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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9월은 벌써 오슬오슬하니 춥다. 이 추위 너머의 극세계가 궁금해진다. 곳곳에 쌓인 눈을 보면서 북쪽이라는 시공간을 체감했다. 바이칼 호수와 닮은 꼴이라는 몽골 서부의 흡스굴 호수를 직관하겠다는 작심은 오래되었다. ‘흐미’라는 몽골의 전통 노래를 들었다. 흐미는 한 사람이 두 종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울림이 많고 묵직한 배음이 겹쳐 있는데 초원의 바람 소리를 묘사했다는 설명도 있다. 만주족도 예전에 흐미와 같은 창법이 있다고 한다. 흐미와 겹쳐서 늘 신비롭다는 흡스굴의 푸르른 넓이가 보고 싶었다. 그 둘이 아니었다면 북국의 한랭전선에 불평을 가졌을 것이다. 소설가인 지인은 몽골에서 굴착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굴착기 장비를 대여해 주는 소규모 기업이었다. 아마도 그는 굴착기를 핑계로 몽골의 초원을 탐색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흡스굴에 대한 애착을 말하자 그는 냉큼 일정을 잡았다. 소설가가 일주일 전에 먼저 흡스굴을 탐방하였다는 후일담은 훨씬 나중에 들었다. 몽골의 초원은 소설가처럼 다정하고 지극한 풍경을 가졌다.
도착한 날 우리는 울란바토르의 레스토랑에 갔다. 여기 왔으면 당연히 말고기를 먹어야지, 하면서 소설가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게르 장식을 한 양식당이었다. 양식당과 게르의 결합은 기이했다. 몽골 사람은 주택에 살면서도 마당에 게르를 세우고 종종 그곳에서 유숙한다. 유목의 풍습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이상하게 매료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말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하지만 메인 요리 전에 나온 것은 커다란 말의 눈동자였다.
흰 접시 위에 담긴 흑백의 눈동자 2개, 환상 소설의 장면처럼 나는 곤혹스러웠다. 눈동자가 달린 것들을 먹지 않겠다는 채식주의의 결심을 한때나마 유지했던 나로서 눈동자는 난처함이었다.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눈동자를 시식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의 몽골어를 귀에 담지 않고 나는 눈알을 오래 쳐다보았다. 겨우 그리고 억지로 커다란 눈알을 질겅질겅 삼키면서, 나는 말이면서 말의 외부였던 환상에 사로잡혔다. 초원을 달리던 말의 시선에 붙잡혔던 기억이 나에게도 이식되리라.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하면서 질겅거리다가 문득 목구멍 너머로 삼켜진 말의 눈이 내 안에서 내내 커다란 눈을 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의 눈에 혓바닥이 생겨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소리는 분명 오래 머물렀다. 말의 울음에서 비롯된 진부한 소리였고 게다가 나를 응시하는 눈이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삼킨 두 개의 눈동자 중 하나는 내 입안에서 으깨어지면서 먹물이 튀자마자 삼켰기에 그 맛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부터 더욱더 눈동자가 달린 것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다시 채식을 시작했다가 몇 달 만에 작파했다. 하지만 눈을 가려도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풀과 과일에도 눈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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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트래킹은 온종일 걸어야 하는 지루함과 체력과 인내가 서로 마주 보는 일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현지인들이 고추를 소금에 찍어 먹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가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방식과 겹쳐지지만 낯선 느낌처럼. 네팔의 고산지대에서 채소 음식은 염도가 너무 높았다.
네팔 포카라에서 해발 1,650m의 담푸스를 지나 해발 2,170m의 촘롱 가는 길은 흔히 안나푸르나 ABC 트래킹이라 불린다. 가는 길은 만다라만큼 다채롭다. 다랑이논과 비슷한 경작지가 산의 경사면에 빼곡한데, 수량이 풍부해서 농사는 풍성해 보인다. 경작지들은 때로 누군가의 손바닥처럼, 때로 등껍질이 갈라진 손등처럼, 때로 거북의 등처럼 경계의 색을 또렷이 가지고 있었다. 산의 정상 부근에서 보면 경작지들의 알록달록한 색감들이 만다라와 다를 바 없다. 난드룩 롯지의 주인 방에는 예의 바람벽에 손바닥 크기의 만다라가 걸려 있었다.
촘롱 가는 길에 닭의 눈을 보았다. 살아있는 닭의 눈동자였다. 며칠 내내 하루 10시간의 트래킹과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체력이 바닥난 일행을 위해 토털 가이드와 현지 가이드가 의논하더니 네팔의 어느 농가에서 닭을 구입했다.
닭의 다리를 일렬로 꿰어서 짊어지고 가는 셀파의 뒤에서 누군가는 저녁 식사에 나올 육식 생각을 하였겠지만 나는 닭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닭의 눈은 얇은 종이를 오려서 붙인 듯 감정이 배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난드룩에서 촘롱까지 셀파들이 우리 일행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짊어지고 간 닭의 눈들은 인형의 눈이 아니었다. 많은 말을 숨긴 눈이거나 많은 말을 이미 뱉었던 눈이다. 눈의 주파수가 다르지만, 일행들은 그 눈의 주파수에 감응이 되었다. 다시 말의 눈동자를 삼킨 것과 비슷한 감정이 치솟았다. 촘롱의 밤에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봉은 설렘과 영성 그 자체였다. 저녁 식사로 나온 닭고기를 한 점도 못 먹었지만, 설산이 닭의 눈을 대신 채워주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닭에 대한 비애가 시작되었다. 밤하늘을 건너가는 구름마다 눈동자가 생겼다. 그리고 또 한동안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