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직접 체험한 소재가 아닌 경우 나의 시는 답사를 거쳐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각적 접점이 형성되지 않은 글감으로는 시가 잘 써지지 않는다. 우선 나 자신부터 실감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답사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한 상황이면 상상에 맡기는 때도 있다. 하지만 사후에라도 답사를 거쳐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떨쳐내기 어렵다. 방금 답사라는 말을 썼지만, 답사는 기행과 다르다. 기행이 일회적으로 보고 지나가는 것이라면 답사는 거듭 되돌아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임진강은 나의 오래된 답사처다. 서사시 『임진강』을 쓰던 1983년 여름부터 임진강 지역을 드나들었다. 『임진강』의 주인공 김낙중 선생의 안내로 그의 고향 파주군 탄현면과 임진강 주변을 걷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을 상징하는 강으로 흐르고 있는 임진강, 김낙중은 그러한 임진강을 자신의 운명으로 온전히 체현한 실화 속 인물이다. 임진강을 자신의 운명으로 수락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살아낸 문제적 개인이다.
마식령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길이가 254km에 이른다. 연천에서 휴전선을 통과하여 남한 지역을 흐르다가 한탄강과 합류한 다음 다시 한강을 만나 서해로 흘러간다. 임진강이 남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은 태풍전망대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가는 모습은 오두산전망대에서 조망할 수 있다. 철책이 전면을 막고 있지만, 황희의 정자 반구정에 물때를 맞추어 가면 임진강이 역류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율곡의 정자 화석정, 고구려의 성이었던 당포성, 고려 왕들의 사당인 숭의전도 임진강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하지만 들어가 볼 수 없는 휴전선 이북 지역의 유역 면적이 훨씬 더 넓다.
어떻게 보면 임진강 유역은 내게 자주 방문하는 답사처를 지나 분단시대를 사는 삶의 현주소이다. 삼팔선을 휴전선으로 바꾸면서 분단을 고착시킨 한국전쟁 이후 상황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다. 불필요한 이념논쟁이 상처를 거듭 덧나게 하면서 자꾸 시야를 흐리게 한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을 통한 국면전환도 어느새 신기루가 되었다. 희망의 나무는 가꾸기는 어려워도 베어내기는 너무도 쉽다. 아마도 나는 가장 가난한 시대의 불우한 시인으로 생을 마칠 것만 같다. 모국어의 영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시인이 얼마나 온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왕에 시인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으니 가슴 속에 사랑을 키우고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임진적벽 칠십 리
강이 깊어지듯
슬픔도 차라리 도도하게
깊어지거라 기원하며
몸을 씻나니
고랑포 흘러내리는 물로 경건히
가슴을 씻어
다시 휴전선으로 흘려보내나니
슬픔이 깊어지듯
사랑도 깊어지거라 기원하며
암벽에 부딪쳐가는
강물과 함께
내 마음 흘려보내나니
암벽에 부딪혀 우는 울음의
하염없는 메아리를 듣나니.
- 「임진적벽」
전문 임진적벽의 지질학적 명칭은 주상절리이다. 고랑포는 예전에 배가 드나들고 물산이 모이던 포구다. 고랑포 위와 아래로 강변에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는데 대략 칠십 리에 이른다. 적벽은 아마도 소동파의 「적벽부」를 다분히 의식하고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실제로 동파리라는 지명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소동파의 「적벽부」에서처럼 달밤에 평화롭게 뱃놀이를 할 만한 형편이 아니다. 임진적벽이 이름에 걸맞게 붉게 물드는 철은 암벽에 뿌리를 내린 돌단풍이 단풍 드는 늦가을이다. 그때가 되면 가히 임진강의 절경이라 할 만하다.
비무장지대(DMZ)를 끼고 있는 임진강 유역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 많다. 영농허가증을 가진 이와 동행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다. 곳곳에서 철책을 만나고 검문소를 만나는 임진강 유역은 생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풍요롭다. 근래에 군남댐이 들어서긴 했지만, 하구가 막혀 있지 않아 물고기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한다. 임진강의 역설이다. 철책과 검문소가 난개발을 억제하고 있다. 나의 경우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두루미·재두루미·독수리·뜸부기 등을 만나기 위해 임진강 유역을 찾기도 한다.
뜸 뜸 뜸 뜸 뜸
논바닥에 깔리듯이 저음으로 우는
뜸부기를 찾는다
수컷 뜸부기는 벼포기 사이로 고개 내밀어
붉은 이마판을 살짝 보여주고는
또다시 숨어서 운다
암컷 뜸부기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농촌에 흔하여
김매다 알을 꺼내먹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뜸부기
뜸부기야, 어디 숨었니?
동틀 무렵 임진강변에 나와
뜸부기와 숨바꼭질한다
숨바꼭질이라도 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 「뜸부기」전문
뜸부기는 널리 애창되는 동요에 등장할 정도로 예전에는 농촌에 흔한 새였으나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논에서 번식하고 먹이를 찾는 뜸부기에게 오늘날의 한국의 논은 사막과 다를 바 없다.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미꾸라지도 우렁이도 개구리도 메뚜기도 살 수 없으니 뜸부기가 무얼 먹고 살겠는가. 50여 년 전만 해도 생태계의 보고였던 논이 어느새 이토록 황폐해진 것이다. 그런데 임진강변의 논에서는 드물지만 아직 뜸부기가 살고 있다. 수로를 통해 임진강의 물고기가 들어와 뜸부기의 먹이가 되곤 한다. 또한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서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도 만날 수 있다. 민간인 통제구역이 이들의 주된 삶터인 것이다. 이렇듯이 오늘날 임진강 유역은 내게 생태적 감각을 살리려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