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발굴기
전하고픈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 서울 인사동에서 출토된 금속 보물

  • 문화유산발굴기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전하고픈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 서울 인사동에서 출토된 금속 보물

2021년 6월, 한국 고고학계에 깜짝 놀랄 만한 보도가 있었다. 그것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선 전기에 제작된 한글과 한자 금속활자,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시기 제작된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자동 물시계의 부품인 주전(籌箭) 등 조선에서 이루어진 당대 세계 최고(最高)의 첨단기술을 목도할 수 있는 금속 유물 1,700여 점의 발굴이었다.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나지역) 유적 출토 금속 유물 (사진제공: 수도문물연구원)

 

당시 서울 인사동, 공평동 일대에서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의 목적으로 2020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발굴단은 지표로부터 약 3~3.5m 아래에서 16~17세기에 조성된 문화층을 조사 중이었다. 건물의 기초를 드러내고 땅을 고르게 정리하여 건물의 윤곽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총통 여러 점과 그 옆으로 상부가 결실된 채 안이 흙으로 채워진 도기 항아리를 확인하였다.

서울 종로 일대 유적에서 조선시대 무기(武器)류의 출현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현재 서울시청인 군기시 터(軍器寺址) 유적(한강문화재연구원 조사), 포시즌스 호텔이 자리한 세종로 유적(한울문화유산연구원 조사),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종로 청진동 일대 유적(한울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에서 불랑기자포·총통·철환·철검 등이 앞서 발굴된 바 있었다. 다만 이전 조사와 다른 점은 총통이 완전한 모습이 아니고 한 뼘 정도의 일정한 길이로 잘려 있던 점이었다.

 

도기호 및 총통 노출 모습 (점선 안이 도기호)

발굴단은 현황 파악을 위해 실시한 절개 조사(출토유물을 지나는 작은 줄 구덩이를 파서 출토 양상과 토층을 확인하는 조사방법)에서 총통 아래 더 많은 유물이 묻힌 것을 파악하였다. 또 하단에 기와 조각과 작은 돌을 괴어 지반을 견고히 한 정황도 포착하여 해당 유물들은 이곳에 고이 묻힌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유물의 매납 방법은 꽤 치밀하고 꼼꼼하였다. 부피가 큰 유물들은 일정한 크기로 잘라 보관하기 쉽게 하였고, 금속활자·동전 등과 같이 크기가 작거나 주전처럼 여러 부품이 달려있어 잃어버릴 가능성이 큰 물품은 도기 항아리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크고 무거운 종은 성글게 자른 후 몸체 하단부가 둥근 형태를 이루도록 잘 맞추고 거꾸로 뒤집어 도기 항아리 옆에 나란히 두었다. 뒤집혀 묻힌 동종 안에는 잘린 동종 잔편과 상대적으로 부피가 크고 무거운 금속유물을 넣었다. 동종 상면과 주변은 4개의 넓적한 동판을 덮고 감싸 유실을 최소화하려 하였다. 또한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더욱 소중하여 다른 유물과 섞이지 않게 하려는 듯 따로 간추려 동종 상부에 모아두었다. 그 위로 켜켜이 쌓아둔 총통을 발굴단이 발견한 것이다.

출토되자마자 이 금속유물들이 조선 전기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던 과학사·기술사의 실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것은 아니다. 유물의 양이 방대하고 종류가 다양하여, 온 발굴단이 매달려 휴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황을 파악하는데도 수일이 소요되었다.

 

총통·원판형동제품·동종 출토 모습

 

도기호 내부 금속유물 노출 모습

 

 

이후 고고학·서지학·천문학·과학사·무기사·미술사 등 각 분야의 연구자가 모여 분석이 시작되었다. 학자들도 처음 보는 유물들이라 고심하였고, 의견서를 몇 번이고 수정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러 번 다시 와서 유물을 실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특히 일성정시의는 세종대에 개발된 독창적인 시계로, 밤과 낮의 시간을 모두 측정할 수 있어 특별하다. 세종실록에 단 네 기만이 제작되어 경복궁·함길도·평안도 등에 배치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남겨지거나 알려진 바가 없어 기록으로만 그 존재를 가늠하였다. 동으로 만든 둥근 고리에 정교하게 은입사(銀入絲, 청동이나 철, 구리 등 금속 그릇에 은실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는 세공 기법)하여 눈금과 숫자를 표기한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이 일성정시의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문헌에 묘사된 형태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그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요 유물의 출토에 국가유산청에서도 긴급히 움직였다. 유물을 안전히 보관할 장소를 마련하고 바로 보존처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양해를 구하고 신속히 실행하였다. 나아가 이 중요한 발견을 전 국민과 공유하고자 기자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이 행사에서 발굴단과 학자들은 출토된 유물들이 이제까지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조선 전기의 눈부신 과학기술 그 자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이 모든 일이 유물이 출토된 후 한 달 안에 이루어진 일이다.

 

일성정시의 세부 모습, 바깥 원은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데 원은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그리고 맨 안쪽은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나지역) 유적 출토 동종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나지역) 유적’이라는 타이틀로 발굴조사 보고서가 간행되었고, 그 사이 발굴 연계 전시(인사동 출토유물 공개 전, 2021년, 수도문물연구원·국립고궁박물관 공동 개최)와 학술심포지엄(2021 인사동 발굴 그 성과와 나아갈 길, 2022년, 수도문물연구원·국립고궁박물관 공동 개최) 등 관련 연구는 지속되었다. 금속활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인 동국정운식 표기의 한글 금속활자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전해지는 인본과의 지난(至難)한 대조를 통해 그중 일부를 1455년에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바탕으로 주성된 을해자(乙亥字), 1465년에 주조된 을유자(乙酉字)로 제시하였다. 자동 물시계는 핵심 부품인 주전의 출토로 공반 출토유물과의 상대 편년 확보, 문헌기록의 분석을 바탕으로 1536년 중종(中宗)때 보루각(報漏閣)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국립중앙과학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이 힘을 합쳐 물시계의 작동 원리를 밝혀내었고, 복원 설계 및 재현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자격루 주전 과학원리 체험 전시품이 개발되어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체험 전시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각각의 유물들이 면모가 상당 부분 밝혀졌지만, 앞으로 밝혀질 내용이 더 많이 남아있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약 400년 전, 누군가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여 담고 묻은 보물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 전해졌다. 묻힌 연유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국가 차원에서 제작하고 관리한 귀한 물건들이었음은 분명하다. 선조들이 전해준 이 소중한 유물들에 대해 앞으로 연구가 진전되어 실체가 파악되고, 이로써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가 재고된다면 발굴자로서 더없이 보람된 일이다.


※ 사진 제공 : (재)수도문물연구원

박미화
재단법인 수도문물연구원 문화유산연구부장, 1984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