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자 작가, 그리고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요조입니다.”
스스로를 소개해야 할 때면 나는 이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발음한다.
‘작가이자 뮤지션, 그리고 작은 책방 운영자’ 순으로, 혹은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동시에 작가이자 뮤지션’ 순으로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뮤지션 > 작가 > 책방주인’이라는 위계를 엄수한다. 그 꼬박꼬박 ‘뮤지션’을 앞세우는 태도가 가소로워 가끔 내가 나를 지그시 면박줄 때가 있다.
‘자네가 음악가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1년 중 노래를 부르는 일은 손에 꼽고, 앨범도 몇 년마다 겨우 발표할 뿐이다. “이제 음악은 안 하시는 거죠?”라고 묻는 사람이 점점 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나는 뮤지션이라고 말한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고 있다. 들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사람을 소개하는 글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한 2000년도의 여름 방학에 나는 재즈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애드립’이라는 이름의 작은 재즈 라이브 바였는데 계단으로 지하 3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후미진 위치도 그렇고 바로 맞은편 ‘천년동안도’라는 거대 재즈 라이브 바의 위세에 눌려 늘 퀭하고 쓸쓸한 무드가 감도는 곳이었다.
그곳은 사장님부터 아르바이트생까지 모두 음악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는데, 신기한 점은 한가한 가게치고 아르바이트생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렇게 많았던 까닭은 그들이 다들 바쁘고 대단하신(!) 예술가셨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이날 공연이 있어 근무하기 어렵다 하면 시간이 되는 다른 사람이 대신 근무해주었고, 누군가 합주가 있어 근무가 어렵다 하면 또 다른 사람이 흔쾌히 대타에 나섰다. 전시를 보러 가야겠다고, 여행 다녀온다고, 그냥 일할 기분이 아니라고 스케줄을 바꾸자 해도 우리는 누구 하나 곤란해하지 않았다. 어쩌다 유명한 해외 뮤지션이 내한 공연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예 사장님까지 합세해 가게 문을 닫고 우르르 보고 오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약 6개월 정도 일했다. 유연한 근무 환경 때문에 개강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애드립’이 망하지 않았다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게 영업 마지막 날, 우리는 가게 문을 잠그고 안에 있는 술과 안주를 다 먹어치우며 음악을 들었다. 목이 쉴 정도로 웃어 젖히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셔대고, 떠들어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완벽에 가까운 예술적 공동체를 이제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몇 년 뒤 집 앞 횡단보도에서 ‘애드립’에서 같이 근무했던 이지린을 마주쳤다. 그는 당시 내가 살던 동네로 얼마 전 이사를 왔다고 했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그와 다시 만난 게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네 친구로 잘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지린은 내게 뜬금없이 노래를 잘 부르냐고 물어왔다. 노래? 노래라… 노래방 가면 80~90점은 나온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곡에 가이드 보컬을 녹음해달라고 부탁했다(가이드 보컬은 본 녹음을 돕는 본보기용 보컬을 뜻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슬리퍼를 직직 끌며 지린의 집에 찾아갔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마이크에 잡음이 녹음되지 않도록 선풍기를 끄고 창문도 닫은 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얼마 뒤 지린은 ‘허밍어반스테레오’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편지함에도 그의 CD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앨범의 뒤편 트랙리스트를 눈으로 훑다 보니 거기에 내 당시의 예명이 적혀있는 게 아닌가. 정식 보컬을 구할 수 없어서였는지,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지린은 내 가이드 버전으로 앨범을 내버렸고 나는 본의 아니게 강제 데뷔를 당하고 말았다. 기분이 무척 묘하고 이상했다. 좋기도 하고 언짢기도 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으로 CD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즈음 나는 동네 던킨도너츠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얼마 뒤 여느 때처럼 매장 앞을 빗자루질 중이었는데, 갑자기 내 목소리가 들려와서 펄쩍 뛸 만큼 놀랐다. 옆 매장의 외부 스피커에서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세상에(서울 방학동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 말고 아무도 모른다… 나는 빗자루질을 하다 말고 멍하니 서서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 내 앞을 지나가는 두 학생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 노래 알아? 나 요즘 자주 듣는데 넘 좋아.”
“맞아. 목소리 너무 귀여워.”
한 손에 빗자루, 한 손에 쓰레받기를 든 던킨도너츠 유니폼을 입은 애가 웃고 싶은 건지 울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한참을 서 있다. 이 애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감정이 -‘나는 뮤지션이야!’- 그야말로 솟구치는 중이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소개하려는 사람이다. 언젠가부터는 오로지 이 애를 위해 나를 뮤지션이라고 소개한다. 내가 진짜 뮤지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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