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소설 쓰기는 무대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간을 완전히 구축한 후에야 주인공을 무대 중심에 세운다. 주인공을 돕거나 방해할 주요인물은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다. 모든 소설에 철저하게 지켜온 작업방식이자 원칙이다. 다만, 이 원칙에서 벗어난 소설이 하나 있다. 데뷔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다.
이 소설은 10대 소년·소녀 셋, 어부노인과 개 한 마리가 쫓고 쫓기며 벌이는 3박 4일간의 여정을 그린 로드 픽션이다. 주인공 준호가 아니라, 주요 인물인 ‘정아’가 가장 먼저 태어났다. 이야기의 무대는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순서를 거꾸로 밟아간 셈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야기 자체가 정아의 비밀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본래 제목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가 아니라 ‘쉿, 비밀’이었다.
내가 11번째로 등단에 실패하고 코가 빠져 있던 때니, 20년 전쯤의 일이다.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집으로 인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수차례나 있었다. 거의 월례행사처럼, 그 집에서 내막을 짐작할만한 소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간을 때려 부수는 소리, 남자의 고함, 여자의 비명, 소녀의 울음소리, 강아지가 신경질적으로 짖어대는 소리, 쿵쿵대는 발소리… 나는 숨을 죽이고 머리털이 곤두선 채 경찰이 도착하기만 기다리고는 했다. 사실 경찰이 출동해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일시적 진화였을 뿐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그날도 그런 밤 중 하나였다. 그 집의 소리들은 점점 커지고, 경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 비상계단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불쏘시개 같은 머리칼, 찢어져 어깨가 다 드러난 티셔츠, 맨발. 그 집 아이였다.
나도 모르게 멈칫해서 그 자리에 섰다. 아이 역시 흠칫해서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시선은 계단 몇 칸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 나는 도망치라, 말해주고 싶었다. 까맣게 젖은 소녀의 눈은 이렇게 되묻는 것 같았다. 도망쳐? 어디로?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딸깍 소리가 울렸다. 봉인해두었던 어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제어할 새도 없이 기억의 밑바닥에 갇혀있던 아이가 튀어나왔다. 껌껌한 밤길을 맨발로 내달리는 아이, 길가에 주차된 트럭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는 아이, 몸을 옹크리고 앉아 자신을 찾으러 다니는 아버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나는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왔다. 책상 앞에 앉아 악령처럼 되살아난 그 옛날의 아이를 무기력하게 지켜봤다. 와중에 머릿속 목소리는 내게 묻고 있었다. 그때 만약 도망쳤다면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아랫집 소녀와의 만남으로 발화된 내 비밀스러운 상처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준호보다, 아버지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소녀, 정아가 먼저 태어난 이유다. 정아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건, 내 유년의 기억이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도록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다. 화해를 시도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장례를 마치고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납골당 유골함 옆에 놓아둔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봤다. 당연히 받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뒤늦게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여전히 화해가 불가능한 내 마음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더 서글픈 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 시작된 정아의 도주가 이후의 소설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와 성별과 모습을 바꿔가면서. 얼마 전, 어느 평론가가 쓴 글을 읽고서야 뒤늦게 그걸 깨달았다. 그는 내 소설들에 드러나는 명백한 공통점으로 ‘아버지의 부재, 혹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을 꼽았다. 비수에 찔린 기분이었다. 납골당에 전화를 걸던 밤처럼 쓸쓸하고 서글펐다.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쯤 나는 ‘정아’를 놓아줄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