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후손들은 남루한 선조들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다. 숨기거나 침묵하는 것. 아니면 과장하거나 꾸며내는 것.
실제로는 숨기거나 침묵하는 쪽이 편할 때가 많다. 죽은 조상까지 갈 것도 없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도 죽은 과거 시간 중에서 다소 미천했거나 수치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러한 과거를 몹시 불편해하기 마련이다.
집단적으로도 그렇다. 이 경우는 두 번째 방법과 쉽게 결합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을 견뎌내고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가 못마땅한 이들은 역사의 초라한 부분들을 과감히 편집하거나 생략한 다음, 입맛에 맞는 시기부터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980년 5.18에서 시작하면 ‘민주화’라는 플롯에 맞춰 역사를 재편하기 좋다. 그렇게 터전을 다져놓은 다음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선별적으로 영웅들을 골라낸다. 대한민국의 국부는 김구, 한민족 고유의 근대정신은 실학, 민중의 저항정신은 동학 등에 배당하고 나서, 친일·친미 외세와의 ‘100년 전쟁’을 선포한다. 이렇게 해놓으면 아쉬운 대로 ‘위대한 민족’의 내력을 주장할 수 있다.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조선이 멸망하고 일본인들이 창궐하기 시작한 시기에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인 선교사들이다. 이들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몰 것인가? 대놓고 친일을 했다는 증거를 창조해 내기가 쉽지 않은지라, 이 서양 오랑캐들을 상대해서 전면전을 펼치기는 어렵다. 바로 이 순간, 불편한 과거를 해소하는 또 다른 처방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숨기거나 침묵하는 것은 전면적 왜곡보다는 늘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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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침묵의 지혜를 충분히 존중하는 취지에서, ‘위대한 자주 민족’의 자존심을 덜 손상할 인물을 한 분 소개한다. 이분은 ‘그녀’다. 이름은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1851~1921). 연세대학교의 조상인 연희전문학교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의 부인이다. 그녀가 조선에 원래 온 이유는 ‘언더우드 부인’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출생 연도가 말해주듯 나이도 언더우드보다 많다. 결혼 전 그녀의 이름은 ‘릴리어스 스털링 호튼(Lillias Stirling Horton)’. 그녀는 시카고 여성의학전문학교에서 의사 교육을 받았고 병원에서 인턴과정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렇듯 순탄하던 그녀의 삶은 한순간 이상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본국에서 여자 의사로서 유복하고 존경받는 삶을 사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자신의 재능과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당시 미국인들이나 서구인들로서는 가장 덜 알려지고 덜 인기 있던 나라인 조선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 제물포항에 릴리어스가 내린 것이 1888년. 그녀는 미국 장로교 선교회 소속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의료 및 교육 활동에 동참한다. 마침 당시 서울에서는 미리 와 있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라는 청년이 조선인들이 거리낌 없이 내다 버린 고아들을 모아 먹여 살리고 교육하는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릴리어스는 그곳에서 언더우드를 도와 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중 언더우드 씨가 청혼하자 받아들인다. 릴리어스는 언더우드를 처음 만난 이야기, 가마를 타고 북한 쪽을 돌며 신혼여행 갔다 온 이야기, 그 전에 왕궁에 출입하며 명성황후의 주치의 노릇을 한 이야기 등을 담은 자서전을 『상투 튼 이들 사이에서 보낸 15년(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이라는 제목으로 1904년에 미국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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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번역본은 신복룡·최수근 번역의 『상투의 나라』(집문당, 1999년)와 김철이 번역한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이숲, 2008년) 두 가지가 있다. 의사지만 글재주도 타고난 릴리어스는 『한국에서 토미 톰킨스와 함께(With Tommy Tompkins in Korea)』라는 책도 1905년에 출간했다. 아들 ‘토미 톰킨스’를 키우는 ‘원 목사(Pastor Won)’ 선교사 가족의 한국 생활, 즉 아들 원한경(Horace Horton Underwood, 1890~1951)을 키우는 부부 선교사의 삶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의 번역본으로는 정희원이 옮긴 『호러스 언더우드와 함께한 조선』(아인북스, 2013년)이 있다.
제한된 지면에서 『상투 튼 이들 사이에서 보낸 15년』이나 『한국에서 토미 톰킨스와 함께』를 충분히 소개할 수는 없다. 관심 있는 이들은 번역본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대신 이 자리에서는 꼭 인용하고 싶은 대목을 하나씩 소개하겠다. 먼저 첫 번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유독 눈에 띈다.
‘조선 여자들은 대체로 아름답지가 않다. 나는 그들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고 내 형제처럼 여기는 사람이지만 그 일은 털어놓아야겠다. 슬픔과 절망, 힘든 노동, 질병, 애정의 결핍, 무지 그리고 흔히 수줍음 때문에 그들의 눈빛은 흐릿해졌고 얼굴은 까칠까칠해졌으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 넘은 여자에게서 아름다움 비슷한 걸 찾는 건 헛일이다.’ - 김철 번역의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29쪽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의 반쪽인 “상투 튼” 사내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또 다른 반쪽인 여성들을 열등한 종처럼 부려먹고 학대했음을 부인하고자 하는 독자는 물론 서슴없이 이러한 묘사를 ‘오리엔탈리즘’이라 비난할 법하다.
두 번째 저서에서 펼쳐본 곳은 “원 목사”에게 세례받은 나이든 소작농 여성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예수를 믿은 지 3년이 넘었으나 소작농 노동을 하느라 선교사나 목사가 방문할 시간과 장소에 가서 세례를 받을 수 없었던 그녀는 “원 목사”를 드디어 만난다. 그러나 역시 또 논으로 일하러 빨리 돌아가야 하기에, 세례를 받지 못한다. “원 목사”는 “마음 쓰지 마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당신의 이름은 천사들이 지키는 그 책에 기록되었습니다”라고 그녀를 위로한다.
개신교도 “원 목사”의 세례는 가톨릭에서처럼 이들 조선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예식으로서 큰 의미를 가졌다. 저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선의 여성들은 새로운 이름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절대로 남자들처럼 공식적으로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중략) 그저 누군가의 어머니나 누군가의 아내로만 불린다. 그러나 세례를 행할 때는 그들의 이름을 기재하고 등록하는 것이 필수인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남편의 이름과 부합하는 한자 이름과 함께 자비, 믿음, 사랑, 인내 등으로 거명된다. 이제까지 그들이 가져 본 적 없는 최초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이름을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소중히 여기는가를 보는 일은 즐겁고도 조금은 애처롭다.’ - 정희원 번역의 『호러스 언더우드와 함께한 조선』 207쪽
애국심 넘치는 독자는 이 대목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 것 같다.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기에, ‘숨기고 침묵하는’ 쪽으로 반응할 법하다. “그것은 다 옛날이야기, 지금은 달라졌다고!”라면서. 물론 그렇다. 오늘날 한반도에 사는 여성들의 형편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다만 여전히 어머니들이 “누군가의 어머니”로 주로 불리는 미풍양속은 소중히 보존되고 있기는 하지만. ※ 필자 주 : 본문에 수록된 사진들은 『상투 튼 이들 사이에서 보낸 15년』 원본에 수록된 당시 조선인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