말 그런 말을 했어?” 다혜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애들 잘 키우려고 꿈도 포기하고 진짜 아등바등하며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말이지. 덧없다, 덧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희는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리조트 내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산책을 했다. 성수기가 아니라 리조트 안은 놀랄 만큼 고요했고, 광장 한가운데 조성된 아름다운 분수의 보석처럼 빛나는 물줄기만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초록의 나무들이 크고 우람하게 우거져 있고 청설모들이 뛰어다니는 숲속을 거니는 투숙객은 거의 없었다. 카페 안에만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거나 오프 숄더 블라우스로 한껏 피서 분위기를 낸 여성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가한 중년 여성들이네,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불에 데인 듯 놀랐다. 나이가 아주 많은 여성들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과 우리가 거의 비슷한 연배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이다. 텅 빈 골프장이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승마장에 가보고 싶다고 한 것은 소희였다.

“나 이런 데 처음 와 보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해놓은 할 일이 딱히 없었으므로 우리는 리조트 안에 있다는 승마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지만 비탈을 걸어도 걸어도 승마장 표지판이 나오지 않았다. “걸어서는 절대 갈 수 없어요. 차를 타고 이동하셔야 해요.” 한참을 걷다 만난 리조트의 직원에게 우리가 길을 물었을 때 직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을 시도한다는 것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했다. 우리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고는 승마장에 가는 걸 포기하고 숙소로 되돌아갔다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머, 저건 까마귀인가?” 숙소를 향해 비탈을 걸어 오르는데 소희가 말했다. 소희의 말에 따라 다같이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올려다봤다. 아주 커다랗고 신비로울 정도로 검은 까마귀였는데, 까마귀가 퍼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굉장히 우아하게 날아가네.” 다혜가 탄성을 지르듯 말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주미가 말이 없고 안색이 창백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슨 일 있어?”

“아냐, 괜찮아.”

주미는 웃어 보였고, 조금 후엔 정말 괜찮아 보였으므로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 식사로 한방 백숙을 사먹으려 했지만 성수기가 아닌 탓인지 세 번이나 허탕을 친 후 하는 수 없이 민물매운탕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술과 안주거리를 잔뜩 샀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비닐봉지 가득 담아 온 술을 냉장고에 정리하면서 주미가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그날 밤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나왔을 때, 친구들은 맥주를 마시며 대학 시절 떠났던 답사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아야 얼른 와봐. 우리 강화도 답사 갔을 때 너도 같이 갔지?”

나를 향해 다혜가 물었다.

“응. 나도 갔어. 1학년 2학기 때였잖아.”

나는 부엌을 지나 모두 모여 있는 거실로 가 소파에 걸터앉았다. 주미는 ㄱ자 소파의 —부분에 앉아서 신이 나 팔공산에 올랐던 일에 대해서 손짓 발짓을 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기 정상까지 오르느라 죽는 줄 알았잖아.” 소희가 말했다. “정상에 오르니 자식들 대학 입시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이 참 많았는데, 그지?”

소희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는데, 전문대학에서 치위생학과를 다니다가 재수를 한 탓이었다. 얼굴이 예쁘장한 편인 데다 활달한 성격이라 학교 다닐 때 선후배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왜 절들은 다 산 속에 있는 걸까? 답사 갈 때마다 등산을 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어.”

에어컨을 켰는데도 더운지 휴지로 연신 땀을 닦아 내며 다혜가 말했다. 잦은 야근과 노부모를 돌보는 스트레스로 20대 때보다 25킬로그램은 더 쪘다는 다혜는 그 탓인지 더위를 많이 탔고, 쉽게 지쳤으며 고혈압과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답사에 같이 갔던 사람들의 근황과 그 시절 답사를 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누군가가 경주 갔을 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왕릉 위로 흰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의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휴학 중이라 답사에 따라오지 않았던 P에게 내가 보냈던 문자 메시지는 무슨 내용이었던가. 그 내용은 잊었지만, 회신이 오길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새하얗게 눈에 덮여가는 왕릉을 보던 그날의 마음만은 여전히 기억했다.

“나는 우리가 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넜을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아.” 주미가 말했다. 무게의 균형이 달라질 때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배, 앞으로 전진할 때마다 물의 주름이 부드럽게 퍼져 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우리의 이마를 쓸었다.

“그때 숙소에서 불이 날 뻔하지 않았어?” 그 이야기를 꺼낸 건 다혜였다.

“그럼, 장판에 불이 붙었잖아.” 소희가 맥주병의 뚜껑을 따며 말했다.

다혜가 언급한 그 일은 2학년 답사 때 일어났다. 숙소에 도착해 몇몇은 버너에 고기를 굽고 몇몇은 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에서 비명 소리가 나더니 장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비명만 질러댔기 때문에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소동이었으므로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때 왜 불이 붙었지?”

“그건 기억이 안 나. 버너에서 옮겨붙은 건가?”

“몰라. 나도 기억이 안 나. 근데 그때 그 불 어떻게 껐는지는 기억나.”

“복학생들이 담요 같은 걸로 끄지 않았나?”

“응, P가 담요를 가져와서 순식간에 껐어.”

불이 나게 된 경위에 대해 넷이서 두서없이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가 불길 위로 담요를 내리치던, 지금 생각하면 앳된, 하지만 그때는 아주 늙은 사람처럼 생각되던 복학생 선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깔깔댔다.

“그때 우리가 잤던 민박집 기억나? 도대체 어떻게 그런 데서 우린 잘 수 있었을까? 샤워기도 없어서 대야에 물을 받아서 머리를 감고 발을 닦아야 했잖아.” 주미가 웃으며 말했다.

“모기장도 다 뜯어져서 모기에 얼마나 물렸게.” 내가 맞장구를 쳤다.

“옛날엔 숙소 값이 제일 아까웠던 것 같아. 우리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돈 아낀다고 열두 명이 한 방을 쓰는 도미토리에 묵은 적도 있었잖아.” 소희가 말했다.

“아, 여섯 개 이층 침대가 놓여 있던 데? 제일 싼 데 구했더니 남녀 혼숙이었지? 너 그때 무섭다고 스위스나이프 쥐고 잤잖아.” 내가 소희를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내가 좀 보수적인 집에서 컸니? 근데 중간에 깼더니 대각선 아래층 침대 남자애가 다 벗고 잤는지 새하얀 엉덩이가 보이는 거야. 나 백인 남자 엉덩이 본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잖아. 지금이면 좋은 구경했다 생각했을 텐데, 그땐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우리는 그 후 우리가 겪은 인생의 최악의 숙소에 대해서 조금 더 말했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샤워만 하면 침대 앞까지 물바다가 되던 부산의 모텔과 매트리스에서 빈대가 나오던 파리의 호텔 등등에 대해서.

“나는 이제는 그런 데서 못 잘 것 같아. 예전에는 여행경비를 줄여서라도 여행을 열 번 가고 싶었는데, 이젠 열 번 갈 것 한 번 가도 좋으니 편하게 가야지, 안 그러면 온몸이 아파.” 내가 말했다.

“나도 그래. 한국에 올 때마다 앞으로 비행기를 얼마나 더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 주미가 말했다. “이번에도 오는 데 손이랑 발이 다 퉁퉁 부어서 반지가 안 빠지는 거 있지. 허리가 아픈 건 말도 못 하고.”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운동에서 영양제로, 유한재라는 걸 자각하게 된 관절과 치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가 완경과 호르몬, 오염된 해산물과 기후변화로 넘어갔다.

“얼마 전에 제주에서 어미 남방큰돌고래가 죽은 어린 고래를 들쳐업고 장례를 치르는 영상 봤어?” 주미가 물었다.

“응. 너무 슬프지? 최근 들어 제주 바다에서 폐사하는 어린 돌고래가 자주 발견된다던데, 인간들이 죄가 너무 많다, 너무 많아.” 다혜가 주미의 말을 거들었다.

남방큰돌고래의 장례식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나는 휴대전화로 영상을 검색했다. 영상 속에서는 어미 남방큰돌고래가 죽은 아기 고래를 숨 쉬게 하려고 등에 업은 채 헤엄을 치고 있었다. 영상의 해설자에 따르면 어미 돌고래는 아기 돌고래의 살이 산산이 부서져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렇게 업고 다녔다. 우리는 푸른 바다 위에서 수많은 남방큰돌고래들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조그만 화면을 통해 지켜보았다. 육신이 물에 다 쓸려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죽은 아이를 업고 다니는 어미라니.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 주미라는 사실을 다혜나 소희도 나처럼 의식하고 있었을 거였다.

“너희 부모님들은 다 건강하시지?” 다혜가 물었다.

“우리 아빠는 요즘 방사선치료를 하고 있어.” 소희가 말했다.

“아, 정말? 전혀 몰랐어.” 내가 놀라 소희를 바라봤다.

“응, 경과가 나쁘지는 않은데 갑자기 확 늙어버리신 것 같아. 얼마 전엔 시어머니가 뇌 수술도 받으셨거든. 그래서 사실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너희들한테 연락할 겨를도 없었어.”

“그랬겠다. 두 분 다 잘 이겨내실 거야.” 다혜가 소희의 손을 한 번 꼭 쥐었다 놓으며 말했다.

“응, 그러셔야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었는지 소희는 그렇게 말하더니 밝은 목소리로 “그런데 아직 졸린 사람 없어? 벌써 새벽 1시인데. 난 이제 옛날처럼 밤을 샐 수가 없어. 밤을 새면 며칠은 일상생활이 안 될 만큼 피곤하거든”이라고 말했다.

“일찍 자고 중간에 화장실 가려고 깨게 되지 않아? 옛날에 엄마가 그러면 왜 그러나 싶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더라니까. 조금만 더 마시고 자자. 내일이 오는 게 아깝지만.” 주미가 말했다.

“맞아, 맞아. 난 세 번도 깨.” 소희가 말하고는 일어섰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소희가 약간 비틀거리더니 이내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너희 부모님은 건강하셔?” 소희가 복도 쪽으로 걸어가는 걸 지켜보다가 다혜가 주미와 나에게 물었다.

“얼마 전 백내장 수술 받으신 걸 빼면 다행히 우리 아빠는 건강하셔. 넌 좀 어때?”

다혜의 아버지는 전립선암을 몇 년째 앓았지만, 우유를 사러 나가던 길에 암이 아니라 뇌출혈로 느닷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다혜가 식단을 짜가며 수술 후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잘 관리한 덕에 다들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다시 안심하고 있었던 터라 그건 모두에게 놀라운 소식이었다.

“생각나면 좀 울다가, 이렇게 웃다가 그러고 있지.” 그러고 나서 다혜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양말을 벗더니, “이거 봐라, 나 발 진짜 못생겼지?”하고는 곧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코가 빨개진 채로 웃었다.

“내 발 진짜 아빠랑 똑같거든. 근데 우리 아빠는 새끼발가락 하나가 없다? 옛날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렇다는데, 어렸을 때는 맨날 나한테 악어가 물어가서 하나가 없다고 그랬어. 나는 그걸 또 오랫동안 믿었고.”

다혜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를 듣는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다혜의 아버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악어와 맞서 싸우더라도, 발가락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수 있었을 법한 건강한 육체를 지닌 한 남자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다혜가 물었다. “죽는 거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어? 난 요즘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해. 얼마 전에는 TV를 켰는데 110세 할머니가 나오더라고.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 오래 사는데 누군가는 금방 죽을까?”

취했는지 다혜가 그런 말을 해 나는 놀라 주미를 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주미가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괜찮아, 하고 말했다. 그건 ‘괜찮아?’ 였을까 ‘괜찮아’였을까.

“얘들아, 이리 와봐.” 복도 안쪽에서 소희가 소리를 지른 건 다혜가 꾸벅꾸벅 조는 사이 나와 주미가 테이블 위에 어질러진 술병들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여기 옷장 속에 오르골이 있어.” 소희의 성화에 몸을 일으키는데 취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소희가 열어젖힌 복도 붙박이장 안에는 정말 커다란 오르골이 있었다. 붙박이장 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문을 닫으면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열면 태엽이 감기듯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런 걸 왜 만들어 놨을까? 애들 좋아하라고 만든 건가?” 아주 커다란 크리스털 전구가 안에 담겨 있는 흰 새장 모양의 오르골을 보며 주미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옷장 앞에 서서 잠시 음악을 들었다. 영롱한 음악 소리와 함께 크리스털이 반짝반짝 빛났다.

“예쁘긴 한데 정말 이런 게 여기 왜 있는 거지?” 소희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옷장 속에 시체 같은 게 있는 호텔은 영화에서 본 것 같지만 오르골은 정말 상상도 못했네.”

우리는 이제 복도 바닥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아, 옷장 속 시체 얘기를 해서 그런가, 내가 몇 년 전 여행할 때 숙소에서 겪은 진짜 이상한 일 하나가 생각이 났어.” 주미가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건 내가 오르골 소리를 따라 흥얼거리다 그것이 맨델스존의 <봄의 노래>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였다.

“아까 얘기했던 최악의 숙소 시리즈에 이어지는 거야?” 다혜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숙소 자체가 최악은 아니었는데, 거기서 벌어진 일이 최악이었어.”

“뭐든 좋아. 이야기해봐. 거기 붙박이장 속에서 오르골 대신 해골이라도 나온 거야?” 내가 물었다.

“뭐 비슷해.”

“술이 확 깨네. 얼른 이야기 해 봐.” 다혜가 이야기를 재촉했다.

“아냐, 아직 하지 말아 봐. 술 좀 가져올게.” 소희가 거실로 가서 술병과 잔 네 개를 가져왔다. “됐어. 이제 시작해.”

“사실 내가 한동안 조류 공포증이 있었거든?” 주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옛날엔 없었잖아.” 내가 물었다.

“십 년 전에 생겼어. 이젠 많이 나아졌지만.”

“왜?” 다혜가 물었다.

그렇게 그날 밤 주미가 들려준 이야기는 12년 전 주미가 첫 아이를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잃고 난 이듬해의 일이었다. 그해 여름, 주미네 부부는 유학 시절 알던 지인의 초대로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2주간 머물게 되었다고 주미는 말했다. 주미가 머물던 숙소는 그들 부부를 초대해준 지인의 빈 아파트로 지인은 휴가차 사르데냑에 가 있었다. “구시가지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3층까지 계단을 올라야 했어” 주미가 말했다. 방 하나와 거실 하나로 이루어진 작은 아파트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철제 가림판으로 입구를 막아두긴 했지만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대리석 벽난로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유럽 집답게 에어컨도 없었고 방음이 거의 안 되는 집이었지만 그 무렵 주미는 많은 것에 무감한 상태였으므로 숙소는 아무래도 좋았다고 말했다.

“독일에 도착하고 첫 한 주 동안 우리의 일상은 단조로웠어.” 주미가 말했다. 일부러 그러자고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 보냈다. 아이를 잃은 이후 한동안 서로를 책망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지내는 게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웠다고 주미는 말했다. 남편은 자전거를 구해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달렸고, 주미와 저녁을 같이 먹고 난 이후엔 녹초가 되어 잠들곤 했다. 주미는 남편이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 인근 신학 대학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온종일 읽었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는데도 끊임없이 논문을 발표하는 주미를 비난했으나, 그것밖에 주미에게 잡념이 들지 않게 해주는 일이 없었던 데다가 공부를 한답시고 육아에 소홀해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도 아닐 뿐더러 자신에게 부당하기까지 한 생각이 주미를 괴롭힐 때마다 오히려 악착같이 학자로서 더 성공해 보여야 한다는 이상하고도 맹렬한 광기에 사로잡히던 날들이었다고 주미는 말했다.

“도서관에 가면 매일 같이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주미가 말했다.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성경 따위가 늘 가지런히 놓여 있는 누군가의 옆자리였다. “녹음이 우거지고 환한 자리라 이끌려 앉기 시작했는데, 자세히 보니 대로 건너편의 녹지는 공원이 아니라 묘지였어.” 논문을 읽다 고개를 들면 바람에 몸을 떠는 연녹의 잎새들이나 묘지 위에 돋아난 붉고 노란 꽃들이 보였다. 이따금은 묘지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노인이나, 모녀처럼 손을 맞잡고 묘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런 풍경들이 이상하게 주미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만 간직될 뻔했던 그 독일 여행이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 든 건 어떤 소리 때문이었다. 어느 밤, 평소처럼 자고 있던 주미의 귀에 어떤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 왔다.

 

* 계간 <대산문화> 2024 가을호(통권 93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백수린
소설가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짧은 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