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③ 내 소설이 ‘중간’이라고?

  • 기획특집
  • 2024년 가을호 (통권 93호)
③ 내 소설이 ‘중간’이라고?

솔직히 말하겠다. ‘중간소설 창작자의 입장’에 대해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제법 당황했다. 중간소설? 내 소설이? 무엇보다도 단어 자체가 낯설었기에, 정확히 무슨 뜻인지부터 알아야 뭐든 쓸 수 있겠다 싶어 무작정 검색부터 해 보았다. 그렇게 알아낸 바에 따르면 ‘중간소설’의 ‘중간’은 본래 ‘Middlebrow’를 번역한 것으로, 지적·예술적 수준이 높은 ‘Highbrow’ 문화와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며 수준이 낮은 ‘Lowbrow’ 문화 사이에 놓인 예술작품을 가리키고자 20세기에 만들어진 단어라는 모양이었다. 한편 ‘Highbrow’와 ‘Lowbrow’는 다시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골상학에 뿌리를 둔 용어로서 이마가 넓은 사람일수록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통념을 반영한 것인데, 골상학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따위의 각종 편견에 ‘과학적’ 근거를 대준 것으로 악명 높은 유사과학이고……

음, 아무래도 여기까지 파고들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앞서 말했듯 본래 ‘Middlebrow’는 엘리트주의적 함의가 짙은 불쾌한 단어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뉘앙스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서 대략 순문학과 대중문학 사이 어딘가에 놓인 소설을 ‘중간소설’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니까. 그러면 내 소설이 ‘순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당황스러운 이야기기는 매한가지라 언론 보도를 조금 더 찾아보았더니, 판타지·SF·추리·로맨스 등의 장르에 속하는 이른바 ‘장르소설’을 중간소설이라고 정의하는 기사가 여럿 보였다. 그 내용을 읽고서야 비로소 왜 내게 ‘중간소설 창작자의 입장’을 들려달라고 부탁한 것인지 이해가 갔다. 아하, 내가 SF 작가라서 그랬구나. SF는 순문학에도 대중문학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소설이니까, 내가 중간소설 창작자의 입장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구나.

말인즉슨 그냥 편하게 SF 작가로서의 입장을 적으면 될 것 같으니, 그렇게 하겠다. 나는 SF가 중간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종 장르소설이라고 함께 묶이는 다른 장르의 소설도 전부 마찬가지다. 중간소설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의미한지 아닌지는 내가 논할 만한 주제가 아니고 틀림없이 다른 필진 중 누군가가 전문적인 의견을 내 주실 테니, 나는 장르소설가로서 중간소설을 장르소설의 동의어인 듯 일컫는 일이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만 일단 짚고자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게 ‘장르’란 소위 ‘순문학’이니 ‘대중문학’이니 하는 구분과 별다른 관계없이 존재하는 범주다. 쉽게 말하자면 흔히 순문학(혹은 문단문학, 본격문학)으로 분류되는 소설 중에도 장르소설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대중문학의 장으로 일컬어지는 곳에도 장르소설이 얼마든지 존재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단지 가능성 차원에서 그치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장르소설은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 따위의 호들갑을 떨 것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 나는 장르 작가인 만큼 장르 독자이기도 하고, 당연히 평소에는 장르소설로 출간된 작품을 많이 읽는다. 하지만 때로는 장르를 신경 쓰지 않고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무작위로 잔뜩 골라서 읽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이른바 ‘등단’ 과정을 거친 작가들도 SF를 꽤 열심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요즘 화두라서인지는 몰라도 인공지능이 더 발전한 미래를 그린 작품이 여럿 보였고, 사회 문제를 다루기 위해 디스토피아라는 소재를 가져온 작품도 있었다. 내게 이들은 전부 이론의 여지 없는 SF다. 어째서? 그야 SF의 소재와 기법을 그대로 쓴 소설이니까. ‘중간소설’로 분류되지는 않아도 엄연히 장르소설인 셈이다.

한편으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중문학의 장이라고 할 수 있을 웹소설 플랫폼에는 SF가 대단히 많다. 스페이스 오페라부터 대체역사물까지 다루는 하위 장르도 제법 다양하다. 2019년부터는 아예 한국 SF어워드에 웹소설 부문이 따로 꾸려지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들이 SF 작가로 잘 알려진 작가의 소설이 아니라고, SF로 홍보되지 않는다고, 혹은 SF 전문 레이블로 출간되지 않는다고 해서 SF가 아니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장르는 누가 썼는지, 혹은 어디에 실렸는지 따위를 가지고 정의되는 것이 아니니까. SF 이외의 장르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설이든 미스터리의 서사 구조를 따르면 미스터리고 등장인물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핵심적인 요소라면 로맨스이며, 둘 중 어디에 속하든 장르소설이다.

당연히 한 소설이 여러 장르에 함께 속할 수도 있다. 내 소설로 예를 들자면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는 미래 도시와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SF이고, 그중에서도 사이버펑크라는 하위 장르에 속한다. 동시에 이 소설은 주인공들이 수수께끼를 푸는 내용이므로 미스터리고,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므로 로맨스이기도 하다. SF와 미스터리와 로맨스 사이에 놓인 소설이라는 말이 아니라,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세 장르에 동시에 속한다는 말이다. 한편 나는 SF에는 약간 깐깐한 편이라서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는 SF에 한 발짝 걸친 어반 판타지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일부 수록작은 한층 확실히 SF이고 이 소설에 우수상을 안겨준 SF어워드 심사위원들도 필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성별이나 인종을 비롯한 세상만사가 대체로 그렇듯, 소설도 벽으로 둘러싸인 구획이 아니라 이처럼 연속적이고 복잡한 스펙트럼 속에 존재한다.

그런 만큼 어떤 장르에서는 평범할 뿐인 시도가 다른 장르에서는 탁월한 성취인 일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한 작품이 진부한 SF인 동시에 훌륭한 로맨스일 수도 있고, 미스터리로서는 평범한 동시에 역사소설로서는 탁월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좋은 ‘순문학’이 그저 그런 SF인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등단 작가의 인공지능 SF 중 상당수는 인공지능 묘사가 피상적이거나 터무니없어 좋게 평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작품들도 SF 바깥의 시선에서는 평가가 꽤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시도가 반복되다 보면 앞으로는 문단 내에서도 더 좋은 SF가 등장할 수 있으리라고도. 앞서 말했듯 장르란 어느 한 집단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누구나 어디서든 장르소설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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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 말을 ‘순수 SF’, ‘중간 SF’, ‘대중 SF’가 따로 존재한다는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순문학 작가가 쓴 SF는 순수 SF고, 웹소설 플랫폼에 올라온 SF는 대중 SF라는 식으로 말이다. 글쎄, 발표 지면에 따른 작품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만 해도 SF 전문 출판사의 앤솔러지에 실을 SF 단편과 문예지에 실을 SF 단편을 완전히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쓰지는 않으니까. 전자의 경우에는 독자 대부분이 SF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을 테니, 시간여행이 얽힌 복잡한 플롯이나 고전 SF 오마주를 듬뿍 넣어도 큰 문제가 없고 장르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어도 괜찮다. 하지만 후자는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도 SF임을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문예지에 실은 SF에 매번 외계인을 등장시킨 것은 그 때문이다.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외계인이 나오면 SF라고 곧장 이해할 테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게는 SF 앤솔러지에 싣는 소설이 ‘순수 SF’고 문예지에 싣는 소설이 ‘대중 SF’인 셈이다.

이는 물론 전자가 더 좋은, 혹은 더 SF다운 소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SF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를 만족시키는 일은 SF만 수백 권 읽은 독자를 만족시키는 일만큼 어렵고, 성공했을 때의 만족감 역시 비슷하다. 세상에는 어려운 걸작 SF가 있는 만큼이나 쉬운 걸작 SF도 있다. 후자가 없어지면 결국 전자를 읽어 줄 사람도 사라지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건 진정한 SF가 아니라느니, 저건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들이나 좋아할 법한 소설이라느니 하며 오직 극소수의 작품만을 진정한 SF로 떠받드는 ‘고인 물’의 텃세가 장르 내의 골칫거리인 것도 그래서이다. 나는 어디에 SF를 싣든 이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감과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이를 더욱 잘 전달하고자 기울이는 노력의 방향이 지면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이는 다른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스터리나 호러는 물론이거니와 이른바 ‘문단’의 주류 장르 중 하나로 보이는 리얼리즘 문학에서도 마니아를 위한 소설, 입문자를 위한 소설,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소설이 있다. 걸작은 그중 어디서나 나올 수 있고 그들 사이에 자동으로 우열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니아용 소설이 입문자용 소설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나아가 후자는 전자처럼 탁월한 통찰이 담기지 않은 한낱 심심풀이 소설이라고 주장하며 텃세를 부려 댄다. 그러는 와중에 “이쯤이면 일류에 미치지는 못해도 봐줄 만은 하군요.” 하며 말석에 몇 작품을 선심 쓰듯 데려다 놓는 일도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는가? ‘순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의 중간문학’이라는 표현이 내게는 이런 종류의 텃세와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장르 작가로서 영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는 소리다.

기껏 받은 지면에다가 단어 하나를 꼬투리 잡아 투덜거리기만 했으니 미안한 기분이 아주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르소설가로서 ‘중간소설’에 대한 의견을 부탁받은 이상 당연히 해야 할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SF가 최근 거두고 있는 뛰어난 성과들은 ‘흥미 위주의’ 대중문학에서 벗어나 ‘예술적인’ 순문학을 지향하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반대로 ‘돈 안 되는’ 그들만의 리그를 뛰쳐나와 ‘대중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장르의 전통과 유산을 존중하고, 때로는 장르의 경계와 규칙에 도전하면서 끈질기게 쌓아 온 다양한 노력이 마침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선 결과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같은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순문학이든 대중문학이든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존재하는지 아닌지조차 모를 그 ‘중간’을 구태여 찾을 필요는 없다.

이산화
SF 작가
장편소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연작소설집 『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소설집 『증명된 사실』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등